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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미디어의 사투리 왜곡,오해와 진실(2)'미디어 속 사투리 붐' 희화화된 방언에 부정적 인식 재점화
유튜브 채널 '하말넘많' 사투리 특강 인기드라마 속 애매한 억양 꼬집어 공감 얻어사투리 편견이 지역에 대한 고정관념으로"안녕하시소. 대구경북 사투리 가르치러 온 강민지라예."최근 유튜브 채널 '하말넘많'에서 강민지씨는 미디어 속 사투리를 바로잡겠다며 '경상도 사투리 강의' 콘텐츠를 올렸다. 대구경북 출신인 강씨는 영상 미디어에서 어설프게 재현되는 사투리를 시원하게 꼬집었다. 지난달 20일 종영한 tvN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에서 배우 이기광은 경상도 인물 배역을 맡았는데, 사투리도 표준어도 아닌 애매모호한 억양을 사용했다. 이를 두고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몰입도가 깨진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강씨는 배우의 연기를 지적하면서 "미디어가 사투리를 너무 과장되게 표현한다. 모든 말에 리듬을 넣지 말고, 던지듯 가볍게 써야 한다"고 조언한다.이 영상은 경상도 네티즌들의 많은 공감을 사며 호응을 얻는 중이다. 지난 4일 기준 영상의 조회 수는 169만회에 달했다. 다른 사투리 강의 영상들도 190만회, 67만회를 기록했다. 네티즌들은 "대구 토박이로서 속이 시원하다" "사투리 일타강사다"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해당 영상이 인기를 끌자 사투리를 사용하며 겪은 편견 등을 밝히는 이들도 나오면서 경상도 사투리에 대한 잘못된 인식도 재점화되는 상황이다.◆미디어에서 재현된 경상도 사투리사투리는 특정 지역의 문화와 지역민들의 특성을 나타내는 고유하고 독특한 언어다. 그렇기에 미디어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사투리를 잘 다루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영화, 드라마 등에서는 경상도 사투리를 과장하거나 왜곡해서 재현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구에서 25년을 생활한 김모(25)씨는 "대구 말투만 해도 '무뚝뚝함'을 기본으로 하며 간결하고 가볍게 던지는 말이 많다. 그런데 미디어에서는 부자연스러운 억양을 재현하거나 과하게 익살스럽게 표현하는 등 경상도 사투리를 다루는 방식이 과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면서 "경상도에 연고가 없는 사람들은 이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 같아 기분이 썩 좋진 않다"고 밝혔다.이정복 대구대 교수(문화예술학부)도 "방언은 재밌거나 우스꽝스러운 말이 아니라 모든 감정을 표현하고 모든 상황에서 쓰는 해당 지역의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말"이라며 "방언은 어느 지역에나 존재하고, 모든 상황에서 쓰이는 일상 언어인 만큼 어떤 방언의 한 면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과장해서 표현하는 것은 방언의 존재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태도"라고 지적했다.사투리를 쓰는 인물들이 촌스럽게 표현되기도 한다. 영화 '해운대'에는 고층빌딩이 들어선 첨단 공간과 개발 이전의 옛 모습을 간직한 공간이 교차돼 나오는데, 이는 오늘날 부산 해운대의 모습을 그대로 담은 것이다. 그러나 영화 속의 인물은 자신이 쓰는 언어에 따라 공간이 구획된다. 서울말을 하는 사람들은 최신 유행의 옷을 입고 첨단 공간에 거주하며, 부산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은 허름한 옷을 입고 낡은 공간에 산다. 류지석·김충국 부산대 영화연구소 전임연구원의 논문 '영화 속의 부산 방언 배치 양상과 장소성'에 따르면, 이는 언어에 따른 차이를 신분적으로 위계화해 놓은 것으로 영화에 부산사람들이 나오지만 이들에 대한 이해를 돕기보다는 기존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데 기여한다.언어에도 권력이 개입돼 나타나는 현상으로 분석되기도 한다. 박승희 영남대 교수(국어국문학과)는 "서울말도 원래 중부지역의 방언인데 대중에게는 표준어로 여겨진다. 이는 언어 사용에서도 서울 중심적 사고가 내재돼 있다고 볼 수 있다"며 "이런 사고를 바탕으로 서울에서 쓰는 말은 중앙 언어로, 다른 지역의 방언은 하위 언어, 소위 말해 수준이 낮은 언어로 인식해 나타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방언은 해당 지역색 반영된 자연스러운 말언어 사용에서도 수도권 중심적 사고 내재사투리 소멸 막기 위해 '지역학 교육' 확대를"◆왜곡된 인식 퍼져…고칠 언어 된 사투리이로 인해 사투리에 대한 왜곡된 인식도 생산·확대되는 상황이다. 사투리를 촌스럽다고 여기는 분위기로 사투리 화자들은 말투 지적을 받기도 한다. 경남 김해가 고향인 김모(여·22)씨는 "서울에 놀러 갔을 때 지하철에서 친구와 대화하는데 주변에서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그걸 본 친구가 사투리를 쓰니까 쳐다보는 거라며 작게 말하라며 창피하다고 했다"며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왜 경상도 말투를 숨겨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뜬금없이 사투리를 시키는 일들도 등장한다. 일례로 지난 몇 년간 온라인상에서 관심을 받았던 '블루베리 스무디'는 타 지역과 경상도 억양이 확연히 차이 나는 단어다. 그런데 '블루베리 스무디'를 따라 해 보라는 등의 말들을 듣는 것. 대구에서 상경한 신영주(28)씨는 "서울 친구들이 카페 메뉴판에 적힌 블루베리 스무디를 읽어보라 한 적이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읽었는데 자기들끼리 웃었다. 왜 웃냐고 물어보니 실제 경상도 억양이 궁금했다 하더라"며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기분이었다. 너무 황당하고 무례한 경험이었다"고 털어놨다.표현에 대한 오해도 있다. 경상도 사투리 중에는 '오빠야' '언니야' '이모야' 등 윗사람에게 '야'를 붙여 친근하게 부르는 용법이 있다. 대표적으로 '오빠야'는 여성이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친근한 남성에게 가볍게 쓰는 말이다. 하지만 타 지역에서는 이를 '여성의 애교·애정 표현'으로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울산에서 상경한 이모(여·27) 씨는 "서울 생활 중 친오빠랑 통화하며 '오빠야'란 말을 쓴 적이 있는데, 옆에서 통화 내용을 들은 서울 친구들이 '오빠야'란 말이 생각보다 건조하다며 놀라더라. 그래서 일상적으로 쓰는 단순한 호칭 정도라고 알려줬다"고 밝혔다. 하말넘많의 강씨도 자신의 영상에서 "말이 오빠야지 보통 오빠야라 하지 않는다. 오빠! 오빠! 오빠야! 이렇게 그냥 말을 던진다"며 익살스럽게 쓰는 표현이 아님을 설명한다.이 같은 분위기로 지역 청년들 중에는 일상 속에서 자신의 말투를 '서울말'에 맞게 억지로 고치려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취업포털 커리어에 따르면 취업준비생 절반 이상(58.9%)이 사투리 교정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80%가 '표준어가 사회생활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했으며, 그 뒤로는 '면접에서 자신감을 얻을 수 있어서'(15.7%)로 나타났다. 2022년 국립국어연구원이 실시한 '국어 사용 실태 조사'에서도 경상 방언을 사용한다는 의견은 2005년 27.9%에서 2020년 22.5%로 5.4%포인트 줄었으며, 표준어를 사용한다는 의견은 같은 기간 47.6%에서 56.7%로 9.1%포인트 증가했다.◆지역학 교육·이중 방언 능력 필요미디어의 왜곡된 사투리 재현과 사투리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 대해 전문가들은 지역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시작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사투리 소멸을 막기 위해선 '지역학' 교육 확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박승희 교수는 "언어·역사·문화 등 지역의 다양한 영역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야 한다. 외지 사람들에게는 지역에 대한 이해를 돕고, 그 지역에 연고를 둔 사람들에겐 지역에 대한 자긍심을 높여야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 사투리를 보존할 수 있을 것"이라며 "대구경북 대학에서도 교양 강의를 통해 지역학 교육을 진행하고 있지만 확대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각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지역 사투리 보존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지난달 21일부터 28일까지 대구시는 '사투리, 이쁘다 아이가'라는 전시행사를 통해 이상화·현진건·상희구 등 지역 출신 작가들이 사투리로 집필한 작품을 중심으로 작가의 서재를 구현했다. 또 지역 청년 예술가의 사투리를 활용한 팝아트 전시·사투리 시 낭송회 등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했다.상호 소통을 위해 '이중 방언' 능력을 기르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정복 교수는 "언어는 효과적인 소통을 위한 것이기에 특정 지역 방언을 고집하기보다 출신 지역의 말과 거주지의 말을 상황에 따라 적절히 골라 쓸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게 필요하다"며 "이는 서울 사람들이 다른 지역에서 살게 됐을 때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유튜브 채널 '하말넘많'의 강민지씨. 미디어에서 어설프게 재현되는 사투리를 시원하게 꼬집었다. 유튜브 채널 '하말넘많'의 강민지씨. 미디어에서 어설프게 재현되는 사투리를 시원하게 꼬집었다.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에 출연한 배우 이기광. 극중 경상도 인물 역을 맡았다.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에 출연한 배우 이기광. 극중 경상도 인물 역을 맡았다.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미디어의 사투리 왜곡, 오해와 진실 (1) 경상도식 애교 아닙니다 단순한 호칭입니다
