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원의 ‘영남일보로 보는 시간여행’ .9] 매음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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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6-29   |  발행일 2017-06-29 제29면   |  수정 2017-08-10
‘가련한 16세 소녀 인육 대가가 담배?’ (1947.6.18 제목)
대봉동 매음굴 찾은 기자
음매부 두명의 대화 들어
2017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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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 1947년 6월18일자 보도.

‘기자가 감히 창백한 세계의 비밀을 폭로하려는 것은 건전하여야 할 우리 민족성이 현금 어떠한 경로를 밟고 부패해 가는가를 독자제위와 더불어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대봉동 일대를 심사한 결과 확실한 증거를 잡게 된 기자는 음매부를 소개하는 노점을 심야방문 하였다. 거기에는 5명의 청년과 여인 1명이 보였고 뿌란데 2개가 놓여있다. 감지한 여인과 청년 3명은 부슬비 오는 거리로 사라져 버렸다….’(영남일보 1947년 6월17일자)

기자가 감히 폭로하려는 창백한 세계의 비밀은 뭘까. 비장하다. 독자와 함께 민족성의 부패를 막아야 한다는 각오까지 다진다. 바로 매음굴에서 벌어지는 흡혈귀 같은 중개자인 포주의 횡포다. 포주에게 당하는 여성의 비참한 삶을 고발하겠다는 것이다. 당시 대구에서도 매매춘의 장소인 매음굴이 더러 있었고 그 중 한 곳이 대봉동이었다. 기자가 탐방 기사를 쓰기 위해 찾은 곳이 대봉동 매음굴이었다.

하지만 이날 기자는 음매부(淫賣婦)를 만나지 못했다. 음매부는 남자에게 몸을 파는 여자를 일컫는다. 기자를 단속 나온 경찰로 오인한 소개업자가 음매부의 접근을 막았다. 몇몇 여성은 대봉동 인근의 보리밭으로 숨었다. 기사 속의 ‘뿌란데’는 과일 증류수인 브랜디(brandy)로 당시 인기 있던 술이다. 그 후 고급 양주라는 수식어를 달고 ‘닭표 쁘란듸’라는 광고도 나왔다.

‘낡은 초가를 둘러싸고 있는 보리밭 한 자리에서 한 소녀가 나타나 어슬렁어슬렁 집안에 들어가자 두 여자의 소리를 기자는 들을 수 있었다.

“담배비 탔어? 이리줘” “난 말을 할 줄 몰라서 못 받았다” 50이 넘은 노파와 16세의 소녀가 주고받는 소리다. 노파도 역시 음매부라는 사실을 기자가 알고 있었으나 그때는 마침내 화장을 하지 않은 맨 얼굴이었다. 소녀의 핏기 없는 얼굴과 대조하면 마귀처럼 보였다.’(영남일보 1947년 6월18일자)

첫날 음매부를 만나려다 허탕 친 기자는 뒷날 대봉동 매음굴을 다시 찾는다. 그곳에서 자정이 넘어 음매부 두 사람이 나누는 이야기를 엿듣게 된다. 쉰이 넘은 여성과 어린 소녀는 매매춘의 대가로 담배 한 개비조차 살 돈을 손에 쥐지 못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이들이 가져가야 할 수고비를 몽땅 포주들이 가로챘기 때문이다. 무지막지하게 착취당하는 인육시장의 모습 그대로다. 인육시장이란 매음부들이 몸을 파는 곳을 비유한 말이다.

매음굴이나 인육시장에서 돈벌이를 하는 철면피들은 그 이전에도 있어왔다. 자신의 집을 매음굴로 삼아 남편이 출타하고 없는 집의 부녀자들을 끌어들여 소개료를 떼어먹다 잡힌 여성도 있었다. 의성에 사는 여성은 매음굴에 팔려가기 직전 평양의 여관에서 발견됐다. 뿐만이 아니다. 시골색시 등을 꾀어 인육시장에 팔아넘기는 경우도 생겼다. 이를 빗대서인지 기사 제목은 ‘가련한 16(세) 소녀 인육 대가 담배?’다. 세상천지에 이런 가련한 소녀는 없어야 한다.

톡톡지역문화연구소장/언론학 박사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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