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가 몰고 온 대게특수…강구항 벨트에만 업소 170여곳 몰려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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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5-04   |  발행일 2018-05-04 제34면   |  수정 2018-05-04
이춘호기자의 푸드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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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구항 대게상가 전경. 강구1리에서 4리까지 강구항 대게벨트에는 170여 개 업소가 밀집해 있다. 강구항 대게상가 수족관. 보통 6개 이상을 갖고 있다(작은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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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구리막회 축제가 열리는 축산항. 멀리 죽도산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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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 원조대게마을인 차유마을 유래비. 축산면 경정2리 어민들은 다들 배를 갖고 직접 잡아 온 대게를 판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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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 풍력발전단지의 명물인 풍력발전기가 대게 조형물을 배경으로 서 있다.

영덕읍 창포리 해맞이공원에 가면 대게 집게발을 닮은 ‘창포말등대’가 보인다. 거기서 해안도로를 따라 강구항 쪽으로 가다 보면 눈밝은 사람에게만 발견될 것 같은 카페 하나가 길 왼쪽 큼지막한 갯바위 위에 청초하게 피어 있다. 전국적 커피해안으로 불리는 강원도 정동진 안목항에도 뒤지지 않는 조망카페인 ‘봄’이다. 거기에 그런 커피점을 낼 생각을 한 사장의 감각이 남달라 보였다. 해안 낭떠러지에 철제 빔을 꽂고 간들간들하게 리모델링했다. 2층은 실내와 실외의 경계를 지워버렸다. 빈둥대기 딱인 테라스 비치베드. 이 집의 마스코트이기도 한 대형 커피잔에 적힌 문구가 시선을 끈다. ‘바다를 봄, 내 마음의 봄’. 관광의 피곤함을 살포시 날려준다. 여행가에게 딱 맞는 수평선이 바로 눈높이에 앉아 있다. 마시는 커피보다 그냥 만지작거리고 있는 커피가 더 어울리는 것 같은 곳.

시청률 50% 이전 일부 미식가에 편중
강구수협 경매 등 전국적 알려져 주목
울진은 도로사정 탓, 관광객 영덕 몰려
원조 차유마을∼축산항 수백곳 성업

현장 구입, 저렴하게 먹는 대광어시장
난전 파는 대게, 자릿세 받고 쪄주기도
가게 앞에서만 호객행위 방침 신사협정
성수기 주말 관광객 1만여명이상 방문
소형 자망어선, 갈수록 조업환경 악화

◆ 강구항 대게상가의 낮과 밤

국내 최다 대게상가가 모인 강구항. 거기에 도착하자 햇살이 달빛을 데려나오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대게집, 다 먹고산다니. 이렇게 늦은 철에 대게를 찾아온 이유. 대게의 포획, 유통, 요리…. 난마처럼 얽혀있는 대게의 일생을 깔끔하게 총정리해보고 싶어 지난 4월19~20일 ‘영덕대게로드’를 걸었다. 내가 도착한 날은 대게잡이 시즌이 막 끝난 시점이었다.

대게!

다들 대게와 관련해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는 없다고 믿는다. 하지만 속단은 금물. 대다수 독자는 아직도 대게에 대한 감춰진 스토리를 충분히 알지 못한다. 이 친구가 상팔자가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대한민국 경제를 초토화시켜버린 IMF외환위기. 그것과 맞물려 1997년 10월11일부터 이듬해 4월26일까지 방영된 MBC 주말연속극 ‘그대 그리고 나’. 시청률은 무려 50% 이상이다. 당초 울진 쪽에서 촬영할 예정이었지만 조건이 맞지 않아 결국 강구항이 주 촬영지가 된다. 영덕으로선 행운이었다. 강구항 등대, 오포해수욕장, 강구축협 옆에 있던 한 적산가옥, 그리고 강구수협 대게 경매과정 등이 전국에 실시간으로 알려진다. 가공할 만한 이 드라마가 ‘대게특수’를 몰고 왔다. 대게관광이 본격화되기 시작한다. 대게는 그동안 일부 미식가에게만 편중됐다. 또한 대게는 1950년대 삼사해상공원 언저리에 있었던 <주>조일산업의 별표통조림이 대량 매입해 대게통조림으로 가공해 팔았다.

영덕과 울진도 함께 그 특수를 공유했으면 얼마나 좋았겠냐. 관광객은 영덕으로만 몰려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당시 울진으로 이어지는 도로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1917년부터 해안을 따라 깔린 시골길 같은 국도 7호선. 박정희 정권 때 확장된다. 하지만 영덕까지만 그 혜택을 받는다. 502㎞ 전 구간이 완전 개통된 건 2008년.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난 22년간 대게는 영덕의 몫이었다. 울진은 사각지대에 파묻혀 있었다.

