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컬 窓] 전공의에 의존하는 왜곡된 한국의료

  • 이준엽 대구시 의사회 홍보단장·이준엽이비인후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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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3-29 06:57  |  수정 2024-03-29 06:58  |  발행일 2024-03-29 제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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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엽 (대구시 의사회 홍보단장·이준엽이비인후과 원장)

정부가 의사가 부족해 필수의료 공백사태가 벌어진다며 의대 정원을 2천명 증원한다고 하니 전공의들은 이에 반발해 사직계를 내고 병원을 이탈한 상태다. 교수들이 전공의 대신 응급실을 전담하여 큰 의료 혼란은 아직 없으나 피로도가 누적되니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 한시라도 빨리 사태가 해결되어야 할 텐데 걱정이다.

의사가 실제 부족한지를 논하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전문의가 아닌 전공의에 의존하는 한국의 왜곡된 의료 제도이다. 전공의란 전문의가 되기 위해 5년 동안 교육받는 의사로 진료보다는 수련에 매진해야 한다. 전공의가 사직한다고 병원이 경영난을 호소하고 한국 의료가 멈출 지경이라니 아이러니하다. 이는 대학병원 의료진 상당수가 전공의이기 때문이다.

건강보험평가원 자료를 보면 서울대, 아산 등 국내 대학병원 전공의 비율은 40%에 달한다. 반면 미국 메이요클리닉, 도쿄대 병원은 10%에 불과하다. 외국에 비해 왜 한국은 전공의 비율이 높을까? 환자는 명의에게 진료받으러 서울대병원에 가는데 서울대병원 의사 중 무려 46%가 전공의이다. 그 원인은 바로 원가에도 못 미치는 건강보험제도이다. 국가기관인 건강보험평가원 2020년 기준 한국의료 평균 원가 보전율은 91%, 수술분야는 82%이니 수술할수록 18% 손해라는 뜻이다. 건보공단 일산병원은 2020년 424억원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이렇듯이 병원은 일반 진료만으로 수익을 내기 어렵다. 그래서 병원은 3분 진료 같은 박리다매, 비급여, 부대시설 등으로 수익을 내고 전문의 대신 주 80시간 근무가 합법화된 전공의, 간호사 등 의료인의 노동력을 값싸게 이용해 인건비를 줄인다. 정부 또한 값싼 노동력 없이 종합병원 운영이 불가함을 알기에 노동법에 반하는 주 80시간이라는 살인적인 근무, 간호사 간 태움 등의 비인간적 행위를 묵인해 왔다.

이 와중에 정부는 수도권에 6천 병상의 대학병원 설립을 인가하였다. 기존 제도하에서 대형병원을 운영하기 위해서 값싼 노동력이 필요하기에 정부는 2천명 의사와 1천명 간호사를 더 증원한다고 한다. 지금도 신경외과 같은 필수의료 전문의 절대 수는 모자라지 않다. OECD 통계 10만명당 한국 신경외과 전문의 수는 4.7명으로 OECD 평균 1.3명에 비해 3배 이상 많다. 그러나 한국의 대다수 신경외과 전문의는 위험도 대비 수가가 낮아 뇌수술 대신 통증진료를 선택한다.

필수의료 공백 근본 원인은 의사 부족이 아니라 원가에도 못 미치는 저수가와 불필요하게 과도한 소송이다. 근본 해결 없이 의사만 증원하겠다 하니 그나마 남아 있던 필수의료 전공의마저 전공을 포기하고 지역에서 대학병원 응급실을 책임지던 교수마저 사직하고 한방병원 일반과장으로 취직하였다.

정부는 이제서야 종합병원을 전공의에서 전문의 위주로 바꾸겠다고 하지만, 최저시급 받으면서 주 80시간 초과 근무하는 전공의 대신 전문의를 채용하려면 많은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 결국 국민이 건강보험료를 더 내야 한다는 얘기이나 정부는 재정마련에 대한 언급은 없고 의사만 2천명 증원하면 된다고 한다.

정부가 필수의료를 개선할 의지가 있다면 먼저 필수의료를 포기한 기존의 전문의들이 제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정책을 논의하는 것이 순리가 아닐까 한다. 그럼에도 필수의료 전문의가 부족하면 증원하면 된다. 기존 필수의료의사 은퇴 후 미래에 한국에 뇌수술할 의사 없을까 걱정된다. 정부와 의협이 잘 소통하여 이 사태가 조속히 해결되기를 바란다.

이준엽 (대구시 의사회 홍보단장·이준엽이비인후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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