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학생은 “잊지 못할 외국인 친구” 교환학생은 “잊지 못할 한국 생활”

  • 이효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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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1-11   |  발행일 2017-11-11 제5면   |  수정 2017-11-11
[토요일&] 한류 타고 대구 고교에 교환학생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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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고교생들이 대구에서 홈스테이를 하며 한국인 친구와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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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벨과 메간이 대구 수성고를 떠나던 날, 같은 반 친구들이 송별회를 열어 주고 있다.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 다시 만나기 위한 약속일 거야.” 지난 7월25일 오후 2시, 대구 수성고 2학년7반 교실. 한창 공부해야 할 시간에 난데없이 여고생들의 합창 ‘이젠 안녕’이 울려퍼졌다. 학생들이 마련한 송별회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외국인 교환학생인 이사벨 브루셀라리아(18·미국 플로리다주)·메간 모로(18·캐나다 퀘벡주). 합창이 시작될 때, 단짝 친구의 팔짱을 끼고 교실에 마지막으로 들어온 메간과 이사벨은 두손으로 눈부터 가리고 눈물을 훔쳤다. 칠판엔 친구들이 분필로 쓴 ‘Good bye, 메간, 이사벨’, ‘We’ll miss you’ 등 아쉬움의 문장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교실 중앙에 선 이 둘은 친구들에 대한 고마움에 케이크 촛불을 끄지 못할 정도로 고개를 들지 못한 채 눈물을 쏟았다. 그러자 이번엔 친구들이 떼창으로 ‘울지마!’ ‘울지마!’를 외쳤다. 합창이 끝나고, 학생들은 서로 껴안고 등을 쓰다듬었다. ☞ 영남일보 페이스북에 동영상 게재

매천高, 내년 유학생 9명 맞이
수성고도 올 2명이어 내년 2명
본국에서 입소문…문의 이어져

SNS 韓 홍보대사 역할 톡톡
단체활동·관광지·음식사진 등
고향 친구에 보내면 인기 만점

비자·홈스테이 문제 해결 등
“제대로 된 매뉴얼을 만들어야”



메간과 이사벨은 지난 3월부터 미국 교환학생 재단(ASSE)을 통해 수성고에서 학교 생활을 하다 본국으로 돌아갔다. 대구의 학교생활 동안 윤동주의 ‘서시’를 애송하게 된 이사벨은 대구를 떠나며 “친구들과 함께 보낸 시간을 잊을 수 없을 것”이라면서 “대구지역 회사에 인턴십을 하러 꼭 다시 돌아올 것”이란 인사를 남겼다.

대구지역 고교에 외국인 교환학생들의 노크가 잇따르고 있다. 올해 첫 외국인 학생들이 등장한 이후 이러한 문의가 계속되고 있는 만큼 이들을 제대로 맞이할 준비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역 교육계에서 제기되고 있다.

대구 매천고는 2018학년도에 외국인 유학생 9명을 맞이하기로 결정했다. 이들이 머무를 수 있는 홈스테이를 현재 수소문 중이다. 수성고는 올해 2명의 외국인 학생을 받은 데 이어 내년에도 2명을 받기로 했다. 10일 현재 대구지역 고교에 다니고 있는 외국 학생은 상원고 2명(미국·독일), 효성여고 2명(이탈리아·헝가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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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벨과 메간이 한복을 입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미경 ASSE 한국지사 대표는 “2018학년도 교환학생 원서를 접수한 외국 학생이 15명이고, 홈스테이를 구하지 못한 대기자가 3명 정도 있다”면서 “한류 흐름이 대세인 데다 한국에서 유학 경험을 한 외국인 학생들이 본국에 돌아가 입소문을 내고 있는 상황인 만큼 이 인원은 일정 시기가 되면 대폭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외국 학생들의 학교 생활은 어떤 모습일까. 이들 학생 대부분이 미국·유럽 등 교육 선진국 출신이어서 교육과정의 괴리에 대한 걱정이 컸지만, 비교적 잘 적응하고 있다는 게 해당 학교의 얘기다. 모든 수업에 적극 참여하는 것은 물론 보충수업과 자율학습도 참여하겠다는 학생들이 적잖다는 것. 여느 학생들처럼 함께 급식을 먹고 시험을 치르고 난 뒤엔 노래방을 찾기도 한다.

