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평창, 평양 그리고 평화

  • 박진관
  • |
  • 입력 2018-01-11   |  발행일 2018-01-11 제31면   |  수정 2018-01-11
[영남타워] 평창, 평양 그리고 평화

한겨울 두만강 얼음 두께는 1m가 넘는다. 빙질도 좋다. 지금이야 어렵겠지만 12년전 이맘때 두만강 빙판에서 북한의 산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던 기억이 난다. 1년간 중국연수를 마치고 귀국하기 전 함께했던 기자들과 마지막 ‘연변의 추억’을 공유하고 싶어서였다. 그때 ‘두만강 빙판에서 동계올림픽 스케이팅 대회를, 백두산에서 스키대회를 열면 금상첨화겠다’는 가슴 설레는 상상을 해봤다.

이듬해 2007년 겨울, 중국창춘동계아시안게임이 열렸다. 중국이 동북공정을 노골화할 때였는데, 백두산이 중국땅이란 것을 과시하기 위해 성화채화를 창바이산(長白山·백두산의 중국 이름)에서 했다. 대회 도중 중국측의 편파판정 시비까지 일어 한국 여자 쇼트트랙 선수들이 시상대에 올라 ‘백두산은 우리땅’이란 세리머니를 펼쳤다. 한·중 외교마찰이 빚어진 건 불문가지.

스포츠는 종종 정치적 갈등을 일으키기도 하고, 그것을 푸는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 ‘백두산은 우리땅’ 세리머니는 한·중 간 영토문제가 앞으로 녹록지 않음을 방증한 사건이다.

내달 펼쳐질 평창올림픽은 세 번의 도전 끝에 이뤄낸 성과물이다. 평창은 2003년엔 캐나다 밴쿠버에, 2007년엔 러시아 소치에 밀려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2011년 7월 독일 뮌헨과 프랑스 안시를 제치고 유치에 성공했다.

잔치를 코앞에 둔 평창엔 미안한 이야기지만, 난 내심 남북이 공동으로 백두산 일원에서 동계올림픽을 치렀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다. 올림픽이란 ‘지구촌 운동회’ 준비과정을 통해 남북이 하나가 된다면 민족의 숙원인 통일도 빨라질 것이고, 덤으로 ‘백두산은 민족의 시원’이란 것도 저절로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기에 그랬다. 김대중정부가 개성공단을 성사시킨 데 이어 노무현정부도 좀 더 진전된 통일사업을 이뤄낼 것으로 기대했지만 추진할 동력과 능력이 부족했다. 2003년 7월엔 대북송금특검 등으로 남북공동개최 사안을 꺼내기조차 어려웠으며, 2007년 7월엔 참여정부 지지율이 바닥을 기고 있었다. 그해 10월4일 두번째 남북정상회담이 열렸지만 참여정부의 해는 이미 저물고 있었다.

아쉬운 건 2011년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시 평창이 홀로 유치하기엔 사실 버거웠다. 기적적으로 평창 유치에 성공했지만, 남북공동개최 카드를 꺼내들었다면 훨씬 수월하게 2018년 동계올림픽을 유치했을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한반도 평화의 시계는 더 빨리 당겨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평창올림픽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남북관계를 해빙으로 이어갈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올림픽을 통해 남북대화를 100% 지지한다고 했으며, 프란치스코 교황도 전 세계 모든 국가가 남북대화를 지지해 달라고 했다.

지난 9일 오전 2년여 만의 남북고위급회담을 앞두고 판문점엔 서설이 내렸다. 이에 화답하듯 남북은 북한의 대표단, 선수단, 응원단, 예술단, 참관단, 태권도시범단, 기자단 참가에다 군사당국회의까지 합의했다. 설을 계기로 이산가족상봉이 이뤄졌으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쉽다. 11년 만의 국제스포츠대회 동시입장도 재현되길 희망한다.

태극기가 아닌 한반도기를 들고 입장하는 것을 두고 타박하는 것도 이젠 진부하고 지겹다. 정권과 정치환경이 바뀌어도 스포츠 교류는 살려야 한다. 현재의 보수야당은 보수적인 노태우정부가 남북기본합의서를 이끌어내고 북방정책을 통해 중·러와 외교관계를 맺은 다음 6자회담을 성사시킨 것을 기억하길 바란다.

2년 뒤엔 도쿄하계올림픽, 4년 뒤엔 베이징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린다. 또 2024년 파리하계올림픽, 2028년 LA하계올림픽이 확정됐다고 한다. 2003년, 2007년 동계올림픽 유치 실패를 거울삼아 2032년 부산이 추진하는 하계올림픽을 남북공동으로 평양에서 개최하면 어떨까. 그해를 통일희년으로 삼자. 평창에서 평양으로, 그것이 계기가 돼 평화통일로 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박진관 (기획취재부장·사람&뉴스전문기자)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