한때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를 즐겨 봤다. 특히 첫 번째 시리즈인 '응답하라 1997'(이하 응칠)을 재미있게 봤다. 응칠은 '여주인공의 남편 찾기'를 주제로 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당대 부산의 분위기와 지역민들의 특성을 잘 담고 있다는 점이 재미 요소였다. 평생을 경상도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지역에 대한 애정을 자극했다. 몇 번이고 정주행을 했다.응칠의 훌륭한 연출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가장 뇌리에 박히는 것은 배우들의 '사투리 연기'다. 그동안 많은 배우의 어설픈 사투리 연기에 신물이 나던 참이었다. 그런데 응칠에서는 지역 출신 배역을 맡은 배우들이 모두 사투리를 자연스럽게 구사한다. 경남지역 살 적에 듣던 억양 그 자체였다. 알아보니 응칠의 첫 캐스팅 조건은 경상도 사투리 구사 능력이었다고 한다. 남주인공 역을 맡은 배우 서인국은 "감독님이 드라마를 기획했을 때 주인공들이 사투리를 본토 발음으로 하는 사람을 바랐다"고 했다. 서인국도 극 중 명장면·명대사로 꼽히는 "만나지 마까?"라는 대사를 오디션에서 잘 소화해내 드라마에 합류하게 됐다고 한다.배우들이 구수한 사투리를 재현할 수 있었던 것에는 피나는 노력과 재능도 뒷받침됐겠지만 그 지역에 대한 이해도도 한몫했을 것이다. 서인국은 울산에서 학창시절을 보냈으며, 여주인공 역을 맡은 정은지도 부산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경상도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기에 사투리도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었지 않을까. 그들에게 극 중 언어는 이방인의 언어가 아니다. 말하고 듣고 자란 이미 익숙한 언어다. 이런 덕에 응칠은 부산이란 지역의 매력을 알리는 데 충분했다. 부산에 연고를 둔 사람들에게는 친근함과 지역에 대한 자긍심을, 연고를 두지 않은 이들에게는 부산에 대한 호기심과 이해를 높였다. 그렇게 응칠은 '응답하라 신드롬'을 쏘아 올린 첫 신호탄이 됐다.이처럼 잘 쓴 사투리는 극의 현장감을 높이고 흥행 요인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다. 최근 한 드라마에서 모 배우가 경상도 인물 역을 맡았는데, 부자연스러운 사투리 연기로 비판을 받았다. 몰입감을 해친다는 이유에서였다. 배우는 고향이 전라도라 경상도 사투리 연기가 쉽지 않았다고 밝혔다. 아무래도 그 지역에 연고가 없기에 언어 등 지역 문화에 대한 이해가 상대적으로 낮아 일어난 일이었을 것이다. 나 또한 전라도와 연이 없기에 호남 방언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 이해가 간다. 아무리 배우라도 과하게 비판받는 일은 안타깝다.그렇지만 미디어에서 사투리를 잘 다루는 것은 중요하다. 사투리는 특정 지역의 문화와 지역민들을 나타내는 고유하고 독특한 언어인데, 미디어의 파급력을 생각하면 잘못된 사투리 재현은 그 지역 문화에 대한 오해를 부르기 쉽기 때문이다. 일례로 경상도 말투는 '무뚝뚝함'을 기본으로 한다. 그래서 '자, 아나' '어어어' 등처럼 건조하게 던지는 표현이 많다. 하지만 미디어에서는 경상도 사투리를 과하게 익살스럽게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오빠야'가 대표적이다. 실제 이 말은 여성이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친근한 남성에게 가볍게 쓰는 말인데,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경상도 여성을 수동적으로 나타내거나 애교 많은 모습으로 표현하기 위한 장치로 쓰일 때가 있다. 이런 탓에 경상도에 연고가 없는 사람들 중에는 '오빠야'를 단순한 호칭이 아닌 '여성의 애교 표현'으로 인식하는 이들도 있다.언어의 속성 중 '사회성'이란 것이 있다. 언어는 사회를 반영한다. 언어와 사회는 동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사이다. 미디어가 사투리를 왜곡해 재현하는 현상도 사회 구조적인 원인이 있기에 나타나는 것이다. 이에 경상도 사투리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바로잡기 위해 여러 사례와 다각적인 분석을 제시한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게티이미지뱅크〉 그래픽=장수현기자
[주말&여행] 전남 남원 수지면 내호곡마을 몽심재 …호랑이 기운 품은 고택…살금살금 발가락 걸음이 저절로
남원 지리산 서쪽에 호음실(虎音室)이란 마을이 있다. '호음'은 호랑이 울음소리라는 뜻이다. 보통 홈-실이라 부른다. 마을을 두르고 있는 호랑이 머리 모양의 호두산(虎頭山)에 호랑이가 많아 생긴 이름이다. 그리 오래지도 않은 옛날에는 호랑이로 인한 피해가 많았는데 영조 때 전라감사 이서구가 호두산을 견두산(犬頭山)으로 바꾸자 호환이 사라졌다고 한다. 마을 이름도 호곡리(虎谷里)에서 호곡리(好谷里)가 되었다. 호곡리의 내호곡마을은 죽산박씨(竹山朴氏) 집성촌이다. 고려 말의 충신 송암(松菴) 박문수(朴門壽)는 두문동으로 들어가며 가족들을 고향인 남원 초리로 내려보냈다. 300여 년간 초리에 살던 죽산박씨가 옆 마을인 내호곡으로 들어온 것은 1700년대 초반이다. 지리산 서쪽 호두산이 두른 마을에영남 선비들 거쳐가던 고택 사랑채집터는 누워있는 호랑이 머리 자리◆내호곡마을 몽심재마을 입구에서 마을의 내력을 읽고 안길로 들어선다. 마을 회관처럼 생긴 하얀 건물에 '수지도서관'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다. 고향으로 돌아온 마을이장이 기부 받은 책으로 만든 도서관이란다. 흘끔 들여다보니 책이 많다. 마을 가까이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 이정표를 보았으니 도서관 이용자도 꽤 될 듯하다. 마을 광장에 죽산박씨 충현공파의 사적비가 커다랗게 자리하고 그 뒤로 경로당이 조용하다. 어디선가 나타난 할머니 한 분이 씩씩하게 걸어오시더니 도서관 옆길로 사라지신다. 쪼르르 따라간 자리에 여성 경로당이 있다. 영인당 현판이 걸린 여성 경로당 안에서 음악소리 들린다. 이건 분명 체조용 선율이렷다. 생각해보니 뚝 떨어져 마주 선 두 개의 경로당이 별스럽지 않다. 텅 빈 듯 고요한 안길을 따라 들어간다. '남원의 숨은 보석 몽심재(夢心齋)'라는 안내판을 본다. 돌담 너머로 상체를 드러낸 꽃나무들이 꽃봉오리를 잔뜩 매달고 있다. 봄비가 지나가면 꽃이 피겠지. 대숲으로 둘러싸인 커다란 공터 앞에 고택의 삼문이 단정하다. 이 집은 18세기 후반에 죽산박씨 연당(蓮堂) 박동식(朴東式)이 지은 고택으로 몽심재는 사랑채의 이름이다. '몽심'은 박동식의 선조인 박문수가 정몽주에게 보낸 시에서 유래한다. '마을을 등지고 늘어서 있는 버드나무는 도연명을 꿈꾸며 잠자고(隔洞柳眠元亮夢) 산에 오르니 고사리는 백이의 마음을 토하는구나(登山薇吐伯夷心)' 도연명을 꿈꾸는 '몽'과 백이의 마음 '심'을 합해 '몽심'이다. 어쩐지 살금살금 걷게 된다. 경사진 땅의 높은 자리에 몽심재가 자리한다. 축대까지 높아 건물은 더욱 우뚝하다. 누마루가 있는 정면 5칸 집, 크다. 사랑채 뒤편의 안패는 더욱 높다. 'ㄷ'자형에 양쪽 누마루 방이 다락처럼 설치되어 더욱 높아 보인다. 누마루 방 창문 앞에 덧댄 난간이 전망대처럼 느껴진다. 몽심재는 지리산 만복대에서 서남쪽으로 분기한 견두지맥 기슭의 경사진 곳에 자리한다. 산자락에 둘러싸인 비교적 폐쇄적인 땅이지만 경사진 터를 그대로 이용해 문간채에서 사랑채와 안채로 갈수록 건물을 시원하게 높여 답답함이 없다. 집 동쪽에 담장을 사이에 두고 죽산박씨 종택과 사당이 자리하는데 역시 터생김 그대로 건물이 들어서 있다. 종가 대문에는 충신, 효자, 열녀가 모두 배출된 집안임을 나타내는 삼강문(三綱門) 현판이 자랑스럽게 걸려 있다. ◆주일암, 요요정, 천운담몽심재에서 뒤돌아보면 문간채를 가리고 엎드린 커다란 바위가 보이다. 바위에 주일암(主一巖)이라 새겨져 있다. '주일무적' 즉 마음을 하나로 집중해 잡념을 떨친다는 뜻에서 따온 이름이다. '존심대(存心臺)' '청와(淸窩)' 등의 각자도 보인다. 집터가 누워있는 호랑이의 머리 자리인데 지리산의 기운이 견두산을 타고 내려와 이 바위에 모인다고 한다. 주일암과 문간채 사이에는 200년 된 감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데 '호족시'라 불린다. 드러난 뿌리 모양이 호랑이 발을 닮았단다. 바위에 모인 기운 덕에 바위 앞 문간채에서 잠을 자면 큰 인물을 낳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산달을 앞두고 묵으러 오는 이들이 심심찮게 있다고 한다. 이 집에서 가장 특이한 것은 문간채의 대청마루와 그 앞의 연지다. 대청마루는 요요정(樂樂亭)이라 부른다. 난간을 두르고 앞쪽에 낮은 연지를 둔 누마루의 형식을 가지고 있다. 연지는 천운담이다. 연지 중심에 바위섬이 있고 디딤돌 4개가 징검다리처럼 놓여있다는데 봄비 덕에 디딤돌은 보이지 않는다. 빗물이 수로를 따라 흘러내려 연지를 이루고 담장 아래 배출구를 통하여 집 밖으로 흐르게 되어 있다. 연못을 가진 즐겁고 즐거운 정자, 요요정. 하인들의 공간에 마련된 누마루는 처음 본다. 집주인의 배려와 너그러움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더운 여름에는 연지의 수면에 머문 시원한 공기가 사랑채의 대청마루로 시원하게 불어 올라간다고 한다. 연못가 배롱나무가 꽃을 피우는 시절이 그려진다. 고려 말 충신 박문수 후손이 지어후한 대접으로 손님들 끊이지 않아전란땐 온 마을 함께 건물 지켜내◆몽심재의 주인들 마을 사람들은 박동식을 박진사라고 불렀다고 한다. 인심 좋고 과객 대접이 후하기로 소문난 박진사의 집에는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구례, 순천 쪽에서 한양으로 올라가는 선비들 또는 함양 쪽에서 넘어오는 영남의 선비들에게 몽심재는 늘 거쳐 가는 사랑채였다고 한다. 