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굴기 1대 조립비용 200만원…6대 월 평균수익 70만∼80만원”

  • 손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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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1-29   |  발행일 2017-11-29 제6면   |  수정 2017-11-29
■ 열풍 가상화폐 채굴장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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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립PC 매장을 운영하는 최호산씨는 자신의 사업장 창고를 가상화폐 채굴장으로 쓰고 있다. 10평(33㎡) 남짓한 공간에 채굴기 6대가 쉼 없이 돌아간다. 채굴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를 식히기 위해 선풍기 3대도 24시간 돌아간다. 가상화폐 채굴상황을 살펴보고 있는 최씨.

지난 26일 오후 가상화폐 ‘비트코인’의 국내 가격이 1천만원을 돌파했다.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에 따르면 지난 27일 오후 3시20분 기준 비트코인은 1비트코인당 1천89만원에 거래 중이다. 세계평균 시세로도 1비트코인당 1천59만원이다. 올해 1월까지만 해도 100만원 수준에 불과하던 비트코인은 넉달 뒤 200만원을 뛰어넘더니, 시세가 연이어 2배 이상 올랐다. 비트코인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다음해인 2009년 나카모토 사토비가 개발한 암호화폐로 정부와 중앙은행이 지급보증을 하지않는 가상화폐를 말한다.

가상화폐의 가치가 폭등함에 따라 투자 열풍이 불고 있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고수익’을 보장하는 가상화폐 투자 과정에서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가상화폐 투자 광풍과 그에 따른 위험성에 대해 알아봤다.

대구에서도 채굴장 2곳 들어서
컴퓨터 이용한 수학문제 풀이로
매매거래 기록되는 블록 만들어

전기요금을 줄이는 것이 관건
공단·농지 등에 채굴장 만들어
값싼 산업·농업용 전기 쓰기도

해킹에 의한 사건·사고 잇따라
유럽중앙은행 등 반복적 경고

◆“용돈벌이 삼아 가상화폐 채굴”

대구 동구 효목동의 한 상가건물에서 조립PC 매장을 운영하는 최호산씨(39)는 6개월 전 가상화폐 채굴이란 부업을 시작했다. 지난 6월 가상화폐 시세가 폭등할 때 가상화폐 매매로 짭짤한 수입을 올렸다는 지인의 귀띔이 계기가 됐다. 최씨는 “가상화폐 특성상 투자 위험성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계속 가치가 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용돈벌이 삼아 직접 채굴하고 있다”고 말했다.

채굴은 가상화폐 투자 열풍이 불면서 세계적으로 새로 생겨난 사업이다. 가상화폐는 거래소에서 사들이거나, 직접 프로그램의 연산을 풀어 얻을 수 있다. 컴퓨터를 이용해 일종의 수학문제를 풀어, 가상화폐 매매 거래가 기록되는 ‘블록’을 만드는 작업을 채굴(mining)이라고 한다. 새로 만들어진 블록은 공공 거래 장부격인 블록체인(가상화폐로 거래할 때 발생할 수 있는 해킹을 막는 분산 데이터베이스의 한 형태)에 들어가게 되며, 블록을 만든 보상으로 해당 가상화폐가 주어진다. 채굴기는 가상화폐만 캘 수 있도록 개조한 컴퓨터다. 케이스 없이 CPU와 메인보드를 노출해 조립한다. 문제풀이를 위한 연산장치로 그래픽카드를 활용한다.

최씨는 여윳돈 1천300만원을 들여 채굴기 6대를 조립, 가동 중이다. 채굴기 1대당 조립비용은 그래픽카드와 CPU, 메인보드 등을 포함해 총 200만원가량 들었다. 채굴하는 가상화폐의 종류는 이더리움이다. 그가 채굴기를 만들었을 때 이더리움 1개의 시세는 27만원이었는데, 27일 기준으로 54만6천300원까지 올랐다. 최씨가 채굴기로 버는 한달 평균 수익은 120만~130만원 정도 된다. 여기에서 상가 전력으로 드는 전기료를 제외하면 수익은 평균 70만~80만원에 이른다.

