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혁신의 나이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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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0-08   |  발행일 2019-10-08 제31면   |  수정 2020-09-08
20191008
이동군 군월드 대표

삼성 이병철 회장은 전쟁 직후 사방에 깔려있던 탄피조각을 수거했다. 전쟁의 상흔을 역 수출함으로써 삼성의 전신인 ‘제일제당’을 설립했다. 현대 정주영 회장은 광복 직후 은행부터 들렀다. 거액의 돈 거래 장면을 포착하기 위함이었는데, 많은 돈이 오가는 직업군이 건설업임을 파악 후 ‘현대 토건’을 세웠다. 현대토건은 ‘현대그룹’의 근간이다.

이들이 ‘깬’ 사람인지, ‘깨져가며’ 켜켜이 쌓아올린 부의 상징인지는 후대의 평가에 달렸다. 다만 이들은 어떤 식으로든 당대의 혁신가였고 개별의 선견지명을 발휘한 것만은 부정할 수 없다. 이들은 이후 대기업의 심벌이 된 반면, 또 그 이후로는 마땅한 ‘혁신 기업가’의 탄생이 전무했단 것 또한 사실이다. 심지어 아류조차 나오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들은 기업 차원의 ‘족벌 체제’를 고수했다.

우리나라에서 암암리에 통용되는 유명(?)한 시쳇말이 있다. 벤처를 성공하면 ‘벤츠’에 앉고, 벤처에 실패하면 ‘벤치’에 내몰린다는 우스갯소리가 그것인데, 문제는 70% 가까운 창업자가 벤츠보단 벤치란 서글픔이다. ‘혁신의 무덤가’에서 벤처의 기운으로 혁신을 주창하라는 것, 이것이야말로 어불성설(語不成說)임을 덧붙여 본다. 위 사례같이 (대기업) 독과점의 수구(守舊)를 벤처인의 용기부족, 역량한계쯤으로 미뤄 치부하는 것도 일정 부분 어폐가 있다는 지적이다.

‘기회의 땅’이라는 고전(古傳)이 깃든 미국을 둘러보자. 미국 내 벤처기업의 5년 생존율은 우리나라 평균의 2배를 웃도는 60% 정도다. 미국 내 벤처기업의 모토는 남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할 분야를 발굴, 이를 토대로 한 가감 없는 도전과 이로 말미암아 맞게 될 수직상승의 동력이다. 조금 산다는 집이나 학교에 딸린 컨테이너 박스에서 아이디어를 생성, 작은 폭발사고를 몇 차례 일으킨 뒤 실리콘밸리의 투자자를 만나 국제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이 이곳에선 통상의 수순쯤이다.

실리콘밸리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닷컴 버블현상으로 미국 경제를 좌지우지한 불세출의 성지’다. 실리콘밸리의 캐치프레이즈, 바로 ‘파괴적 혁신’이다. 아이디어로 말미암아 알량한 수익창출 정도로는 통용되지 않을 여차하면 험로 중 험로다. 실리콘밸리는 기존 사회를 붕괴(물론 선한 의미의)시킬 만큼의 변혁을 요구한다. 쉽게 말해 ‘양질의 제품’은 제반에 고이 두되, 내가 창출한 재화나 서비스를 기반으로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이냐에 관한 ‘역발상적 측면’을 강조한다. 추상적일 것 없다. 사소한 취미가 비즈니스가 되고 그 비즈니스가 터닝 포인트의 양분이 되는 것이다. 면밀히 살피면 신변잡기적 의미가 널부러져 있지만 요즘 말로 꽤나 신박하다.

투입되는 벤처 캐피털이 우선 굳건하다. 하지만 이보다 앞서 ‘실패를 보듬어주는 문화’가 공고하다. 실패는 공유하고 이 같은 공유의 범주를 시나브로 확산시킴에 따라 ‘단기적 손실’을 뛰어넘는 ‘장기적 이득’을 취하는 ‘기회의 장’이 유연해 마지않다. ‘실패는 곧 기회’라는 ‘원론’을 진정 원론답게 서포트 할 장치가 선명하다는 것인데, 이는 곧 ‘선천적 혁신가’를 보호하고 ‘후천적 혁신가’를 발굴하는 법적·암묵적 결기가 담겨있다는 방증이다. 총체적으로 창업을 위한 전 방위적 모멘텀이 응축돼 있다는 것이다.

나는 벤처인이다. ‘규제혁파’와 아울러 파생된 각기의 문제점을 일일이 지적할 생각은 없다. 정확히 말하면 가자니 태산이요 돌아서자니 숭산이라. 벤처인이라면 누구하나 없이 체감하는 폐해의 범주가 방불할 터다. 더 따지고 들면 기준조차 미비하다는 박탈감, 혹은 아쉬움쯤.

어느 노신사의 일갈로 대신 갈음해본다. “타고 있는 배가 항상 샌다는 것을 알게 되면 구멍을 막느니 차라리 배를 바꿔 타는 것이 생산적이다.” ‘노아의 법칙’을 위반한 90대의 ‘워런 버핏’은 ‘비의 예측’보다 ‘방주의 생성’을 한층 중요시하더라.이동군 군월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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