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눈먼 돈’ 특수활동비 못없앨 이유 있나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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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5-29   |  발행일 2017-05-29 제31면   |  수정 2017-05-29

법무부와 검찰 간부들 간의 ‘돈 봉투 만찬’에서 오간 돈의 출처로 지목되는 특수활동비에 대한 비판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특수활동비가 공직자의 ‘쌈짓돈’이 되고 있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지만, 이번에 그 실체가 명확히 드러나면서 국민의 분노가 들끓고 있다. 공직 사회에 만연한 적폐 청산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특수활동비부터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수활동비는 국가 안보와 관련된 정보 활동이나 기밀유지를 필요로 하는 수사 등을 위해 배정된 예산이지만, 문제는 이런 목적에 맞게 쓰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금으로 지급되는데다 영수증도 필요없고, 사용처를 알리지 않아도 되는 ‘눈먼 돈’이다보니 금일봉, 회식비, 생활비, 여행비 등으로 전용(轉用)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특수활동비 예산은 해마다 늘어나 지난해는 18개 부처가 역대 최고액인 8천870억원이나 사용했다. 국가정보원이 4천860억원으로 전체의 절반 넘게 썼고 국방부(1천796억원), 경찰청(1천293억원), 법무부(290억원) 등이 뒤를 이었는데, 어디에 얼마를 썼는지 알 길이 없다. 더구나 수사나 정보활동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국회, 감사원, 미래창조과학부 등의 기관이 특수활동비가 왜 필요한지 의아할 따름이다.

특수활동비와 관련해 국민의 염장을 지르는 또 다른 소식이 들린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인해 직무정지를 당한 기간에도 청와대 특수활동비로 35억원이 사용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와 총리실에서 누구도 이 돈을 쓰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기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어 철저한 감사와 수사가 요구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특수활동비를 42% 줄이겠다고 밝히면서 공식 일정의 식사 외에 가족 식비와 의복비 등은 모두 사비로 내겠다고 했다. 이같은 문 대통령의 솔선수범에 따라 타 정부 기관의 특수활동비도 수술대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특수활동비를 조금 삭감하는 정도로 끝나선 안된다. 이번 기회에 공무원이 국민에게 갑질을 일삼던 권위주의 정부의 산물인 특수활동비 자체를 없애는 것까지 검토해야 한다. 더 이상 국민의 혈세가 권력 기관의 호주머니를 채워주는 검은 돈이 되어선 안된다. 특수활동비가 조직 운영에 꼭 필요하다면 일반 예산으로 양성화해 투명하게 집행하면 된다. 또한 기밀수사나 정보활동에 돈이 필요하다면 해당 명목으로 별도의 예산을 책정하면 된다. 특수활동비는 삭감이 아니라 폐지하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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