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칼럼] 정치검찰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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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6-23   |  발행일 2017-06-23 제23면   |  수정 2017-06-23
[조정래 칼럼] 정치검찰

정치검사들이 문제다. 그들의 활약이 정권을 달리하며 기세를 떨치니 이제 검찰 조직 전체가 ‘정치’란 오명의 수식어를 덮어쓰고도 할 말이 없게 된 거다. 법과 정의를 수호해 온 대다수 검사에겐 대단히 미안한 일이다. 하지만 검찰이 도매금으로 매도당하게 된 건 엄연한 현실이고 자업자득이다. 급기야 새 정부 들어 피하기 어려운 개혁의 대상으로 궁지에 몰렸어도 유구무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일부 검사들의 ‘정치적 줄서기’를 비판하면서 ‘검찰이 무소불위의 권력이 되지 않도록’ 검찰을 개혁하겠다는 의지를 구체적으로 피력했다.

검찰 개혁은 문재인정부 적폐 청산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이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과제로 국민적 공감대를 널리 형성하고 있다. 검찰 개혁은 이전 정권에서도 매번 화두로 등장하곤 했으나 시늉에만 그쳐 왔다. 그동안 검찰 개혁이 실패를 거듭한 건 무엇보다 검찰 조직의 저항 때문일 터이지만 그보다는 정권과 검찰의 유착이 결정적인 까닭으로 분석된다. 집권세력이 정권안보를 위한 목적으로 검사들을 악용해 온 원죄가 크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검찰이 면책되는 건 물론 아니다. 이제 그 악순환의 고리를 잘라내려면 검찰을 장악하고 좌지우지하려는 대통령의 하명(下命)부터 단절해야 한다.

대통령에 의한 하명수사는 검찰권 행사의 대표적 적폐로 손꼽힌다. 하명에 의해 전 정권에 대한 정치적 보복이 반복돼 왔고, 검찰은 무리한 표적수사로 권력의 시녀라는 비난을 감수해 왔다. 어떻게 하든 권력자의 주문에 맞추려다 보니 무차별 압수수색에 먼지털이식 수사 관행을 이어와도 아무런 견제를 받지 않았다. 정권은 유한해도 검찰 권력은 무한하니 하명에 대한 하명수사 지시를 수행하는 무소불위의 최고 권부로 자리잡게 됐다.

정치권력과 검찰의 유착에 따른 하명수사의 폐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장기간 검찰 수사를 당해 본 사람들은 안다. 그들은 검찰의 오만과 편견에 경악하고 비인간적 수사관행에 치를 떤다. 흔히 회자되는 환부만 도려내는 외과수술식 수사는 수사의 정석으로 꼽히지만 현장에서는 허울 좋은 텍스트에 불가하다.

2005년 포스코 수사 당시 ‘지구상에서 범죄를 만들어내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는 검찰 총수의 푸념이 시사하듯 비리가 나올 때까지 탈탈 털고 보는 검찰의 ‘별건수사’는 검찰이 무시로 휘두르는 전가의 보도다. 이때 검찰 앞에 선 수사 대상자는 ‘나쁜 놈’과 ‘무능한 놈’ 두 종류로만 분류되고 겁박당하게 된다. 개인의 인권과 명예, 기업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다. 오랜 수사와 재판 끝에 죄 없음으로 밝혀져도 검찰이 사과를 했다는 소린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개인과 기업은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고 난 뒤인데도 검찰이 무서워 구상권 행사는 엄두도 못낸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은 지난 16일 법정에서 법정 진술을 통해 검찰로부터 원칙과 정도를 벗어난 ‘표적 수사’를 받았다는 취지로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는 한 술 더 떠 “오늘 정치 심판대가 아닌 법의 심판대에 섰다. 무죄 추정의 원칙 아래 재판을 받고 싶다”고 했다. ‘사건이 아닌 사람을 중심으로 이런저런 수사가 진행된 것’이라는 요지로 검찰과 박영수 특별검사의 수사방식에 대해 거침없이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우 전 수석의 이날 항변은 검사 출신이거나 그에 버금가는 권력자가 아니면 꿈도 못 꿀 일이다. 더욱이 검찰권력을 좌지우지한 것으로 알려진 그가 표적수사 운운하는 것은 자신이 몸담았던 친정을 향해 침을 뱉는 블랙코미디이다. ‘청와대 하명 수사’ 의혹의 중심에 서 있는 장본인으로서 검찰을 질정(叱正)하니 그 또한 낯 뜨거운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검찰의 적폐는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국민의 검찰이 아니라 검사들의 검찰이라는 거다. 국민 위에 군림하는 검찰상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검찰에 대한 국민의 나쁜 인식이 오랜 기간 시나브로 쌓여 왔기에. 대통령의 하명에 의한 하향식 개혁은 일사불란해 보이지만 쉬 동력을 상실하기 십상이다. 검찰 개혁이 ‘태산명동 서일필’이었던 실패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아마도 우리는 또다시 촛불을 들어야 할 게 틀림없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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