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구 가까워지자 ‘꼬들꼬들’ 본고장 굴비 한점에 입맛도 설렌다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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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0-14   |  발행일 2016-10-14 제35면   |  수정 2016-10-14
[이춘호기자의 봄 여름 가을 겨울] 3부 가을 이야기-전남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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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도둑’으로 불릴 정도로 감칠맛이 남다른, 섶간으로 만든 법성포 자반 굴비. 바짝 말린 보리굴비를 찢어 먹을 때는 녹찻물에 밥을 말아 먹으면 맛이 더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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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성포 토박이 이광수씨가 평생 조업을 했던 칠산앞바다를 가리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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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간 갈무리된 보리굴비(전시용).

법성포로 연결 ‘식도락 코스’로도 일품
백여리 칠산바다 어장에선 조기파시도
사흘 잡아 1년은 먹고 살아 ‘사흘칠산’

몸통에 천일염 뿌리는 ‘섶간’ 맛 비결
예전엔 보리굴비처럼 ‘독간’을 하기도

어획 급감에도 법성포 500여 굴비가게
국내 유통물량 5%만이 순수 법성포産
대가리 중앙에 마름모꼴 있는 게 참조기


◆조기를 품었던 칠산바다

썰물 때 바라본 법성포의 갯골은 계절로 보면 딱 ‘가을’ 포스다. 그렇게 쓸쓸할 수가 없다.

법성포와 송이도 사이 일산도, 이산도, 삼산도, 사산도, 오산도, 육산도, 칠산도 등 일곱 섬 주변 바다가 일명 조기의 최대 미팅 장소인 칠산바다다. 법성포구에서 우연찮게 만난 일흔을 넘긴 이광수씨가 자청해 칠산 앞바다를 볼 수 있는 포인트로 나그네를 안내했다. 그의 손은 험했다. 굴비 때문이다. 반세기 이상 굴비의 노역에서 벗어나지 못했단다. 굴비 때문에 자기 가게도 가졌지만 한 청춘은 굴비 때문에 그렇게 흘러갔단다.

원래 7개의 섬은 육지로 붙어 있었단다. 오랜 옛날 그 골에 살던 서씨 할배는 자기 집을 찾아온 지관을 위해 융숭한 대접을 해준다. 지관은 고마움의 증표로 그 노인에게 천기누설을 한다. 조만간 근처 큰 부처의 귀에서 피가 흐르면 이곳이 바다로 변할 것이라 예언했다. 그 사실을 안 동네 백정이 재미 삼아 부처의 귀에 피를 발라둔다. 노인은 그 피를 보고 동네 사람들에게 빨리 산 위로 피신할 것을 종용했다. 결국 고을은 바다가 되고 그 와중에 산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단다. 문화해설사가 가장 즐겨 우려먹는 칠산바다 스토리텔링이다.

칠산바다는 백여 리에 이른다. 영광 북쪽의 위도·식도·치도·상하왕등도까지 아우른다. 칠산도 인근의 바다에서 위도 인근 어장까지 조기 파시가 형성되었던 곳이 ‘칠산어장’이다. 여기서 잡힌 조기가 바로 영광굴비로 전국에 유통됐다. 조기가 칠산 앞바다에 머무는 기간은 1주일 남짓, 사흘 고기 잡아 1년을 먹고살았다. ‘사흘칠산’이라고 했다.

칠산바다가 조기를 품어주지 않으면 영광에는 더 이상 ‘영광(榮光)’이 없다. 영광 출신의 시인 박남준은 그런 칠산 앞바다에 영광원자력발전소, 더 위에 새만금 방조제가 들어선 것을 참담하게 여긴다. 그래서인지 이제 칠산 앞바다에서는 참조기가 잡히지 않는다. 멀리 목포 앞바다, 제주도 추자도 앞바다에서 잡힌다.

영광의 먹거리는 한때 굴비로 시작해 굴비로 끝났다. 현재 법성포에만 무려 500개가 넘는 굴비 공장 및 전문식당이 산재한다. 하지만 올해는 울상이다. 김영란법 때문에 100만원대 금굴비세트는 된서리를 맞는다. 1만~2만원대 굴비세트까지 등장했다.

사진 촬영차 들른 한 굴비상점은 나그네에게 섭섭한 감정을 드러낸다. 아직 마수걸이도 못했는데 사진기만 들이민 것에 욱했던 것이다. 그가 사과를 하면서 5년 된 전시용 100만원대 부세로 만든 보리굴비세트를 보여주었다. 묵힌 메주 같은 굴비는 유물 같았다. 목초액 같은 진액을 머금고 있었다.

하지만 이젠 전통 조업의 신화는 없다. 어군탐지기를 장착한 최첨단 선박은 조기의 이동경로를 실시간으로 포착해 언제라도 길목에서 싹쓸이할 수 있다. 너무나 많은 업체가 경쟁을 벌이고 있으니 굴비는 갈수록 ‘무늬만 굴비’로 전락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제대로 된 굴비보다 돈 되는 굴비가 그들에겐 더 우선이다. 그럼 결국 영광굴비 담론은 손님을 불러들이는 미끼용이 될 수도 있다.

법성로 곳곳에 굴비 상징물이 설치돼 있다. 굴비거리도 있다. 갯강 주변의 굴비상가는 아침에 문을 열기 바쁘게 각종 굴비를 마케팅 차원에서 내걸어둔다. 꼭 덕장 같다. 묶는 노끈도 친환경제품이다.

