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실패를 인정해야 위기가 극복된다

  • 김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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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2-17   |  발행일 2018-12-17 제31면   |  수정 2018-12-17
[월요칼럼] 실패를 인정해야 위기가 극복된다
김진욱 고객지원국장

‘국가부도의 날’이란 영화는 제목만 봐도 1997년 말의 IMF 외환위기를 다룬 영화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며칠전 본 ‘국가부도의 날’이란 영화는 안내자막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영화속 인물이나 특정 내용은 허구라고 알리고 있다. ‘IMF 외환위기때보다 어렵다’라는 말이 흘러나오는 요즘, 영화의 재미와는 별개로 필자가 경험했던 IMF 외환위기때를 떠올리기엔 충분했다.

감원·감봉·구조조정·부도…. 영화를 보면서 떠올랐던 단어로, IMF 외환위기 당시 경제부 기자였던 필자가 기사에 참 많이 썼던 용어들이다. 영화가 끝날 무렵에 주인공인 김혜수가 한 말이 무겁게 가슴에 남았다. “위기는 반복된다.”

올해말이면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돌파할 것이라는 최근 한국은행의 추산때문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돌파하는 것은 축하할 일이다. 그런데 1만달러, 2만달러를 돌파한 지 얼마되지 않아 경제위기가 찾아왔다. 그래서 3만달러 돌파라는 말에 ‘위기 반복’이 오버랩된 것이다.

우리나라가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를 달성한 것은 1995년이었다. 이듬해에는 선진국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다. 하지만 1년뒤에는 IMF 외환위기를 겪었다. IMF 외환위기를 잘 극복하고, 2만달러시대에 진입한 것은 2006년이었다. 하지만 2년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우리 경제는 또한번 위기를 맞았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는 요즘, 우리가 맞고 있는 경제현실은 녹록지 않다. 올해 경제성장률은 2.7% 달성도 어렵다. 장사가 안돼 죽겠다는 자영업자들의 비명은 이어지고 있다. 대구경제의 중심축인 자동차부품업계의 위기감은 최고조에 있다. 경북경제의 양대거점인 구미와 포항의 경제도 말이 아니다.

지난주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퇴임사도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는 “(경제적) 어려움은 상시화될 것”이라고 했다. IMF 외환위기때 내가 많이 들었던 “우리는 여지껏 경험하지 못한 상황에 처할 것이고, 어려움은 상시화될 것”이라는 말과 같은 맥락이다. 어려움이 상시화된다는 것은 위기다. 곳곳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3만달러시대와 함께 위기도 같이 온다는 경고음같다.

‘위기’라는 말 뒤에는 항상 ‘극복’이라는 말이 따라 붙는다. 위기는 극복해야 하고,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기 극복은 실패를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기존 정책이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정책을 수정할 수 있다. 아주 평범하지만 실천하기가 쉽지 않은 진리다.

자신이 가진 신념에 대한 확신이 강할수록, 실패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위기의 경고음이 곳곳에서 들려도, 과도기현상이거나 불가피한 부작용으로 치부하려 한다. 그러다보면 위기는 더 커져간다. 잘못된 길을 오래 갈수록, 돌아오는 길도 더 멀다.

김동연 부총리가 퇴임사때 “인기없는 정책을 펼 수 있는 진정한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한 것은 청와대가 주도하는 포퓰리즘적인 정책이 실패했다는 것으로 해석됐다. 퇴임하는 경제부총리가 아니라 취임하는 경제부총리에게, 한걸음 더 나아가 대통령에게 들었으면 더 좋았을 말이다.

다행스럽게도 요즘 문재인 대통령의 인식이 예전보다 현실을 직시하는 것 같다. 지난주 문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고용과 민생 지표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고, 고용노동부를 찾아서는 “고용문제에 있어 지금까지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엄중한 평가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물론 소득주도성장으로 대변되는 현 정부의 경제정책이 실패했다고 인정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실은 직시하고 있다. 실패를 인정하는 것은 정확한 현실인식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난 머지않아 문재인정부의 경제정책에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실패를 인정해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진리는 정부뿐 아니라 기업 등 모든 조직에 똑같이 적용된다. 실패를 인정하는 것도 용기다. 그런 용기를 가진 자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위기는 반복되지만, 극복도 반복된다. 김진욱 고객지원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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