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칼럼] 가을의 향연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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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9-15   |  발행일 2017-09-15 제27면   |  수정 2017-09-15
[조정래 칼럼] 가을의 향연

오랜만에 방문한 대구CC. 가끔 들렀던 그 곳에 이젠 가곡연주회에 참석하려 잔디를 밟게 될 줄이야. 지난 7일 동코스 1번 홀 페어웨이에서 대구컨트리클럽이 주최하고 박범철가곡아카데미가 주관한 ‘제14회 가곡과 함께하는 가을의 향연’이 열렸다. 연주회 시작 1시간 전임에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장사진을 이뤘다. 주최 측에서 뷔페 음식을 제공했는데, 참석자들이 눈 대중으로 봐도 1천명은 넘을 듯했다.

친구 따라 장에 가듯, 음악을 사랑하는 후배의 권유에 이끌려 자의 반 타의 반의 발걸음을 떼놓았다. 그는 이날 프로그램의 중요한 파트를 담당하며 가곡 실력을 선보인 ‘나·우리여성중창단’ 소속 회원인 부인을 격려하기 위해 꽃다발과 함께 다른 후배 1명의 손까지 잡고 가 부부애를 자랑했다. 우연한 기회에 접한 뮤지컬이나 사물놀이 외엔 음악회라곤 거의 가 본 적이 없다. 더군다나 가곡이라니 제대로 듣고 새길 수나 있을는지 스스로 미심쩍었다.

두 시간에 이른 가을의 향연은 그야말로 조촐하게 시작해 융숭하게 끝났다. 아름다운 소리에 빠져들었다가 어느 순간에는 의미심장한 가사에 젖어들곤 하느라 시간 흐르는 줄 몰랐으니 이런 신선놀음도 없을 터. 아마추어의 투박함과 프로의 세련됨이 어우러진 하모니는 모두에 박범철 지도교수가 해설한 것처럼 한마디로 경연(競演)이 아니라 향연(饗宴)이었다. ‘가곡의 향연’은 누가 잘 부르나 하는 콘테스트가 아니라 무대와 객석이 하나로 어울려 즐기는 놀이라고. 오랜 시간 갈고닦은 실력을 선보인 아마추어 성악가들의 남다른 열정과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아마추어 성악가들에게 오늘은 ‘국경일’이라고 한 사회자의 우스갯소리가 객석의 웃음소리를 이끌어내며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확 허물어버린다. 시나브로 무대 뒤로 환하고 둥근 달이 떠오르며 가곡 잔치는 절정을 넘어간다. ‘우기정 회장이 공연을 준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보름달을 초청하는 것이라고 했다’는 김유환 사회자의 너스레는 자칫 엄숙해지려는 분위기를 일거에 누그러뜨리기도 했다. 무대에 오르기까지 진땀났던 그들의 가슴졸임과 설렘, 무대가 끝난 뒤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하는 데서 오는 아쉬움까지 생생하게 다가오고, 프로 성악가들의 미성(美聲)과 좌중을 휘어잡고 흔드는 아우라는 두말할 필요 없이 늦여름밤 소슬한 공기를 더욱 소름돋게 했다. 마음이 흥겹고 귀가 즐거웠으니 가을의 향연이 그야말로 심신에 가을을 수놓고야 말았다.

곧잘 가곡을 흥얼거리곤 한다. 군 복무 당시 신참 시절 하도 노래를 자주 시키는 고참들 기가 질리게 해 다시는 노래 부르라는 소리조차 안 나오게 할 요량으로 씩씩하게 ‘노래 일발 장전’을 외치고 좌중을 쓱 둘러본 뒤 ‘꿈’(김성태 작곡, 황진이 시)을 ‘발사’했었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휴전선 막사 안 20여명의 고참들이 멍하니 쳐다보던 모습. 생뚱맞게 번지수도 모르고 고상한(?) 노래를 용감하게 ‘불러제낀’ 결과, 그 이후 고참들로부터 노래 사역의 시달림에서 해방됐음은 물론이다. 음치에 가당치도 않게 적지 않은 가곡을 부를 수 있게 된 건 고교시절 싫다는 까까머리들에게 강제로 주입하다시피 가곡을 어렵사리 가르쳐 준 임기수 음악 선생님 덕분이다. 세월이 많이 지나 성년이 된 이후 가곡을 알뜰하게 배운 걸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내게 고마워할 거라고 하신 선생님의 가르침이 한 치의 어긋남이 없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가곡이 군대에서 인기 없듯 우리 사회에서 대중성을 잃어가고 있다. 1998년부터 ‘박범철가곡아카데미’를 개설하고 가곡의 보급과 저변확대를 위해 안간힘을 이어오고 있다는 박 교수는 피날레 송 ‘그리운 금강산’을 다함께 부르면서 “중창단 회원도 40대에서 70대까지고, 객석 또한 20·30대 청중이 보이지 않는 공통점이 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요즘 젊은이들은 가곡을 배울 기회를 갖지 못하고 즐길 기회도 거의 없다고. 그럼에도 우리 민족의 가곡 DNA는 살아 숨쉬게 해야 할 터, 내년 9월6일(9월 첫째주 목요일) 혹은 13일(궂은 날씨로 공연이 어려우면 자동으로 1주일 연기) 공연이 새삼 기다려진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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