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영천 오일장의 피날레

  • 이향숙 〈사〉산학연구원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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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4-17 07:53  |  수정 2024-04-23 19:01  |  발행일 2024-04-17 제19면

이향숙
이향숙 〈사〉산학연구원 기획실장

고등학교 시절, 나는 장날이 너무 싫었다. 학교에 지각하지 않으려고 탔던 첫 버스는 '콩나물시루' 버스였다. 그 시절을 거쳐온 세대들이 대부분 겪은 일이지만, 내겐 더 잔인한 추억이다. 틈 없는 사이를 비집고 내리는 길은 험난했다. 어느 할머니의 고추 보따리 위로 넘어지는가 하면, 꼬질꼬질한 담배 냄새에 쩔은 노총각의 품에 안기기도 했다. 그런 어이없는 상황이 비일비재했다.

30여 년이 흐른 오늘. 어김없이 영천 오일장이 서는 날이다. 이젠 장날보다 아버지가 매일 드시는 약을 처방받는 날로 기억된다. 엄마도 함께 나섰다.

아버지는 영천시장 인근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신 후 약국으로 향하셨다. 성격 급한 엄마는 탓해도 소용없는 아버지의 느린 걸음을 재촉하셨다. 직장 근무 중에 잠시 나온 딸에게 미안해하는 엄마의 눈치를 읽으면서도 나는 짜증을 냈다.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컸던 나는, 엄마가 재촉하는 방향이 아닌 국화빵을 팔고 있는 포장마차로 아버지와 같이 걸었다.

엄마는 우리 동선을 신경 쓰지 않고, 매년 정월에 열리는 부부동반 모임에 가져갈 도토리묵과 손두부를 사기 위해서였다. 할머니는 도토리묵의 쓴맛을 우려낸 찬물에 서슴없이 손을 담그며 탱글탱글한 묵을 자랑했다. 할머니는 영하의 기온에서 찬물에 담갔던 손을 앞치마로 훔치며 연탄불 근처로 가져갔다. 그 모습을 보던 나는 아버지와 나누어 먹던 국화빵을 입에 문 채 아버지의 주머니에 넣었던 손난로를 꺼냈다. 아버지는 할머니에게 건네주어도 좋다는 말 대신, 미소로 답했다. 손난로는 여전히 따뜻했다. 할머니는 얼떨결에 건네받은 손난로를 투박한 손으로 말랑한 홍시를 다루듯 감싸 쥐었다.

"아이고, 머시 이마이 뜨시노."

할머니는 언 손을 애벌 데우고서야 찬물샤워를 마친 도토리묵을 골라 담았다. 할머니도 어느 집의 귀한 딸이었을 것이다. 할머니의 손은 곡진한 삶의 세월을 말해 주고 있었다. 엄마는 도토리묵에 이어 옆집에서 두부를 사셨다. 나는 아버지의 점퍼 주머니에서 남은 온기를 훔치려고 잽싸게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남은 국화빵을 이리저리 흔들며 장난스럽게 아버지의 입에 밀어 넣었다. 그만 먹겠다며 고개를 돌리는 아버지의 모습은 밥 투정하는 어린아이 같았다. 지난날 그토록 싫었던 오일장이었지만, 이젠 부모님 마음처럼 정겹다. 그날 오일장의 피날레였던 국화빵에 담긴 아버지와의 소중한 추억을 잊을 수가 없다.
이향숙 〈사〉산학연구원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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