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국건정치칼럼] 문재인정부 청와대에도 ‘이너서클’ 있나

  • 송국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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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7-17   |  발행일 2017-07-17 제30면   |  수정 2017-07-17
대통령 이미지 메이킹 귀재
내부 실세그룹 멤버 탁현민
잇단 여성비하 논란속에도
‘王행정관’으로 자리유지
과거정권 반면교사 삼아야
[송국건정치칼럼] 문재인정부 청와대에도 ‘이너서클’ 있나

탁현민은 팟캐스트 ‘나꼼수’ 등을 기획한 공연예술기획가다. 문재인 대통령과는 2009년에 첫 인연을 맺었다. 서울 성공회대에서 열린 ‘노무현 추모 콘서트, 다시 바람이 분다’를 연출했다. 이 콘서트를 본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김해 봉하마을에서의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식, 노무현재단 창립기념공연 등을 의뢰했다. 이후 문 대통령이 지은 책 ‘운명’의 북콘서트도 탁현민의 손을 거쳤다. 2012년 대선 때는 문재인 후보 캠프에 합류해 ‘PI’(President Identity·대통령의 정체성) 개념을 한국에 처음 도입했다. 캠프에서 PI팀을 이끌며 문재인 후보가 어떤 사람을 만나야 하는지, 악수와 인사는 어떻게 하는지까지 세세한 부분을 챙겼다. 당시 김정숙 여사가 서울 세종문화회관 계단을 걸어 내려와 국민 속으로 들어가는 장면 같은 독특한 유세 방식은 거의 탁현민 작품이었다.

탁현민은 지난해 6월부터 7월까지 문 대통령의 히말라야 트레킹에 양 전 비서관과 함께 동행했다. 5·9 조기 대선 때는 양 전 비서관이 이끈 외곽조직 ‘광흥창팀’에서 활동했다. 유세 과정에서 패션쇼 모델을 연상시키는 런웨이 방식으로 인파를 뚫고 무대에 등장하는 문재인 후보의 모습도 탁현민의 머릿속에서 나왔다. 대선에서 승리하자 청와대에 입성, 의전비서관실 행사기획담당 선임행정관(2급)을 맡았다. 국민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탁현민식 PI 구축은 이때부터 더욱 진가를 발휘한다. 5월 첫 수석비서관-보좌관회의에서 문 대통령이 직접 커피를 뽑아서 마시는 모습, 대통령 집무실과 청와대 홈페이지에 일자리 상황판을 설치하는 아이디어를 냈다. 5·18 기념식에서 배우 이보영이 추도사를 읽게 하고,‘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한 유가족 김소형씨를 문 대통령이 따뜻하게 안아주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지금 탁현민은 과거에 쓴 책들에서 여성을 비하하고, 비뚤어진 성(性)의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논란에 휩싸였다. 여성단체는 물론이고 여야 여성 국회의원, 심지어 문재인정부의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조차 ‘탁현민 사퇴’를 요구한다. 하지만 청와대는 꼼짝도 않는다.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으로 내정됐던 김기정 연세대 교수가 과거의 부적절한 품행으로 여성단체의 항의를 받자 즉각 물러나게 한 일과 대비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탁현민을 내치지 않는 이유는 두 가지로 분석된다. 하나는, 임기 초반 대통령 이미지 메이킹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여권 관계자는 “탁현민은 대통령 지지율 고공행진에 기여하고 있다. PI 구축에서 그를 대체할 인물이 현실적으로 없다. 대통령은 그를 놓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다른 하나는, 막후 실세인 양 전 비서관을 비롯해 청와대의 실세 참모들이 탁현민을 보호하는 듯하다. 광흥창팀은 모두 13명이었는데, 그중 10명이 청와대에 입성했다. 임종석 비서실장을 필두로 송인배 제1부속비서관, 윤건영 국정상황실장, 신동호 연설비서관, 한병도 정무비서관, 오종식 정무기획비서관, 조용우 국정기록비서관, 조한기 의전비서관, 이진석 사회정책비서관, 그리고 탁현민 행정관이다. 만일 이 두 가지 이유로 문 대통령이 탁현민을 보호하고 있다면 소탐대실이다. 대통령 이미지 연출도 중요하지만 청와대 안에 과거 정권처럼 이너서클(Inner circle·소수의 핵심 권력집단)이 구축되는 조짐을 보이는 건 불길하다. 박근혜정부의 ‘왕(王)실장(김기춘)’ ‘왕수석(우병우)’ ‘왕비서관(문고리 3인방)’에 이어 이번에는 ‘왕행정관’이란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독버섯은 번지기 전에 도려내야 한다. 읍참마속은 이런 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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