또한 몽심재의 쌀 창고는 늘 열려 있어서 필요한 사람은 언제든 가져갈 수 있었다고 전한다. 몽심재의 두 번째 주인은 박주현이다. 그는 문과에 급제해 승지를 지내다 러일전쟁 이후 벼슬을 버리고 귀향했다. 1910년 경술년 국권피탈 직전 일제는 합방의 정지작업으로 각 지역에 민회(民會)를 만들었다. 일제는 남원의 유력인사인 박주현을 회장으로 추대하려 했지만 그는 응하지 않았다. 박주현은 심한 고문을 받고 몇 달 후 고문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몽심재의 세 번째 주인은 박주현의 장남인 박해창이다. 그는 홍문관 시강 벼슬을 지냈으며 마을에서는 비랑공이라 불렀다. 고조, 증조 때부터 근검절약하여 모은 재산이 그에 이르러 만석이 되었으며, 남원의 3대 만석꾼에 꼽힌다. 그의 땅은 구례 산동까지 뻗어 있었고 추수기에 쌀을 저장하는 창고가 구례의 이평과 산동, 남원 읍내 세 군데에 있었다고 한다. 그는 소작인들을 후하게 대하였고 1923년에는 사재를 털어 초등학교를 세웠다. 지금도 건재한 수지 초등학교다. 그가 죽자 영호남의 과객들이 여러 곳에 자발적으로 유혜비(遺惠碑)를 세워 그를 기렸다고 한다. 남원은 동학농민전쟁과 6·25전쟁 때 아주 큰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몽심재가 불타지 않은 것은 온 마을이 함께 지켰기 때문이라 한다. 문중에서 최근 몽심재를 원불교 교단에 기증했고 현재 재단에서 관리하고 있다. 집안에서 사람소리 들린다. 엄지발가락으로 살금살금 걸었던 것은 집의 기운 때문이지 사람소리 때문이 아니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 Tip대구광주고속도로 남원IC에서 내려 직진, 요천과 만나는 삼거리에서 광한루원 방향으로 우회전해 직진한다. 노암동사거리에서 좌회전, 노암사거리회전교차로에서 10시 방향 구례, 수지 방면으로 나가 약 3㎞ 직진, 동학농민운동유적지 표지석이 있는 삼거리에서 수지, 고달 방면으로 우회전해 간다. 6㎞ 정도 직진하면 호곡리다. 원불교 수지 교당을 지나면 몽심재 이정표가 있다. 내호곡2길 따라 들어가면 된다. 몽심재 솟을대문 앞에 너른 주차공간과 몽심정 쉼터, 간이 화장실이 있다. 개방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며 매주 월요일과 화요일은 휴관이다.남원 수지면 내호곡 죽산박씨 집성촌의 몽심재. '몽심'은 박문수가 정몽주에게 보낸 시에서 유래한다. 도연명을 꿈꾸는 '몽'과 백이의 마음 '심'을 합해 '몽심'이다.문간채를 가리고 엎드린 커다란 바위, 주일암. 집터가 누워있는 호랑이의 머리 자리인데 지리산의 기운이 견두산을 타고 내려와 이 바위에 모인다고 한다(위). 연못을 가진 즐겁고 즐거운 정자, 요요정. 하인들의 공간에 마련된 누마루는 처음 본다. 집주인의 배려와 너그러움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문간채를 가리고 엎드린 커다란 바위, 주일암. 집터가 누워있는 호랑이의 머리 자리인데 지리산의 기운이 견두산을 타고 내려와 이 바위에 모인다고 한다(위). 연못을 가진 즐겁고 즐거운 정자, 요요정. 하인들의 공간에 마련된 누마루는 처음 본다. 집주인의 배려와 너그러움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고흥 팔영산 능가사~중산 일몰
능가사로 가는 길은 고즈넉했다. 몸집이 큰 겨울 나목 몇 그루가 휑뎅그렁하게 서 있었다. 천왕문을 지나자 경내는 스산하고 을씨년스러웠다. 그러나 명산 팔영산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능가사는, 다른 세계처럼 꿈꾸는 풍경이었다. 그 겨울의 절집 능가사는, 무언의 자비와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하는 신(神)의 서식지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대루를 통과하고 작은 연못에서 멈춘다. 마치 불사리(佛舍利)처럼, 가운데 섬이 있고, 거기에 즉심시불(卽心是佛)이 석 비에 새겨져 있다. '중생의 마음이 곧 부처의 마음'이라는 뜻이다. 이 얼마나 간결하고 명쾌한 문구인가. 마음은 나의 내면의 문제이다. 내 안의 마음에, 부처가 있다는 의미다. 내가 저 문구를 보지 못했다면, 나는 내 마음에 부처가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안 어디에 부처가 있는 걸까. 그걸 찾는 건, 고르디우스의 복잡한 매듭처럼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아닐까. 그러나 그것보다 차라리 이 세상 사람 모두가 그리스도이고, 그들이 모두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말하는 게 더 쉽지 않을까. 오늘이 교회 가는 주일이므로. 아무튼 내 안에 부처가 있다는 가설은 나의 인식에 새로운 발광체가 되었다. 바로 그 뒤에 종각이 있다. 능가사 범종은 현존하는 김애립(金愛立) 작품 가운데 가장 늦은 시기인 1698년에 제작된 것으로, 김애립 범종의 원숙한 기량이 유감없이 녹아있는 17세기를 대표하는 수작이다. 이 범종은 맑은소리, 긴 여운, 뚜렷한 맥놀이가 있고, 낮은음의 더딘 울림과 사뭇 자비로운 중심음이 멀리 길게 이어지며, 아득한 허공으로 선을 그으면서 퍼져나가, 사바세계로 스며드는 신비감이 있다고. 한다. 멍하니 들여다보다가, 대웅전으로 간다. 대웅전은 60평 면적이다. 그런데 중간에 기둥이 없다는 점이 놀랍다. 어떤 건축 공법이었을까. 대웅전이 품고 있는 그 많은 뜻을 다 말할 수는 없고, 기둥의 주련만 한번 해석해 보기로 한다.김애립 대표 수작 '능가사 범종'뚜렷한 맥놀이현상에 긴 여운중산 일몰 전망대 풍경 장관드넓은 갯벌 위 철새들 비행'겹겹이 늘어선 누각이 화장의 세계요(樓閣重重華藏界). 보랏빛 비단 장막 뒤에는 진주를 뿌린 듯하네(紫羅帳裏撒眞珠). 사오백 그루가 늘어진 버드나무 숲(四五百株花柳巷). 이삼천 척의 범음이 울리는 누각(二三千尺管絃樓). 물소는 달을 감상하며 아롱진 달무늬 뿔에 새기고(犀因玩月紋生角). 코끼리는 우레에 놀라 번개무늬를 상아에 입히네(象被驚雷化入牙)' 정말 아찔하며 훅 가게 하는 선(禪) 시(詩)다. 이렇게 아름다운 주련의 시가 대웅전을 마음의 귀향지로 만들고 있다.절 뒤편에 있는 사적비를 찾아간다. 사적비는 1726년(영조 2년)에 세웠다. 불교 유래와 절의 사적을 기록해 놓은 중요한 자료이다. 이 비석은 처음 탑 앞에 있었는데, 덕목이 도력으로 지금 장소로 옮겼다는 전설이 있다. 사적비에 의하면, 기원후 417년(신라 눌지왕 1년)에 아도화상이 창건하여 보현사라 하였다고 하나, 뒷받침할 근거는 없다.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탄 후, 1644년(인조 22년)에 벽천 정현 대사가 다시 짓고 능가사로 사명을 바꾸었다. 당시 벽천은 나이 90세 노승으로, 지리산에서 수도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밤 꿈에 부처님이 나타나서 절을 지어 중생을 제도하라는 현몽을 받고, 이곳에 능가사를 다시 지었다고 한다. 또 영조 때 이중환의 택리지에 의하면, 능가사는 팔령산(현, 팔영산) 아래에 있다. 아득한 옛날 유구국(지금의 오키나와) 태자가 풍랑으로 표류하다가 이곳에 이르렀다. 태자는 이 절 관음보살에게 엎드려 밤낮을 기도하며, 고국에 돌아가기를 빌었다. 기도 7일 만에 어떤 승려가 나타나 태자를 끼고 파도를 넘어갔다고 하며, 절의 법당에 그 내용을 그려 놓았던 벽화가 조선 영조 때까지 남아있었다고 한다. 이건 물론 전설일 수 있다. 현대는 의식의 비대화와 과학이라는 양 수레바퀴 때문에, 우리는 우리를 이끌어 줄 신화(神話)를 엉뚱하게 미신으로 비과학으로 몰아붙이는 영혼 상실, 방향 상실의 시대에 살고 있다. 전설과 신화가 없다는 것은, 우리가 살아왔고 살아가야 할 의미를 잊어버렸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아무런 의미도 없는 쾌락과 자유만을 추구하는 사르트르적인 세계에 내던져진 채, 생명의 에너지를 물질의 추구에만 소모하는 게 아닐까. 돌아 나온다. 공터였던 응진전 앞마당에 의상조사가 화엄경을 210자 7언 30구로 요약한 법성게를 담은 '화엄 일승법계도'를 본떠서 만든 차밭 길이 있다. 이제 수행과 신행의 공간으로 탈바꿈된 이 길을 따라 걷는 '요잡'은 자기 마음에 숨어있는 부처를 찾는 의식이다. 고개를 들어 팔영산을 바라본다. 겨울의 오후 햇살과 산의 나무들이 부르르 몸을 떠는 어스름 위로 여덟 개의 암 봉이 너무 수려해 눈시울을 비비고 다시 봐야 했다. 팔영산에도 이런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그 옛적, 중국의 위(魏, 한나라의 뒤를 이어 조비가 220년에 세운 나라) 왕이 어느 날 아침 세수 물을 받았더니 그 대야에 8개의 빼어난 산봉우리가 비쳤다. 기이하게 여겨 신하를 보내 찾게 했는데, 그 산이 팔영산이었다. 그때까지 팔전산이라 부르던 것을, 세수 물에 비친 그림자 영자를 써서 팔영산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우에서 좌로 여덟 봉우리가 빼어난 자태로 공제 선을 만드는데, 신비하기만 하다. 산이 신령하다 하여, 한때 신흥종교가 뿌리를 내리기도 했다. 또 팔영산에는 조선 시대 봉수대가 있고, 일제강점기에는 의병 활동의 근거지로, 광복 후에는 빨치산의 은신처가 되기도 했다 한다. 주위를 살펴보는데, '이제염오 진흙탕 속에서도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간판을 단 능가사 한옥 카페가 보인다. 들어가서 고흥 특산물인 유자차를 주문해서 마신다. 창밖으로 벙글은 야산과 절 풍경이 내 정수리까지 흘러와 번뇌를 씻어준다. 실내는 한적한 분위기에 경쾌하고 은은한 음악으로 가득 차 정말 행복했다. 이제 곧 중산 일몰 전망대로 출발해야 했다. 오늘은 년 중 해가 짧은 겨울날이었으므로.중산 일몰 전망대는 의외로 여행객이 많았다. 잿빛 구름이 하늘을 가리기도 했지만, 서서히 다가오는 황혼의 겨울 하늘은 눈을 뗄 수 없는 풍경이었다. 그리고 썰물이 나간 겨울 바다에는 여럿 섬과 회청색 갯벌이 흐릿한 이내처럼 아슴아슴하게 보였다. 해는 기울수록 더 붉게 탔다. 그럴수록 길고 긴 갯벌과 먼바다는 차츰 눈이 시린 검푸른 색으로 변해갔다. 구름이 짙었으나 노을빛이 퍼지는 전망이 좋았으므로 우리는 숨죽여 더욱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찬 허공을 가로지르며, 그 노을의 하늘 위로 철새가 날아간다. 그건 비현실 같았다. 잠시 후 누군가가 러시아의 노래 백학을 들려주었다. 우리 민족 한의 정서와 비슷해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는 곡이었다. 그 리듬과 가사는 떨고 있는 우리의 몸을 슬픔으로 얼어붙게 하였다. '…그 대신 하얀 학이 되었나. 그들은 옛날부터 하늘을 날면서 우리를 부른 듯하여, 그 때문에 우리가 자주 슬픔에 잠긴 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것은 아닐지. 날아가네, 날아가네, 저 하늘의 지친 학의 무리들. 날아가네, 저무는 하루의 안개 속을. 무리 지은 대오의 조금만 틈새, 그 자리가 혹 내 자리가 아닐지. 그날이 오면, 학들과 함께 나는 회청색의 어스름 속을 끝없이 날아가리. 대지에 남겨둔 그대들의 이름자를. 천상 아래 새처럼 목놓아 부르면서.' 이 중산 전망대가 어쩜 그렇게 백학의 노랫말 얼개를 부둥켜 안아버리는지. 우리는 어둠이 내렸음에도 음악이 다할 때까지, 검푸른 바다만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떠날 줄 몰랐다. 글=김찬일 시인 방방곡곡 트레킹 회장 kc12taegu@hanmail.net 사진=유판도 여행 사진작가중산 전망대의 일몰.고흥의 명산 팔영산.능가사 대웅전과 팔영산.범종각과 즉심시불 석비.김찬일 시인 방방곡곡 트레킹 회장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오마카세(2) 셰프가 직접 손님 응대·음식 설명 '대접받는 느낌'
