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 독립유공자 임봉선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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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6-07   |  발행일 2018-06-07 제30면   |  수정 2018-06-07
3·8 만세운동에 참가하고
실형받고 옥고 치른 임봉선
건국훈장까지 받은 유공자
대구 독립운동가 기념벽에
누락된 것은 무슨 일인가
[여성칼럼] 독립유공자 임봉선을 기억하며
정일선 (대구여성가족재단 대표)

동산 청라언덕 초입에는 문(門) 형태의 기념공간이 있다. 문을 들어서서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기미년 3월 만세운동 당시 일제에 항거해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나섰던 학생과 시민의 모습이 그려진 벽화가 있고 눈을 돌려 오른쪽을 쳐다보면 대구를 대표하는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이 새겨진 벽돌 모양으로 구획된 기념벽을 마주하게 된다. 채희각, 이갑성, 강학봉, 권영해…. 서른 명 정도의 독립유공자의 이름과 생몰시기 그리고 대통령 표창, 애족장 같은 서훈격이 칸마다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다.

그런데 대구여성탐방로 반지길을 운영하면서 해설사들이 가장 안타까워하는 곳이 바로 이 공간이다. 그 많은 독립유공자 이름 속에서 여성은 단 한명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만세운동 당시 대구여성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대구의 만세운동은 3월1일이 아닌 3월8일 서문 밖 큰장에서 일어났다. 학생들이 주도했던 이날의 만세운동에는 대구고보, 계성학교 학생들과 함께 신명여학생 50여명이 참가했다. 여학생들은 거사를 준비하면서 밤새 태극기를 만들었고, 치마에 조끼허리를 만들어 붙여 혹여 일경에 잡힐 경우를 대비하는 비장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만세운동 당일에는 일제의 감시를 피해 대야에 헌옷가지를 담아 냇가에 빨래하러 간다며 위장하는 기지를 발휘하기도 했다. 수백 명이 나섰던 남학생에 비해 수적으로는 적었지만 여학생들은 남학생 못지않은 기개로 가슴속에 숨겨뒀던 태극기를 꺼내 흔들고 독립만세를 외쳤던 것이다.

이날 신명여학생들을 이끌었던 이가 바로 신명학교 교사였던 임봉선이다. 임봉선은 만세운동이 있기 한해 전인 1918년 22세의 나이로 신명학교에 초임교사로 임용된다. 서울과 평양에서 일어났던 3·1 만세운동에서 여성의 활약상을 전해 듣고는 이에 적극 참여하기로 결심하고 학생들을 이끌고 만세운동에 참여하게 된다. 당시 대구 큰장은 지금의 서문시장 자리가 아니다. 현재 섬유회관 건너편에서 시작해 달성공원까지 이르는 장소로, 장날인 3월8일 동산언덕에서 내려와 큰장 초입에서 모여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쳤던 학생들 뒤로 일반시민과 장꾼 수천 명이 동참해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을 시작하게 된다. 큰장에서 시작된 대열은 동산교, 대구경찰서, 경정통(현 종로), 남성정(현 약전골목)을 돌아 중앙파출소를 거쳐 달성군청(현 대구백화점) 앞까지 도달하게 된다. 달성군청 앞에 이르렀을 때 기관총을 설치해 놓고 대기 중이던 일본군을 마주하자 행진은 멈출 수밖에 없었고 이 틈을 타 일경과 헌병, 군인들이 시위대열로 뛰어들어 무자비하게 참여 군중을 제압하기 시작했다. 임봉선과 신명여학생들도 이때 대부분 체포되고 만다. 여학생들은 나이가 어린 소녀라는 점이 참작되어 석방된 반면 졸업생이나 교사들은 재판에 회부되어 실형을 선고받게 되는데 임봉선도 보안법 위반을 명목으로 징역 1년형을 받고 모진 옥고를 치르고 나와 그 후유증으로 26세의 꽃다운 나이로 삶을 마감하게 된다. 국가는 이러한 임봉선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한다.

어제는 순국선열과 전몰장병을 추모하는 제63회 현충일이었다. 다시 모두에서 언급했던 청라언덕 대구 3·8 만세운동을 기리는 기념벽으로 돌아가 보자. 임봉선의 이름이 누락된 것은 결코 독립유공자로서의 자격이 부족해서는 아닐 것이다. 만세운동에 자신이 가르쳤던 학생들을 인솔해 참가했다는 기록이 명백하고 실형을 받고 옥고를 치르고 그 후유증으로 사망했음이 분명한 임봉선은 정부가 인정한 건국훈장까지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고향 대구 시민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공간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위아래로 여전히 빈 공간이 많은데도 말이다. 늦었지만 반드시 이 공간에 독립유공자 임봉선의 이름이 당당히 새겨지길 바란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단지 여성이라서 누락된 것이라는 오해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일선 (대구여성가족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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