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얼리 버드

  • 원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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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8-13   |  발행일 2019-08-13 제31면   |  수정 2019-08-13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차지한다.’ 영어권에서 유행하는 서양 속담이다. 부지런해야 먹고사는 데 더 유리하다는 의미로 쓰인다. 얼리 버드(Early Bird)는 ‘주행성 인간’ 또는 ‘아침형 인간’이라는 뜻으로 번역이 가능하다. 얼리 버드는 일단 장점이 더 부각된다.

그래서인지 ‘얼리 버드’와 관련된 것들이 다채롭다. 우선 항공사 여행 항공권과 패션업계의 상품에 얼리 버드라는 용어가 동원된다. 얼리버드 항공권은 출발일이 최소 3개월 이상 남은 티켓을 미리 대폭 할인된 가격으로 구매하는 것이다. 미리 항공권을 확보하고 할인까지 해주니까 이점이 많아 보인다. 그러나 환불이 안되는 등 단점도 있다. 최근에는 겨울 모피를 한여름에 팔면서 파격적으로 할인한다고 방송매체에서 떠든다. 얼리 버드 상품이다. 또 있다. 미국이 1965년 쏘아 올린 상업용 통신위성 이름도 얼리 버드이고, 랍티미스트가 발매한 싱글 앨범 명칭도 얼리 버드다.

그런데 얼리 버드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색다른 주장도 있다. 너무 일을 많이 하면 과로사하기 쉽다는 게 얼리 버드를 꺼리는 이유의 하나다.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제갈공명은 모든 일을 도맡아서 챙기다가 병을 얻어 일찍 죽는다. 사마의가 촉나라의 사자에게 “공명은 하루 식사와 일처리를 어떻게 하시오”라고 물었다. 그러자 사자는 “승상께서는 새벽부터 밤중까지 손수 일을 처리하시며, 식사는 아주 적게 하십니다”라고 대답했다. 바로 ‘식소사번(食少事煩)’이라는 한자어가 여기에 해당된다. 위나라 군사 사마중달은 이 정보를 듣고 ‘식소사번이라, 아~ 제갈공명이 곧 죽겠구나’라고 예측했다고 한다. 얼리 버드였던 제갈공명은 위나라와 대치 중 오장원에서 죽었고, 사마중달은 살아남아 새 나라를 세우게 됐다. 제대로 먹지도 않고 잠도 줄여가며 매사를 친히 살피는 스타일이니 피로가 누적되고 몸이 약해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특히 무턱대고 남들보다 일찍 더 열심히 하겠다는 자세는 좋지 않다. 일의 완급을 잘 조절해야 한다. 급하게 서두를 때가 있으면 천천히 쉬어가면서 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오른손이 있으니까 왼손도 있다. 부지런한 얼리 버드가 있으면 게으른 ‘레이지 버드(Lazy Bird)’도 있어야 한다. 그게 세상 이치 아닌가.

원도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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