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 宗家 내림 손맛’ 토하젓·조청…순천삼합 ‘닭·꼬·미’ 별미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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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9-08   |  발행일 2017-09-08 제35면   |  수정 2017-09-11
■ 푸드로드 전남 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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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점이 그대로 살아 있는 보성강 새우로 만든 전통 토하젓. 작은 사진은 500년 가업의 전통 조청을 만드는 것은 물론 남도식 토하젓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김순옥 순천음식연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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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구이, 꼬막무침, 미나리를 합쳐 만든 순천의 새로운 명물먹거리 ‘순천삼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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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난 기정떡을 현대화시킨 ‘순천미인방울기정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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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창고의 인기 메뉴인 감자햄버거 같은 ‘뚠뚠이’.

◆토하젓과 조청의 원형을 찾아서

웃장돼지국밥으로 허기를 해결하고 보성강변의 주암면 구산마을 구산양반쌀엿 민박집에서 하루를 묵었다. 모처럼 완벽한 어둠을 만끽한다. 이 민박집 주인인 김순옥 순천음식연구회장은 음식을 위해 모든 걸 내려놓은 사람 같았다. 종부의 ‘골병’을 먹고산다는 내림음식. 그녀도 운명이라 싶어 그 음식을 전승했다. 작고한 시어머니 박효임이 그녀의 음식 사부였다.

김 회장은 23세 때 곡성군 죽곡면 태평리에서 옥천조씨 가문으로 시집을 왔다. 이 마을은 옥천조씨 세거지로 500년 역사를 갖고 있다. 전통 조청(쌀엿)의 전통을 잇는 곳이다. 150여 가구가 사는데 조청 빚는 집이 30호나 된다.

조청 재료는 무궁무진하다. 가장 유명한 건 역시 쌀. 이 밖에 수수, 도라지, 생강, 오디, 딸기, 방풍나물, 연근, 돼지감자, 호박, 매실 등도 있다.

조청 만드는 적기는 음력 10월~이듬해 3월. 어떻게 만들까. 엿기름은 음력 10~11월에 만드는데 보리쌀을 3~5일 만에 싹을 틔우고 그걸 2~3일 건조시켜 40㎏짜리 25포대를 마련한다. 1년 사용량이다.

일단 고두밥부터 만든다. 물에 100㎏의 고두밥, 8㎏의 엿기름을 섞은 뒤 300ℓ엿물을 부어 12시간 숙성시킨다. 이걸 가마솥에서 고아 앙금처럼 남긴 게 조청이다. 그런데 단맛 조절이 정말 어렵다. 주걱을 이용하면 너무 달게 된다. 그녀는 그 맛을 ‘진저리 쳐지는 단맛’이라 했다. 장작불 대신 가스를 사용하면 조청이 칙칙해져 덜 맑아 보인다.

조청도 엿의 일종. 전문용어로는 ‘조이당엿’. 이걸 딱딱한 ‘강엿(이당엿)’으로 만들려면 한 가지 공정이 더 필요하다. 이때는 주걱을 사용한다. 됐다 싶으면 불을 끄고 뭉근한 온도에서 30여분 곤 뒤 퍼내 엿을 만든다. 2인1조로 마주 보고 앉아 2시간 정도 엿당기기를 해야 된다. 그럼 하얀 엿으로 변한다. 현재 그녀는 조청을 이용한 고추장까지 특허를 냈다.

이번 순천행에서 가장 큰 수확은 그동안 어슴푸레하게만 인식됐던 남도 ‘토하젓’의 원형을 알게 된 것이다. 천일염을 넣고 반년 이상 삭혀 양념한 시판용 토하젓과는 확연히 구별됐다.

김 회장이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내림반찬이 바로 ‘옥천조씨식 토하젓’이다. 보성강 민물새우는 여느 민물새우보다 반 정도 작다. 꼭 ‘실치’ 같다. 매년 10월에 반두를 갖고 잡는다.

