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뉴스] 38년 전 결혼 선물로 받은 동백나무 묘목…단짝 친구의 우정과 함께 쑥쑥 자라나

  • 김점순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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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4-16 09:48  |  수정 2024-04-17 08:12  |  발행일 2024-04-17 제24면
이명식씨 친구 신기씨에게 동백나무 묘목 결혼 선물로
신기씨 집 마당 감나무 옆에 동백나무 옮겨 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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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기(왼쪽)씨가 친구 이명식씨로부터 결혼 선물로 받은 동백나무를 배경으로 명식씨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명식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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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기씨가 38년 전 친구 이명식씨로부터 결혼선물로 받은 동백나무. 이명식씨 제공

경북 칠곡군 왜관읍에 가면 아주 특별한 사연을 간직한 동백나무가 있다. 올해도 변함없이 나뭇가지마다 초록의 잎사귀를 밀어내고 붉은 선홍 빛깔의 꽃이 만발했다.

동백나무는 우리나라 남쪽 지방 섬이나 바닷가에 자생하며 경북 내륙지방에서 자라는 것은 흔하지 않다. 그런데도 이 동백은 37년째 이곳에서 한해도 거르지 않고 꽃을 피운다.

동백나무가 이곳에서 자라는 사연은 이러하다. 1986년 이명식(68) 씨가 친구 이신기(68) 씨에게 동백나무가 심어진 작은 화분을 결혼 선물로 전달했다. 당시 볼펜 자루 굵기로 20㎝ 정도의 작은 묘목 분재였다. 작은 꽃집을 운영하던 명식씨가 그 당시에는 귀한 수목으로 알려진 동백나무를 신기씨에게 선물한 것이다. "이 꽃 정성 들여 사랑으로 잘 키워라. 꽃이 잘 자라면 결혼생활은 더 행복할 것이다"라는 농담도 함께였다.

그로부터 28년의 세월이 지난 어느 봄날. 명식씨에게 동백나무가 궁금하지 않냐고 신기씨가 물었다. 명식씨가 갑자기 뜬금없이 웬 동백나무냐고 의아해하자 결혼 선물로 전달한 작은 화분의 동백나무 추억을 소환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곧바로 친구 집으로 달려갔다. 담장 높이 보다 훨씬 키가 큰 동백나무가 담장 아래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다. 나무의 키는 3m쯤 된다. 몸통은 두 손을 펼쳐도 잡히지 않는다. 활짝 핀 빨간 동백꽃을 마주하니 놀랍고 반갑기도 하다. 순간 울컥하는 마음이 든다. 작은 나무가 긴 세월을 견디어 이렇게 큰 나무로 성장한 사실이 신기하다.

초등 6학년 때 명식씨가 신기씨가 다니는 학교로 전학을 하면서 처음 만났다. 두 사람은 중·고교도 함께 다니면서 단짝이 됐다. 신기씨의 집 마당 감나무는 친구들의 놀이터였다. 걸터앉거나 오르내리면서 보낸 두 사람의 추억을 다 알고 있는 감나무 곁에 동백나무를 옮겨 심었다. 물과 바람과 햇볕을 맘껏 누리면서 잘 자랐다. 친구의 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 튼튼하게 잘 자라면서 꽃도 피웠다.

작은 분재 꽃을 선물한 친구에게도, 선물 받은 꽃을 잘 키운 친구에게도 동백나무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옛 추억이 담긴 주택은 신기씨가 인근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지금은 빈집이다.

지난 11일 그곳에서 두 사람은 활짝 핀 동백꽃을 보며 정담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그때의 젊은 청년은 촌로가 되었다. 가진 것 없어도 두렵지 않고 꿈과 희망이 있었던 그 시절을 이야기한다. 참으로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분도 한층 좋아진다.

신기씨는 "친구가 그리워지고 추억이 생각이 날 때나 마음이 울적할 때 동백나무를 찾는다. 듬직한 친구를 만난 것처럼 스스로 마음의 위안도 받는다. 작은 묘목이 아름드리 나무로 성장하듯이 우리의 우정도 더 진해지고, 가정의 행복지수도 더 높아질 것으로 믿는다"며 싱긋 웃는다.

명식씨는 신기씨와 큰 다툼 없이 지금까지 살아왔다. 지나고 보니 모든 것이 신기하다. 동백나무가 항상 우정을 지켜주었다고 생각한다. 친구 대하듯 정성 들여 소중하게 키운 마음이 그저 고맙다.

최근까지 김천에 거주하던 명식씨는 칠곡군 왜관읍으로 이사를 했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두 사람의 우정은 현재 진행형이다. 모진 비바람도 잘 견디며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은 동백나무는 친구의 마음속에 끊임없이 피어나는 우정의 꽃이다. 매년 피어나는 동백꽃처럼 두 사람의 우정도 차곡차곡 쌓인다. 젊은 날을 회상하며 동백나무와 함께 익어가는 삶에 찐한 우정의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온다.

김점순 시민기자 coffee-33@hanmail.net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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