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통진당 해산 결정…‘종북 진보’에 線을 긋다

  • 송국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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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12-20   |  발행일 2014-12-20 제1면   |  수정 2014-12-20
憲裁 “북한식 사회주의 추종 불허”…이념적 스펙트럼 정립
20141220

중앙선관위에 등록된 우리나라의 정당은 11월 말 기준으로 무려 17개다. 국회의석을 가진 새누리당, 새정치민주연합, 통합진보당, 정의당 외에 ‘겨레자유평화통일당’ ‘경제민주당’ ‘국제녹색당’ ‘그린불교연합당’ ‘대한민국당’ ‘새마을당’ 같은 정당도 버젓이 활동하고 있다. 그만큼 대한민국은 정당활동이 보장된 나라다.

이들 정당 가운데 국회 원내 의석 5석을 보유했던 통합진보당(통진당)이 19일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해체됐다. 소속 의원들도 모조리 의원직을 잃었다. 통진당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5%대의 지지를 꾸준히 받던 정당이다.

이번 헌재의 통진당 해산 결정은 정치적 규제를 받지 않던 정당에 대해 사법적 규제를 내렸다는 측면이 있다. 이는 헌정사(憲政史)적으로 갖는 의미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서 어느 선까지 진보 활동을 허용할지에 대해 헌법적 결론이 나왔다는 데서도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일단은 우리 사회의 이념적 스펙트럼이 협소해졌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하지만 이는 역으로 보면 남북분단 상태인 한반도의 환경에 맞는 스펙트럼이 새로 정립되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헌재의 결정문에서도 그런 취지가 잘 나타난다.

헌재는 “북한과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한반도 상황에 비춰볼 때 통진당의 위협이 추상적 위협에 그친다고 볼 수 없다. 실질적 해악을 끼칠 수 있는 구체적 위험성이 있다”고 결론내렸다. 이념적 진보는 폭넓게 수용할 수 있으나 폭력적 진보, 남북 대치 상황에서의 북한식 사회주의 표방은 용납할 수 없다는 의미다.

진보정당의 성격을 규정짓는 가이드라인이 마련되고, 헌법테두리 내에서 존재할 수 있는 진보정당의 한계가 규정된 셈이다. 이는 건강하고 건전한 진보정치의 토양이 마련됐다는 긍정적 요소다.

이상돈 중앙대 교수는 “통진당 해산 결정으로 우리나라 진보정치가 한 걸음 더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며 “국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진보와 받아들일 수 없는 진보가 명확하게 구분된 만큼 진보의 새로운 역할이 제시됐다”고 평가했다. 이른바 ‘민생진보’와 ‘종북진보’의 구분점이 생긴 셈이다.

헌재가 통진당을 해체시키면서 소속 국회의원 5명도 동시에 퇴출시킨 건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국민대표성과 통진당 해산 실효성이 충돌한 부분이다.

헌재는 “정당해산의 취지를 실효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소속 국회의원의 국민 대표성은 부득이 희생될 수밖에 없다”고 단정했다. 해산정당 소속 국회의원이 계속 활동할 경우 이는 위헌정당이 계속 활동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정당해산 취지와 목적이 실효를 갖기 위해선 지역구, 비례대표 가리지 않고 모두 그 위원직을 상실해야 한다고 본 결정이다.

그러나 보수성향의 황태순 정치평론가조차 “주권자인 국민들의 선택을 통해 선출된 국회의원의 직을 명시적인 법적 근거 없이 박탈하는 데 대해선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황 평론가는 다만 통진당 해산에 대해선 “오늘 헌재 결정은 ‘법과 양심’에 따른 심리의 결과라고 본다”며 “정당 활동의 자유도 민주적 기본질서 안에서 보호돼야 한다는 이번 결정은 국민들의 법 감정과도 합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헌재의 통진당 해산 결정이 헌법 조항과 통진당의 활동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적용한 결과라는 반론도 나온다.

앞으로 정당정치가 위축되고, 소수의 의견이 사회에 녹아들지 못할 것이란 우려다.

 

진보성향의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최근의 우리 정세에 대해 보수적인 사회기조를 헌재가 그대로 반영하는 결정을 내렸다”며 “다소 진보적인 재판관까지도 ‘인용’ 결정을 내릴 정도로 사회적인 보수강경 기조가 그대로 반영된 결과”라고 풀이했다.

 

지금부터가 문제다. 당분간은 극단적인 ‘보-혁 충돌’의 통과절차가 불가피해졌다.

통진당 이정희 대표는 해산 결정 후 헌재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통해 “오늘 저는 패배했고 역사의 후퇴를 막지 못한 저에게 책임을 물어달라”면서도 “그러나 마음속에 키워온 진보정치의 꿈까지 해산시킬 수는 없다”고 말해 지속적인 투쟁을 예고했다.

하지만 장기적으론 진보진영 재편의 계기가 마련됐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더 많다.

 

통진당 소속인 황선씨가 ‘종북 콘서트’로 논란을 빚어도 제동을 걸지 못할 정도로 급진적 진보 세력의 활동을 어느 선까지 허용할 지에 대한 기준이 없었지만 이번 헌재 결정은 권위가 부여된 잣대가 될 수 있다.

송국건 서울취재본부장 song@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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