양질의 서비스 '高價 오마카세'오마카세는 정해진 메뉴가 따로 없이 그날의 음식을 주방장이 알아서 만들어 내놓는 일본식 코스 요리(가게)다. 브랜드나 간판보다는 셰프의 명성을 내걸어 운영한다. 오마카세를 제공하는 식당에서 손님이 셰프에게 메뉴 선택을 온전히 맡기면 셰프는 자신의 창의력을 발휘한 음식을 내놓는다. 오마카세라는 단어는 본래 일본의 초밥 매장 등에서 '요리사의 추천 메뉴'라는 뜻으로 사용됐는데, 현재는 오마카세가 대중적인 인기를 끌면서 양식·한우 등 다양한 외식 분야에서 쓰이고 있다.오마카세는 전문성을 가진 셰프가 운영하며 메뉴 구성, 음식 설명, 손님과의 대화 등 식사 외에도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기에 높은 가격대를 형성한다. 대구지역 식사 오마카세의 경우 1인 점심 기준 4만원이 넘는 곳이 대다수며 저녁에 이용할 경우 약 1.5배 더 비싸다. 점심·저녁 모두 10만원이 넘는 곳도 많다. 대구 중구에서 오마카세를 운영하는 A씨는 "오마카세 가격은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식재료뿐 아니라 질 높은 손님 응대 서비스가 포함되기에 일반 음식점보다 높게 책정되는 것"이라고 했다. 예약도 필수다. 그날그날 공수해온 신선한 재료를 사용해 메뉴를 제공하고 손님 한명 한명을 정성스레 응대하기 위해 대부분 예약제로 운영해 소수의 정해진 손님만 받는다.'맡긴다'는 뜻 일본어서 유래주로 '스시가게' 예약 치열해'스강신청' 신조어 생기기도팬데믹·SNS로 대중화 바람'커마카세' '티마카세'도 등장이처럼 고급 레스토랑에 속하는 오마카세는 아는 사람만 아는 음식점 또는 중·장년층의 비즈니스용 식당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2020년 이후 SNS와 코로나19의 영향, 비교적 작은 제품에서 사치를 부리는 스몰 럭셔리 유행 등으로 적은 손님만을 받는 고급 식당이 인기를 끌면서 대중화되고 있다. 2022년 네이버 데이터랩의 검색어 트렌드에 따르면 2020년 8월부터 2022년 9월까지 2년간 '오마카세' 검색량은 2배가량 증가했다."인증샷 찍기 좋아"…MZ 인기오마카세 열풍은 특히 MZ세대(1980년대~2000년대 초반 출생)에서 두드러진다. 지난달 25일 오후 8시 대구 범어동에 위치한 돼지고기 오마카세 '현방'. 10명의 손님이 식사를 즐기고 있었는데 대다수가 20·30대였다. 음식이 나올 때마다 사진을 찍는 손님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이날 기준 젊은 세대에서 이용이 활발한 SNS '인스타그램'에도 해시태그 '오마카세'를 검색하니 약 71만5천개의 게시물을 확인할 수 있었다.상대적으로 지갑이 얇은 MZ세대가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오마카세를 찾는 이유는 뭘까. 이들은 특별한 경험을 이유로 들었다. 지난해 시장조사업체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소비자 1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2.7%가 오마카세 등 고급 레스토랑에 방문하는 것이 경험의 폭을 넓혀줄 수 있다고 답했으며 20대(84.4%), 30대(76.0%)에서 응답 비율이 가장 높았다. 사회초년생 김모(여·25)씨는 "SNS를 통해 오마카세를 알게 됐는데, 처음엔 가격 때문에 망설였지만 이것도 하나의 경험이 될 거라 생각해 방문했다"며 "대접받는 느낌이 들어 나에게 주는 특별한 이벤트 같았다. 자주 가기는 힘들겠지만 기념일이나 기분을 내고 싶은 날 다시 가볼 만하다"고 말했다.MZ세대가 중시하는 'SNS 인증'과 '현재형 소비' 문화와 맞아떨어진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태경 영남대 교수(경영학과)는 "오마카세는 고급 음식으로 일상적인 소비와는 거리가 있다. SNS 이용률이 높은 젊은 세대에게 오마카세의 높은 가격과 특별함은 '인증샷'을 찍어 SNS에 올리고자 하는 과시욕을 자극할 것"이라고 했다. 또 "MZ세대는 미래보다는 현재에 초점을 맞춰 소비하는 경향을 보인다. 가격보다는 현재의 만족, 유행을 중요시 여기는 특성도 한몫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가성비 좋은 전문점 등장대중화에 힘입어 오마카세는 스시·한우·양식 등의 식당뿐만 아니라 카페·디저트 전문점으로도 확대되는 분위기다. '커피'와 '오마카세'를 합친 '커마카세'라는 신조어도 등장해 온라인상에서 언급된다.커피·디저트 등의 오마카세는 비싸면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식사 오마카세보다 부담이 적다는 장점이 있어 더욱 주목받는 모양새다. 1인 기준 2만~4만원의 비교적 저렴한 가격대지만 코스별로 맞춤 음료와 디저트를 제공 받는 등 식사 오마카세와 마찬가지로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공간을 사용할 목적이나 친목의 장소로 이용되는 일반적인 카페와 달리 각 코스에 대한 바리스타의 설명을 들으며 음식을 천천히 음미할 수 있다는 점이 큰 특징이다. 직장인 박모(28)씨는 "스시·한우 오마카세는 비용의 부담이 크고 이젠 너무 대중화돼 전보다 특색이 떨어진다고 느꼈다"며 "커피 오마카세는 그보다 저렴한 가격에 코스별로 여러 커피를 즐길 수 있어 이색적"이라고 했다.최근에는 건강 관리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차(tea)'를 찾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티 오마카세'도 곳곳에서 등장하고 있다. 부산 전통찻집 비비비당 원소윤 대표는 "차에 관한 시장 조사를 하면 최근 차가 인기를 끌면서 티 오마카세도 유행처럼 생겨나고 있다는 걸 느낀다"면서 "티 오마카세는 아니지만 비비비당에도 시그니처 메뉴로 구성된 코스 메뉴가 있는데 젊은 연인들이 자주 찾는다"고 했다. 티 오마카세는 1인당 평균 3만~5만원대의 가격으로 다양한 차와 전통 다과를 맛볼 수 있다. 실제 서울 강남, 신사동, 성수동 일대 티 오마카세는 예약이 어려울 정도로 인기인 것으로 전해졌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게티이미지뱅크〉 그래픽=장수현기자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돼지고기·디저트…대구지역 '이색 오마카세' 모아보기
가심비 좋은 돼지고기 요리 '현방 '스시와 소고기는 진부하다면 돼지고기 오마카세로 눈을 돌려봐도 좋다. 대구 수성구 범어동에 위치한 '현방'은 대구 최초 돼지고기 오마카세로 돼지의 여러 부위를 다양한 조리법을 통해 내놓는다. 1인 기준 런치 3만9천원, 디너 5만9천원으로 가격도 합리적이라 '가심비(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도)'가 좋다.런치는 8종, 디너는 10종의 음식으로 구성돼 있으며 식사 완료까지는 각각 1시간 내외, 1시간30분 정도 소요된다. 지난달에는 △앞다릿살 냉제육 △뒷다릿살 타르트 △목살·가부리살·갈매기살 숯불구이 △솥밥 삼겹살 등을 선보였다. 특히 삼겹살 솥밥〈작은 사진〉은 현방의 시그니처 메뉴로 삼겹살을 이용한 불향 가득한 솥밥에 된장·바지락이 들어간 국이 입맛을 돋운다. 현방은 주류도 판매하는데 와인의 종류가 다양하니 반주를 즐긴다면 눈여겨볼 만하다. 예약은 네이버, 캐치테이블, 전화로 가능하다. 친절한 디저트 전문 '문화시민 대구'대구 중구 삼덕동에 위치한 '문화시민 대구'는 디저트 오마카세다. 디저트 전문점답게 입구에서부터 아기자기한 인테리어가 손님을 반긴다. 3~4가지의 디저트를 코스로 즐길 수 있으며 커피·음료, 다른 디저트도 추가로 주문 가능하다. 일반적인 오마카세와 달리 예약을 하지 않아도 코스 메뉴를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은 가게 측의 친절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예약도 1시간 단위로 받고 있어 방문 시간 선택의 폭이 넓다.지난달 코스 메뉴로는 딸기철과 발렌타인데이 주간을 맞아 △딸기 샐러리 파블로바〈작은 사진〉 △들기름·김 △초콜릿 트리오 △라즈베리 마카롱·트러플 쿠키슈·데일리 소르베 등을 내놓았다. 오는 2일에는 파인다이닝 '셀리우'와 협업해 셀리우에서 컬래버 디너 메뉴를 선보인다. 셀리우의 메인 메뉴 두 가지, 문화시민 대구의 디저트 메뉴 두 가지다.레트로 감성 자극 카페 '소명커피바'대구 중구 남산동 '소명커피바'는 '레트로' 한 커피 오마카세다. 세탁소 건물을 개조한 곳으로 세탁소의 오래된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낡은 미닫이문 등 독특한 외관이 눈길을 끈다. 카페 내부도 오래된 타자기와 시계 등 빈티지한 소품들로 가득해 '감성샷' 찍는 재미도 쏠쏠하다.오마카세는 주 1~2회 소수정예로 운영되기에 예약이 필수다. 예약은 인스타그램 메시지로만 받고 있다. 매달 하나의 주제가 정해지며 주제에 맞게 커피와 디저트가 제공된다. 지난달에는 '버섯'을 주제로 △표고 캐러멜 라테 △트러플 파인애플 피즈 △발효 버섯을 곁들인 크림·아몬드 밀크티 △부드러운 브루잉 커피 △시나몬·정향을 곁들인 브라우니로 메뉴가 구성됐다. 글·사진=조현희기자지난달 25일 오후 8시 돼지고기 오마카세 '현방'. 20·30대 손님이 주를 이뤘다.대구 중구 삼덕동 디저트 오마카세 '문화시민 대구' 바 좌석.대구 중구 남산동 '소명커피바'는 커피 오마카세를 주 1~2회 소수정예로 운영한다.
