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힐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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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2-06   |  발행일 2016-02-06 제23면   |  수정 2016-02-06
[토요단상] 힐러리
노병수 (대구 동구문화재단 대표)

나는 힐러리 클린턴을 좋아한다. 짝사랑까진 아니지만 속칭 ‘빠’ 정도는 되는 것 같다. 20대의 그녀가 웰즐리대학교 졸업식에서 했던 연설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 연설은 ‘소녀의 꿈’이 아닌 다음 세기를 향한 ‘미국의 꿈’을 얘기하고 있었다. 아울러 그녀는 먼저 연단에 섰던 에드워드 브룩 상원의원의 연설의 잘못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덕분에 당시 언론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였고, 라이프지에도 대서특필되었다.

뉴잉글랜드에 있는 웰즐리는 미국 1위 자리를 놓친 적이 없는 명문 여자대학교다. 졸업생의 면면도 화려하다. 힐러리를 비롯해서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 등이 이 학교를 나왔다. 외국인으로는 장제스 대만총통의 부인 쑹메이링이 있다. 하버드에서 한국인 최초로 박사학위를 땄던 이인호 KBS 이사장도 여기 출신이다. 줄리아 로버츠가 주연한 ‘모나리자의 미소’도 바로 웰즐리 캠퍼스를 배경으로 한 영화였다.

웰즐리를 졸업한 힐러리는 예일대학교 로스쿨을 거쳐 변호사가 되었다. 이후 내내 남편인 빌 클린턴 대통령보다 똑똑하다는 평을 들었다. 실제로 빌은 선거 유세를 하면서 “나에게 표를 던지면 하나의 값으로 둘을 얻을 수 있다”고 이를 인정했다. 평소 빌을 희화화(戱畵化)하기로 유명한 ‘NBC 투나잇 쇼’ 진행자 제이 레노도 입만 열면 “빌을 만든 것은 힐러리”라며 힐러리의 주가상승을 부채질했다.

그런 힐러리의 대선가도에 빨간불이 켜졌다. 바로 버니 샌더스 때문이다. 미국 대선의 경선은 아이오와가 가장 먼저 치른다. 아이오와는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옥수수밭 외에 내세울 것이 없는 한적한 시골마을이다. 영화 ‘메디슨카운티의 다리’로 반짝 관심을 끌었던 것이 전부다. 그 코커스에서 샌더스는 불과 0.4%포인트 차이로 2위를 했다. 그리스식으로 체육관 농구코트를 양분하여 수를 세는 선거에서 샌더스는 정확히 절반을 모았다. ‘제로’에서 시작을 했으니 추이(推移)로 보면 넉넉한 역전이다.

폴란드 이민자의 아들로 버몬트 주 상원의원인 샌더스는 당초 무소속으로 나섰다가 민주당으로 말을 갈아탔다. 올해 75세의 나이지만 일생을 줄기차게 분배의 불평등 문제를 제기하며 외길을 걸었다. “지난 2년 동안 불과 15명의 부자가 가진 재산이 204조원이나 늘었다”며 “이래서는 미국에 정의가 없다”고 외친다. 미국에서 보기 드문 진보적 성향이다.

샌더스의 약진에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고무가 되었을까. 얼마 전 자신을 샌더스와 비슷하다고 했다. 입바른 평론가 진중권이 가만있을 리가 없다. 당장에 차이점 3가지를 지적하며 나섰다. “샌더스는 당으로 들어가 싸우지만, 안철수는 당을 뛰쳐나갔다. 샌더스는 지지율이 0%에서 50%를 향해 가고 있고, 안철수는 50%에서 0%로 가고 있다. 샌더스는 민주당을 좌로 이끌지만, 안철수는 더불어민주당의 오른쪽에 있다.”

힐러리와 샌더스를 상대할 공화당 경선도 오리무중이긴 마찬가지다. 막말에도 불구하고 7개월 이상 공화당 1위를 지켜온 도널드 트럼프가 복음주의 기독교도의 지지를 받은 테드 크루즈에게 밀려 2위에 그쳤다. 3위를 차지한 히스패닉계의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이 ‘사실상 승자’라는 평가가 많다. 장차 누가 공화당 핵심부의 심중을 흔들지 알 수가 없다. 양당 모두 다음번 결전지 뉴햄프셔를 지켜보아야 할 것 같다.

어느 경우든 대세론에 의한 ‘힐러리의 대관식’은 이미 물을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과연 그녀가 백악관에 진열된 역대 대통령의 흉상에 자신의 얼굴을 새겨놓을 수 있을까. 팬으로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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