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기다리는 유골함 1천여기…10년 동안 찾지 않으면 합장

  • 최보규
  • |
  • 입력 2017-10-30 07:32  |  수정 2017-10-30 07:32  |  발행일 2017-10-30 제5면
늘어나는 무연고 시신 실태
20171030
지난 11일 칠곡군 지천면 대구시립공원묘지 내 ‘무연고 및 유실 보관실’ 내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이들의 유골함이 철제 진열대를 빼곡히 메우고 있다. 올해의 경우 지난 8월 말까지 집계된 전체 무연고 사망자 중 유족이 사체를 포기한 비율은 79.2%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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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연고 사망의 발생 경위는 다양하다. 홀로 자택과 사무실 등에서 숨진 채로 이웃, 경찰 등에 발견되기도 하고 병원에서 병을 앓다가 외롭게 숨진 경우도 있다. 다만 사망 이후 시신을 처리할 유족을 찾지 못하면 그때부터 공식적인 무연고 사망자로 분류된다. 유족이 사체 인수를 거부·포기할 때도 무연고로 기록되는데 그 과정은 종이 한 장으로 결정된다. ‘사체 처리 포기 위임서’를 지자체에 제출하면 해당 구·군청은 유족을 대신해 화장 절차를 진행한다. 이후 화장한 유골함은 대구시립공원묘지에 10년간 보관된 뒤 합동 매장된다. 생전 쓸쓸한 삶을 살고, 죽어서도 가족이 아닌 이들의 손길을 받으며 떠나야만 하는 사람들. 영남일보는 대구지역의 무연고 사망 실태를 들여다봤다.

◆두 번 버림받는 사람들

가족이 있지만 외롭게 죽을 수밖에 없던 사람들. 이들의 흔적은 칠곡군 지천면 낙산리 산 167에 남아있다.

대구시립공원묘지 안에 있는 ‘무연고 및 유실 보관실’에는 무연고 사망자의 유골이나 분묘 개장 후 유족을 찾지 못한 이들의 유골함이 봉안된다. 수시로 가족들이 찾아오는 추모공간은 알록달록한 꽃들과 손수 쓴 편지, 고인의 생전 사진 등으로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지만 관리사무소 옆에 자리 잡은 ‘무연고 및 유실 보관실’은 사정이 크게 달랐다. 4~5평(약 10~13㎡) 남짓한 공간을 가득 채운 건 은색 철제 진열대. 이를 빼곡히 메우고 있던 유골함들은 꽃 장식 하나 없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비교적 최근에 들어온 유골함은 새하얀 천에 간혹 꽃 장식이 있었지만, 일부는 지난 세월을 보여주듯 유골함을 감싼 천이 누렇게 변해 있기도 했다.


유족이 구·군청에 신청시 찾을 수 있지만
대부분 가족 보살핌 못 받고 합동매장돼
장례협동조합 등 새로운 시스템 고려해야



이곳에 보관돼 있는 유골함은 모두 1천여 기. 가족을 마지막으로 기다릴 수 있는 공간에서 주어진 시간은 10년이다. 그 기간이 지나면 가족을 찾지 못한 다른 유골들과 함께 합장된다. 도중에 유족이 유골함을 찾아가겠다고 관할 구·군청에 신청하면 신원확인 절차를 거쳐 되찾아갈 수 있지만 그런 경우는 굉장히 드물다는 게 시립공원묘지 측의 말이다.

시립공원묘지 관계자는 “유족 중 유골함을 모셔가겠다며 찾아오는 이들은 아주 드물다. 찾아와서 유골함을 보고 가는 경우도 아주 가끔”이라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시립공원묘지는 총 다섯 번에 걸쳐 합장을 진행했는데 모두 3천818기가 끝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땅에 묻혔다. 1차 962기, 2차 1천39기, 3차 456기, 4차 1천128기, 5차 233기다. 다시 말하면 쓸쓸히 생을 마감한 뒤 한 줌의 재로 땅에 묻히는 과정에까지 가족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 이들의 수다.

◆가족관계 단절, 경제적 부담

대다수 유족들은 시신 인수를 포기한 이유로 가족관계 단절이나 경제적 부담을 들었다. 오랜 기간 고인과 왕래가 없어 장례를 치르기 적절치 않다고 믿거나 갑작스레 떠안게 된 장례 비용 등의 금전 부담이 너무 큰 것이다.

유족 등 연고자들은 시신 인수를 포기하면서 관할 구·군청에 제출한 ‘사체처리 포기 위임서’에 ‘그동안 왕래가 없었다’거나 ‘시신을 회수할 형편이 안 된다’ ‘경제적 여력이 안 된다’ 등의 사유를 적어넣었다.

한 구청 관련 부서 담당자는 “주로 짧게는 수년, 길게는 수십 년 동안 망자와 왕래를 안 했다는 이유가 많다. 또 경제적 부담을 언급하는 경우가 많은데 장례비용 때문에 시신을 포기한다고 전화로 직접 설명한 유족도 있었다. 병원에서 사망할 경우 밀린 치료비를 감당해야 돼 부담을 호소한 사례도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소비자원이 2014년부터 1년여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평균 총장례비용은 1천400여만원에 달했다.

장민철 대구쪽방상담소 소장은 “가족관계가 소원한 데다 장례비용이 워낙 부담스러워서 장례를 포기하게 되는 건데, 그렇다고 해서 고인에 대한 애도의 뜻도 표현하지 못하도록 돼 있는 현재의 무연고 장례 시스템에는 문제가 있다”며 “장례 비용을 낮추는 방법과 더불어 현실적인 비용으로 최소한의 장례 절차라도 치를 수 있도록 장례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과 같은 새로운 장례 시스템을 고민해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대구시는 무연고자에 대한 국가적 대응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시 관계자는 “고독사가 무연고 사망자를 낳는 문제의 원인으로 꼽혀오고 있는데 정작 고독사에 대한 정의도 뚜렷하지 않은 상황이다. 고독사나 무연고와 관련한 중앙정부 차원의 관련 법이 없다 보니 지자체들이 지역 단위에서 나설 수 있는 체계적인 대응책이 없다”고 말했다.

이 가운데 대구지역의 무연고 사망자는 점차 늘어나는 추세를 보인다. 대구시에 따르면 2012년 15명에 그쳤던 대구 무연고 사망자는 2013년 47명, 2014년 32명, 2015년 90명, 2016년 78명 등으로 늘었다. 올해는 지난 8월 말까지 53명이 무연고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연령대별 규모로 보면 60대 이상이 압도적으로 많고 그 뒤를 50대가 잇고 있지만 40대도 2012년 3명, 2013년 5명, 2014년 6명, 2015년 8명, 2016년 12명 등으로 꾸준히 증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글·사진=최보규기자 choi@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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