[위클리 키워드] Z세대 취준생 10명 중 6명 "연봉 낮아도 야근·스트레스 적으면 OK"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 10명 중 6명은 연봉이 낮아도 스트레스와 야근이 적은 직장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진학사 캐치가 Z세대 취업준비생 1천77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야근 제로·스트레스 제로, 그러나 초봉은 3천만원'과 '매일 야근·스트레스 가득, 그러나 초봉은 5천만원'이라는 두 가지 항목 중 62%가 전자를 선택했다.회사가 직원들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제도를 시행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90%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그 이유로는 '직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서'가 36%로 가장 많았으며 이어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업무 효율이 향상되기 때문에'(34%), '육체적·심리적 건강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증가해서'(16%),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아서'(14%) 순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해 응답자의 41%는 최근 무기력증이나 우울감을 느끼는 '번아웃'을 경험했다고 털어놨다.기업이 해주길 바라는 '웰니스(신체적·정신적·사회적 건강이 양호한 상태) 복지' 형태로는 '영양제나 운동시설 제공'이라는 응답이 45%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는 '워케이션·장기휴가'(43%), '심리치료·명상'(39%), '아침·건강 식단 제공'(36%), '개인 시간 보장'(23%) 등이 뒤를 이었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동 추 거문고 이야기] 〈4〉거문고와 중국 칠현금, '선비의 악기' 거문고…진나라가 고구려에 전한 칠현금이 시초
중국의 금(琴)은 악기가 차지하는 위상이나 상징성 등에서 우리나라의 거문고와 자주 나란히 거론된다. 금과 거문고는 단순히 그 선율을 즐기기 위한 악기가 아니라, 지식인들이 마음수행의 도구이자 반려로 삼았던 악기다. 중국에서는 고대부터 금을 군자(君子)의 악기로 떠받들었고, 우리나라의 거문고는 선비의 악기로 대접받았다. 그리고 우리의 옛 기록에는 거문고를 한자로 표현할 때 '금(琴)'으로 표기한 경우가 대부분이고, 중국의 금인 칠현금 역시 '금(琴)'으로 표기했다.◆중국 금(琴), 칠현금중국의 대표적 전통 악기인 금(琴)은 지금도 사랑받고 있는 현악기인데, 일곱 줄로 된 칠현금(七絃琴)이다. '고금(古琴)'이라고도 불린다. 금의 길이는 110㎝ 정도. 거문고의 3분의 2 정도 된다. 금은 일곱 줄로 되어 있어서 '칠현금(七絃琴)'이라 불린다. 고대의 다섯 줄 금은 '오현금(五絃琴)'으로 불리었다.오현금은 4천300년 전 중국 고대의 태평성대 시대로 일컬어지는 요순시대의 순임금이 처음 만들어 연주했다고 한다. 칠현금의 전신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옛날 그림 '남훈전탄금(南薰殿彈琴)'은 순임금이 황제의 처소인 남훈전에서 오현금을 타면서 노래로 백성의 고단함을 달랜 내용을 그린 작품이다. 그림 중앙에는 소박한 초옥이 있고, 초옥 안에서 순임금이 오현금을 타면서 노래를 부른다. 신하들은 방 안과 섬돌 아래에 서서 순임금이 연주하는 오현금 소리를 듣고 있다.순임금은 '오현금을 타면서, 남풍이란 시를 노래하며 천하를 다스렸다(彈五絃之琴 歌南風之詩 而天下治)'고 전한다. '남풍(南風)' 시는 다음과 같다. '훈훈한 남풍이 불어오니, 우리 백성들의 시름을 풀어줄 만하네/ 남풍이 때맞춰 불 때 우리 백성들의 재물도 넘쳐나겠구나(南風之薰兮 可以解吾民之兮 南風之時兮 可以阜吾民之財兮).'칠현금은 오현금에 중국 주나라 문왕과 무왕이 각각 문현(文絃)과 무현(武絃)을 한 줄씩 더하여 칠현의 금이 되었다고 한다. 즉 순임금 시절에는 오현금이었고, 주나라 때 칠현금이 나와 이후로 유행하게 된 것이다. 중국 진(晉)나라가 고구려에 전해준 거문고도 칠현금이었다. 금의 앞판은 오동나무, 뒤판은 밤나무로 만든다. 보통 검은 칠을 한다. 줄은 따로 기러기발 등으로 받치지 않고, 대신 몸통 위 한쪽에 흰 조개껍질 등으로 만든 지판(徽)을 표시하고 그 자리를 왼손으로 짚어 소리 낸다.동양의 전통적 세계관이던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을 반영하여, 위판은 곡면으로 둥글게 하고 아래판은 평평하게 만든다. 악기의 모든 치수에는 철학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고 금은 거문고와 같이 같은 줄에서도 어느 곳을 짚느냐에 따라 음이 달라진다. 삼국사기의 '거문고는 중국의 금을 본떠 만들었다'라는 기록이 아주 신빙성 없지는 않음을 보여준다. 구조는 확실히 다를지라도 줄을 집는 방식인 안현법을 비롯한 연주법 등을 참고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금을 연주할 때는 보통 악기를 받침대인 탁자에 올려놓고 손으로 짚으면서 뜯는다.◆차이점과 영향거문고와 중국 금은 많은 차이가 있다. 줄의 수만 다른 것이 아니다. 거문고는 괘와 안족이 있는데 반해, 중국 금은 이런 음 높이 조절용 부속품이 따로 없다. 그리고 일곱 줄 모두 악기 위판에 직접 닿도록 손가락으로 짚어 연주한다. 줄을 짚을 위치를 가늠하기 편하도록 몸통 위 한 편에 자개나 옥돌 등으로 만든 '휘(徽)'를 일렬로 박아 놓았다.거문고는 연주할 때 술대를 사용하지만, 중국 금은 다른 도구 없이 맨 손가락으로만 탄다. 거문고는 대체로 바닥에 앉아, 악기 한쪽 끝을 무릎 위에 걸치고 반대쪽 끝을 바닥에 닿도록 놓고 연주한다. 하지만 중국 금은 탁자에 올려놓고 의자에 앉아 연주하는 것이 원칙이다. 거문고 여섯 줄의 조율은 음 높이 순이 아니지만, 중국 금의 일곱 줄은 가장 바깥 줄을 최저음으로 하여 안쪽(연주자 몸쪽)으로 올수록 높아지도록 조율한다.금은 중국 문명과 역사를 같이할 정도로 오래되었고, 상류층과 지식인 계층에게 특히 사랑받은 악기이다. 전통적으로 중국에서는 '악기의 아버지' '성인(聖人)의 악기' 대접을 받아 왔다. 한국 전통음악에서 거문고가 누리는 지위와 상징성은 이런 중국 금의 지위를 많이 물려받았다. 중국 한나라 때인 서력기원 전후부터 쓰인 '금(琴)이란 사악함을 금(禁)하는 것이다(琴者 禁也)'라는 말도 그대로 수용되었다. 악기 구조에서 위판이 곡면이고 아래판이 평평한 것은 하늘이 둥글고 땅이 반듯함을 각각 상징하고, 거문고의 문현과 무현은 중국 고대 성인들인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의 이름에서 유래한 점 등은 중국 금의 영향이다.한국의 풍류방(風流房) 음악에 중국 금이나 금론(琴論)이 들어온 예도 있다. 중국 금의 덕목인 '오능(五能, 연주해도 되는 다섯 가지 상황)' '오불탄(五不彈, 연주하면 안 되는 다섯 가지 상황)' 등은 17세기 말부터 한국의 거문고 악보들에 마치 거문고의 덕목처럼 인용되어 왔다.◆'금(琴)'자의 해석우리나라 옛 한문 기록에서 그냥 '금(琴)'이라고만 한 경우 정확히 무슨 악기를 지칭하는 것인지 판단하기 쉽지 않을 때가 많다. 같은 '금(琴)'자로 표현해도 별 문제가 없는 경우도 있지만, 중국의 금인지 한국의 거문고인지 가려서 읽을 필요도 있다. 악기의 구조나 연주 방식 등에서는 많은 차이가 있고 분명히 다른 악기이지만, 거문고와 금이 한국과 중국에서 차지하는 문화적인 위치가 비슷해 혼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옛 기록에서 거문고, 가야금 등의 현악기를 가리킬 때 그냥 '금(琴)'이라고만 쓰는 경우도 적지 않다. 대부분은 앞뒤 문맥에 의해 무슨 악기를 말하는지 알 수 있다. 분명하지 않고 혼란스러울 때도 있는데, 앞뒤 맥락이나 그 시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해석해야 한다. 김봉규<문화전문 칼럼니스트> bg4290@naver.com중국 청나라 선양고궁(瀋陽古宮)에서 궁정악기로 사용하던 흑칠(黑漆) 칠현금. 건륭 8년(1743년) 제작, 길이 101.2㎝. '금합자보(琴合字譜)'에 실린 거문고 그림. 금합자보는 16세기 문신이자 음악이론가인 안상이 1572년에 편찬한 거문고 악보이다. 김봉규 (문화전문 칼럼니스트)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오마카세 (1) 전문 셰프가 준비한 나만을 위한 테이블
그런 날이 있다. 고단한 하루, 퇴근 후 혼자 맛있는 음식에 맥주 한 잔을 걸치고 싶은 날. 고생한 나에게 주는 보상이랄까. 맥주 값까지 합하면 한 끼에 몇만 원을 호가하지만 이상하게 아깝지 않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되니까.가끔 근사한 식당에 가거나 이색 음식을 먹을 땐 단순히 음식만 즐기지 않는다. 이 특별한 경험을 기록하고 남들과 공유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 감성적인 인테리어나 예쁜 공간이 있으면 그것도 함께 찍는다. 식사가 끝나면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찍은 사진을 올리며 지인들과 소통한다.이제 소비자들은 식당을 고를 때 음식의 맛과 가격만 고려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 대접받는 느낌이 드는 레스토랑에 방문하는 등 서비스의 질까지 중시하는 이들도 나온다. 젊은 세대에서는 SNS에 '인증샷'을 남기기 위해 인테리어가 예쁜 식당을 찾는 이들도 많다.최근 몇 년간 대중을 깜짝 놀라게 한 F&B 트렌드가 있다. 바로 '오마카세'다. 오마카세는 '맡긴다'는 뜻의 일본어로, 정해진 메뉴가 따로 없이 그날의 음식을 주방장이 알아서 만들어 내놓는 일본식 코스 요리다. 요즘은 코스 요리 식당이란 의미로도 쓰인다. 고급 요리에 속하다 보니 한 끼에 몇십만 원을 호가하는 곳들이 많은데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대부분의 오마카세는 소수의 손님만 받아 예약이 필순데, 찾는 이들이 상당히 많아 '스강신청'이란 신조어도 등장했다. 오마카세 중에는 스시를 메인으로 한 곳이 많은데, '스강신청'은 스시와 수강신청을 붙인 단어로 대학 수강신청만큼 오마카세 예약 경쟁이 치열해졌다는 의미다.