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한수원, 천지원전 부지 손 놓지 말아야

  • 김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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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6-25   |  발행일 2019-06-25 제30면   |  수정 2019-06-25
[취재수첩] 한수원, 천지원전 부지 손 놓지 말아야
김상현기자<서울취재본부>

몇년 전 태국 치앙마이에 들렀을 때 이야기다. 그 도시에서 가장 큰 백화점인 센트럴 페스티벌 앞 광장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광경이 목격됐다. 오후 5시가 되자 수백명의 사람이 광장에 모여들더니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유심히 보니 우리네 전통시장과 닮은 야시장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불과 10여분 만에 150개가 넘는 천막이 광장을 빼곡히 메웠다.

백화점에서 쇼핑하던 사람들은 밖으로 몰려나왔고, 순식간에 야시장은 북새통을 이뤘다.

현지 가이드는 “야시장은 전적으로 백화점의 양보와 배려 덕분”이라며 “대한민국에선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은 상극(相剋)이지만, 상극이 상생(相生)하는 이들의 지혜는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몇년 전의 경험담을 꺼내든 이유는 영덕 ‘천지원전’ 부지를 둘러싼 논란 때문이다.

‘文정부, 영덕 천지원전 대못박기’(영남일보 6월14일자 1면 보도) 기사가 나간 후 한국수력원자력에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천지원전 예정구역 지정 철회는 정부가 결정해야 할 사항이며, 현재로서는 해제와 관련한 추진 일정 등이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았다는 게 한수원 측의 설명이었다.

한수원 측은 또 “산업통상자원부가 2017년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확정하며 ‘탈원전’을 선언했고, 이에 따라 지난해 한수원 이사회에서 천지원전의 사업종결을 결정했다”며 “사업목적 외 비업무용 토지를 소유할 수 없기 때문에 관련법에 따라 매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쉽게 말해 정부의 ‘하수인’ 역할에 충실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8년간 주민투표를 비롯해 온갖 풍파를 견디며 천지원전을 추진했지만, 정부의 에너지정책이 ‘탈원전’으로 바뀌었으니 그동안 사들인 땅을 정리하고 나가면 그만이라는 심보다. 영덕군민과 ‘상극’이 되려고 마음먹은 것 같다.

오히려 한수원은 ‘상생’이라는 미명 아래 자신에게 불리한 여론이 형성될까 두려워 천지원전 예정부지가 있는 동네의 입맛에 맞는 자잘한 지원에 집중하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지난해 국정감사장에서 나온 한수원 정재훈 사장의 ‘코멘트’다.

당시 정 사장은 “한수원은 기본적으로 원자력 발전회사지만, 앞으로는 종합에너지회사로 나아갈 것”이라며 “에너지전환이라는 큰 목표를 향해 에너지 고도화와 다양화를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영덕군과 산업부가 천지원전의 대안사업을 놓고 도무지 결론이 나지 않는 줄다리기를 계속하고 있다.

한수원이 당장 이 논의에 합류하기를 제안한다.

한수원의 특성상 에너지 분야에서만큼은 영덕군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쌈박하고 탁월한’ 전략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특히 정 사장의 말처럼 한수원이 에너지 고도화를 통해 종합에너지회사로 탈바꿈하는 데 있어 천지원전 부지는 ‘마중물’이 될 수 있다.

그것이 한수원과 영덕군이 ‘상생’하는 최소한의 요건이다.
김상현기자<서울취재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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