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국건정치칼럼] 대구의 딸, 호남의 며느리 추미애

  • 송국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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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8-29   |  발행일 2016-08-29 제30면   |  수정 2016-08-29
20160829

DJ가 21년전 발굴한 女판사
첫 영남출신 야당대표 탄생
총선의 지역주의 분열 조짐
대선 앞두고 완성하기 위해
제1야당 대표 역할이 중요


“호남 사람인 제가 대구 며느리를 얻었습니다. 고맙습니다.” 1995년 8월의 어느 날 정계복귀를 선언하고 새정치국민회의 창당을 준비하던 김대중 총재가 정계 입문 권유를 수락한 추미애 판사에게 한 말이다. 당시 DJ는 1997년 대선 출마에 대비해 1996년 15대 총선에 내세울 인재들을 대대적으로 영입했다. 이때 정치권에 등장한 야권 인사가 정세균 국회의장, 김한길 전 민주당 대표, 작고한 김근태 전 보건복지부 장관, ‘천신정(천정배·신기남·정동영) 등이었다. 여기에 대구 출신으로 경북여고를 나온 추미애도 포함됐다. DJ는 동진(東進) 정책의 일환으로 대구의 세탁소집 둘째 딸로 태어나 ‘까칠한 판사’로 명성이 나 있던 추미애를 직접 영입했다. 추미애는 10년간 입었던 법복을 벗고 야당의 여성 부대변인 1호가 됐고, 이듬해 총선에서 서울 광진구을에 새정치국민회의 간판을 달고 출마해 당선됐다.

이후 20년 동안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던 정치역정을 거쳐 5선 고지에 오른 추미애는 8·27전당대회에서 54.03%라는 압도적 지지를 받아 제1야당 더불어민주당의 대표가 됐다. 첫 영남 출신 야당 대표다. 추미애 신임 대표 앞엔 여러 가지 난제가 놓여 있다. 자신을 전폭적으로 지원해 준 ‘친문’(親문재인)이라는 계파 프레임에서 벗어나는 일이 급선무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내년 대선을 앞두고 야당의 확장성을 도모하기 위해선 필수적인 과제다. 이는 곧 대선후보 경선의 공정한 관리를 위한 출발점이기도 하다. 아울러 대여(對與) 관계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이는 김종인 비대위 체제에서 우(右)클릭 된 당의 정체성을 어떻게 확립할지와 연결된다. 당장 추 대표는 사드 한반도 배치 반대를 당론으로 정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국민의당과 선명성 경쟁을 하는 데 몰두하면 역으로 확장성이 줄어들 위험이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필자가 생각하는 ‘추미애의 역할’은 더욱 상징적인 데 있다. 추 대표는 경선 기간 ‘민주종가의 맏며느리’ ‘호남의 맏며느리’를 자처했다. 남편인 서성환 변호사가 전북 정읍 출신이고 지금도 정읍에서 변호사 활동을 하고 있다. ‘대구의 딸, 호남의 며느리’는 추 대표가 정치를 하면서 줄곧 내걸었던 상징이다. 더민주 당원들이 대구 출신 추미애를 선택한 건 새누리당 당원들이 호남 출신 이정현 대표를 선출한 일과 함께 우리 헌정사에 큰 의미가 있다. 4·13총선 당시 영남이 더민주에, 호남이 새누리당에 마음의 문을 연 데 이어 지역주의의 벽이 깨지고 있음을 읽게 한다. 대구 출신 김부겸 의원이 경기도 군포에 지역구를 두고 있을 때 원내대표 경선에서 세 번이나 낙선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지금 두 야당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호남 민심을 얻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4·13총선에서 국민의당에 호남을 내준 더민주는 이번 경선을 계기로 빼앗긴 땅을 되찾아오는 작업에 대대적으로 나섰다. 문재인 전 대표의 호남 방문도 잦아졌다. 이에 질세라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는 더민주가 전당대회를 연 다음 날 광주 무등산에 올라 사실상 대선 출마를 공식화했다. 전날엔 박지원 원내대표가 전남 강진에 칩거 중인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를 찾아 막걸리 회동을 하기도 했다. 4·13총선을 통해 지역주의가 허물어질 조짐이 보였음에도 야권이 대구나 경북에 눈길을 돌리는 모습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과거의 틀에 박혀 대구·경북을 적지(敵地)로 여겨 방치하는 모습마저 보인다. 여기서 ‘대구의 딸, 호남의 며느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보인다. 지금은 제1야당이 대구·경북에도 눈을 돌려 지역주의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서울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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