더 놀라운 건 오마카세 열풍이 MZ세대(1980년대~2000년대 초반 출생) 사이에서 거세다는 점이다. 수입이 비교적 적은 세대에서 비싼 식당이 인기를 끄는 현상이 아이러니하다. 이들은 회식 장소로도 선호했다. 캐치가 지난해 12월 Z세대 2천6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들이 선호하는 회식유형은 '딱 1시간만 진행하는 간단한 회식'이 33%로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다음으로 '오마카세·와인바 등 맛집 회식'(30%)이 근소한 차이로 2위를 차지했다.하지만 오마카세 열풍은 금방 끝날 것 같았다. 지난해 9월 한국은행의 '소비자동향조사'에 따르면 소비자심리지수는 전월 대비 3.4포인트 하락한 99.7을 기록했다. 주 메뉴로 스시가 많은 특성상 같은 해 8월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도 수산물 소비에 영향을 미쳐 오마카세는 금방 사라질 것으로 보였다.하지만 이를 대신하는 듯 비교적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오마카세가 곳곳에서 등장하면서 오마카세 인기는 식지 않고 있다. 식사보다 부담이 적은 카페·디저트 전문점·찻집 등 다양한 업종으로 확대되는 분위기다. 대구 곳곳에도 다양한 이색 오마카세가 등장하고 있다. 디저트 오마카세에 방문하기 위해 포털에 '대구 디저트 오마카세'란 키워드를 검색하니 여덟 곳이 떴다.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오마카세가 꾸준히 사랑 받는 이유는 뭘까. 특히 지갑이 얇은 젊은 세대에서 인기를 끄는 이유가 궁금해 기자가 직접 식사 오마카세에 가봤다. 또 최근 등장하는 이색 오마카세들도 함께 살펴봤다. 이를 바탕으로 고물가 시대에 '가심비(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도)'를 채울 수 있는 대구 오마카세 몇 곳도 소개한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오마카세 〈게티이미지뱅크〉
[주말&여행] 전남 곡성 섬진강 침실습지, 물안개·일출·동악산 노을…침실습지 10경 황홀하구나
가자 나의 침실로, 가자. 상화의 시를 중얼대며 침실로 간다. '아, 어린애 가슴처럼 세월 모르는 나의 침실로 가자, 아름답고 오랜 거기로.' 그러나 설마 그 침실이 이 침실이겠어? 하는 생각을 한다. 곡성읍으로 향하는 메타세쿼이아 길을 지나고 한산한 섬진강 기차마을을 지나 오곡면 오지마을의 흙돌담 길 따라 강변으로 간다. 기차마을의 예쁜 기차가 눈앞을 천천히 지나간다. 굴다리 지나 제방 아래 주차장이 넓다. 설마 이 침실이 그 침실이겠어? 잠길 침(沈)에 집 실(室)이면 딱 맞춤이겠네. 제방으로 오른다. 섬진강이다. 습지다. 침실습지다. 침실(寢室). 세상에, 그 침실이 맞다. ◆침실습지곡성읍 곡성천이 섬진강으로 흘러든다. 오곡면 오곡천이 섬진강으로 흘러들고, 강 건너 고달면 고달천이 또 그렇게 섬진강이 된다. 세 개의 천은 어찌 예서 만나기로 했을까. 침실습지는 그들이 한데 만나는 길목에 넓게 형성된 하천습지다. 면적은 203만㎡(약 61만5천평)로 남원의 요천, 수지천과 합류하는 곳부터 오지리 끝자락까지 엄청난 규모로 펼쳐져 있다. 침실은 오지리 남쪽의 침곡(寢谷)에서 온 이름이다. 옛날 유씨(柳氏) 선산에 묘를 쓰던 중 침혈(寢穴)의 명당이 나타나 '침실'이라 했고 후에 침곡이라 개칭했다고 한다. 침실은 '산과 강으로 둘러싸여 편안한 잠을 이룰 수 있는 명당'이라는 뜻이다. 옛 이름이 오늘에 이르러 뜻대로 안착한 듯하다. 데크 길이 오지리 제방에서 곡성천을 건너 곡성읍 신리로 이어진다. 버드나무 줄기가 제법 윤기를 띠기 시작했고 주변 습지에는 푸릇한 기운이 퍼져 있다. 저 길을 걷고자 했건만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며칠 지난하게 내린 비 때문일 것이다.강폭이 제법 넓다. 섬진강은 원래 물이 많은 강이었다. 본래 이름이 '모래내' 또는 '다사강'이었을 만큼 모래밭도 넓었다. 섬진강댐과 동화댐 등이 들어서면서 물길이 막혔다. 저장된 물은 김제평야의 농업용수나 섬진강 주변지역의 상수도 용수로 쓰이면서 하천을 유지하는 강의 수량은 줄었다. 강물이 줄어들다 보니 강변은 이렇게 습지가 되었다. 지금 침실습지는 국가보호습지다. 가끔씩은 노루도 뛰어다니고 버드나무와 갈대 무성한 강변 초원에는 수달과 삵, 남생이 같은 귀한 야생동물이 산다. 이 외에도 흰꼬리수리를 비롯해 새매, 큰말똥가리 등 665종의 생물이 서식하는 것으로 확인된다. 마을 사람들이 무시로 다니는 동네 습지가 보호종으로 지정된 야생동물의 터전이다. 국내 하천습지 중 가장 많은 한국 고유어종이 서식하는 곳이기도 하단다. 그래서 사람들은 침실습지를 '섬진강의 무릉도원'이라 부른다. 침실습지는 빼어난 풍경과 생물 다양성을 인정받아 2016년 11월, 강 중류 하도습지로는 유일하게 환경부로부터 22번째 국가습지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 ◆침실습지 10경, 상선약수 퐁퐁다리무지개를 건넌다. 오곡천 습지를 가로지르는 침실목교다. 훌쩍 높지만 오곡천 하상의 모래가 일렁일렁 환하다. 섬진강 건너 동쪽은 고달면 고달리다. 고달리와 오지리를 연결하는 납작한 다리가 놓여 있다. 침실습지에서 가장 인기가 많다는 '퐁퐁다리'다. 100m 정도 되는 철제 다리로 상판에 구멍이 퐁퐁 나 있어 강물이 불면 구멍을 통해 물이 퐁퐁 올라온다. 홍수가 져서 물이 세차게 흘러도 다리가 떠내려가지 않는 것은 다리에 구멍을 퐁퐁 뚫은 부력 때문이라고 한다. 원래 이름은 '고달리 잠수교'다. 고달리 주민들이 빠르게 읍내로 나갈 수 있는 통로로 사람도 다니고 자전거와 오토바이도 다닌다. 침실습지에는 10경이 있다. 1경은 '침실습지 일출', 3경은 침실습지를 옆에 끼고 둑방길을 걷는 '묵언명상 강변길', 4경은 '바람공장 자전거길'로 '섬진강 종주 자전거길'의 일부분이다. 5경은 '호락산 흰꼬리수리길'로 침실습지 동쪽에 위치한 호락산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6경은 '동산정 팽나무'로 마을을 지켜온 노거수, 7경은 '황홀채색 동악산 노을'로 곡성읍을 든든하게 뒷받침하고 있는 동악산 너머로 해가 지는 모습이다. 8경은 '청강속살 달뿌리풀 군락'으로 침실습지의 급류에도 목숨 줄 질기게 달뿌리풀이 군락으로 피어나는 모습이다. 9경은 '생명보고 황새밥상'이다. 과거 넓게 펼쳐져 있던 모래밭과 버드나무 군락을 일컫는 말로 세월의 흐름에 모래는 하류로 많이 흘러가 지금은 하동을 지나는 섬진강변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다. 10경은 '침실습지 상고대'로 쉽게 관찰되지는 않는다. 한겨울 일교차가 심한 날, 안개가 자욱하게 덮이고 때마침 지나가는 동장군이 온도를 영하 이하로 빠르게 떨어뜨리는 순간, 안개 속 작은 물방울이 버드나무 군락에 그대로 얼어붙는다. 침실습지 2경이 '상선약수 퐁퐁다리'다. 상선약수(上善若水)는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는 뜻이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로 '최상의 것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서로 다투지 아니한다. 뭇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처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므로 도에 가깝다'라는 의미다. 퐁퐁다리는 '물멍'하기 좋은 곳으로 이름나 있다. 아예 드러누워 물소리와 함께 흘러도 좋겠다. 생각만 해도 좋은 걸. ◆안개와 노을의 정원, 연하원퐁퐁다리가 내려다보이는 제방 이편에 둥그런 새집 하나 앉힌 전망대가 있다. '생명의 나무'라는 전망대다. 주변으로 연못과 정자 등이 보인다. 침실습지 수변공원을 조성하는 중이라 한다. 완공은 2022년 혹은 2023년 이랬는데 이제 곧 개장할 것 같은 태세다. 전망대를 비롯해 방문자 센터, 체험 및 관찰습지, 탐조대, 생태 놀이공간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숲과 들, 습지, 화원 등 전통 경관을 극대화한 산책로도 만들고 계절 별로 다양한 식물을 체험할 수 있는 수련지와 창포원도 만들어진다. 침실습지 수변공원의 테마는 연하일휘(煙霞日輝)다. 안개와 노을과 햇살이 빛난다는 뜻으로 계절에 따라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자연 경치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세상에 스스로 존재하고 저절로 이루어지는 천연의 경관에 대한 감탄의 말이다. '연하원'이라는 이름이 관목으로 조각되어 있다. 안개와 노을의 정원이다. 물안개는 4월에서 6월 사이 또는 9월과 11월 사이 일출을 전후해 많이 피어오른다고 한다. 오는 내내 지리산마저 지워버린 비구름을 보았기에 약간의 기대와 설렘이 있었지만 초봄의 한낮에 물안개를 볼 수는 없었다. 침실습지는 2021~2022 한국관광공사가 봄 시즌 안심관광지로 선정한 24선 중 한 곳이다. 연두로 빛나는 완연한 봄날에,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봄날의 이른 아침에, 침실로 오시라. '아, 안개가 사라지기 전으로 네가 와야지. 나의 아씨여, 너를 부른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 Tip대구에서 광주대구고속도로 남원방향으로 간다. 남원 분기점에서 순천완주 고속도로 순천방향으로 가다 서남원IC로 나간다. 순천방향 17번 국도를 타고 가다 곡성읍으로 나가 섬진강 기차마을 쪽으로 간다. 기차마을 앞을 지나 조금 가면 오곡면사무소가 나오는데 조금 더 직진하면 왼편에 GS25 편의점이 있다. 편의점을 끼고 좌회전해 오지8길 따라 직진, 오동교 앞에서 좌회전해 700m 정도 가면 침실습지 주차장이 위치한다. 주차는 무료다. 곡성, 오곡, 고달천이 합해진 섬진강은 침곡리에서 침곡천을 만나 청둥오리 모가지 빛깔의 압록으로, 또 구례로, 하동으로 간다. 그 길 따라 내리 걸어도 좋겠다. 침곡리 맞은편은 고달면 호곡리다. 호곡나루에 동동 뜬 줄 배를 볼 수도 있다.데크 길이 오지리 제방에서 곡성천을 건너 곡성읍 신리로 이어진다. 버드나무 줄기가 제법 윤기를 띠기 시작했고 침실습지 전역에 푸릇한 기운이 퍼져 있다.고달리와 오지리를 연결하는 퐁퐁다리. 상판에 구멍이 퐁퐁 나 있어 '퐁퐁다리'다.'생명의 나무' 전망대. 주변으로 방문자 센터, 체험 및 관찰습지, 탐조대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침실습지 수변공원에 자리한 '연하원'. 안개와 노을의 정원이다.