관광객은 상인들의 굴비 정보를 채 10%도 알 수 없다. 상인이 굴비는 이렇다 하면 이렇게, 저렇다 하면 저렇게 알 수밖에 없다. 조기가 어떻게 잡혀 어떻게 갈무리돼 상품으로 나오고 그 원가가 얼마인지는 상인들끼리도 잘 모른다. 굴비의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은 솔직히 법성포에서는 찾을 수 없을 것 같다.

관광객에게 가장 잘 알려진 식당은 영광굴비 1번지, 뉴타운, 법성포굴비한정식 등이다. 나그네는 거기를 안 갔다. 더 허름한 데를 찾았다. ‘숙기토담’이란 좀 덜 약삭빠른 식당에 갔다. 평소 집에서 먹던 굴비와 차원이 달랐다. 굴비를 사고 싶다고 하니 그렇게 할 수 없단다. 식당에서 특별하게 장만한 것이라서 그렇단다. 팔지 못한다는 그 여주인의 고집이 좋았다. 그래서 법성포 굴비의 미래는 조금 더 긍정적으로 뻗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조기에서 굴비까지

굴비가 된 진짜 연유는 그 모양과 관련 있다. 굴비를 만들기 위해 조기를 말리는 과정에서 조기를 짚으로 엮어 매달면 조기의 등이 구부러지게 되는데 이 모양새를 따서 ‘구비(仇非)조기’라는 명칭이 붙었다. 훗날 이 이름이 변형돼 굴비가 된 것이다. 구비란 구부러져있는 모양새를 뜻하는 말로 이를 한자어의 음을 빌려 표기한 것이다.

조기의 조상은 민어다. 민어는 농어목으로, 거기서 분파된 게 조기다. 그런데 한때 상전 구실을 하던 참조기가 후발주자 부세조기한테 추격당할 판이다. 외관상 엇비슷한 부세조기, 참조기보다 노란 빛깔이 짙다. 중국인이 더 선호하게 된다. 50㎝ 부세조기 한 마리가 80만원에 육박하기도 했다. 하지만 구별하기 어렵다.

크기로 보면 부세가 참조기보다 크다. 대가리 모양도 서로 다르다. 부세는 끝이 둥글다. 참조기는 곡선이 매끄럽지 않다. 부세의 꼬리지느러미는 부채꼴이지만 참조기는 매끄럽지 않고 많이 갈라져 있다. 이는 조업 방식과 관계가 있다. 그물코에 발버둥 치다 죽은 생선은 비늘과 꼬리지느러미가 상하기 마련이다. 마지막 가장 확실한 구별법은 대가리 중앙을 보는 것이다. 부세는 마름모꼴(다이아몬드 모양)의 유상돌기가 없다.

굴비의 원재료인 조기는 제주 남서쪽 수심 30m 바다 밑 모래밭에서 겨울을 난다. 겨울이 끝날 무렵 조기 떼는 황해로 이동을 시작한다. 5월 산란기에 맞춰 산란지인 연평도 주변 바다에 도착하기 위해서다. 조기 무리가 추자도와 흑산도 근처를 지나 전남 영광 법성포 앞 칠산바다를 지나는 음력 3월 중순 곡우 즈음 잡힌 조기는 산란을 앞두고 살이 통통하고 알이 꽉 차 있다. 이때 잡은 조기로 만든 굴비는 특별히 ‘오사리굴비’라고 한다.

요즘은 오사리굴비는커녕 법성포 앞바다에서 잡은 조기로 만든 굴비도 만나기 쉽지 않다. 소위 ‘진품 영광굴비’는 국내 유통물량의 5%에 불과하다. 영광굴비로 팔리는 대부분은 추자도나 목포, 제주도에서 잡혀 올라오는 조기로 만들어진다. 기후 변화로 인해 제주도의 서쪽 바다 인근까지만 올라오기 때문이다.

멀리서 잡은 조기를 굳이 영광까지 가져다 굴비로 만드는 까닭은 조기를 조련시키기에 영광만 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

우선 법성포만의 특수한 자연조건을 꼽는다. 봄 평균기온이 섭씨 10.5℃인 데다 서해에서 하늬바람(북서풍)이 불어와 조기를 말리기 딱이다. 습도는 평균 75.5%. 낮에는 습도가 45% 이하로 떨어져 조기가 서서히 마르고, 밤에는 96% 이상 올라가면서 수분이 몸 전체로 고루 퍼지며 숙성된다. 영광굴비가 맛있는 둘째 이유는 이 지역 사람들의 ‘섶간’ 때문이다. 섶간은 몸통에 천일염을 뿌려 수분을 빼고 간이 적당하게 배도록 하는 기술이다. 다른 지역에선 대부분 섶간이 아닌 ‘물간’을 한다. 조기를 소금물에 담가 절이는 방식이다. 손이 덜 가고 편하지만 맛은 아무래도 섶간만 못하다. 예전에는 항아리에 소금과 조기를 켜켜이 쌓는 ‘독간’을 했다. 보리쌀독에서 말리면 ‘보리굴비’가 된다. 섶간·물간 한 조기는 한 두름(큰 것 10마리, 작은 것 20마리)씩 엮어 15~40시간 재웠다가 묽은 소금물로 네댓 차례 씻어서 걸대에 건조시킨다. 과거에는 짚으로만 엮었지만 요즘은 짚과 노란색 비닐 노끈으로 함께 엮는다. 짚으로 엮어야 말리는 과정에서 곰팡이가 슬지 않는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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