만드는 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펄펄 끓인 조선간장을 잡아온 새우에 붓는다. 그럼 새우가 빨갛게 익게 된다. 상하는 걸 예방하는 절차다. 이어 새우를 항아리에 담아 불기가 살아 있는 잿불 속에 묻어둔다. 새우가 한번 더 끓게 된다. 몇 번 더 ‘잿불샤워’를 해주면 더 농밀한 맛을 갖게 된다. 희한하게 살점이 하나도 뭉개지지 않았다. 맛을 봤는데 향이 장난이 아니다. 꼭 새우장아찌 같았다. 참기름을 한두 방울 첨가하면 그대로 밥도둑. 무채 양념으로도 딱이다.

순천에 와서 새롭게 알게 된 떡이 있다. 바로 ‘기정떡’(일명 기지떡·증편)이다. 경상도의 대표적 떡일 것 같았는데 아니었다. 순천과 광양이 새로운 기정떡 메카로 떠올랐다. 순천문화예술회관 근처에 있는 3대 가업의 ‘순천광양기정떡’이 돌풍을 일으켰다. ‘술떡’으로도 불리는 사각형 떡을 베이커리 버전으로 현대화한 떡집도 있다. ‘다정다감’이란 이름을 단 ‘순천미인방울기정떡’이다. 이 집 기정떡은 컵 모양으로 승부를 걸었다. 흑임자, 단호박, 깨 등을 첨가해 차별화를 시도했다.

구산양반쌀엿 민박 주인 김순옥씨
옥천조씨 가문 조청과 토하젓 소개
간단히 만들지만 농밀한 맛 큰 매력
조청 이용한 고추장은 특허까지 내

닭로스구이·꼬막무침·미나리 합작품
음식관광 마케팅 한창인 ‘순천삼합’
20여 약재 소스에 재운 닭고기 특미


◆순천삼합을 찾아서

올해 순천시청 관광진흥과에 재밌는 팀이 생겼다. ‘음식관광’이란 부서다. 순천음식을 관광마케팅식으로 전국화할 모양이다. 거기서 ‘강추’한 음식이 있다. 그게 바로 ‘닭꼬미’란 이름의 ‘순천삼합’이다. 닭꼬미는 ‘닭구이·꼬막무침·미나리’의 합작품. 홍어와 묵은지가 합쳐져 생긴 목포의 ‘홍탁삼합’, 표고버섯·가리비·한우가 합쳐진 ‘장흥삼합’을 벤치마킹한 거다. 그렇다고 신메뉴 개발식으로 장만한 건 아니다. 순천의 숨결이 있는 걸로 구성했다. 그걸 먹기 위해 서면 청소골에 형성된 닭구이촌 후발주자인 ‘산수정’을 찾아갔다.

온갖 분재와 희귀식물을 가꾸고 있는 산수정의 여사장 김미라씨. 순천 토박이인 그녀는 조청 명인 김 회장 못지않은 순천음식 전도사다. 남편 주경돈씨는 순천문화해설사. 둘은 순천 푸드 스토리텔러다.

닭구이는 고추장양념이 가미된 여느 닭불고기와 다르다. 고추장 같은 양념이 일절 섞이지 않아 ‘닭로스구이’ 같았다. 고기를 잴 때 사용하는 소스도 더덕, 인삼 등 20여 가지 한약재를 달여 만든다.

예전 토박이들은 닭을 구울 때 소금만 조금 뿌려 그대로 먹었다. 닭 이전에는 순천만 청둥오리를 몰래 잡아 구워먹었다. 이젠 처벌대상이지만 그땐 그랬다. 양념구이 사각지대라서 그런지 대구발 프라이드치킨이 여기선 그렇게 맹위를 못 떨친다. 토박이의 소금친 닭구이 전통이 청소골로 와서 특화된 셈이다. 현재 청소골 닭구이 취급 업소는 26군데. 팔공산 닭백숙촌 같은 포스다.

김 사장은 순천삼합을 개발하기 위해 딸의 도움을 받았다. 닭꼬미란 말도 딸의 아이디어. 닭구이 못지않게 순천꼬막도 유명하니 그것도 무침으로 살려내고, 그리고 마지막에 닭과 꼬막을 잘 연결해줄 수 있게 미나리를 매칭시켰다. 이 미나리는 다른 도시 미나리와 향이 다르다. 갓은 여수라지만 거기는 일본에서 종자를 수입해 퍼트린 것이다. 진짜 맵고 톡 쏘는 조선갓은 순천이 메카다. 현재 도사동에서 나오는 미나리도 해풍을 먹고 자라 향이 엄청 강하다.