최씨는 “비트코인 가격이 급등하면서 이더리움 가격도 치솟고 있다. 내년 초에는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대구서도 채굴장 2곳 들어서

가상화폐 채굴을 통한 수익은 전기료를 줄이는 게 관건이다. 고성능 그래픽카드로 24시간 쉬지 않고 연산을 풀다보니 채굴기 1대에 드는 전력이 한달에 수백㎾h에 달한다. 채굴기 1대당 내는 열기(55℃)를 식히기 위해 드는 냉방기 가동 전력도 만만치 않다. 누진제 요금이 적용되는 주택용 전력소비량으론 수익이 별로 남지 않는다. 이 때문에 채굴장은 산업용 전기를 끌어쓸 수 있는 공단에 들어선다. 값싼 농업용 전기료 혜택을 받기 위해 시골의 부지를 사들여 채굴장을 짓는 불법행위도 이뤄진다. 전기료가 싼 중국에서 채굴 위탁 업체를 운영하는 이도 있다. 최씨처럼 상가 전력으로 쓰는 경우는 드물다. 그는 “가정에서 채굴기를 돌리는 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경우’다. 저의 경우 상가의 전기료 대비 효율을 따져보고 6대만 가동하고 있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지난 5월 가상화폐 투자 붐이 일면서 서울과 강원을 비롯해 대구지역에서도 가상화폐를 직접 생산하고 관리하는 채굴장이 생겨나고 있다. 27일 가상화폐 정보를 공유하는 인터넷 카페 ‘비트맨’을 통해 확인한 결과, 대구에서는 성서공단과 이시아폴리스 공업단지에 1곳씩 총 2곳의 채굴장이 운영되고 있다.

투자자들은 가상화폐 동호회에 가입해 채굴 사업자와 계약을 맺는다. 채굴기 값은 가상화폐 투자자가 부담하고, 채굴장 사업자는 채굴기 1대당 관리비를 받아 대신 가상화폐를 캐준다. 또 24시간 채굴기가 가동되도록 신경써준다. 대구에 있는 채굴장에선 적게는 10대 미만, 많게는 수십대의 채굴기를 관리한다.

채굴할 수 있는 양은 비트코인, 이더리움, 라이트코인, 리플, 모네로, 제트캐시, 퀀텀 등 가상화폐 종류마다 다르고, 그래픽카드 성능에 따라서도 다르다. 최씨의 경우 채굴기 6대로 한달에 약 3.5개의 이더리움을 캔다. 이더리움 채굴기는 국내에서 조립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지난 6월 가상화폐 채굴 광풍이 불었을 때 국내에서 유통되는 그래픽카드가 품귀 현상을 빚기도 했다. 비트코인 채굴기의 경우 국내에서 조립이 불가능해 전량 수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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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스웨이 이더리움 채굴기

◆가상화폐 광풍의 그늘

급팽창한 가상화폐 시장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양하다. 일확천금이 가능한 투기적 광풍으로 보는 견해가 아직 우세하지만 해킹에 대한 불안과 거품에 대한 논란도 크다. 가상화폐 투자를 통한 사기사건도 발생해 범죄 악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먼저 비트코인 가격이 급등하면서 이미 후끈 달아오른 가상화폐 열풍에 편승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주변에서 “큰돈을 벌었다”는 일부 사례가 입소문을 타면서 일확천금을 노린 투자자들이 생겨났다. 가상화폐 정보를 공유하는 인터넷 카페 ‘비트맨’은 가입자가 14만명을 훌쩍 넘었다.

현물이 있는 화폐와 달리 가상 공간에 존재하는 가상화폐를 둘러싼 사건·사고도 끊이지 않고 있다. 단순히 시세 하락으로 인한 원금 손실이 아니라 해킹에 의한 것이다. 이는 가상화폐 거래소 서버의 보안 취약이 문제다. 최근 거래소가 해킹당해 개인정보가 유출되거나, 가상화폐 거래소 서버가 마비돼 수백명의 가상화폐 거래자들이 손해를 본 적도 있었다. 가상화폐 투자자를 모집한 뒤 투자금만 받고 ‘먹튀’하는 사기사건도 발생했다. 지난 26일 가수 박정운씨가 2천억원대 가상화폐 투자 사기에 연루돼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사건이 대표적이다.

유럽중앙은행(ECB)는 지난 9월 비트코인은 통화가 아니며 17세기 네덜란드에서 발생한 튤립 버블과 같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현재 국내에서 급팽창하는 가상화폐 시장을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은 없다. 현재 가상화폐 투자를 관리·감독할 주무부처가 명확하지 않다. 유사수신은 법적으로 금지돼 있지만 가상화폐의 경우 정의조차도 명확하지 않아 법률 적용이 어렵다. 금융감독원에서도 가상화폐 관련 조사 권한이 없어 사전 규제는 사실상 전무한 상황이다.

글·사진=손선우기자 sunwoo@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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