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한국의 봄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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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4-02   |  발행일 2018-04-02 제30면   |  수정 2018-04-02
비슬산 개구리 울음에도
DGIST 캠퍼스 매화에도
들판의 푸릇한 보리에도
된장찌개 속 냉이향에도
한국의 봄이 가득합니다
[아침을 열며] 한국의 봄맛
다니엘 스트릭랜드 DGIST 기초학부 교수

지난달 달성군 테크노폴리스길에서 택시를 타고 비슬산 중턱에 위치한 유가사에 갔습니다. 사찰에서 비슬산 정상으로 가는 등산길 입구 근처에 반경 10m 정도의 못에는 개구리들이 짝을 지으려고 합창을 하는 소리가 크게 들려 신기했습니다. 그 녀석들이 수영도 하고 바위에 뛰어올라 앉아 따스한 볕을 쬐는 광경이 재미있었고, 자연생태 공부도 했습니다. 유가사 주위를 좀 더 돌아보며 페이스북 친구들과 나눌 사진도 찍고 사찰내 멋진 찻집에서 쉬고 버스로 하산했습니다. 그날이 토요일이고 아직 좀 추워서인지 사찰 방문객과 등산객이 몇명 안 되었지만 파란 하늘 아래 멀리 보이는 눈 덮인 높은 산봉우리와 개구리들의 합창이 대조적이었으며 봄이 오고 있음을, 아니 벌써 왔음을 느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근교 날씨는 한국처럼 뚜렷한 사계절 없이 대체적으로 온화하고 건조합니다. 특히 여름, 초가을은 아주 덥습니다. 하지만 습기가 없어 살 만합니다. 그래도 3~4월이면 집 마당에 심어진 오렌지, 레몬, 살구, 석류, 아보카도 등 과일나무들이 꽃을 피우며 향기를 뿜어내어 온 동네가 향긋합니다. 긴 부리를 가진 벌새(hummingbird)는 꽃의 단물을 마시러 날개를 1초에 80번을 펄럭이며 공중에 떠서 부리를 꽃 속에 넣어 단물을 빨아먹습니다. 요즘 지구온난화와 가뭄으로 저의 과일나무들이 꽃은 피는데 열매를 잘 맺지 못해 수확량이 대폭 감소해 이웃 친지들과 과일을 나누어 먹는 즐거움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오렌지나무와 아보카도나무는 결국 베어야 했습니다.

지금 이곳 DGIST 캠퍼스내 아파트 언덕에는 매화꽃이 활짝 피어 향기가 아주 좋습니다. 향기를 맡고 벌들이 붕붕 소리를 내며 꽃에 매달려있는데 제가 돌보는 캠퍼스 고양이가 벌을 잡으려고 했던 모양입니다. 어느 날 밥을 주러 나갔는데 고양이 코가 벌겋게 부어 있었습니다. 앵두나무의 꽃망울도 맺혔습니다. 캠퍼스 뒤쪽 언덕에는 참꽃이 활짝 피어 있습니다. 곧 비슬산 참꽃축제가 시작되겠지요.

아파트에서 내려다보면 쌍계리 쪽으로 밭이 보이는데 거기 심어져 있는 것이 보리인 듯합니다. 푸릇푸릇 싹이 제법 나왔습니다. 밭 주위에는 마늘과 양배추도 심은 것 같습니다. 농사짓는 분들의 손이 바빠지겠습니다. 지난 2~3월에 두세 차례 눈, 비가 왔지만 워낙 가물어서 전국의 강이나 저수지의 수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미국도 마찬가지이며 전세계적으로 심각한 문제입니다.

1970년대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저를 비롯한 미평화봉사단 친구들은 계절에 따라 다른 채소와 과일이 시장에 나온 것을 신기해했습니다. 맛은 미국 채소에 비해 아주 맛있었다고 기억합니다. 미국에서는 대부분의 채소, 과일이 기후가 온화한 지방에서 일년 내내 재배되어 특별히 계절적인 과일이 많지 않습니다. 덜 익은 상품이 미국 전역에 기차와 트럭으로 수송되기 때문에 제맛이 안 납니다. 그때 한국 토마토는 7~8월에 나왔다고 기억하는데, 우물 안에 넣어 차게 한 후 썰어서 설탕을 뿌려먹으면 맛이 그만이었습니다. 또 제가 살던 전남 화순에는 무등산 수박이 아주 맛있었습니다. 봉사단 친구들이 놀러왔을 때 하숙집 아주머니가 잘 익은 찬 수박을 썰어 쟁반에 내놓아 주었습니다. 또 하나 잊지 못할 과일은 딸기입니다. 1973년 초여름 저는 장질부사에 걸려 고열, 탈수, 탈진으로 위험한 지경에 이르러 광주기독병원에 급히 입원해야 했습니다. 어느 정도 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식사를 할 수 있었는데 제가 소화할 수 있는 음식은 흰쌀 미음과 딸기를 많이 곁들인 바닐라아이스크림이었습니다. 한국 딸기는 미국 것보다 조금 작지만 아주 달고 물이 많았습니다. 모양은 복주머니같이 생겼습니다.

얼마전 저녁상에 오른 된장찌개 맛이 독특했습니다. 아내가 된장찌개에 냉이 몇 개를 넣었다는데 국물 향이 아주 좋았습니다. 46년 전 화순 하숙집 봄밥상에도 냉이·달래 등 봄나물이 올랐겠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저는 받아만 먹었을 뿐 냉이가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봄이면 DGIST 캠퍼스 안으로 현풍의 아주머니들이 냉이를 캐러 온다고 들었습니다. 올봄에도 오시겠지요.다니엘 스트릭랜드 DGIST 기초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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