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말과의 교감을 통한 치료, 재활승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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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5-09   |  발행일 2017-05-09 제31면   |  수정 2017-05-09
[CEO 칼럼] 말과의 교감을 통한 치료, 재활승마
이양호 (한국마사회장)

말은 교통수단이면서 스포츠와 건강의 매개체로 알려져 있지만, 인간의 장애를 치료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과거보다 오늘날 큰 관심을 받고 있고, 미래에 더 부각될 재활승마(Therapeutic riding)가 바로 그것이다. 신체적·정신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전신운동인 승마를 통해 회복을 도모하는 치료방법의 하나인 재활승마는 리즈 하르텔(1921~2009)이라는 승마선수에서 비롯되었다.

1943~44년 덴마크 마장마술(일정한 규격의 마장 안에서 정해진 운동 과목을 얼마나 정확하고 아름답게 표현하는가를 심판이 주관적으로 평가하는 종목) 챔피언이었던 그녀는 23세에 소아마비에서 비롯된 양다리 장애로 승마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그러나 꾸준히 재활승마에 매진하여 1952년 핀란드 헬싱키 올림픽과 1956년 호주 멜버른 올림픽 마장마술에서 비장애인 선수들을 제치고 은메달을 획득한 바 있다.

리즈가 메달리스트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의지와 노력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녀의 밤색 암말 ‘주빌리’가 큰 몫을 담당했다. 재활승마에 사용되는 말은 성격이 차분하고 등 위에 태운 사람에게 너그러워야 하는데 주빌리는 그러한 조건을 가진 최고의 말이었다. 리즈가 안장에서 중심을 잡기 위해 허우적거리고 떨어지기를 수없이 반복하는 동안 기다려준 주빌리의 절대적인 인내심이 없었다면 오늘날 덴마크 스포츠 영웅인 리즈 하르텔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재활승마는 말과 인간이 함께한 시간만큼이나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기원전 5세기경 전쟁에서 다친 병사를 말에 태워 치료했다는 고대 그리스 기록, 우리나라 여러 곳에 남아 있는 ‘의마총(義馬塚)’ 유적들은 전쟁에서 부상 당하거나 위험에 빠진 주인을 끝까지 지켰다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전한다.

의학기술이 고도로 발전된 현대사회에서도 자연에 토대를 둔 재활승마의 가치는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어떤 약물이나 수술보다 따뜻하고 감성적인 치료이기 때문이다. 최근의 연구를 통해 재활승마는 근육 통증, 스트레스, 자세 불량, 척추질환, 뇌손상, 뇌성마비 증상, ADHD(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장애), 자폐증, 학습장애, 게임중독, 불안장애, 적응장애, 식이장애, 우울증 등 수많은 질병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밝혀졌다. 그 의학적 효과를 확인한 병원들은 승마힐링센터와 공동으로 재활승마 치료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역 병원과의 연계, 재활승마용 마필의 훈련, 재활승마 치료사 양성 등 모든 면에서 시작 단계이기 때문이다. 한국마사회는 현재 과천·부산·원당 세 곳에 승마힐링센터를 직영으로 운영 중이며, 지방자치단체와 공동으로 운영하는 공공승마시설을 선정해 네트워크를 확대하고 있는데, 지난해에는 홍성군 승마장이 최초로 선정된 바 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재활승마로 치료함에 있어 비용부담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한국마사회를 비롯한 몇몇 지자체에서 운영 중인 재활승마센터에서 비용을 일부 보전해주고 있지만 충분치는 않다. 재활승마가 보편화된 독일에서는 의학적 치료효과를 인정해 치료비를 공공의료보험으로 지원하고 있다. 앞으로 우리나라에도 꼭 도입되어야 할 제도라 생각한다.

생명의 기운이 온 천지에 가득한 5월의 아침, 영영 일어서지 못할 뻔했지만 마침내 두 번씩이나 올림픽 메달의 꿈을 이룬 주빌리와 리즈 하르텔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재활승마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특히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에게 늘 따뜻한 등을 내어주는 재활승마용 말들에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독자 여러분도 재활승마 강습에 필요한 자원봉사에 함께하기를 권해본다. 이양호 (한국마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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