강구항은 대게로드는 물론 ‘안동간고등어로드’까지 파생시킨다. 안동으로 팔려가는 고등어를 비롯해 울진권, 포항권 등에서 잡힌 대게도 영덕에서 독점적으로 위판된다. 대게는 잡히는 곳이 아니라 팔리는 곳의 지명이 대게의 이름이 된다. 울진에서 잡혀도 강구항에서 팔리면 영덕대게가 되는 것이다.

오·폐수 분리 탓에 강구항으로 흘러든 오십천의 수질은 무척 청명해 보인다. S자로 굽어지는 오십천 위로 두 개의 다리가 가설돼 있다. 남쪽은 구대교, 북쪽은 신대교. 오십천의 남쪽은 오포리, 북쪽은 강구리다. 오포리 쪽엔 대게상가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고작 강구전통시장을 축으로 산재한 대게 유통상가 정도다.

강구항 대게상가는 오십천의 북쪽구역, 강구4리에 밀집돼 있다. 그 북쪽 강구1리를 넘어 영덕대게 원조마을인 ‘차유마을’(축산면 경정2리), 매년 5월 초 미주구리막회 축제를 여는 축산항 구역까지 200~300여 개 대게 업소가 깔려 있다.

2004년 영덕대게상가연합회가 처음으로 결성된다. 당시 회원업소는 78개. 지금은 무허가 가게까지 합치면 강구4리 강구항 쪽에만 170여 개 업소가 집중돼 있다. 강구항의 전체 모습을 보고 싶었다. 강구항 북쪽 산 정상부에 조성된 대게축구장 옆 좁다란 블루로드를 조금 내려가면 무너질 듯 겨우 서 있는 달동네가 나온다. 거기 앉으니 항구를 떠나 먼바다로 나가는 어선의 궤적이 한눈에 들어온다. 멀리 빌딩형 대광어시장이 보인다. 여긴 대게회타운 같은 곳이다. 현장에서 대게를 구입해 바로 옆에서 먹을 수 있다. 상대적으로 대게 전문점보다 가격이 싸다. 주머니 사정이 더 안 좋은 사람들은 하급 대게를 파는 난전에서 대게를 사서 길 건너편 골목 안에 산재한 허름한 주택으로 들어가 자릿세(1만5천원)와 대게를 쪄주는 공임료(5천원)를 내고 대게를 즐긴다.

10명 중 1~3명만이 고가의 대게집을 이용한다. 현재 대게상가 산증인으로 불리는 강구수협 바로 옆 씨월드 사장 이춘국씨(70). 9년째 영덕대게축제추진위원장을 맡고 있는 그는 1993년 3월 ‘강구냉동’을 오픈, 지금까지 영덕대게를 취급하고 있다. 초창기만 해도 대게는 그렇게 특별한 어종이 아니었다. 강구항의 한 어종에 불과했다.

대게상가를 만든 개국공신이 있다. 1세대 상가인 삼성식당, 죽도산, 대게종가, 대게궁…. 1998년에 등장한 이가대게는 ‘퓨전 대게요리 기수’로 불린다. 이 거리에서 가장 규모가 큰 가게는 대게궁.

◆ 대게 호객꾼이 만드는 진풍경

언젠가부터 이 상가에 특수직이 생겨났다. 호객 전문 매니저(일명 삐끼). 이들은 200만~250만원 월급과 성과급 형식으로 판매량에 따라 일정한 리베이트까지 받는다. 여성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 역할은 다들 남성이 한다. 예전에는 몸을 던져가면서 악착같이 자기 가게로 끌고 가려 했다. 이미지가 갈수록 나빠질 수밖에. 상가연합회에서 머릴 맞대고 신사협정을 맺었다. 3년 전부터 가게 앞에서만 호객행위를 하기로 합의했다.

이 거리의 또 다른 명물은 매머드급 대게 조형물. 그게 간판 구실을 한다. 대게종가, 대게궁, 죽도산, 이가대게 등이 가게 입구에 장착해 놓았다. 초창기엔 몇천만원대. 현재는 1천만원 선.

성수기 주말에는 1만명 이상 몰린다. 자연 상가의 평당가격도 치솟을 수밖에. 현재 115.4㎡ 건물이 15억원에 매매된다. 목 좋은 데 임차료는 800만원 선.

대형 매장은 6개 정도의 수족관을 갖고 있다. 평균 600마리의 대게가 있다. 수온은 3~4℃. 길어야 7일 만에 다 소진시킨다. 위판 당일 먹으면 맛이 제일 좋을 것 같은데 상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게 아닌 모양이다. 수족관에 들어간 지 2~3일 지나야 제대로 된 간이 형성된다. 오래될수록 더 싱거워지는 게 아니라 더 질기고 차진다. 줄어든 살점 공간에 짠물이 스며들어가기 때문이다. 수족관은 1주일마다 물을 교체한다. 이때 많은 대게가 죽어나간다.