[세계를 보는 창] 쪼그라드는 경제대국, 日 '엔저 역풍'에 소비 감소… 경기 침체 수렁
현재 일본은 수출의 증가와 외국인 여행객의 증가라는 엔(円)저 현상의 장점보다 소비·투자의 감소라는 엔저 현상의 단점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는 형국이다. 일본의 실질 국내총생산은 지난해 상반기 증가를 기록하자마자 3분기에 바로 감소세로 돌아섰다. 이렇듯 일본 엔화의 평가절하로 인한 수입품의 가격 상승, 이로 인한 물가·비용의 상승과 소비·투자의 감소라는 단점이 더욱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는 애초에 국내총생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한 국가의 경제적 기반이라고 볼 수 있는 소비·투자가 탄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엔저로 원자잿값 상승하며 기업투자 감소연공서열에 젊은층 저임금 개인소비 '뚝'기시다 총리 경제대책 '성장·분배 호순환''젊은층 과감한 금전 지원' 빠져 효과 없어그렇다면 일본의 경제적 기반을 탄탄하지 않게 만드는 원인은 무엇인지, 이에 대한 해결책은 있는지, 또한 현재 세계 3위인 일본의 경제 규모가 앞으로 어떻게 변화되어 갈지 한 번 알아보자. 일본 내각부가 지난해 발표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실질 국내총생산 기준 2023년 3분기 일본 경제성장률은 전기 대비 마이너스 0.5%를 기록하면서 두 분기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일본의 실질 국내총생산이 감소한 배경에는 개인소비의 위축과 기업투자의 부진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우선 기업투자가 감소한 원인으로 엔저 현상에 따른 원자재 가격의 상승 등 비용 부담이 꼽힌다. 또 개인소비가 줄어든 데는 공급 감소에 따른 물가 상승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여기서 주목하여야 할 부분은 일본 국내총생산의 55%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개인소비 감소다. 개인소비가 감소한 이유는 연령에 따른 임금 격차라는 출산율의 감소와 고령화로 이어지는 일본 노동시장의 문제가 배경에 깔리고 있다. ◆낮은 임금에 시달리는 일본의 젊은 층일본 기업들은 1991년 부동산 버블이 붕괴한 이래 장기 불황을 겪으면서 종신고용과 연공서열이라는 색채가 많이 옅어지고 있다. 하지만 종신고용과 연공서열은 일본 기업들 속에서 여전히 관행으로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이에 따라 종신고용을 하는 일본 기업들은 위기 상황에 대비해 직원들에게 임금을 적게 주고 있다. 이와 함께 장기 불황과 엔고 현상으로 인한 디플레이션으로 일본 기업들은 비용 상승을 쉽게 가격으로 전가하지 못했고, 비정규직의 증가도 한몫하며 젊은 층의 임금은 오늘날까지도 유난히 낮은 편이다.일본 후생노동성이 지난해 3월에 발표한 '임금구조 기본 통계조사'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만20~24세 일본인의 월급은 21만 8천500엔(약 191만 원)에 그쳤고, 만25~29세의 월급도 25만 1천200엔(약 220만원) 수준에 머물러 있다. 2013년부터 오르기 시작한 맨션의 가격은 2022년 기준 한 채당 평균 5천121만엔(약 4억 5천만원)을 기록했는데 이는 일본의 젊은 노동자가 20대 동안 일을 해 번 돈을 모두 저축해도 구매할 수 없는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이다.맞벌이를 통해서 가정을 이루려 해도 성별에 따른 임금 격차로 인해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남성은 연령이 올라갈수록 그나마 임금이 올라가지만 여성의 경우 연령이 올라가도 임금의 상승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임금구조 기본 통계조사'에 따르면, 남성과 여성 모두 만55~59세에 가장 높은 월급을 받게 되는데 남성의 경우 월급이 41만 6천500엔(약 364만원)이었던 반면 여성은 28만엔(약 245만원)에 그쳤다. 임금 격차와 함께 직장 내 보이지 않는 연령·성별에 따른 차별까지 고려한다면 문제는 한층 더 심각해진다. 한마디로 노동시장에서의 연령·성별 등에 따른 임금 격차와 차별로 인해 일본은 출산율의 감소와 고령화가 만연한 국가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출산율의 감소와 고령화는 자연스레 소비의 감소로 이어지고 현재까지 일본의 경제성장률을 끌어내리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기시다 총리의 대책…아베 전 총리의 복사판?그렇다면 현재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어떤 해결책을 내놓고 있을까. 기시다 총리의 경제 대책의 큰 틀은 '성장과 분배의 호(好)순환'이다. 여기서 분배란 임금의 상승을 말한다. 임금의 상승을 통해 소비자들의 구매력을 상승시키고 소비자들의 구매력의 상승을 통해 물가를 적절하게 상승시키고 물가의 적절한 상승을 통해 기업의 실적 강화와 기업의 신규 투자를 끌어내고 이것이 또다시 임금의 상승으로 이어지는 호순환을 말하는 것이다. 첫 단추인 임금의 상승을 제대로 꿰기 위해 기시다 총리는 일정 수준 이상의 임금 인상을 단행한 기업에 법인세를 감세해 주는 등 각종 혜택을 주고 적자에 시달리는 중소·영세기업도 임금의 인상을 단행할 수 있도록 이월공제조치 등 각종 대책을 펼치고 있다.하지만 기시다 총리가 시행하고 있는 경제 대책은 대부분 과거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시행했던 대책이다. 아베 전 총리의 경제 대책이 분배는 없고 성장만 있는 것처럼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아베 전 총리 집권 2기(2012~2020년) 때의 경제 대책으로는 2013년에 발표한 '3개의 화살(대담한 통화정책, 기동적 재정정책, 민간투자를 환기하는 성장전략)'도 있지만 이어 2015년에 발표한 '신 3개의 화살(희망을 만들어내는 강한 경제, 꿈을 잇는 아이 키우기 지원, 안심되는 사회보장)'도 있다. 그리고 '신 3개의 화살'에 이미 '임금의 인상과 수요의 확대를 통한 성장과 분배의 호순환'이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임금을 인상하는 방법 또한 임금의 인상에 적극적인 기업에 세액공제를 해 주는 등 기시다 총리와 유사한 방법이다. 그러나 아베 전 총리의 경제 대책으로 임금은 크게 오르지 않았고 일본의 경제성장률 반등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기시다 총리는 '연공서열의 타파'나 '젊은 층에 대한 과감한 금전적 지원' 등이 빠진 이미 한 번 실패한 경제 대책을 되풀이하고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성장뿐만 아니라 분배도 있고 성장보다 분배를 우선시한다는 구호만이 새롭게 등장한 것이다. 이와 더불어, 저출산 대책에 있어서는 저출산 대책 자체가 어디까지나 사후 대책인 측면이 있고, 기시다 총리가 시행 중인 저출산 대책(조건 없는 보육원 입소와 유아 무상교육의 확대 등) 또한 아베 전 총리의 저출산 대책(보육원의 확대와 유아 무상교육의 확대 등)처럼 젊은 층이 출산에 대한 생각을 바꿀 만큼 매력적인 것이 아니기에 저출산 대책을 통한 출산율의 반등 또한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아베 전 총리 집권 때처럼 기시다 총리의 집권 때도 경제성장률의 반등은 크게 없을 것으로 보이고 국내총생산의 축소 경향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국제통화기금은 지난 10월 2023년 일본의 명목 국내총생산이 독일에 역전돼 세계 4위로 한 계단 내려갈 것으로 전망했다. 2023년 일본의 명목 국내총생산은 전년보다 0.2% 감소한 4조2천308억달러로 예상되지만, 얼마 전에 발표된 2023년 독일의 명목 국내총생산은 4조5천억달러 수준으로 일본을 웃돌 거라는 것이다. 엔저 현상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일본 국내총생산의 수량 자체가 감소한 것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은 2010년 중국에 밀려 3위가 된 데 이어, 이제 독일에 밀려 4위가 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국제통화기금은 2026년에는 올해 세계 1위의 인구 대국이 된 인도의 명목 국내총생산이 3위로 오르면서 일본은 5위로 주저앉을 것이라고도 전망한 바 있다. 마찬가지로 젊은 층의 빈곤으로 일본보다 더욱 극심한 출산율의 감소와 고령화가 진행 중인 한국의 입장에서 일본의 현재 상황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정민욱 경북 수출지원 해외 서포터스(일본)대구 수성구 대구은행 본점 영업부 행원이 환전을 위해 엔화를 세고 있다.
[김남희의 그림 에세이] 자화상에 깃든 두 화가의 삶·예술
"보는 순간 깜짝 놀랐어. 섬뜩했거든."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1668~1715)의 '자화상'을 본 동생의 말이다. 대부분의 반응이 비슷하다. 윤두서가 사람을 꿰뚫어 보는 듯한 '자화상' 한 점에 인생을 압축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네덜란드의 화가 렘브란트 판 레인(Rembrandt van Rijn, 1606~1669)은 100여 점의 자화상에 파란 많은 인생사를 파노라마처럼 기록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대구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렘브란트의 자화상('렘브란트, 17세기의 사진가'전)을 보다가 윤두서의 자화상이 떠올랐다. 17세기 동양과 서양에서 살았던 두 화가의 자화상은 드라마 같은 내면세계를 짚어보고, 동서양 그림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기도 하다.◆윤두서 자화상 속의 그늘윤두서는 가사문학의 대가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1587~1671)의 증손자이며,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의 외증조 할아버지다. 남인 계열의 실학사상을 실천한 사대부로 친가와 외가 모두 출중한 가문이었다. 16세에 결혼을 하고, 22세에 부인이 세상을 떠난다. 둘째 부인을 맞이한다. 26세에 진사시에 합격하지만 집안의 흉사는 끊이지 않는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가 세상을 뜬다. 세상은 암흑이었다. 당시 서인세력이 정치를 장악하던 시절 남인의 출세 길은 봉쇄되었다.그의 나이 45세에 양어머니마저 타계하자 서울에서 해남으로 낙향한다. 처절함 속에서 '자화상'을 완성한다. 믿었던 큰 형이 죽자 그의 머리카락은 반백이 되었고, 피부 질환으로 건강이 악화되었다. 낙향한 지 3년 만에 48세로 세상을 떠난다.윤두서는 17세기 남종문인화풍이 유행하던 시절 서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화단에 선보인 선비화가였다. 시와 글씨, 그림에 두루 재능을 갖춘 학자로 해남 윤씨의 종손으로 대부호인 가문을 이끌며 학문에 전념하였다. 중국에서 발간한 '화보(畵譜)'를 보고 그림을 익혔다. 마구간에서 하루종일 말을 보고 관찰하여 스케치한 후 작품을 완성하고, 머슴을 모델로 미세한 표정까지 스케치하며 기량을 닦았다. 밭갈이 하는 농부, 나물 캐는 아낙, 돌 깨는 석공, 짚신 삼는 농부 등 농사를 짓거나 아낙네가 일하는 모습을 그렸다. 인물 동작은 자연스럽고 얼굴표정은 세심했다.◆렘브란트 자화상의 빛과 그림자렘브란트는 네덜란드에 있는 대학의 도시 레이덴에서 부유한 제분업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레이덴 대학에 입학했으나 화가가 되기 위해서 25세에 암스테르담으로 간다. 17세기 경제의 활성화로 부를 축적한 상인들이 저마다 자신의 초상화를 원했고, 렘브란트에게 초상화 주문이 밀려들었다. 뛰어난 기량으로 명성과 경제력을 얻었다. 1634년 28세에 부유한 집안의 사스키아와 결혼한다. 고급 주택을 구입하여 미술품과 골동품을 수집하고 화려한 삶을 만끽했다. 앞길은 탄탄대로였다.렘브란트는 정형화된 초상화에 변화를 시도한다. 모델의 꾸며진 외모를 탈피하고 내면세계를 표현하는 데 주력했다. 아름답게 꾸며줄 초상화를 기대했던 주문자들은 곧 실망하고 만다. 점차 초상화 주문이 줄어들었고, 경제 사정은 어려워졌다. 1642년에 제작한 집단 초상화인 '야경' 또한 주문자에게 외면을 받는다. 설상가상 아내 사스키아마저 사망한다.그럼에도 여전히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며 골동품과 작품을 사 모았다. 빚이 늘어서, 결국 1656년 50세에 파산한다. 집과 수집품들은 경매에 넘어갔다. 