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보리문디

  • 백승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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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04-19   |  발행일 2013-04-19 제23면   |  수정 2013-04-19
[자유성] 보리문디

경상도 사람들을 낮춰 부를 때 ‘보리 문디’라고 한다. 과거 선거철에는 지역감정을 자극하기 위해 자주 입에 오르내리던 말이다. ‘팔도 사나이’가 모두 모이는 군대에서도 경상도를 놀리거나 비꼴 때 종종 사용됐다.

보리문디는 ‘보리를 먹고 사는 문디’의 줄임말이다. ‘보리’라는 말이 들어간 이유는 과거 경상도가 쌀이 부족해 보리를 주식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실제 전라도보다 상대적으로 곡창지대가 적었던 경상도는 보리농사로 연명하기 일쑤였다. 이러한 지역적 특색 때문에 경상도 사람들은 항상 가난에 시달려야 했다. ‘문디’라는 말은 경상도 사람들이 흔히 쓰는 ‘문디야’ ‘문디 자석’ ‘문디 같은 놈’에서 따왔다고 한다. 정리하면 보리문디는 ‘보리를 먹고 사는 가난한 시골사람’이라는 뜻이다. 이 때문에 항상 조롱과 폄훼의 의미로 유통되어 왔다. 경상도 사람들조차도 이 말을 들을 때마다 강한 거부감을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보리문디의 정확한 뜻을 알면 상황은 달라진다. 보리문디에서 문디의 어원은 ‘문동(文童)’과 ‘문동인(文東人)’에서 비롯됐다는 두가지 견해가 있다.

문동은 ‘공부를 하는 아이’라는 뜻이고, 문동인은 ‘공부를 하는 동쪽 사람들’이라는 의미이다. 동쪽에 치우쳐 있는 경상도의 지리적 특색과, 글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고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 두 견해 모두 아무리 가난해도 자식교육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던 경상도 사람들의 특색을 말하고 있다. 보리로 끼니를 잇는 가난한 집이지만 아이를 서당에 보내고 공부를 시킨, 경상도 사람들의 시대를 앞서가는 정신이 담겨 있는 것이다.

다시말해 보리문디는 ‘보리를 먹고 사는 가난한 시골사람’이 아니다. ‘학문을 중시하면서 인재를 길러 낸 경상도 사람들의 앞선 정신’을 뜻한다. 그것은 고난을 극복하고 내일을 준비하는 의지의 표현이다. 언어를 통해 특정지역을 폄훼하는 것은 무지의 소산이다. 하지만 당사자인 경상도 사람조차도 어원을 잘 몰라 거부감만 가진다면 이 역시도 문제다.

백승운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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