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국건정치칼럼] ‘용마론’과 ‘레드팀’

  • 송국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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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6-12   |  발행일 2017-06-12 제30면   |  수정 2017-06-12
높은 지지율과 명분에 기댄
文 대통령의 서릿발 지시와
마이웨이식 초반인사 강행
과부하 위험성 살펴보면서
민심관리도 곁들여야 성공
[송국건정치칼럼] ‘용마론’과 ‘레드팀’

취임 한 달을 갓 넘긴 문재인 대통령이 국정운영에 거침없는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첫날 1호 업무지시인 일자리위원회 설치를 시작으로 국정교과서 폐지와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세월호 참사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재조사, 4대강 사업 재감사, 사드 발사대 4기 추가 반입 진상조사 같은 ‘서릿발 지시’들이 이어졌다. 인사도 ‘마이웨이’다. 행정부의 경우 전문가 발탁이 인사의 기조처럼 보이지만 속을 뜯어보면 각 부처개혁을 위한 ‘맞춤형 장관’들이 지명됐다. 재벌개혁론자인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발탁, 검찰개혁론자인 조국 민정수석 기용과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의 파격 인사, 그리고 후속으로 이뤄진 검찰 수뇌부 대거 좌천이 대표적이다. 어제 발표된 김상곤 사회부총리(교육부장관), 안경환 법무장관, 송영무 국방장관 후보자 등도 각 분야 개혁을 위한 맞춤형 인사다.

특히 어제의 5개 부처 장관 인선은 허를 찔린 느낌마저 든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 덫에 걸려 있는 상황에서 전격적으로 단행된 까닭이다. 당초엔 문 대통령이 여론을 살피며 장관급 인사의 속도조절을 할 거란 예상이 많았다. 야당들이 세 후보자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는 상태에서 한 고비 쉬어 갈 걸로 내다봤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정면돌파를 택했다. 청와대는 발탁 배경을 밝히며 ‘교육개혁’(김상곤), ‘검찰개혁’(안경환), ‘국방개혁’(송영무)의 적임자라고 명시하기도 했다. 야당과 언론의 비판과 견제에 흔들리지 않고 정권 초기에 국정개혁을 위한 제도적, 인적 기틀을 마련하겠다는 분명한 의지가 읽힌다. 촛불민심을 기반으로 한 80%대 이상의 높은 국정운영 지지율, 적폐청산과 개혁이란 명분이 문재인정부가 믿는 버팀목이다.

그제(10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6·10 민주항쟁 30주년 기념식에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지선 스님은 문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무대에 올라 ‘용마(龍馬)론’을 설파했다. “옛날 어느 한 고을에 용마가 나타났는데 온 고을의 힘깨나 쓴다는 장정들이 몰려와 모두 한 번씩 올라타 보는 바람에 용마가 지쳐 쓰러졌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그간 억눌려 있던 많은 바람이 있겠지만 한꺼번에 이룰 수 없는 상황도 함께 헤아려주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말에 청와대 참모들이 크게 공감했다고 한다. 앞서 새 정부 출범 직후 청와대 발(發)로 ‘레드팀(Red Team)’ 구성을 검토 중이란 말이 들렸다. 군사용어인 ‘레드팀’은 훈련 과정에서 아군인 ‘블루팀(Blue Team)’의 약점을 파악하기 위해 편성하는 가상의 적군(敵軍)이다. 군 지휘관이 아군(我軍) 시각에서만 판단을 해서 생기는 오류와 피해를 미리 막자는 취지다.

문 대통령 입장에선 촛불이 살아 있고, 대다수 언론과 밀월관계에 들어갔으며, 야당이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는 지금이 적폐청산과 개혁을 위해 돌진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다. 곧 야당이 전열을 정비해 ‘개헌론’이라도 몰아붙이고, 언론이 정부에 비판논조로 돌아서면서 민심의 변화가 온다면 국가개조가 다시 어렵게 된다는 판단을 한다. 그렇다고 국민이 내려준 ‘용마’에 너무 한꺼번에 올라 타면 초반에 기진맥진한다. 진정한 참모들의 ‘간언(諫言)’과 ‘쓴소리’가 귀에 거슬린다고 ‘레드팀’ 편성을 주저하면 문고리 참모들이 득세한다. 문 대통령은 이제 겨우 한 달 남짓인데, 되돌아 볼 여유가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여론은 하루아침에 변할 수도 있음은 여러번 경험했다. 민심관리는 아무 때든지 항상 해야 할 일이다.

송국건 서울취재본부장 song@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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