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세상] 나의 가난한 문학창작교실

  • 우광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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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3-28 07:04  |  수정 2024-03-28 08:23  |  발행일 2024-03-28 제22면
내인생 버킷리스트 중 하나
얼마전 글쓰기 교실 첫 개설
소소한 일상의 행복 누리다
창작노하우 전하려고 용기
몇 안되는 수강생에도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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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광훈 소설가

보름 전, 문학창작교실을 처음으로 개설하였다. 동신교회 맞은편 동네 카페에서 격주로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의 정식 명칭은 '유쾌한 바나나씨의 글쓰기교실'. 사실, 이 작업은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에서 양사나이 만나기'나 '눈 덮인 월든 호숫가에서 한 달 살기'와 같은 내 인생의 몇 안 되는 버킷리스트 중 하나이기도 했다.

교육대학교를 졸업한 뒤, 소설가와 교사의 삶을 병행하고 있던 난 서른 즈음에는 나의 진로가 하나로 정해질 줄 알았다. 물론 난 전자를 원했고 그 길을 가기 위해 전력투구했다. 퇴근 후 나의 일상은 읽고, 쓰고, 잠드는 그런 단순한 시간과 행위들의 연속이었다. 난 그 정형화된 삶을 나의 숙명으로 받아들였고, 놀라운 비유와 기발한 상상으로 뒤범벅된 그 기묘한 시간들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물론 그 당시 나의 초현실적인(나에겐 극히 현실적이었지만) 삶이 결코 헛되고 지난한 것만은 아니었다. 난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고, 적잖은 상금을 받았으며, 몇몇 만나고픈 문인들과 직접 교류할 수 있었다. 그러한 것들은 내 단순한 삶에 대한 보상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불행히도 내 글은 돈이 되지 못했다. 현실의 난 교사(그건 내가 원한 삶도, 선택한 삶도 아니었다)에 불과했고, 매달 받는 월급 없이는 생활은 물론 도서구입조차 불가능했다. 또한, 난 독하지 못했다. 난 결혼을 해버렸고, 가장이 되었으며, 그렇게 만들어진 가정은 더 많은 책임과 시간을 나에게 요구했다.(그건 정말 전업작가를 꿈꾸는 나에겐 치명적이었다) 마지막으로 난 느슨했다. 나를 꼭 닮은 아이를 낳고, 그렇게 소소한 일상의 행복에 젖어 들자 절대고독과 문학의 가치에 대해 조금씩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소설이 날 구원할 수 없다면 이런 평범한 삶도 괜찮지 않을까? 그게 행복이 아닐까? 마흔 즈음, 난 적어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난 이제 쉰다섯이 되었다. 잃어버린 건강만큼이나 한껏 무뎌진 감수성…. 그렇게 고통스러운 글쓰기에서 벗어나 행복한 책 읽기에 빠져 있던 어느 날이었다. 문득, 내가 가진 창작의 노하우를 그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용기 내어 몇몇 분들에게 연락했다. 소박한 글쓰기교실을 마련했으니 원하시면 신청하시라고. 돼도 좋고, 안 돼도 좋고…. 그렇게 문자메시지를 발송한 지 몇 시간 뒤 3명의 수강생이 모집되었다. 가슴 벅찬, 내 인생의 몇 안 되는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며칠 후,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첫 수업을 진행하였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생각보다 피곤했다. 타인의 작품을 읽고 자신의 감상을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곧장 서재로 달려가 그곳에 꽂혀 있는 작법서들을 한곳에 모은 다음 정성껏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그 사진과 함께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수강생들에게 보냈다.

'습작기 때 읽은 작법서 중에서 현재까지 살아남은 것들이에요. 작법서… 필요하죠. 하지만 그냥 한번 읽어볼 만한 책, 정도가 맞는 것 같아요.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건 많이 듣고,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기.(다문(多聞),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 아시죠? ^^) 그렇게 기본에 충실한 삶인 것 같아요. 참, 완성된 습작품은 미리 보내주셔도 됩니다. 글을 쓰다 궁금한 점 생기면 개인톡 하시고요. 항상 건필하세요.'

그래, 따스한 봄. 여러분들도 건필하시길 바란다. 힘!
우광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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