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예술인들의 위대한 모습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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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2-14   |  발행일 2017-12-14 제31면   |  수정 2017-12-14
[영남타워] 예술인들의 위대한 모습

몇년 전 반 고흐의 불꽃같은 삶과 고독한 내면을 기록한 반 고흐의 서간문 모음집 ‘반 고흐, 영혼의 편지’란 책을 정신없이 읽고 한동안 가슴이 아린 기억이 있다. 네덜란드 화가 반 고흐가 동생 테오를 비롯해 주변 사람에게 보낸 편지들이 가득한 이 책은 반 고흐의 고통스럽지만 찬란했던 삶과 이런 열정적인 삶을 통해 걸작이 나올 수 있었던 과정을 보여준다. 예술서적인 데다 서간문 모음집인데도 재미가 상당해 꽤 오랫동안 사랑을 받았다.

이만이 아니다. 예술가의 삶을 다룬 영화도 꽤나 봤다. 반 고흐의 삶을 다룬 ‘반 고흐-위대한 유산’을 비롯해 화려하고 관능적인 그림으로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는 구스타브 클림트의 방황하는 삶을 담은 ‘클림트’, 모차르트의 천재성과 비극적 삶을 그린 ‘아마데우스’ 등을 보면서 그들의 불꽃같은 삶에 경탄을 금치 못하면서도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삶을 고집하는 그들의 모습에 안타까움을 가지기도 했다. 그러고는 이런 삶을 고집하는 그들의 정신세계가 궁금했고 무엇이 그들을 이토록 예술에 매달리게 하는지 알고 싶기도 했다.

최근 한 원로화가를 만나면서 이 같은 궁금증이 어느 정도 해결됐다. 그 주인공은 바로 최옥영 화가다. 일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 백혈병으로 시한부 삶을 살고 있는 그가 지난 11월에 개인전을 열었다. 나이 쉰에 접어들어 딸이 미술대학에 가는 것을 보고 자극을 받아 뒤늦게 미술을 시작한 그는 이즈음부터 위암 등 여러 병마와 싸우면서도 붓을 놓지 않았다. 그동안 10여차례의 개인전을 열고 많은 단체전에도 참여했다. 올해 초 백혈병 선고까지 받아 이제 남은 날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의 마지막 개인전이 될지도 모르는 이번 전시를 강행했다. 몇번이나 쓰러져 병원 신세를 지고 가족의 반대가 상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림을 계속 그려온 것은 바로 그림이 그의 삶의 원동력이기 때문이었다.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그의 전시장은 활짝 핀 꽃들이 만들어낸 생명력이 가득했다. 그의 얼굴 역시 병색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림을 그릴 때 가장 행복하고 힘이 솟아난다는 말을 줄곧 해온 그는 “이번 전시를 위해 작품을 그리고 전시하는 동안 내가 아프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무리하지 말고 편안하게 쉬면서 삶을 잘 마무리하라고 했지만 붓을 들고 있을 때가 오히려 편안하다”는 말을 했다.

그의 삶을 보면서 책, 영화속의 예술가들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오버랩됐다. 영화나 책에서만 봤던 불타는 예술혼을 직접 보는 영광을 안은 것이다. 그림 그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눈만 뜨면 붓부터 잡는다는 그의 말에서 진정한 예술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최옥영 화가를 통해 주변에 있는 예술가들의 모습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2016년 8월 세상을 떠난 박남희 화가(전 경북대 교수)는 암 선고를 받고도 쓰러지기 전까지 강의를 다니는 등 왕성한 활동을 보였다. 지역미술계의 어느 누구도 그가 그리 서둘러 가리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기자는 박 교수가 타계하기 3개월 전에 마지막으로 봤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병이 위중한 줄 몰랐다. 한두 시간 차를 마시는데 전혀 아픈 기색 없이 “2년 전 발병한 암은 거의 치료가 됐다”고 해서 그리 믿었다. 하지만 그는 그의 삶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도 가족 외에는 그 사실을 알리지 않고 예전처럼 활동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더 큰 슬픔을 줬다.

헤르만 헤세는 “시인과 음악가는 빛을 가져오는 사람, 지상의 기쁨과 밝음을 증가시키는 사람이다”고 했다. 이런 빛을 가져오는 원동력은 어디에 있을까. 바로 예술이 가진 힘에 있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에서 봤던 이 구절이 새삼 다가온다. “열심히 노력하다가 갑자기 나태해지고 잘 참다가 조급해지고, 희망에 부풀었다가 절망에 빠지는 일을 또다시 반복하고 있다. 그래도 계속 노력하면 수채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겠지. 그게 쉬운 일이었다면 그 속에서 아무런 즐거움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야겠다.” 그래서 예술은 위대한 것이리라.

김수영 주말섹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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