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불임사회

  • 허석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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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2-04   |  발행일 2017-12-04 제31면   |  수정 2017-12-04
[월요칼럼] 불임사회

저출산이 세계적인 트렌드가 된 지 오래다.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맬서스(1766~1834)의 인구론은 오류투성이의 가설로 남게 됐다. 여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을 터인데 학자들은 현대사회의 ‘먹이 불균형’을 주요 원인으로 꼽기도 한다.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자손을 많이 낳고 대충 돌보기보다 적게 낳고 열심히 돌보는 번식 전략을 택했다는 것이다. 또한 급속한 도시화가 저출산의 한 원인이라는 분석도 있다. 인류가 콘크리트로 된 삭막하고도 좁은 공간에 빽빽하게 모여 살면서 비정상이 됐는데, 번식 행위도 그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은 ‘털 없는 원숭이’의 저자로 유명한 동물행동학자 데즈먼드 모리스(1928~)로부터 비롯됐다. 그는 동물원에 갇힌 원숭이 집단은 밀림에서 하지 않던 이상한 행동을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번식이 아닌 권력 과시를 위한 섹스를 하거나 파벌을 만들어 전쟁을 하고 자살까지 하는데, 이는 거대한 ‘콘크리트 우리’에 스스로를 가둔 현대인의 행동 특성과 흡사하다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라면 현대 인류는 극심한 경쟁과 왜곡된 성(性) 정체성으로 인해 태생적으로 불임의 숙명을 지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도 인류 공통의 불임화 현상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만 문제는 그 정도가 너무 심하다는 점이다. 알다시피 한국의 출산율은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1960년대만 해도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가임 연령대에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자녀 수)이 6명을 넘었지만 지난해 1.17명으로까지 줄었고 올해는 1.05명으로 더 떨어질 전망이다. 인구가 유지되려면 합계출산율이 2명을 넘어야 하지만 1명대를 유지하기도 버겁게 됐다. 이대로라면 국내 인구는 2030년 5천200만명 선에서 정점을 찍고 가파른 감소세로 돌아선다. 인구절벽이 가져올 미래는 누구라도 예측할 수 있다. 마이너스 성장과 지방소멸은 이제 시간문제일 뿐이다.

한국이 세계 최악의 불임사회가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확한 진단이 이뤄지는지는 의문이다. 아이를 낳아 키우기 힘든 사회·경제적 환경 탓으로만 돌리는 경향이 있다. 일리가 있기는 하다. 우선, 만연한 취업난과 저임금 등은 청년들의 결혼부터 망설이게 한다. 또 결혼을 하더라도 양육·교육비 부담 때문에 아이를 되도록 적게 낳으려 한다. 실제로 자녀 한 명을 대학까지 졸업시키려면 3억원 이상이 드는 실정이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저출산 배경에 경제적인 요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싱가포르만 봐도 알 수 있다. 올해 싱가포르의 1인당 국민소득은 5만3천달러로 우리나라보다 두 배 가까이나 높지만 합계출산율은 0.8로 124개국 중 꼴찌다. 싱가포르 사람들은 생활이 풍요롭고 정부에서 거의 공짜로 주택을 제공할 정도로 복지가 잘 갖춰져 있는데도 왜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일까. 가부장적인 유교문화와 경직된 사회 분위기, 살벌한 경쟁 체제, 과도한 사교육 등이 주된 이유로 지목된다. 물론 이 같은 사회 환경은 우리도 마찬가지다. 이와 함께 삶에 여유와 낭만이 없어 행복지수가 지극히 낮다는 공통점도 있다. 또한 저출산 대책이 백약이 무효인 사정도 비슷하다. 싱가포르의 경우 정부가 대학에서 연애학을 가르치게 할 정도로 극성을 떨고 있지만 도무지 출산율이 오를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 역시 저출산 예산을 지난 10년간 100조원이나 쏟아부었다지만 오히려 출산율은 날개 없는 추락을 하고 있다.

싱가포르에 대해선 정확히 모르겠지만 한국의 저출산은 더욱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는 생각도 든다. 무엇보다 양극화와 불평등이 고착화되는 게 우려스럽다. 지금 청년세대는 계층 상승의 사다리가 끊기고 부의 대물림이 굳어진 현실에 좌절하고 있다. ‘흙수저’들의 절망은 그들을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로 내몰았다. 그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잉태하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는 결코 불임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허석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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