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 (다니엘르 톰슨 감독·2015·프랑스)

  • 인터넷뉴스부
  • |
  • 입력 2019-07-05   |  발행일 2019-07-05 제42면   |  수정 2019-07-05
세잔과 졸라의 우정
[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 (다니엘르 톰슨 감독·2015·프랑스)

어릴 때 나는 약국집 딸이었다. 해마다 제약회사에서는 ‘세계의 명화’가 그려진 탁상용 달력을 주었다. 달력이 귀한 시절이었고, 두꺼운 재질의 탁상용 달력은 더욱 귀했다. 나는 달력에 인쇄된 명화들을 보고, 그림의 제목과 화가의 이름을 외우며 놀았다. 그때 봤던 그림들을 보면 지금도, 어쩐지 친근함과 정겨움이 느껴진다. 그 시절 봤던 명화들이 등장하는 영화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에는 문화예술의 중심지였던 19세기 파리의 모습과 분위기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주인공 세잔을 비롯해서 그의 둘도 없는 친구였던 에밀 졸라와 마네, 르느아르, 피사르, 모파상 등 전설적인 인물들이 등장한다.

영화를 통해 불멸의 작품을 남긴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세계를 살펴보는 것은 흥미진진한 일이다. 특히 근대 회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세잔과 자연주의 문학의 거장 에밀 졸라의 우정이 담겨있어 더욱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다니엘르 톰슨 감독은 방대한 자료 추적을 통해 폴 세잔과 에밀 졸라의 우정을 스크린에 고스란히 재현한다. 고향 엑상 프로방스에서의 어린 시절과 서로를 격려하며 우정을 가꾸어나가는 모습, 그리고 에밀 졸라의 소설 ‘작품’을 빌미로 서로 언쟁을 벌이며 다투는 모습 등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에밀 졸라가 실제로 살던 집에서 촬영했고, 그가 사용했던 서재의 모습을 그대로 구현해 놓았다. 또한 세잔이 평생 은둔하며 그림을 그렸던, 고향 엑상 프로방스의 풍경이 펼쳐져 영화를 더욱 빛나게 한다. 그가 그리고 또 그렸다는 ‘생 빅투아르 산’의 모습이 담겨있음은 물론이다.

영화는 엑상 프로방스에서의 어린 시절과 파리 시절, 그리고 세잔이 다시 엑상 프로방스로 돌아오게 되는 시기 등을 차분하게 전개시킨다. 둘의 우정과 그 우정에 금이 가기까지의 과정을 과거, 현재, 미래를 오가며 충실하게 그려낸다. 당시 파리 화단의 풍경, 살롱전, 낙선전 등의 모습도 흥미롭게 담겨 있다.

[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 (다니엘르 톰슨 감독·2015·프랑스)

사실 에밀 졸라는 ‘테레즈 라캥’ ‘목로주점’ 등의 소설로 일찌감치 명성을 날렸지만, 세잔은 말년에 가서야 겨우 이름을 알리게 된다. 오랜 무명 시절을 견디기 힘들었던 세잔은 성공한 친구 앞에서 종종 난폭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젊은 시절, 세잔을 격려하며 용기를 주던 졸라는, 세잔의 재능을 끝끝내 알아보지 못한다. 미술사에 얼마나 큰 발자국을 남기는 인물이 될지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만큼 세잔은 당시의 화풍과 전혀 상관없는 독자적인 세계를 개척했고, 후대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된다. 피카소가 ‘나의 유일한 스승이며 아버지 같은 존재’라고 말했을 정도로.

에밀 졸라의 소설 ‘작품’이 발표된 이후, 다시는 둘이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졸라가 세잔을 모델로 해서 썼기 때문이다. 결국 자살하게 되는 주인공이 자신의 모습이라고 세잔은 화를 낸다. 졸라는 여러 화가들의 모습을 겹쳐놓았다고 말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소설을 통해 예술가의 좌절을 냉철하게 그려낸 졸라는, 훗날 “마음에 말을 건넨다”는 평가를 얻은 ‘세잔의 사과’를 결코 알아보지 못했다. 현상을 냉정하게 그려낸 자연주의 소설가로서의 한계였을 것이다. 몇 년 전, 세잔의 그림 ‘카드놀이하는 사람들’이 사상 최고의 경매가를 기록했던 적이 있다. 에밀 졸라가 저 세상에서 세잔을 만난다면, 가치를 몰라봤다며 친구에게 용서를 구해야 할 것 같다.

“너도 그래?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라고 말할 때 우정이 탄생한다고, C.S.루이스는 말했다. 어린 시절 그렇게 함께 그림을 그리며, 추억을 공유했던 세잔과 에밀 졸라는 이후 각자의 길을 걷게 된다.

“친구란 내 슬픔을 자기 등에 지고 가는 자”라는 인디언 속담이 있다. 그렇게 우정은 멀어져 갔지만, 에밀 졸라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세잔은 사흘을 내리 울었다고 한다. 그 눈물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드레퓌스’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며, 고초를 겪은 친구를 좀 더 일찍 찾지 못한 걸 후회했던 게 아닐까. 시대적 한계에 갇혀 자신의 그림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세잔의 마음속에 졸라는 영원한 친구로 남아있었던 모양이다. 시인·심리상담사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