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칼럼] 파란색에 포위당한 붉은 TK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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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6-15   |  발행일 2018-06-15 제23면   |  수정 2018-06-15
[조정래 칼럼] 파란색에 포위당한 붉은 TK

진보의 유례없는 압승이고, 보수의 전대미문 참패다. 한반도 비핵화발 신 북풍이 전국을 강타했다. 이에 맞선 역풍을 일으켜야 할 한국당 등 야권은 무력했다. 민생 파탄에 대한 심판론도, 드루킹 사건도, 김부선 스캔들도 맥을 추지 못하기는 마찬가지. 민주당의 싹쓸이는 무서웠다. 전무후무할 진보 집권당 압승의 6·13으로 기록될 정도로.

한국당의 패배는 예견됐다. 하지만 민주당발 보수궤멸이든 보수자멸이든, 패전의 책임을 외부로 돌리는 것은 궁색하고 변명에 가깝다. 그보다는 한국당 내부의 원인에 현미경을 들이대는 게 합리적이다. 한국당은 탄핵과 분당 이후에도 선당후사(先黨後私)의 가치를 세우기는커녕 줄곧 정신줄을 놓고 있었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홍준표 대표의 독주는 선거 결과에 대한 책임론으로 돌아왔다. 이전까지 좌충우돌 막말과 말실수는 좌파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홍 대표는 민주당의 선대본부장이라는 말을 들었고, 급기야 그의 지원유세조차 기피당했으니 보수의 품격은 땅에 떨어졌다. 지리멸렬과 적전분열은 패배로 가는 외길 수순.

전국적 반전은 없었지만 TK 이변도 없었다. 전국을 휩쓴 집권 여당의 쓰나미도 TK는 비껴갔다. TK와 함께 공고했던 낙동강 벨트 중 PK는 무너졌다. 정당 지도 상 TK는 푸른 색에 포위 당한 일점홍(一點紅)이다. 사실 역대 지방선거에서 보수는 부산시장 자리를 진보에 내준 적이 없다. 보수의 호형호제였던 PK와 TK가 이제 서로 다른 길을 가야 할 모양이다. 보수의 TK 수성은 한국당의 승리가 아니라 민주당의 실패다. 민주당은 PK와는 달리 TK에는 애시당초 그리 큰 힘을 쏟지 않았다. 진보정당은 과거에도 서세동점(西勢東漸)의 동진(東進)정책을 추진해 왔으나 반짝 이벤트에 그쳐 왔다. 이래서 ‘보수 골통’이란 오명은 애먼소리이자 합리적 의심없이 씌운 누명이나 다름없다.

TK는 역시 보수의 심장이었다. ‘샤이보수’는 실제 있었고, 보수 결집도 이전보다 높아진 투표율을 보면 상당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미워도 다시 한번’이란 한국당의 절박한 외침이 통한 게 아니라 민주당과 그 후보들에 대한 실망이 더 크게 작용했다. 민주당 대구시장·경북도지사 후보들은 선전을 했다. 보수 이탈표가 그들에게로 발걸음을 옮겼지만 이변을 일으키기에는 변화의 바람도, 인물도 2% 모자랐다. 한국당은 TK에서 승리했지만 시장·군수·구청장의 경우 가까스로 이긴 신승(辛勝)에 가깝다. 공천파동의 역풍을 맞아 한마디로 혼쭐이 났다. 천신만고 끝에 수성은 했지만 상처는 깊고 후유증은 오래 간다.

보수의 임시정부가 된 TK와 이곳을 피난처 삼은 한국당의 미래는 가늠하기 어렵다. 의도했든 아니했든 한국당은 이제 ‘TK 당’이 됐고, TK와 운명공동체다. 양자가 처한 입지는 험하고 행로도 가시밭길일 터. 새로운 길을 개척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없는 길도 만들어가야 할 고립무원의 처지. 이와는 달리 TK와 한국당 간 결별의 조짐도 없지 않다. 지리멸렬한 한국당의 정비와 재편은 불가피하지만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현재로선 막연하다. 리모델링이나 보수재결합 등 기존의 새 피 수혈이나 합종연횡 정도로는 턱도 없다는 건 확연하다.

열혈 보수론자들은 한국당의 TK 수성을 반기지 않는다. 그들은 가까스로 연명할 바에야 완전히 절멸(絶滅)당하는 게 보수 재건에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보수궤멸 혹은 보수자멸과 같은 카오스적 대혼돈에서 새로운 보수의 싹이 태동돼야 제대로 된 새 보수의 탄생이 가능하다는 진단과 처방이다. 쉽게 말해 얼키설키 성급하게 보수(補修)하는 보수는 생명력을 인정받기 어렵다는 말이다. 보수의 메카로서 TK의 위상과 역할 찾기도 이와 다르지 않을 듯하다.

보수의 잔혹사는 시작됐다. 철 지난 반공·안보보수도, 합리적 시장보수도 이제 무력하다. 빙하기를 맞은 한국당과 TK가 적자생존 전략을 말하는 건 사치스럽다. 이번 선거를 통해 새로이 떠오른, 대구시장·경북도지사를 비롯한 차세대 리더들은 틈새 살아남기 전술이라도 부지런히 짜내야 하고, 시·도민들은 주마가편의 채찍 들기를 주저하지 않아야 할, ‘붉은’ TK 잔혹시대가 도래했다.

조정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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