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국가소멸’ 두고만 볼 건가

  • 배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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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13   |  발행일 2017-03-13 제31면   |  수정 2017-03-13
[월요칼럼] ‘국가소멸’ 두고만 볼 건가

인구절벽, 인구오너스, 지방소멸…. 저출산·고령화시대에 직면한 대한민국의 암울한 현주소다. 지난해 12월 발표한 통계청의 2015~2065년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총인구는 2031년 5천296만명에서 정점을 찍은 뒤 감소세로 돌아선다. 50년 뒤인 2065년에는 1990년 통계인 4천300만명수준까지 줄어든다. 2100년엔 총인구가 2천947만명으로 반토막 나 세계 27위에서 67위로 떨어진다.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당장 올해부터 감소한다.

백약이 무효다. 정부는 2005년 ‘저출산 고령화 사회 기본법’을 제정한 이래 11년간 무려 100조원을 쏟아부었다. 올해는 예산 규모가 더 커져 25조원이 투입된다. 하지만 투입된 노력과 비용에 비해 받아든 성적표는 초라하다.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1.17명으로 2009년(1.15명) 이후 최저치다. 1970년 100만명이던 출생아 수도 지난해 40만6천300명으로 줄었다. 오죽 답답하면 국책연구소에서 저출산의 원인이 여성들의 고스펙 때문이라는 황당한 보고서까지 나왔겠나.

국회 입법조사처는 2014년 연구에서 합계출산율이 1.19명(2013년 기준)으로 지속될 경우 2750년께 우리나라 인구가 소멸될 것으로 예상했다. 지방소멸을 넘어 ‘국가소멸’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더 늦기 전에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그 하나의 대안으로 우리 사회도 이제 이민 활성화를 공론화할 때가 됐다고 본다. 무분별한 이민 수용으로 사회통합이 저해되고 범죄가 증가하는 등 부작용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있지만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클라우스 슈바프 세계경제포럼 회장은 “한국이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려면 이민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충고한다.

지구촌으로 눈을 돌리면 적극적인 이민정책으로 저출산을 극복하고 경제에 활력을 되찾은 나라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스위스의 경우 인구 800만명 중 200만명이 외국인이다. 대도시 취리히는 인구 40만명 중 32%가 외국인일 정도로 다문화도시로 유명하다. 외국의 전문 인력을 적극적으로 불러들여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활용한 결과다. 스위스 기업의 3분의 1은 외국인이 창립했다는 통계도 있다. 프랑스도 188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100년 동안 출생한 프랑스인 가운데 1천800만명이 이민자의 후손이라고 한다. 프랑스는 저출산 극복을 위해 1989년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고 총력을 기울인 결과 2013년 합계출산율이 1.98명으로 유럽국가 중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도 이민문호 개방으로 국가 활력과 산업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나라다. 실리콘밸리와 월가의 번영도 이민자 없이는 상상하기 어렵다. 포천지가 선정한 미국 500대 기업의 40%가 이민자 또는 이민 2세가 설립했다.

사실 우리나라도 알고 보면 이미 다문화사회다. 다문화가정이 작년 말 현재 27만8천 가구에 달한다. 국내 거주 외국인 수도 204만명을 넘어 전 인구의 3.9%를 차지하고 있다. 법무부는 이런 추세라면 5년 뒤에는 300만명을 넘을 것으로 예상한다. 군대에도 다문화가정 출신 병사가 1만명이다. 귀화도 삼국시대부터 이어졌다.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정수일 소장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귀화 성씨는 신라시대 40여개, 고려시대 60여개, 조선시대 30여개에 이른다. 사실상 우리 민족의 30% 이상이 귀화인 출신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우리 사회가 이민의 문호를 개방하고 지속가능한 다문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도 있다. 무엇보다 이민을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소중한 자산으로 여기는 발상의 전환이 절실하다. 나아가 우리의 의식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순혈주의 단일민족 신화에서 깨어나야 한다. 이제는 혈연을 매개로 한 ‘민족’보다는 언어·문화·가치관을 공유하는 ‘우리’가 더 소중한 가치임을 인식해야 한다. 단일민족의 상징인 단군도 혈연이 아닌 문화적 역사적 관점에서 재인식할 필요가 있다. 어릴 때부터 열린 마음으로 낯선 문화를 포용하고 차이를 인정하는 교육을 강화하는 일도 중요하다. 외국인 정책을 체계적으로 관장할 정부 조직을 조속히 갖추고 관련 제도와 법규도 글로벌 시대에 맞게 정비해야 한다. 배재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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