대구 학생들은 같은 반에 외국인 친구가 새로 생겨 즐겁다. 유학생들을 가까이서 지도한 수성고의 한 영어교사는 “학생들이 외국인 친구와 너무 빨리 친해져서 놀랐다. 학교에서 수업 관련해 자발적으로 영어통역을 도맡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학교축제·소풍·동성로 구경 등 또래들이 같이 할 수 있는 것을 함께하며 금세 동화가 됐다. 이런 게 바로 글로벌 교육”이라고 말했다.

이들 외국인 학생은 한국 홍보 대사 역할도 톡톡히 한다는 게 홈스테이 호스트들의 설명이다. 효성여고에 다니고 있는 레베카(18·이탈리아)는 이곳 학교 생활을 매일 SNS에 업데이트한다. 친구들과 단체로 찍은 체육대회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거나 한국 학생들이 좋아하는 ‘불닭라면’ 만들기, 김치볶음밥 먹기, 한국인 친구와 김광석길 방문, 팔공산 단풍놀이 등을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실시간으로 온라인에 올려 현지 친구들에게 선보인다.

레베카의 홈스테이 호스트인 신정숙씨(41)는 “대구에 온 이후 한식만 먹으면서 체중도 10㎏ 넘게 빠진 레베카는 요즘 이탈리아 친구들 사이에서 ‘한식 예찬론자’로 통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K-pop에 빠져 미국에서 대구 고교까지 날아온 이사벨은 대구에 있을 때 아빠에게 특별한 영상 선물을 받았다. 영상엔 비행기 조종사인 아빠가 핫팬츠 차림으로 걸그룹 ‘EXID’의 댄스곡 ‘위아래’에 맞춰 골반댄스를 추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이사벨이 대구 고교를 다니기 시작한 이후 엄마·아빠·언니·동생 등 온가족이 K-pop과 한류 드라마에 열광하게 됐다.

이처럼 대구지역 학교에 다니고 싶어하는 외국 학생들은 증가 추세지만 이들을 받아들일 준비는 아직 요원하다. 레베카는 한국 입국 전 대사관에 비자 문의를 했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한국대사관 직원은 “이런 사례가 없어 어떤 비자를 발급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일관한 것. 이후 한국교환학생재단에서 몇 차례 문의한 뒤 ‘문화교류 비자’를 발급받았다.

외국 학생들이 대구에서 홈스테이를 구하는 일도 만만찮다. 외국에서 국내 고교에 유학을 오는 일은 선례가 드물어 지역 교육청은 물론 교육부도 관련 매뉴얼을 제대로 갖추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재단에서 홈스테이 가정을 수소문하거나 해당 학교에서 직접 교사나 학부모들에게 홈스테이 참여를 부탁해 학생들 거주지 마련에 발벗고 나서고 있다.

김미경 대표는 “외국인 친구에 대한 마음만 열려 있으면 누구라도 이들에게 홈스테이를 지원할 수 있다. 자녀에게 외국인 친구를 만들어 줄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일선 고교들의 부담도 적잖다. 외국인 교환학생을 받으려면 안전 사고에 대한 우려는 물론 학교생활 부적응 문제, 평가 및 성적 산출 등 조율이 필요한 부분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김차진 수성고 교장은 “학교 교육을 통해 글로벌 마인드를 익히는 것은 정말 필요한 교육 과정”이라면서 “학생들이 다양한 나라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고 친구가 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효설기자 hoba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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