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폭염축제가 그립다

  • 유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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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7-18   |  발행일 2018-07-18 제30면   |  수정 2018-07-18
최근 서울 신촌의 물총축제
10여년 전 수성못서 인기몰이
2010년 구청장 바뀌자 중단
대안없이 전임자 흔적 삭제
누구에게 도움될지 생각을
[동대구로에서] 폭염축제가 그립다

지난 9일자 서울지역에서 발행되는 한 신문에 난 기사다. “지난 7일과 8일 서울 신촌 연세로 일대에서 ‘제6회 신촌 물총축제’가 열렸다.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해 도심 한가운데서 물총을 맞고 쏘며 무더위를 날렸다. <중략> 2016년부터 올해까지 3년 연속으로 ‘서울시 대표 브랜드 축제’로 선정됐다.”

이 기사를 보면서 8년 전 기자가 쓴 칼럼이 떠올랐다. “2008년 8월1일부터 3일까지 대구 수성못과 들안길 일대에서는 한바탕 난장이 벌어졌다. 낮 최고기온이 35℃를 육박하는 무더위가 이어졌지만 난장은 끊이지 않았다. 물대포를 맞아 옷은 흠뻑 젖고 얼음 위를 걸어다닌 발은 시리고 아팠지만 시민들의 얼굴에는 함박웃음이 가득했다. 서로를 향해 물총을 거누고 쏘아댔지만 즐거운 비명만 가득했다. 밤마다 이어진 문화 향연은 시민들의 걸음을 멈추게 했다. 사흘 동안 대구 전체 인구의 20%에 해당하는 50만명이 이곳을 찾았다. 대구 수성구청이 마련한 폭염축제였다. <중략> 이 축제는 회를 거듭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을 불러들였고 2010년에는 무려 80만명이 찾기도 했다. 한여름 더위 때 축제를 열어 더위를 식힐 수 있다는 내용으로 대구 지역 초등학교 4학년 사회 교과서에도 소개됐다.”

대구 수성구청과 서울 마포구청은 7년의 시간차는 있지만 ‘무더위’를 놓고 비슷한 생각을 한 듯하다. 핵심은 ‘더위를 즐길 수 있는 뭔가를 만들어보자’였다. 당시 수성구청은 더위를 상품화한 폭염축제를 기획했다. 발상 전환의 산물이었다. 지역사회 구성원들은 대구의 무더위를 핸디캡으로 여기고 이를 피하는 방법 찾기에 골몰했다. 어느 누구도 더위가 지역의 또 다른 상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수성구청은 가능성을 믿었고 그렇게 만들어냈다. 마포구청 역시 수성구청과 비슷한 기획으로 성공적인 축제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그런데 수성구청의 폭염축제는 지금 없다. 구청장이 바뀐 탓이다. 2010년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폭염축제를 만들었던 김형렬 수성구청장이 낙선했고 공무원 출신의 이진훈씨가 당선됐다. 이 구청장은 느닷없이 이 축제의 잠정중단을 선언하고 수성호반 생활예술 큰잔치라는 것을 만들었다. 폭염축제 때 극심한 교통체증이 발생해 민원이 많았다는 게 수성구청의 해명이었다. 그리고 잠정 중단이지 폐지는 아니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듬해에도 그 다음해에도 폭염축제는 열리지 않았다. 김형렬 구청장과 도전자였던 이 구청장은 지방선거 경선과정에서 법정다툼까지 벌이는 등 심각한 갈등을 겪었다. 무공천-재공천을 거듭한 끝에 이 구청장이 공천을 받았다. 선거 후에도 갈등은 봉합되지 않았고 폭염축제는 ‘전임자 흔적 지우기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정치를 해보지는 않았지만 경쟁이 치열하다보면 정치적 성향이 같은 사람들도 미워할 수는 있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만 미워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미운 사람이 만든 정책도 미움의 대상에 포함되는 모양이다. 정치에 문외한인 기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정치인은 특정인의 정책 등을 없앴다면 그에 상응하는 뭔가를 다시 만들어내야 한다고. 정치는 세상의 모든 것들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골고루 나눠주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구시민들의 상당수는 폭염축제를 필요로 했다. 그렇다면 이 구청장은 폭염축제를 이어가거나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을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8년 동안 그렇게 하지 못했다. 안타깝다. 역사에는 만약은 없지만, 만약에 폭염축제가 그대로 이어지고 시간이 지날수록 진화를 거듭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단언컨대 적어도 대구를 대표하는 축제로 자리매김했을 것이다.

유선태 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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