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대학에서 인문학을 강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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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1-20   |  발행일 2017-11-20 제30면   |  수정 2017-11-20
자신이 누군지 증언해야 할
개인도 철학을 필요로 하고
예술도 철학을 필요로 하고
법도 철학을 필요로 하지만
대학 철학과 무너지고 있다
[아침을 열며] 대학에서 인문학을 강조하다
박소경 호산대 총장

“왜 철학과 대학원에 왔습니까?” “철학책을 읽으려 합니다. 다른 책은 혼자 읽어도 되지만, 철학은 제 마음대로 해석하면 안 될 것 같아서요.” 10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왜 상담심리학 대학원에 왔습니까?” “카를 융이 궁금해서 왔습니다.” 마흔 후반에 정신없이 살아오던 의사 생활을 끝냈다. 시간을 낼 수 있게 되면서 나에겐 큰 변화가 일어났다. 방에 책이 쌓이기 시작하고 사방에 쌓아 놓은 책더미에 묻힐 때쯤, 카를 융을 만났다.

심리학은 인간의 욕구와 그로 인한 감정을 다루는 학문이다. 심리학에 흠뻑 빠져 책을 보다가 밤을 새우고, 엎드려 보다가 잠이 들고, 누워서 보다가 무거운 책을 얼굴에 떨어뜨리길 여러 번, 시트와 이불은 펜으로 온갖 점이 찍혔다. 사회과학 용어를 공부하면서 바람과 욕구와 욕망을 어떻게 다르게 쓰는지, 욕구를 분류하고 나의 욕구를 곰곰이 들여다보니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6년이 흘렀고 그때서야 기술 훈련에 치중하는 상담심리학이 내가 원하던 건 아님을 알게 됐다. 또한 인간의 감정, 그 자체가 이성에 달려 있음에야! 나의 관심은 인간 정신과 사고, 인간 본성, 인간의 존엄성과 유일함, 그런 것들이었다. 물론 융과 프로이트는 심리학자라기보다는 대사상가다. 한국 최고의 융 전문가를 찾아갔건만 심도 있는 수업은 없었던 것이다.

우리 세대가 대학 다니던 시절에는 교양 과목 하면, 그 첫째가 철학이었다. 철학이 비록 스무 살 아이들의 관심을 끌 수는 없지만, 그때 들은 철학자들의 이름과 저서들은 평생의 숙제로 남았다. 철학은 가장 오래된 학문으로, 서양은 기원전 500년에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동양에서는 비슷한 시기에 붓다·공자·노자로부터 시작됐다. 밝은 눈을 지닌 그들은 인간 존재를 깊이 파악했다. 그리고 직접 혹은 제자를 통해 글을 남겼다. 현대에 발달된 뇌과학이 하드웨어라면 그들의 설명은 뇌의 소프트웨어인 셈이다. 중요한 철학서는 문학 작품이기도 하다. 서양 철학은 기본 개념을 분명히 하면서 언어를 가지고 사유한다. 동양 철학에서 붓다와 노자는 그 스케일에서 온 인류를 압도하며, 공자는 전체 인격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스승이다. 우리는 동·서양의 철학책을 모두 읽을 수 있는 행운아라 할 수 있다. 철학은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에서 원리와 근거를 찾는다. 우리가 무엇을 인식하고, 무엇을 말하는지, 그러면 인간 존재는 무엇인지, 위대한 철학자는 후대 사람들이 사고 과정을 따라갈 수 있도록 논리적으로 유도한다. 그들이 이끄는 데로 가다 보면 바른길을 방해하던 편견과 아집의 원천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나는 누구인가?’ 궁극의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나는 무엇이며, 누구인지,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좌표를 알아야 방향을 잡는다. 미국에서는 지금도 교양과목으로 심리학과 철학을 공부하며, 유럽과 일본에서는 ‘죽음’을 여러 영역에서 다룬다. 죽음은 실존철학에서 가장 근원적인 물음이 아니던가. ‘시간과 존재’에서 인간은 죽는 존재라는 명제를 끌고 간 30대의 하이데거는 후기에는 무해하며 무력한 시어(詩語)에 머물며 사색했다. 근대를 ‘인식론적 전환’이라 부르듯이 20세기는 ‘언어론적 전환’이라 할 만큼 철학적 화두는 ‘언어’가 되었다.

인간은 누구인가? 인간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스스로 증언해야 한다. 대학에서 철학과가 무너지고 있다. 법도 철학을 필요로 하고, 예술도 철학을 필요로 한다. 무엇보다 우리 개개인이 철학을 필요로 한다. 누구는 반박할지 모르겠다. 이것은 세계적인 추세라고. 그러나 그들은 수천 년, 혹은 수백 년 동안 철학을 중시했던 나라들이다. 서양인들은 ‘동양인들은 철학을 종교로 만들어버렸다’고 말한다. 종교는 알려고 하지 말고 믿으라 하고, 철학은 질문하라 한다. 어느 쪽이 진실을 향하며 나의 뇌를 발달시키겠는가.
박소경 호산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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