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기생적 인간과 공생적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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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7-06   |  발행일 2019-07-06 제23면   |  수정 2019-07-06
[토요단상] 기생적 인간과 공생적 인간
이정희 위덕대 일본언어문화 학과 교수

요즈음 대한민국이 기생충 때문에 떠들썩하다. 누구를 만나든 기생충 이야기다. “기생충 어땠어”부터 시작해서 “기생충 좋더라” “역시 기생충이 최고네”에 이르기까지 온통 기생충이 화제의 중심에 있다. 기생충이란 단어가 이렇게 자연스럽게 보편적으로 쓰인다는 그 자체가 놀라울 따름이다. 그러면서도 다들 뭔가 조금은 불편해 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지금까지 기생충이란 단어를 입에 올린 기억이 가물가물 할 정도로 사용한 적이 거의 없는데, 영화 ‘기생충’을 본 이후로 거의 매일 기생충을 떠올리고 기생충의 의미를 생각하고 있다. 심지어 기생충 관련 책까지 구입해서 읽고 있다. 오늘 이야기는 영화 기생충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기생충과 인간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기생충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자기의 삶을 위하여 다른 생물에 붙어 살아가는 벌레’라고 되어 있다. 어떻게 보면 획기적인 삶의 방식을 택한 참으로 영리한 생물체가 아닐 수 없다. 일단 다른 생물의 몸에 기생하는 데 성공하면 먹이를 찾기 위해 고생하거나 위험을 감수하지 않아도 편하게 공급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생’이란 단어가 주는 부정적인 의미와 ‘벌레’가 주는 혐오감 때문에 기생충이란 말은 그다지 친숙한 것은 아니다. 더욱이 ‘기생충 인간’이란 단어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물론 벌레의 이미지가 다 혐오스럽거나 징그러운 것만은 아니다. 예를 들어 공부벌레, 책벌레 등은 긍정적인 이미지로 학생이라면 칭찬까지 받는다.

애초에 기생충은 만인에 있어서 평등한 존재였다. 그러니까 누구나가 기생충에 노출되어 있었다. 그러던 것이 일찍이 산업을 발전시킨 선진국들이 위생시설을 갖추고 기생충 박멸에 나섰다. 그래서 지금은 아프리카 등 못사는 나라에만 갖고 있는 질병 정도가 되어버렸다. 물론 같은 나라에 살고 있다고 해도 기생충은 평등하지 않다. 기생충은 도시 사람보다 시골 사람에게, 부자보다 가난한 사람에게 더 많이 감염시키는 기회주의적인 생물로 진화해 온 것이다. 살아있는 생물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그리 말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생물의 몸속에서 살아가는 기생충은 사용하기 않는 기관들, 예를 들어 운동기관, 감각기관, 소화기관 등이 퇴화하면서 살아남는다. 그런데 유독 생식기관은 점점 발달하여 몸 전체가 생식기관만으로 되어 있는 기생충이 많다고 한다. 어마어마한 종족 번식력을 통해 살아남는 것이다. 게다가 기생충은 인간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거의 모든 생명체에 기생충이 살고 있다. 그러니까 아마도 인간이 멸종한다 하더라도 기생충은 지구가 멸망하는 날까지 살아남을 것이다. 최근의 연구에서 기생충은 인간에게 있어서 해로운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기생충이 인간의 질병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결과를 발표하여, 언젠가는 기생충이 인류 건강 증진에 도움이 될 수도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기생의 상반되는 개념으로 공생이 있다. 공생의 기본의미는 서로 도우며 함께 산다는 뜻이다. 서로 다른 종류의 생물끼리 생리적, 또는 생태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것으로 서로 이익을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거나,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는 형태의 생활방식을 일컫는다. 공생은 반드시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모습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에 한쪽만 이익을 얻었을 때, 다른 한쪽은 이익도 손해도 없어야 한다. 그러니까 둘의 관계에서 상대방에게 손해를 주었다면 공생관계는 깨어지며, 상대방과는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게 되고 결국 불편한 관계가 되고 만다. 아니면 공생관계에서 기생관계로 관계의 변환이 일어나고 만다.

아마 올해는 인간에 대한 구분으로 기생적 인간이냐, 아니면 공생적 인간이냐가 유행할 것 같다. 우리 모두 각자 속해 있는 크고 작은 집단 속에서 기생적 인간인지, 공생적 인간이지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이정희 위덕대 일본언어문화 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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