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과 한국문학] ‘말의 장’에서 꺼내 쓰기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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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8-29   |  발행일 2019-08-29 제30면   |  수정 2020-09-08
‘바라요’표현 규범상 맞지만
뭔가 어색하고 이상한 느낌
옷장에서 옷 고르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은 상황에 따라
‘바래요’사용해도 괜찮을 듯
[우리말과 한국문학] ‘말의 장’에서 꺼내 쓰기
홍미주 경북대 교양교육센터 강의초빙교수

‘추석 잘 보내길 바라요? 바래요?’

명절을 잘 쇠라는 편지나 문자메시지를 쓸 때마다 고민이다. ‘바라요’라고 쓰니 뭔가 어색하고, ‘바래요’라고 쓰려니 맞춤법에 맞지 않는 표기라서 쓰기가 꺼려진다. 일상적인 대화 상황에서는 더욱 곤혹스럽다. ‘바라요’가 규범에 맞는 형태이기는 하지만 대화하는 상황에서 상대방에게 ‘바라요’를 선뜻 사용하기는 어렵다. ‘바라요’라고 말하는 사람도 어색하고, 듣는 사람도 뭔가 이상하게 들린다. 일상적인 대화 상황에서 상대에게 ‘추석 잘 보내길 바라요’라고 한다면 친근하고 다정한 느낌이 들 수 있을까. 뭔가 어색하고 이상하게 들리지 않을까.

이런 고민은 출판물에서도 볼 수 있다. 전세계적인 베스트셀러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조앤 K. 롤링, 문학수첩, 2001)에서도 ‘바래’ ‘바래요’로 표기되어 있다. ‘바라다’의 과거형으로 비규범형인 ‘바랬다’는 나타나지 않고 ‘바랐다’라는 규범에 맞는 표기를 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어미 ‘-아’와 결합하는 경우에는 일관적으로 ‘바래’ ‘바래요’를 사용하는 것이다(국립국어원 ‘새국어소식’ 2002년 6월호 참고). 출판물인데도 규범에 맞지 않는 ‘바래’ ‘바래요’를 쓴 것은 ‘바라’ ‘바라요’가 규범에 맞는 어형이기는 하지만 일반인에게는 상당히 어색하게 들리기 때문일 것이다. 독자가 어색하게 느끼는 부분이 있다면 몰입과 공감을 이끌어내야 하는 소설에서는 적절하지 않을 것이다.

규범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입장에서는 ‘바래’와 ‘바래요’가 일상적으로 널리 쓰이고, 일반 화자들이 규범형인 ‘바라’와 ‘바라요’를 어색하게 여긴다하더라도 규범에 맞는 형태를 써야 한다고 할 것이다. 일반인이 국어에 대해 궁금한 점을 물어보면 답변을 해 주는 국립국어원의 온라인가나다 게시판에도 ‘바라요’ ‘바래요’와 관련된 질문이 꽤 있다. 둘 중 어떤 것이 맞는지, ‘바라요’라고 쓰는 사람은 거의 없고 대부분 ‘바래요’라고 하는데 ‘바래요’는 왜 표준형태가 아닌지, ‘바라요’와 ‘바래요’가 복수표준어가 될 수는 없는지 등이다. 이에 대해 국립국어원에서는 일관되게 ‘바라요’가 표준 형태이고 ‘바래요’가 비표준 형태라는 답변을 하고 있다.

대부분의 화자들은 규범에 맞는 형태와 규범에 맞지는 않지만 일상적으로 많이 쓰는 형태 두 가지를 다 사용한다. 그리고 의사소통 상황에서 가장 적절한 형태를 골라서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가까운 사이지만 밉고 섭섭한 대상에게 ‘아이고, 이 웬수야’라고 하면 사랑스러움과 동시에 섭섭함을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이런 표현 효과는 ‘원수’라는 형태를 통해서는 얻기 어렵다. 또한 친구에게 ‘쐬주 한잔 할까’라고 말해 격의 없음, 친근함, 재미를 표현한다. ‘웬수’와 ‘쐬주’는 비규범형이긴 하지만 대화에서 정감적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바라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일반 화자도 ‘바래요’가 규범에 맞지 않는 형태임을 알고 있지만 일상에서 ‘바래요’를 더 많이 쓰는 것은 ‘바라요’보다는 ‘바래요’가 대화상 친근함과 격의없음을 상대방에게 더 잘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화자들은 상황에 따라 골라 쓸 수 있는 다양한 말의 스타일을 보유하고 있다. 용도가 다른 많은 옷이 걸려있는 옷장에서 상황에 적절한 옷을 골라 입는 것과 같다. 상황에 따라 다른 옷을 골라 입는 것처럼, 화자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말의 목록(옷장에 비유하면 ‘말의 장’쯤 되겠다)에서 대화 상황에 적절한 형태를 골라 사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바래요’가 틀린 형태이니 이것은 쓰면 안 된다, 모든 상황에서 다 ‘바라요’를 써야 한다고 너무 엄격하게 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아주 공식적인 성격의 글말에서는 ‘바라’형을 쓰고, 일상 대화에서는 ‘바래’형을 쓰는 방식으로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골라 쓰면 되지 않을까. 한 가지 잣대만으로 ‘맞다’ ‘틀리다’를 말하기보다 상황에 따른 적절한 사용이라고 유연하게 생각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홍미주 경북대 교양교육센터 강의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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