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2천명 쐐기 박은 불통의 정치

  • 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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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3-28 07:00  |  수정 2024-03-28 07:00  |  발행일 2024-03-28 제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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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식 사회부장

정부는 지난 20일 의과대학 정원 '2천명' 증원을 못 박았다. 서울을 제외한 지역 의과대학의 신입생 입학정원을 내년부터 늘리는 배정안을 확정했다. 의료계가 그토록 반대하며 보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증원 인원을 요구했지만, 정부는 끝내 한 치의 양보 없이 2천명에 '쐐기'를 박은 것이다.

말 그대로 '불통'이다. 호탕하고 거침 없는 스타일이어서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앞뒤 안 재고 밀어붙일 줄은 몰랐다. 결국 전공의들에 이어 의대 교수들까지 사직서를 제출하기 시작했다. 우리 사회 지식인층이라고 하는 의대 교수들이 집단행동에 나선 것은 그만큼 2천명 증원으로 인한 부작용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지역만 해도 당장 내년에 대학별로 적게는 58%에서 많게는 145%까지 의대 신입생 정원이 늘어난다. 경주에 있는 동국대 의대의 경우 현재 49명에서 내년에 120명이 되는데, 학생 교육이 제대로 될지 의문이다. 의대는 실습이 많아 각종 의료용 기자재와 '카데바(기증된 해부용 시신)' 등이 필수인데, 지금도 부족하면 부족하지 충분하진 않다고 한다. 여기다 의대 교수를 하루아침에 양성할 수 있는 간단한 문제가 아닐진대, 늘어난 학생들을 가르칠 교수진은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정부가 내놓은 해결책은 "차질없이 추진하겠다"고만 할 뿐 명확하지 않다. 그래서 국민들은 혹여 '엉터리 의사'가 배출되는 게 아닌지 불안하기 짝이 없다.

4·10 총선을 앞두고 대통령과 정부 여당의 지지율이 떨어지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자 여러 가지 원인 중 하나로 이번 의대 증원 사태가 지목되고 있다. 전공의 집단 사직서 제출에 따른 의료 공백이 장기화하면서 환자와 가족은 물론 이를 바라보는 국민도 피로감이 쌓이고 있어서다. 환자와 가족, 국민은 처음엔 의사 집단을 개혁한다기에 쌍수를 들고 환영하며 지지했으나, 시간이 점점 흘러가면서 불편함이 피부에 와닿자 이제는 '정부가 이것도 하나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뭐 하느냐'라는 인식과 불만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번 사태의 핵심인 증원 인원 2천명이라는 숫자는 건드리지 말고 대화하자고 한다. 물꼬가 트일 리 없다. 도대체 정부가 왜, 그토록 2천명에 집착하는지 이제 국민은 궁금하다. 같은 당 안철수 의원도 "2천명은 어디서 나왔습니까"라고 할 지경이다. 정부가 2천명 증원의 핵심 근거로 활용한 연구 보고서 3건의 저자들도 연간 2천명에 대해 부정적이다. '1천명씩 10년'이라는 대안도 있을 법한데 '2천명씩 5년'을 하늘이 두 쪽 나도 안될 것처럼 고집을 굽히지 않고 있으니 국민은 의구심마저 든다.

그래서 국민은 '고집불통'을 떠올린다. '갈등'과 '이견'을 '대화'와 '타협'으로 풀어가는 게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기본원리다. 이런 민주주의 근간을 외면하면 '독재'와 다를 바 없다.

교수들도 사직서는 제출했지만 절대 병원을 떠나선 안 된다. 대정부 투쟁을 하되, 아픈 환자 곁은 꿋꿋이 지켜야 한다. 전공의들도 이젠 병원으로 돌아오라. 그만큼 했으면 자신들의 의사와 의지를 충분히 전달했다. 여기서 더 집단행동을 이어가다 '응급실 뺑뺑이'를 돌다가 목숨을 잃는 일이 생기면 국민으로부터 회복할 수 없는 지탄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의사로서 본분을 다하며 정부와 맞서야 명분과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진식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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