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보스 권영진이 보스 김관용보다 한 수 위

  • 유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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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8-30   |  발행일 2017-08-30 제30면   |  수정 2017-08-30
단체장 복심돼버린 산하기관
경북도, 출자·출연기관 26곳
도지사 잘모셔야 ‘밥줄 연장’
11곳뿐인 대구시, 충성도 낮아
시장 소속 정당에 ‘반칙 동원’
[동대구로에서] 보스 권영진이 보스 김관용보다 한 수 위
유선태 체육부장

기자는 대구시와 경북도를 각각 두 번씩 출입했다. 두 기관은 한 뿌리에서 나왔지만 다른 점이 여러 개 있다. 그 가운데 하나를 꼽으라면 국장급 간부들의 ‘단체장 모시기’다.

2년여 전쯤, 대구에서 열린 한 행사에 권영진 대구시장과 김관용 경북도지사가 함께 참석했다. 김 도지사 뒤에는 네댓 명의 국장급 간부들이 따랐다. 이들은 허리를 굽혀 김 도지사의 얘기를 듣기도 하고 뭔가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 권 시장 옆에는 수행비서 한 명만 있었다. 그날 부러운 듯 내뱉은 권 시장의 말이 아직도 귓전에 생생하다. “우리 국장들은 다 어디 갔지?”

국장급 간부들의 대동 배경에는 김 도지사의 탁월한 조직 장악력이 자리하고 있을 수 있다. 경북도 국장급 간부의 ‘보스 챙기기’ 전통 혹은 성품일 수도 있다. 무엇이든 다 좋다. 분명한 건 여기에 상수(常數) 하나가 보태진다. 김 도지사의 눈에서 절대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밥줄연장과 직결된다. 경북도에는 26곳의 출자·출연기관이 있다. 정년 후(대개는 정년을 1년 정도 남겨두고 명예퇴직을 하지만) 이곳에 취업해 2~3년 녹을 먹으려면 도지사의 신임을 받아야 한다. 출자·출연기관의 넘버원 또는 넘버투, 임원의 실질적 임면권자는 도지사다. 가끔씩 공모 또는 이사회라는 절차를 거치기도 하지만 전형적인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 이 역시 도지사의 마음먹기에 달렸다.

진심으로 단체장을 모신 이들에겐 이 같은 지적이 마뜩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지자체 속내를 꽤 아는 사람들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로 여기고 있다. 혹자는 “지방의 인재풀이 약한 데다 자치단체와 협조할 업무가 많아 출자·출연기관에 국장급 간부 출신이 많은 것 같다”고 해명한다. 아주 엉터리는 아니지만 보은 인사 논란을 극복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국장급 퇴직자들에게 무조건 낙하산 타고 지자체 산하 출자·출연기관으로 내려가지 말라는 건 아니다. 능력 있고 선후배 사이에서 신망이 두터운 인사가 그곳에서 공직의 마지막 불꽃을 태운다면 감히 누가 시비를 하겠는가. 문제는 그렇지 않은 인사들이다. 출자·출연기관으로 간 사람들 가운데 적지 않은 이가 퇴직 전까지 지역과 나라 발전보다는 개인의 영달을 좇았다. 일로써 승부하기보다 짬짜미와 눈치 보기, 아랫사람 뭉개기로 버텨왔다. 때문에 아랫사람들에게 ‘단체장의 훗날’을 위해 분골쇄신까지는 아니어도 일정 이상의 품을 팔라고 강요할 개연성이 크다. 단체장의 훗날이 무슨 뜻인지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대구시로 방향을 돌려보자. 대구시에는 11개의 출자·출연기관이 있다. 이 가운데 9곳의 수장은 시장이 사실상 임면할 수 있다. 경북도의 30% 수준이다. 이 때문인지 몰라도 외부에 비치는 대구시 국장급 인사들의 ‘대(對)시장 충성도’는 경북도의 그것과 비교 자체가 안 될 정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단체장의 훗날 도모가 미흡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최근 들어 새로운 전략이 등장했다. 지역의 일부 출자·출연기관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권 시장의 훗날을 도모하는 듯한 작태가 벌어졌다. 노조위원장 등이 앞장서 노조원들을 권 시장 소속의 특정 정당에 가입시키려 했다. 몇 명 안 되는 출자·출연기관의 수장 대신에 훨씬 더 많은 직원들이 활용된 것이다.

권 시장이 의도했는지,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건 반칙이다. 다급한 나머지 신중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비껴가기 어렵게 됐다. ‘오십보백보’인지는 모르겠지만 김 도지사는 그래도 드러내놓고 반칙은 안 했다. 적어도 훗날 도모 분야에선 단체장 4년 차 권영진이 24년 차 김관용을 뛰어넘은 건 분명해 보인다.유선태 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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