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태훈 대구여상 교사의 ‘향토와 문화’ 전질 소장記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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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4-18   |  발행일 2014-04-18 제35면   |  수정 2014-04-18
좀처럼 구할 수 없던 23·32호 2년간 다리품 팔아 손에 넣어
색바랜 창간호 구하던 날엔 혼자서 환호성 질렀죠
성태훈 대구여상 교사의 ‘향토와 문화’ 전질 소장記
금맥을 찾아다니듯 ‘향토와 문화’ 69권 전질을 확보하기 위해 사생활을 거의 포기하다시피했던 성태훈 대구여자상업고 교사가 득의만면한 표정으로 창간호 표지를 보여주고 있다.

◆어디 숨었니 향토와 문화 23·32호

성태훈씨(52·대구여자상업고 교사)는 지역에선 나름 인지도를 가진 컬렉터. 타지 사람이 오면 꼭 향토와 문화를 ‘대구사과’처럼 홍보한다.

“이런 사보가 이윤을 추구하는 금융기관에서 나온다는 게 정말 충격이었습니다. 다시 훑어봤는데 대구은행 로고가 보이더군요. 대구은행을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됐어요.”

그가 창간호 때부터 이 사보에 빠진 건 아니다. 창간된 지 3년 만에 대구 모 구청 도서관에 근무하고 있는 아내 덕분에 우연히 사보를 접하게 된다. 일단 향토사학적 콘텐츠가 무척 탄탄했다. 내친김에 도대체 누가 이 책을 기획하고 만드는지 실체 파악에 나선다.

“대구에 살고 있어도 대구가 경북과 어떤 지리학적 연관성을 갖고 있는지 전혀 감 없이 살았어요. 그런데 그걸 향토와 문화가 가르쳐주었습니다. 동쪽 끝은 포항시 대보면 석병리(동경 129도 35분), 서쪽 끝은 상주시 화북면 운흥리(동경127도 48분)이며, 남쪽 끝은 청도군 청도읍 초현동(북위 35도 34분)이고 북쪽 끝은 울진군 북면 나곡리(북위 37도 8분), 울릉도와 독도를 제외하면 거의 원형을 이루는 본도의 경계선은 약 887.5㎞라는 걸 알았어요. 경북의 도계에 있는 유명한 고개로는, 태백산맥이 종단하고 있는 경북과 강원도 간의 경계선에는 들고개와 비행기재(금정재)가 있고, 소백산맥이 가로놓인 경북과 충북 간에는 죽령, 새재(조령), 이화령, 소리터고개, 오도치, 추풍령, 질매재(우두령) 등이 있으며, 경북과 전북 간에는 주치령이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습니다. 향토와 문화는 이 정도의 팩트가 주를 이룹니다. 아주 실증적이죠. 대구경북 향토사 가이드북으로 최고라고 봐요.”

사보라지만 내용은 논문 수준이었다. 과월호의 내용이 궁금해졌다. 하지만 헌책방 등 주위를 아무리 샅샅이 뒤져봐도 자신이 원하는 지난 호를 찾기 어려웠다. 대구은행 지점 서가를 뒤질 수밖에 없었다. 허사였다. 상당수 보관을 하지 않고 버리는 것 같았다. 안면있는 문화예술계 인사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몇 권 정도는 갖고 있어도 전질을 다 가진 사람은 없었다. 물론 다 갖고 있어도 그가 원하는 호수를 자신에게 양보할지도 의문이었다.

궁여지책 끝에 대구은행 홍보부와 문화기획사인 올댓플랜 창의 엄명숙 대표를 통해 과월호 필진의 연락처를 확보하고 각개 격파에 나선다. 그런 와중에 ‘귀인’을 만나게 된다. 진주공예 전문가이고 당시 경남 통영 진주박물관 손영학 관장이 꽤 많은 과월호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한테 매달린다. 소득이 있었다.

하지만 갈 길은 멀었다.

세 권(1·23·32호)은 꼭꼭 숨어버렸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무려 2년 이상 미아 찾듯 돌아다녔다. 창간호는 손영학 관장이 출입하는 출판사에서 발견해 그에게 넘겨주었다.

“원하는 걸 얻는 건 결국 시간과의 싸움이죠.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 나타나죠. 창간호를 얻는 날 혼자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이때부터 수집에 더 열정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두 권을 더 찾기 위해 대구은행 본점 홍보부를 습격했다. 관계자는 극성스럽게 달려드는 그에게 여분이 없다면서 피했다. 마침 성 모 본부장이 동향의 고교 선배였다. 덕분에 위안이 되었지만 23호와 32호는 통 무소식이었다.

그 두 권은 의외의 공간에서 확보할 수 있었다.

산업체 연수를 받던 중 강사로 나온 대구은행 전직 임원을 만난다. 강연 직후 그에게 다가갔다. 혹시 자기가 원하는 사보 두 권을 소장하고 있는지 물어봤다. 본인은 가진 게 없다고 했다. 그 다음 날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연수받던 그의 책상 위에 그토록 찾아다녔던 23·32호가 금덩이처럼 앉아 있는 게 아닌가. 그 임원의 인품에 적잖이 감동을 받는다. “좀 부풀려 말해 천하를 얻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도 지역 관련 자료를 수집 중

그가 향토와 문화에 대한 몇 가지 정보를 알려준다.

“다른 사보는 절대 이런 대접을 받지 못합니다. 요즘 헌책방에서 유가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15호(나의 20세기), 27호(1970년대), 52호(양동마을)은 특히 귀해 고서처럼 취급받습니다. 52호의 경우 유네스코에 등재되기 바로 직전에 나와 이 책을 찾는 이가 더 급증했고, 27호의 경우 지역 근대사 연구자에겐 바이블이죠. 23호는 대구경북 음식의 근원을 탐색한 건데 인문학적으로 대구경북음식문화를 다룬 건 향토와 문화가 처음일 겁니다.”

그가 수집에 눈을 뜬 것은 23년 전. 부산에 근무하다가 대구로 오면서 안동 등지를 다니면서 소반, 고서적, 한서, 목기류 등을 집중적으로 사모은다. 그의 집에 들어서니 희망등과 대안등이 보인다. 둘 다 등유로 켜는데 희망등은 심지가 하나, 대안등은 두 개인 게 다르다.

근대사 자료에 관심을 갖다가 그는 빈티지 오디오 수집에 치중한다. 현재 62년에 나온 금성라디오를 비롯해 60년대 라디오 10여대, 70년대 라디오 20대, 대구경북 자료로는 소주병을 특히 많이 모았다. 금복주 스크린병도 갖고 있다. 지금은 알코올 도수가 낮아졌지만 73년은 30도였다가 76년에 25도로 낮아진 걸 보여준다. 그는 최근의 독도병 등 참소주(금복주) 관련 웬만한 모델은 다 갖고 있다. 그가 프로스펙스의 후신인 LS네트워크가 펴낸 사외보 ‘보보담(步步譚)’의 대구특집판(10호)을 보여준다. 대구와 관련된 자료라면 다 모아둔다. 현재 지역 관련 250여권의 서적을 소장하고 있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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