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공약

  • 허석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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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5-17   |  발행일 2017-05-17 제39면   |  수정 2017-05-30

2010년 아이슬란드 지방선거에서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졌다. 정치에 뛰어든 지 6개월밖에 안 된 전직 코미디언 욘 그나르가 아이슬란드 수도인 레이캬비크 시장에 당선됐다. 대단한 비결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정치 입문 동기부터 코미디에 가까웠다. 친구들과 만난 자리에서 침을 튀겨가며 정치를 비판하던 그에게 친구들이 “그렇게 정치를 잘할 것 같으면 직접 해보라”고 비아냥거리자 곧바로 ‘베스트당’을 만들었다고 한다. 더구나 공약도 ‘국민을 웃기겠다’ ‘수영장에서 수건을 무료로 나눠 주겠다’ ‘동물원에 북극곰을 데려오겠다’는 등 황당한 내용 일색이었다. 그리고 공약 중 단연 압권은 ‘어차피 못 지킬 공약, 지키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레이캬비크 시민들은 그나르에게 표를 던졌다. 무능하고 위선적인 기성 정치보다 차라리 코미디 같지만 솔직한 정치에 환호했던 것이다. 그나르가 시장에 당선된 후 ‘웃긴다고 진지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라는 명언을 남기며 경제를 살리고 임기 4년을 성공적으로 마쳤다니, 결과적으로 시민들의 선택은 옳았던 셈이다.

흔치 않은 일이긴 하지만 그나르의 정치 성공담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웬만한 사람이라도 마음만 먹으면 정치를 잘할 수 있다는 것과, 선거때 공약은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공약의 경우, 선거가 끝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일이 다반사이다 보니 유권자들도 그리 신뢰하지 않는 것 같다. 실제로 우리나라 역대 대선만 보더라도 공약이행률은 30%에도 못 미치는 실정이다.

물론 선거때 표를 얻기 위해 내걸었던 모든 공약을 실행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문제는 핵심 공약마저 제대로 안 지켜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이런 사례는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데, 특히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영남권 신공항 건설 공약은 두번이나 무산된 케이스다.

문재인 대통령은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 창출을 핵심 공약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천문학적 규모의 재정 투입과 공무원 수를 늘리는 것에 대한 반대 여론도 상당하다. 공공부문 일자리 공약은 지키는 게 원칙이겠지만, 적지 않은 부작용이 예상되는 부분은 수정이 필요해 보인다. 허석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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