[우리말과 한국문학] 꿀벌의 언어와 인간예외주의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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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2-19   |  발행일 2019-12-19 제30면   |  수정 2020-09-08
꿀벌춤은 거리 따라 다르고
지역별 움직임도 크게 차이
다른 동물과 별개 존재 인식
인간예외주의 근거가 언어
가장 발전된 의사소통체계
[우리말과 한국문학] 꿀벌의 언어와 인간예외주의
김진웅 경북대 국어 국문학과 교수

동물들도 언어를 사용하는가? 이 질문은 아마도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것일지도 모른다. 근대 이전에 신과 교감할 수 있는 유일할 존재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하던 인간은 근대 이후에는 이성의 힘으로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로 스스로를 규정했다. 인간이 신과 소통하는 수단도, 이성적 사고를 수행하는 수단도 모두 언어이다. 인간만이 언어를 통해 계약을 맺으며 그것을 바탕으로 사회를 이룰 수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일찍이 갈파한 이야기다.

철학자들은 언어를 인간 고유의 특성으로 간주하였으나 현대의 동물행동학 연구는 다른 가능성을 제시한다. 동물의 언어를 언급할 때에 단골로 등장하는 꿀벌의 이야기는 매우 흥미롭다. 카를 폰 프리슈가 밝힌 꿀벌의 언어는 대략 다음과 같다. 꿀벌 가운데에는 정찰을 맡은 벌들이 있다. 이들은 주변에서 꿀을 얻을 수 있는 밀원을 발견하면 벌집으로 돌아와 동료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맡는다. 그렇다면 밀원이 있는 장소를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이때에 등장하는 것이 바로 춤언어이다. 꿀벌의 춤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 형태로 구분할 수 있다. 밀원이 50m 이내 가까운 곳에 있는 경우에는 원을 그리는 춤을 춘다. 이때 원을 그리는 방향을 한번씩 전환을 하며 방향에 대한 정보는 전달하지 않는다. 밀원이 50m를 벗어나는 경우에는 8자 모양을 만드는 춤을 춘다. 8자춤을 출 때에 가장 중요한 정보는 8자의 두 원이 만나는 가운데 직선 부분이다. 정찰벌은 밀원을 발견했을 때 밀원과 태양 사이의 각도를 재서 돌아온다. 야외에서 태양의 방향을 기준으로 8자의 가운데 직선이 밀원의 방향을 가리키는 역할을 한다. 직선 구간에서 춤을 출 때에 꿀벌은 엉덩이를 흔드는 횟수로 밀원의 거리를 전달한다. 거리가 멀어질수록 움직이는 속도는 느려지고 엉덩이를 흔드는 횟수는 늘어난다.

꿀벌의 언어에도 방언이 존재한다. 앞서 언급한 꿀벌의 엉덩이춤에서 한 번의 움직임이 가리키는 거리가 지역적 차이에 따라서 달라진다. 예를 들어, 이집트의 꿀벌이 엉덩이를 한 번 흔들 때 지시하는 거리는 약 9m이고, 이탈리아 꿀벌은 약 18m, 독일 꿀벌은 약 36m라고 한다. 이집트 꿀벌의 엉덩이춤은 독일 꿀벌의 춤보다 더 정교하게 거리를 전달할 수 있는 반면에 먼 거리의 정보를 전달하기에는 효율성이 떨어진다. 왜 이와 같은 차이가 일어났을까? 논란의 소지는 있으나, 지역마다 꿀을 채취하는 영역의 차이가 나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나타났다는 설이 유력하다. 열대 지방에 가까운 이집트에는 밀원이 좀 더 풍부하기 때문에 멀리 비행을 하지 않아도 꿀을 발견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좀 더 짧은 거리를 정확히 계산하는 방식이 효율적이다. 한편 온대에 속하는 독일에는 밀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먼 지역까지 꿀을 채취하러 이동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다소 부정확하더라도 먼 거리를 효율적으로 전달할 방언이 발달한 이유이다. 기후 상으로 중간에 해당하는 이탈리아의 꿀벌이 중간 정도의 거리를 한 번의 동작으로 지시하는 것도 이 가설을 뒷받침한다.

인간예외주의는 인간을 다른 동물들과 분리된 별개의 존재로 이해하는 사고방식이다. 동물은 영혼이 없는 기계와 같다는 데카르트의 선언이 잔혹한 동물실험의 근거로 이용되었듯이 인간예외주의는 인간이 동물을 다루는 방식에 윤리적 방패로 작동한다. 인간예외주의의 가장 중요한 근거가 바로 언어였다. 인간의 언어만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근거로 인간과 동물을 구별한 것이다. 인간 언어의 중요한 특징이 말하는 현장에서 벗어난 내용을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앞서서 살폈듯이 꿀벌 역시 멀리 떨어져 있는 꿀이 있는 장소를 언어로 전달할 줄 안다. 또한 각 지역의 특성에 맞는 방언을 제각각 발전시켜 왔다. 인간의 언어가 가장 정교하게 발전된 의사소통체계임은 분명하다. 단 이 역시 진화의 결과라는 사실은 유념할 필요가 있다.

김진웅 경북대 국어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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