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김관용 관찰사 왕권 도전기

  • 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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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4-19   |  발행일 2017-04-19 제30면   |  수정 2017-04-19
김관용 도지사의 대권 도전
패했지만 실패한 것 아니고
변방의 무모한 도전 아니라
지방에도 사람 있다는 사실
중앙에 알린 가치있는 행보
[동대구로에서] 김관용 관찰사 왕권 도전기
전영 (경북본사 1부장)

병신년(丙申年) 말쯤에 이르러 나라가 어지러워졌다. 여왕 근혜를 등에 업은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실이 백성들에게 알려지면서 저잣거리에는 여왕을 비방하는 글들이 나붙었다. 스스로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상소문도 이어졌다.

여왕은 몇차례나 자신에게 잘못이 없음을 이야기했으나 백성들은 믿지 않았다. 밤이 되면 수많은 백성은 저잣거리로 횃불을 들고 몰려나와 여왕 근혜의 잘못을 따졌다. 여전히 여왕을 믿고 따르는 백성들은 여왕에 대한 음모라면서 머리를 바닥에 찧고 통곡했다.

백성과 당파는 둘로 나뉘었다. 그렇게 수개월 흐른 정유년(丁酉年) 3월 초열흘. 마침내 여왕 근혜에 대한 탄핵이 결정됐다. 여왕을 지지해왔던 보수와 자유한국당은 침울했다.

근혜 탄핵결정 나흘 뒤인 14일 경북도관찰사 김관용은 국가 혼란과 보수 우익의 비상사태를 해결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비상용’(飛上龍·용이 하늘로 날아오르다)이라는 출사표(出師表)를 던진다. 여의도에서 열린 출정식에는 자유한국당 이철우·강석호·이완영·박명재·김석기·최교일·백승주·장석춘·조원진·윤재옥·정태옥·추경호 등 12명이나 되는 장수들이 함께 기세를 올렸다.

김관용을 지지하는 가신과 백성 10만여명도 ‘용포럼’이라는 결사조직을 만들었다. 특히 30·40대의 청장년들은 ‘용오름’이라는 별동대를 구성해 김관용의 ‘사람중심 차별없는 세상’이란 깃발 아래로 모여들었다. 관찰사가 금방이라도 중앙 조정을 접수할 것처럼 보였다.

김관용 관찰사 이외에도 여기저기서 자유한국당을 이끌고 나라를 구하겠다는 세력들이 들고 일어섰다. 홍준표 경남도관찰사와 안상수·김진태 등 9명의 장수는 3월18일 여의도벌에서 1차 대전을 펼쳤다. 이때 조경태·신용한·김진 등 3명의 장수가 쓰러졌고, 이틀 뒤에 남은 장수들이 다시 격돌해 안상수·원유철 장수가 패했다.

김관용·홍준표·김진태·이인제 등 4명의 장수는 31일 마지막 일전을 앞두고 비장감을 다졌다. 가신과 사병들도 장수들을 위해 목청을 돋우었다. 홍준표 관찰사는 ‘독설’이라는 보검을 높이 치켜들고 다른 장수들을 몰아붙였다. 홍준표의 군세가 날이 갈수록 커졌다.

김관용 관찰사는 크고 작은 전장에서 한 번도 패하지 않았기에 싸움에는 자신이 있었으나, 그의 말과 기세는 생각만큼 전장을 흔들지 못했다. 관찰사가 스스로 인정했듯이 여왕과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탄핵결정을 기다리느라 꼼꼼하게 전략을 짤 시간이 부족했던 것이 발목을 잡았다. 특히나 중앙 조정에서 내통해 줄 세력이 없었다는 것도 그를 힘들게 했다.

마침내 31일 여의도벌에서의 마지막 일전이 치러졌다. 저마다 깃발과 창검을 높이 치켜들었으나 홍준표 관찰사의 압도적인 군세를 당할 수 없었다.

김관용은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고 감영이 있는 안동으로 돌아왔다. 관찰사는 전투에 나서기 전에 보다 철저하게 준비하지 못한 것이 패배의 빌미가 됐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는 패장의 모습이 아니라 더욱 탄탄한 미래를 위해 자신의 역할이 있었음을 수확으로 꼽았다.

그는 “경북도관찰사도 중앙 조정을 접수하고 왕권에 도전할 수 있다는 것을 백성들에게 내보였다”고 말했다. 보름여 동안 김관용 관찰사의 왕권 도전은 험난한 여정이었으나 값진 것을 얻었다. 앞으로 경북도관찰사나 대구부윤도 왕권에 도전할 수 있다는 디딤돌을 놓은 것이다.

경북도에서 지금까지 몇 명의 왕을 배출했다고는 하지만, 실상 그들은 중앙 조정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었다. 중앙 조정에서는 수백리나 떨어진 경북도는 변방이나 다름없다. 그 변방의 관찰사가 중앙 조정까지 가신과 사병들을 끌고 진격해 들어갔으니, 중앙 조정과 서울 도성 내 백성들은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으나 속으로는 꽤나 놀랐을 것이다.

전영 (경북본사 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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