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천재예술인의 땅’…이젠 수도권에 밀려 위상 추락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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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11-07 08:17  |  수정 2012-11-07 08:34  |  발행일 2012-11-07 제5면
지역 예술인 저평가 분위기…수도권으로 활동무대 옮겨
“과도한 경쟁·계파 갈등부터 없애야 발전” 자성의 목소리도
[문화로 재창조하는 대구·경북 .4] 지역 문화인물 조명
20121107

지역의 한 중견예술인은 대구·경북지역을 ‘천재예술인의 땅’이라고 말했다. 뛰어난 예술가를 많이 배출하고, 이들이 활발하게 창작활동과 공연활동을 해 온 곳이란 설명이다. 특히 근대문화예술이 싹튼 1920년대부터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해 온 천재예술가들이 국내 문화예술계에 미친 영향은 상당히 크다. 이들은 미술, 문학,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하지만 급속한 경제발달과 함께 모든 것이 수도권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문화예술 역시 예외일 수 없었다. 문화예술 전반이 수도권을 중심으로 돌아가면서 천재예술인의 땅이었던 대구·경북지역의 위상도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지역이 배출한 천재예술인 많아

미술분야에서는 대구 출신의 이인성과 서병오가 국내 미술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한국 근대미술을 대표하는 서양화가인 이인성은 한국화단에서 천재화가로 이름을 날렸다. 서병오는 시·서·화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 전국적 명성을 얻었으며, 30대 후반에는 중국에 머물면서 그곳의 석학과도 교유했다. 그는 1922년 교남시서화연구회를 창립함으로써 대구가 서화의 중심도시가 되도록 했다. 이인성의 스승인 서동진, 월북화가 이쾌대, 근대 서화계에서 왕성한 활동을 보였던 박기돈 김진만 서동균 등도 현재 지역미술의 탄탄한 토대를 만든 위대한 예술가였다.

문학분야에서도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문인이 배출됐다. 대구 출신의 시인으로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이름난 이상화가 있다. 이상화는 한국 근대문학의 초창기를 대표하는 시인이다. 또한 20년대를 대표하는 모더니스트 시인 이장희, 민족주의적 기질을 지닌 작가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대구시단을 꿋꿋하게 지켜온 백기만 시인, 형이상학적인 시에서부터 모더니즘 경향의 시까지 다양한 작품을 발표한 신동집 시인 등도 전국적으로 명성을 날린 작가였다. 경북 출신 시인으로는 안동 출신의 이육사, 경주 출신의 박목월, 영양 출신의 조지훈, 청도 출신의 이호우 이영도 남매 시조시인 등이 있다.

소설가로는 ‘빈처’ ‘술 권하는 사회’로 명성을 날린 현진건이 20년대 우리 문단에서 사실주의 문학을 개척한 선구자 역할을 했다. 20년대 왕성하게 활동하다가 요절한 여류소설가 백신애, 30년대 한국 소설계를 주도한 경주 출신 김동리도 다양한 작품을 통해 당시의 현실문제를 강렬하게 드러내며 한국문단에 한 획을 그었다.

서양음악이 도입된 근대에 빛나는 업적을 이룬 음악가 중에도 대구 출신이 많다. ‘동무생각’ ‘오빠생각’ 등을 작곡한 박태준과 ‘고향생각’ ‘그 집 앞’ 등을 작곡한 현제명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밖에 무용가 김상규 정소산 최희선, 국악인 박지홍, 연극인 홍해성 등 전국적으로 이름을 날린 예술가들도 지역 출신이다.

◆지역 문화예술의 위상 떨어져

하지만 사회환경이 변화하면서 현재 지역 문화예술의 위상은 예전에 비할 바가 아니다. 지금도 지역대학에서 뛰어난 역량의 젊은 예술인이 꾸준히 배출되고 있지만, 이들이 활동할 무대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상당수 예술가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렇다 보니 지역 예술의 미래를 이끌어 갈 젊은 예술가가 줄어들고, 수도권으로 활동무대를 옮기는 예술인도 늘고 있다.

특히 상당수 대학의 예술 관련 학과가 학생 모집에 애를 먹는 것은 물론, 폐과 위기를 맞는 경우도 늘고 있다.

젊은 예술인은 물론, 중견예술인의 지역 이탈현상도 심화되고 있다. 지역보다 활동무대가 넓고, 전국적인 주목을 끌기에도 좋은 수도권으로 옮겨 활동하는 예술인이 늘고 있는 것이다.

지역의 한 원로미술인은 “문화의 수도권 집중화가 심화되면서 역량이 뛰어나도 지역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저평가되는 경우가 많다. 전국구 작가로 성장하기 위해 지역을 떠나는 화가가 많다. 앞으로 이 같은 수도권 집중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모두가 합심해 풀어야 할 과제

그렇다면 이 같은 문제를 어떻게 풀어 가야 하는가. 지역의 한 미술평론가는 “뛰어난 예술인을 많이 배출한 저력이 있는 데도 문화예술의 꽃을 제대로 피우지 못하는 것은 예술인은 물론 지자체, 시·도민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예술인들이 문화예술 전반을 살리기보다 자신의 앞가림에 급급해 과도한 경쟁을 벌이고, 이것이 반목과 질시를 낳아 계파를 형성하는 등 고질적인 문제를 낳았다. 지역 문화계에서 누구누구의 줄이 아니라 실력으로 평가받는 토양이 조성돼야 한다는 예술가들의 자성의 목소리도 높다.

시민과 공무원의 의식수준이 문화 발전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구예총의 한 관계자는 “예술인들이 역량을 키우고, 시민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이 우선적으로 요구된다. 하지만 지역 문화예술의 기반을 조성하는 공무원과 문화예술을 소비하는 시민이 좀 더 예술인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문화예술에 좀 더 적극적으로 다가서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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