일단 염초무침과 토마토 참외 삼채 더덕으로 짜인 과일김치, 순천의 제사상에는 반드시 올라가야만 하는 양태, 다슬기장과 꼬막장까지 맛봤다. 내 목구멍의 일부가 갯벌로 변하는 것 같았다. 강렬한 순천의 맛이다. 이어 콩나물과 갓, 곶감으로 만든 장아찌도 경상도에선 맛볼 수 없는 울림을 줬다. 대바구니에 담겨져 나온 찰밥은 액세서리 같았다. 말미에 막걸리로 만든 와인으로 속을 식혔다. 무엇보다 시댁의 증조할머니 때부터 내려온 씨간장, 그게 이 밥상의 진미를 유지하는 ‘시크릿’인 것 같았다.

◆낙안읍성의 팔진미비빔밥과 청춘창고

조선 민가의 표정을 보고 싶어 ‘낙안읍성’으로 갔다. 하늘은 더없이 청명했다. 바람보다 더 가볍게 날고 있는 고추잠자리, 이불을 널고 있는 주민, 초가집을 에워싸는 호박 넝쿨, 고샅길 모서리마다 핀 온갖 야생초…. 순천만에서 다소 흥분스러워진 시선이 이 읍성에서 비로소 차분해진다. 비바람에 많이 시달린 듯 초가집은 잿빛으로 변해 있었다.

낙안읍성은 83년 사적 302호로 지정되면서 거듭난다. 현재 98세대 228명이 살고 있다. 안에 들어가면 여전히 맑고 시원한 예전 샘도 볼 수 있다. 전통대장간, 누에체험장, 길쌈장, 세계의상존, 두부와 메주 만드는 공방도 있다.

여기의 대표적 비빔밥은 ‘낙안읍성팔진미(八珍味)’. 낙안읍성을 방문한 이순신 장군에게 고을 주민들이 읍성 주변에서 나는 8가지 재료를 이용해 음식을 만들어 대접한 데서 유래 됐다. 재료는 금전산 석이버섯, 백이산 고사리, 오봉산 도라지, 제석산 더덕, 남내리 미나리, 성북리 무, 서내리 녹두묵 등이다.

동국여지승람 등에 따르면 조선에선 나주에만 팔진미가 있었다고 기록돼 있다. ‘소팔진(蔬八珍)’은 미나리, 마늘, 두부, 녹두묵, 생강, 참기름, 열무, 봄동이며 ‘어팔진(魚八珍)’은 참게, 숭어, 뱅어, 웅어, 잉어, 자라, 장어, 복어다. 영산강둑 등으로 인해 나주의 팔진미는 사라졌고 그게 다시 순천에서 부활된 것 같다.

일정이 다 끝나갈 때쯤 새로운 소식을 하나 접했다. 순천농협 조곡지점에 들어선 ‘청춘창고’를 반드시 훑어보고 대구로 가라고 했다. 여긴 1948년부터 정부양곡창고로 사용된 곳인데 연초 청년일자리 창출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리모델링돼 현재 17개 업소가 영업 중이다. 벽에 찍혀 있는 빛바랜 농협 마크, 그게 공연무대와 관람석을 중앙에 장착한 모던한 청년창고와 묘한 앙상블을 이룬다. 거기서 만난 ‘GATE 250’의 청년장사꾼 이영석 사장. ‘250’이란 숫자는 국내에서 출국 가능한 나라의 수란다. 그는 미국, 일본, 대만 등 여행지에서 만난 인상적인 월드푸드를 순천식으로 풀어낸다. 대표적인 게 ‘뚠뚠이’. 이건 대만의 왕자치즈감자를 벤치마킹한 거다. 으깬 감자 사이에 소불고기, 치커리, 적양파, 피클, 콘 등을 첨가해 소스 위에 섬처럼 올려놓았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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