해가 지면 강구상가의 길쭉한 불빛이 은하수처럼 펼쳐진다. 상가 뒤편 산언저리 달동네 불빛, 간판의 불빛, 그리고 상가보다 더 아래 라인, 바다 바로 옆에 자릴 잡은 해물포차처럼 늘어선 풍물거리의 다양한 조명이 알록달록 앙상블을 이룬다.

대게 앞에 ‘영덕’이란 지명을 붙이면 대게는 단번에 정치적이고 전략적이고 마케팅적으로 변모한다. 대게는 서해와 남해와는 무관하다. 동해가 독점하고 있다. 북으로는 강원도 고성, 아래로는 울산 정자항까지 대게가 잡힌다. 울진 죽변항과 후포항, 영덕 축산항과 강구항, 포항 구룡포항. 국내 5대 대게항으로 불린다.

대게와 관련해 소비자가 아는 건 사실 아무것도 없다. 난생처음 현지 대게를 먹어볼 요량으로 강구항으로 온 관광객. 업소 주인의 속내를 전혀 알 수가 없다. 붉은대게가 영덕대게와 어떻게 다른지, 박달대게와 너도대게는 어떻게 다른지, 도심지 트럭에서 덤핑식으로 팔려나가는 허접한 홍게는 어떤 루트를 통해 거기까지 왔는지. 도통 알 도리가 없다. 원가 정보도 시시각각 달라진다. 누군 “가장 비싼 걸 먹는 게 가장 현명한 처사”라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 대게원조 차유마을

2016년 12월 개통된, 아는 사람만 알고 있는 당진~영덕 30번고속도로를 타기 위해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남안동1C 조금 못 미쳐 영덕으로 빠져나왔다. 꼭 45분 만에 축산면 경정2리 원조대게마을인 ‘차유마을’에 도착했다. 그런데 차유의 한자가 각기 다르다. 1345년 영해부사 정방필이 수레를 타고 고개를 넘어와서 먹었다고 해서 ‘차유(車踰)’라 하기도 한다. 930년 태조 왕건이 안동 하회마을 부근에서 후백제 견훤의 군사를 크게 무찔렀다. 이때 안동 유지들과 토호 세력인 영해 박씨들이 전투를 도왔다. 왕건은 보답으로 경주로 가는 길에 영해와 영덕을 들렀다. 지금의 강구항에서 북쪽으로 10㎞ 떨어진 영덕읍 축산면 경정2리 마을에서 처음 대게를 맛봤을 때 왕이 탄 수레가 마을에 머물렀다고 해서 ‘차유(車留)’로 불리기도 한다. 고려사에 931년 왕건이 지금의 영해 지역을 순시했을 때 대게가 진상됐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조선 초기 대게가 진상됐으나 주상이 먹기에 번거로움이 많아 수라상에 올라가지 못했다. 하지만 자꾸 대게 생각이 난다는 주군을 위해 대게 찾기에 나선다. 축산면 죽도의 한 어부가 잡은 대게를 보고 이름을 물었는데 그냥 ‘이상한 벌레’란 뜻으로 ‘언기(彦其)’라 했다. 이후 궁궐 학자들은 대게를 ‘죽침언기어(竹針彦其魚)’, ‘죽육촌어(竹六寸魚)’, 결국엔 ‘죽해(竹蟹)’로 불렀다.

영덕에만 원조대게마을이 있는 게 아니다. 울진에도 있다. 평해읍 거일리가 대게마을로 불리는데 매년 영덕보다 앞서 울진대게 공원에서 축제를 벌인다.

1985년부터 지금까지 줄기차게 소형 자망어선 6t 동림호를 운항해온 김시대 선장을 만났다. 그는 차유마을의 뒤안길을 소상하게 알고 있었다.

“대게가 처음부터 귀한 존재가 된 건 아닙니다. 최불암이 나왔던 그 드라마가 수훈갑이죠.”

그의 친형 김종칠은 해룡호를 몬다. 그 밖에 제길호 김재필 선장, 동성호 박만호 선장 등도 대게의 산증인이다. 그는 지난해 12월1일 첫 조업을 했다. 그리고 지난 4월13일 조업을 끝냈다. 매월 12번 정도 바다에 나간다. 너무 멀리는 나가지 않는다. 짧게는 30~40분, 멀게는 1시간10분 정도 나간다. 보통 오전 7시에 나가면 오후 1~2시, 늦어도 오후 6시 정도면 집으로 돌아온다. 일본 근해로 조업을 나가려면 연안자망 소속 배로는 부족하고 근해자망어선이라야 가능하다. 가로 70m 세로 3m 그물 15개 한 세트를 한 틀이라고 하는데 이걸 대게 이동 지점에 테니스 네트처럼 드리운다. 갈수록 조황이 최악으로 치닫는다. 하루에 2~3마리 잡힌다. 이번 시즌에는 채 400마리도 못 잡았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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