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방 ‘사랑으로 사는 사람들’ 기억하시나요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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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4-18   |  발행일 2014-04-18 제35면   |  수정 2014-04-18
대구 ‘社報 전성시대’ 회고
우방 ‘사랑으로 사는 사람들’ 기억하시나요
한때 사보는 공짜라는 통념을 깨트리며 한 부 1천원 유가지 사외보 시대를 연 우방 사보 ‘사람으로사는 사람들’.

생각해보면 조선왕조실록이나 경국대전도 조선을 알리는 사보인지도 모른다.

국내 첫 현대적 사보는 언제부터 나왔을까.

2010년 5월, 당시 창사 80주년을 맞은 대한통운 측이 지난 사보를 정리하다 귀중한 자료를 발견한다. 대한통운의 전신인 조선운송주식회사의 사보 여섯 권 중 1939년 4월에 발간된 사보 ‘조운(朝運)’을 발견한 것. 조운의 최초 발간연도는 37년 2월. 그러나 실물이 발견된 것은 39년 4월호가 처음이다. 따라서 조운은 현존하는 사보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확인된 셈.

대구 경기가 좋았던 시절. 상당수 출판 디자이너는 사보 편집진으로 잘 팔려다녔다.

대구·동아백화점의 사보는 지역문화 파수꾼 구실을 한다. 두 백화점은 자체 공연홀까지 갖고 있었다. 특히 80~90년대초 초대박 아파트경기에 힘입어 우방·청구·보성·화성·윤성·태왕 등은 경쟁적으로 사보경쟁을 벌인다. 그중에서도 건설3사(우방·청구·보성)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150쪽 안팎의 여성지 스타일의 사보를 펴냈다. 제호만 가리면 내용은 다 같았다.

그런데 우방이 한발 앞선다. 새로운 사보시대를 연 것이다.

총대를 맨 사람은 디자인회사인 ‘밝은사람들’의 이석대 대표다.

“기존 건설사 사보가 너무 낭비적이고 소모적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고객 감동 경영을 위해선 이런 색깔로는 곤란하다고 판단했죠.”

사보 편집방향을 이웃사랑과 봉사에 포커스를 맞춘다. 판형도 확 줄여 샘터 스타일로 갔다. 더 얇게 만들어 페이지를 40여쪽으로 대폭 줄였다.

사보에도 별도 이름을 붙인다. 그래서 태어난 것이‘사랑으로 사는 사람들’(일명 사사사). 당시 경쟁사는 회사 이름을 사보 이름으로 그대로 내는 걸 선호했다. 그만큼 권위주의적이었다. 하지만 이순목 회장(고인)은 불안했다. 경쟁사보다 볼품이 없어보인다고 난색을 포했지만 결국 이 대표의 생각대로 사보가 바뀐다.

처음에는 5천부를 찍었다. 인기폭발이었다. IMF외환위기 직후에는 무려 12만3천부로 폭증한다. 사보가 그렇게 잘 팔릴 수가 없었다. 우방이 시대 흐름을 먼저 읽은 것이다.

하지만 외환위기로 인해 사보를 폐간해야 되는 절체절명의 순간이 온다. 당시 총무팀장이었던 이 대표는 폐간호 우송작업을 하면서 고별 편지를 삽입한다.

‘더 이상 제작비가 없어 폐간할 수밖에 없지만 만약 1년 구독료 1만원을 보내주면 흑백판이라도 계속 펴낼 생각’이라고 호소했다. 이 편지에 감동한 애독자 9천여명이 구독신청을 한다. 사보 사상 처음으로 유가지 시대를 우방이 개척한 것이다. 하지만 불가항력이었다. 1년을 못 버티고 문을 닫는다.

사보팀은 우방을 위해 96~97년 두류야구장에서 지역에 노는 동전을 한데 모으는 ‘사랑의 동전잇기’ 행사도 벌여 모인 성금을 결식아동 등에게 보냈다.

사랑으로 사는 사람들이 문을 닫은 뒤 이 대표는 ‘홍보실닷컴114’란 광고기획사를 차린다. 재차 우방 사보 복간 일환으로 타블로이드판 주간지 형식으로 ‘밝은사람들’을 펴낸다. 이때 예전 사보 멤버였던 손정순, 박명희, 김영기 등 6명이 의기투합을 했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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