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꼴찌 월급 받고 일하기는 싫어요”

  • 유선태 이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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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03-25   |  발행일 2013-03-25 제3면   |  수정 2013-03-25
<1부> 기울어진 축구장, 부러진 사다리 (5) 대구에 살고싶은데…일자리가 없어요
20130325
대기업과 양질의 일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대구를 떠나는 젊은 층이 빠르게 늘고 있다. 대구시 북구 대구3산업단지 전경.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2005년쯤입니다. 대구시와 당시 한나라당 간에 시정협의회가 열릴 때 대구 국가산업단지 조성과 관련한 얘기가 나왔어요. 그때 저는 가능한 수단을 동원해서 대구에다 900만㎡ 정도 규모의 국가산단이 들어설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어요. 그리고 대구시에 당부했죠. 그곳에는 반드시 대기업을 유치해야 된다고. 3개의 대기업이 각각 300만㎡ 규모의 큰 공장을 가동하면 대구는 젊은 인재들을 붙잡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다시 살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1996~2008년 3선 국회의원을 지낸 안택수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이 최근 기자를 만나 들려준 말이다. 안 이사장이 대구시에 당부한 뒤 8년이 지난 지금 대구시 달성군 현풍, 유가면 일대에 726만9천여㎡ 크기의 국가산단이 조성됐고 ‘대구테크노폴리스’라고 이름 지어졌다. 올 6월이면 역사적인 완공을 맞는다. 대구에서 처음으로 국가산단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안 이사장의 바람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현재 이곳에 입주해 가동 중이거나 입주 예정인 큰 기업은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인 IHL과, 현대중공업과 미국 커민스가 공동투자한 현대커민스엔진유한회사 등이 고작이다.

 

대구 취업 청년층 월급
평균 117만원에 그쳐
수도권으로 마음 떠나
좋은 일자리 창출 숙제


◆ 미흡한 대기업 유치

대구시는 2011년을 ‘대기업 유치 원년’으로 선언하고 국내 굴지의 기업을 대상으로 투자유치에 본격 나섰다.

투자유치 타깃 대기업으로 신재생에너지분야의 LG, SK, 포스코, LED 및 2차 전지분야의 LG와 삼성, 로봇분야의 LS, 현대중공업 등을 선정했다. 유치되는 대기업은 도심 산업단지인 성서5차단지, 국가과학산업단지, 첨단복합단지인 테크노폴리스 등에 입주시킨다는 구상까지 덧붙였다.

계획발표 후 대구시는 대기업 유치를 위해 투자유치 조직을 확대했다. 2개 팀인 투자유치단을 4개 팀으로 확대·세분화했고, 투자지원팀도 신설했다. 또 대기업 본사를 방문해 신규·증설 투자를 유도하고 업종별·그룹별 투자유치 설명회를 여는 등 공격적인 유치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대구시가 이 같은 행보를 보인 것은 대기업은 일자리 창출 등 지역경제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충남 아산시 탕정면의 사례가 이를 잘 말해 준다.

2003년만 해도 평범한 시골마을에 불과했던 이곳은 삼성디스플레이 유치에 성공하면서 거대한 신도시로 변모했다. 삼성디스플레이가 입주하면서 아산시 인구는 10년 사이에 10만명 가까이 증가했고 신규 일자리도 4만5천여개나 생겨났다.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도 2009년 기준 6천303만원으로 도내 1위를 기록했다.

대기업이 있는 곳에 관련 중소·중견기업들이 몰려올 수밖에 없고 이는 양질 혹은 대량의 고용창출을 유발한다. 하지만 대구시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성적은 기대에 훨씬 미치지 못하고 있다. 대구시가 삼성 창업자 이병철 회장 기념 사업에 매진하는 등 유치에 심혈을 기울인 삼성전자 바이오시밀러 사업은 인천시가 챙겨갔다.

SK에너지와 SK케미칼 유치에 박차를 가했지만 케미칼은 안동이 가져갔고, 에너지 또한 물 건너갔다. 대구시가 SK그룹 최태원 회장과 결혼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맏딸 소영씨의 대구경북과학기술원 특임교수 초빙을 추진하고 노 전 대통령 생가 관리사업까지 추진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다행히 대구시는 3개의 대기업 계열사 및 합작사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들 기업을 대기업이라고 인정하기엔 미흡한 점이 적지 않다. 통상 대기업으로 불리려면 연매출 1조원은 넘어야 하는데 이들 기업의 규모는 이에 미치지 못한다.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인 IHL의 공장 부지는 4만9천500㎡이며 설비투자가 완료되는 2015년이 돼야 연간 매출액 4천억원, 500여명의 신규 고용유발 효과를 발생시킨다.

현대중공업과 미국 커민스사와의 합작사인 현대커민스엔진사도 7만8천㎡ 규모의 공장을 건립해 연간 3천억원 정도의 매출을 올릴 계획이다. 성서5차 첨단산업단지에서 지난해 1월부터 가동에 들어간 삼성전자, 일본 스미토모 합작사 SSLM의 공장 크기는 2만4391㎡이며 2015년 매출목표는 5천억원이다.


◆ 양질 기업 몰린 서울·수도권-대구 떠나려는 젊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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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발간된 국세청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수도권의 경제력 집중은 해소되기는커녕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서울과 인천, 경기도 등 수도권에 사업장을 둔 법인은 전체의 58.98%나 됐다.

MB(이명박 전 대통령) 정부 들어 표면적으로 지역 쏠림 현상은 많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내면을 들여다보면 상황은 다르다. 이명박 정부 들어 1천억원 이상 수익을 내는 기업의 수도권 점유율이 26.4%나 상승했다. 자산 규모로 보면 39.4%의 증가율을 보였다. 특히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자산 규모 5천억원 이상인 기업의 80%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

대기업 부재는 낮은 수준의 근로자 연봉, 이에 따른 지역 인재 유출과 연결된다.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2010년 기준으로 대구지역 근로자 연평균 급여는 3천284만원으로 전국 16개 광역단체 가운데 꼴찌수준이다. 전국 평균 3천684만원보다 400만원 적다. 대기업이 몰려 있는 서울은 4천170만원이며 현대중공업과 현대차 공장이 있는 울산의 경우 근로자 평균 연봉이 4천790만원으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통계층의 지역별 고용조사 자료(2010년)에 따르면, 대구지역 청년층 임금 수준은 전국 청년층 평균의 82.8%에 불과하고, 대구시 전체 평균임금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또 대구지역 청년층 실업자들이 받기를 원하는 실제 유보 임금(Reservation Wage)은 전국 평균(182만원)보다 적은 163만원이었으며, 실제로 대구지역에 취업했을 때 청년층이 받을 수 있는 평균 임금은 117만9천원에 그쳤다.

이 때문에 대구를 떠났거나 떠나려는 젊은이가 많다. 대구의 청년층 인구는 2000년 68만1천명(26.9%)에서 2011년 51만9천명(21.5%)으로 16만2천명이 줄었으며, 청년층 취업자 역시 같은 기간 25만6천명에서 18만2천명으로 7만명 정도 감소했다.

영남일보가 폴 스미스(대표 이근성)와 공동으로 대구·경북민 1천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12월23~26일 전화여론조사를 한 결과, 대구에 사는 20대의 49.3%와 대학생의 45.6%가 ‘기회가 되면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고 응답했다. 대구경북연구원 김용현 박사는 “지역 청년층이 수도권 지역 소재기업으로 취업하는 데는 임금과 복리후생제도 등이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유선태기자 youst@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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