다행히 두 번째 아내를 만나 몰락의 경지에서 벗어났지만 불행은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두 번째 아내와 아들이 세상을 떠났고, 다시 가난에 시달렸다. 그는 몇 벌의 헌 옷과 그림 도구만 남긴 채 63세에 생을 마감한다.서민을 주로 그린 선비화가 윤두서출중한 실력 발휘 못한 아픔 담아완벽한 얼굴모습 철저한 삶 대변가족 죽음과 파산 후 그림에 전념렘브란트 100여점 내면세계 기록자화상, 그들의 인생 압축한 자서전렘브란트는 생전에 회화 300점, 동판화 300점, 드로잉 2천점을 남겼다. 그중 100여 점의 자화상이 있는데, 회화 40여 점과 판화 40여 점이다. 그의 초상화는 빛과 어둠을 대비시킨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 기법을 사용하여 극적 대비효과를 표현했다. 렘브란트는 빛과 그림자를 이용한 인물 그림으로 대중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는 판화가 유행했는데, 렘브란트는 유화 못지않게 정교한 에칭기법을 사용한 동판화로도 인정을 받았다.1630년에 그린 '모자를 쓰고 웃는 자화상'은 오른쪽에서 밝은 빛을 받아 명랑한 얼굴이고, '소리치는 듯 입을 벌린 자화상'은 얼굴을 찡그린 표정을 짓고 있다. 머리카락은 거칠고 자유롭다. '부드러운 모자를 쓴 자화상'(1634)은 맑은 눈빛에 정면을 바라보는 미소년의 얼굴이 인상적이다. 1636년에 제작한 '사스키아와 함께 있는 자화상'은 렘브란트가 아내 사스키아를 스케치하다가 정면을 바라보는 장면이다. 부드러운 필치가 섬세하고 정교하다. 아내와 함께 취한 포즈로 단란한 한때를 보여준다. 반면에 '돌난간에 기대어 있는 자화상'(1639)은 눈빛이 예리하고 강렬하다. 부드러운 머리카락과 흑백의 대비가 돋보인다. 그는 인물화에 빛과 그림자를 사용하여 입체감과 미묘한 표정, 자연스러운 포즈로 내면의 세계를 우러나게 했다.◆자화상으로 본 동·서양화의 세계윤두서의 호 공재는 '삼가고 조심한다'는 뜻으로 그의 '자화상'과 오버랩된다. '자화상'은 윤두서의 임종게송(臨終偈頌)이 되어 영원히 살아 울림을 준다. 밝은 색채의 얼굴에 반듯한 이마, 꼬리를 올린 수려한 눈썹이 범상하다. 쌍꺼풀에 또렷한 눈망울이 투명하다 못해 감상자가 빠져들 것만 같다. 둥근 콧방울이 중심을 잡고, 입술을 덮은 수염이 근엄하다. 출중한 기세를 펼치지 못한 시대의 아픔을 한 올 한 올 수염으로 빼곡하게 눌러 그렸다. 완벽한 얼굴모습은 철저한 그의 삶을 보는 듯하다.동양화는 사물을 그대로 표현한다. 빛의 영향을 받지 않아 그림자가 없다. 붓으로 선의 강약을 조절하여 외형을 그리고 먹의 농담으로 표현한다. 사물을 화면 가득 채우는 것이 아니라 적절하게 여백을 두어 그림을 완성하였다. 여백은 상상의 공간이었다. 동양화는 화가의 기운을 불어넣어 생동하게 만든다. 바로 기운생동(氣韻生動)이다. 초상화는 그 사람의 인품과 성격, 정신을 표현하는 것으로, '전신(傳神)'이 가장 중요하다. 윤두서의 '자화상'은 전신이 살아있는 작품이다. 그는 서양의 음영법을 받아들여 정물화를 그렸던 만큼 '자화상'에도 서양화법을 구사하여 묘사가 사실적이다.렘브란트의 '63세의 자화상'은 1669년에 유화로 그린 마지막 자화상이다. 무늬가 없는 단색의 모자를 쓰고 주름진 얼굴에 밝은 눈빛이 초연하다. 죽기 전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듯 모든 것을 초월한 듯한 표정이다. 서양화는 빛과 그림자를 사용하여 사물을 입체적으로 그린다. 동양화처럼 한 번의 필획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두껍게 덧칠하며 천천히 표현한다. 서양화임에도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전신'의 느낌이 묻어난다.◆자화상으로 쓴 자서전동양과 서양의 두 화가에게 그림은 인생의 무게를 지탱해준 빛이었다. 순탄한 삶이 어디 있으랴만 질병과 죽음은 그들의 삶을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부와 학식을 갖춘 윤두서는 연이은 흉사에 오로지 그림으로 위로를 받았다. 젊은 시절부터 부와 명성을 거머쥔 렘브란트 역시 가족의 죽음으로 생활이 순탄치는 않았다. 마지막엔 파산을 겪고, 오롯이 그림에 전념하며 화가로서 생의 마침표를 찍는다. 그들의 자화상은 곧 자서전이었다.윤두서, '자화상', 종이에 엷은 색, 38.5×20.5㎝, 18세기 초, 해남 녹우당 소장(왼쪽), 렘브란트 판 레인, '돌난간에 기대어 있는 자화상', 에칭 20.5×16.4㎝, 1639렘브란트 판 레인, '사스키아와 함께 있는 자화상', 에칭 10.4×9.5㎝, 1636김남희 (화가)
전국 주목 받은 작품 다수 공개…"조합원 참여 운영 5개"
55개 좌석수 따라 명명…대구 최초·유일 독립영화전용관작년 멀티플렉스 극장급 좌석 교체관객 '33다방'서 삼삼오오 모여 소통2015년 2월 개관한 오오극장(대표 손영득)은 대구 최초·유일 독립영화전용관이다. 서울 4곳을 제외하면 전국에서도 최초다. 대구 중구 곽병원 인근에 위치하며 상영관의 좌석 수가 55개(일반 좌석 51개, 휠체어 좌석 4개)인데 착안해 '오오'극장이란 이름이 됐다.대기업 위주의 멀티플렉스 극장이 극장문화를 점령한 상황에서 오오극장은 영화문화의 다양성 확대와 영상 창작 활성화를 목표로 하며 극장 상영의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은 한국 독립영화를 소개한다. 독립영화는 일반 상업 영화의 체계, 영화의 제작·배급·선전을 통제하는 주요 제작사의 소수 독점의 관행으로부터 벗어나 제작된 영화다. 당시 대구 독립영화에 갈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사>대구민예총, 대구경북독립영화협회, 미디어핀다 이상 3주체가 시민들의 모금을 통해 설립했다. 개관 이후에는 대구경북영화영상협동조합이라는 별도의 단체를 만들어 극장의 운영권을 넘겼다. 협동조합에는 관객, 영화제작자, 영화정책관련자, 문화활동가, 시민단체활동가 등이 소속돼 있으며 현재 총 39명의 조합원이 극장 운영에 참여하고 있다.독립영화전용관은 영화비디오법 제38조에 따라 독립·예술영화와 애니메이션 영화를 연간 상영일수의 60% 이상 상영해야 한다는 지원 자격을 둔다. 오오극장은 관객의 요청과 프로그램의 다양성 보장을 위해 대구 독립영화를 포함한 한국 독립영화를 70% 이상 개봉한다. 개봉작으로 선정된 작품의 상영 기간은 최소 2주, 14회 상영 보장을 원칙으로 한다. 매년 약 70편, 개관 이래 현재까지 총 600편 이상의 작품을 상영했다. 김현정 감독의 '나만 없는 집'(2017), 유지영 감독의 '수성못'(2018), '나의 피투성이 연인'(2023), 장병기 감독의 '맥북이면 다 되지요'(2017) 등 전국적으로 주목 받은 대구 독립영화도 다수 공개했다.'관객 프로그래머' 선정작 감독·배우와의 대화 마련미개봉작 20명 요청시영화관이 수급·상영도오오극장은 지역민들의 후원으로 탄생한 역사에 걸맞게 관객과의 소통을 위한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먼저 대구에서 개봉되지 않거나 개봉 시기가 지난 독립영화를 20명 이상이 요청하면 영화를 수급·상영한다. 2022년부터는 관객 모임인 '오오프렌즈'를 신설해 관객들이 영화를 함께 관람하고 감상평을 나눌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자체 기획전도 다채롭게 연다. 관객이 직접 프로그래머가 되는 '관객 프로그래머' 제도로 '관객 프로그래머 초이스!'를 개최해 매달 한 명의 관객 프로그래머가 미개봉 한국 독립영화 중 한 작품을 선정해 상영하고 GV(감독·배우와의 대화)를 진행한다.영화인에 한정하지 않고 작가, 뮤지션 등 다양한 아티스트가 영화를 매개로 대화를 나누는 자리도 마련한다. '영화를 보다가 생각한 것들'은 아티스트가 자신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거나 영화나 중요한 순간에 관람한 영화를 선정해 함께 보고 개인의 이야기, 관심사, 삶의 태도 등을 공유하는 프로그램이다. 2018년 래퍼 슬릭을 시작으로 독립출판 제작자 가랑비메이커, 전고운 감독, 송재경 뮤지션, 무과수 작가 등이 함께했다.매년 연말에는 '대구독립영화 연말정산' 특별전을 선보여 한 해 동안 대구에서 제작된 독립영화를 한자리에 모아 상영한다. 2015년 '대구독립영화 쇼케이스'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대구 독립영화의 활약에 힘입어 2017년부터 '대구독립영화 연말정산'이란 이름으로 확대 편성돼 대구지역 영화인을 위한 축제의 장으로 거듭났다.최근에는 개관 9주년을 맞아 지난 17~18일 9주년 기념 특별전을 열었다. 올해 독립영화 기대작으로 손꼽히는 미개봉 신작 3편, 화제의 단편영화 3편을 선보였다. 또 '왜 영화를 만드는가'라는 질문에 감독이 직접 답하는 '일과 영화' 강연도 진행했다. 서울국제영화제 '박남옥상' 수상자 장윤미 감독이 강연자로 나서 8편의 장·단편 다큐멘터리를 연출하며 느낀 것들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관객들과 나누기도 했다.팬데믹 후 입장객 줄어…지역영화 활성화 예산 삭감 '고민'대구 독립영화 인재풀 축소 우려 속기획전·커뮤니티 확대 자구책 모색 코로나19 이후 극장을 찾는 사람이 줄어 고심이 깊다. 오오극장 노혜진 홍보팀장은 "코로나 전에는 연 관객 수가 1만3천명 정도 됐는데 이후 3분의 1 정도가 줄어 5천명까지 떨어졌다. 엔데믹 이후 최근에는 상황이 나아져 1만1천명까지 돌아왔지만, 그사이 OTT가 성장하는 등 영화를 관람하는 문화가 바뀌어 완전히 회복하는 건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지역영화 활성화 사업 예산이 전액 삭감된 것도 문제다. 이윤 추구를 최우선 목표로 하는 일반 상업영화와 달리 독립영화는 자본과 배급망에 크게 의존하지 않고 창작자의 의도를 중시한다. 이런 특성으로 영화진흥위원회나 지자체의 지원금을 받아 제작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정부의 감액 기조 영향으로 올해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역영화 활성화 사업 예산이 전액 삭감됐다. △지역 영화문화 활성화 지원사업 8억원 △지역영화 기획개발 및 제작지원 사업 4억원 등 총 12억원의 예산이 줄었다.노 팀장은 "지역 독립영화 제작은 정부의 지원금이 중요한데 지원금이 줄면 당장 제작비를 충당하기 어려워 새로운 영화를 만들려 하는 여러 감독들이 돌아설 것"이라며 "당장 몇 년은 버틴다 하더라도 인재 풀에 공백이 생기는 건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대구 영화를 상영하려 해도 대구에서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고, 이로 인해 수도권과의 문화 격차도 심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이에 오오극장은 작은 극장으로서의 강점을 활용한 생존 플랜을 찾고 있다. 멀티플렉스 극장에선 상대적으로 보기 어려운 지역민들과의 소통을 확대해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나려 하고 있다. 노 팀장은 "다양한 영화를 소개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지역 영화문화 활성화를 위해 올해 영화 소모임들을 늘릴 계획"이라며 "지역 커뮤니티와 공동 기획전을 확대 추진하고 시민들이 극장이라는 공간을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여러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말했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오오극장에서 '박수연 배우전' GV가 열리고 있다. 오오극장의 관객 프로그래머가 진행을 맡았다. 오오극장에서 아티스트와 관객이 대화를 나누는 '영화를 보다가 생각한 것들'이 진행되고 있다. 오오극장 영화 모임 '오오프렌즈' 관객들이 모임 후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오오극장 내부. 왼쪽 카운터에서 영화표 예매를, 오른쪽 상영관에서 영화를 관람할 수 있다. 오오극장 상영관. 일반 좌석 51개, 휠체어 전용 좌석 4개로 총 55개 좌석이 구비돼 있다.오오극장 입구 오른편 진열대. 극장·영화 관련 책자와 극장에서 제작한 문구 등이 놓여 있다.
노혜진 오오극장 홍보팀장이 말하는 대구 영화 생태계
"GV(감독·배우와의 대화)를 개최하면 감독·배우들이 '대구 오오극장 관객분들이 질문하는 게 날카롭다'는 말을 자주 한다."대구 오오극장 노혜진 홍보팀장은 대구지역 영화 생태계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독립영화를 사랑하는 대구 관객들의 수준이 상당히 높다고 했다.대구 독립영화에 대한 작품성도 자랑했다. '수성못'(2018)으로 이름을 알린 유지영 감독의 '나의 피투성이 연인'(2023)은 관객 수 1만명을 돌파했다. 노 팀장은 "요즘 독립영화는 관객수 1만명을 넘기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유지영 감독의 '나의 피투성이 연인'은 해외에서 상을 받을 정도로 대구에서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잘됐다"고 했다.요즘 독립영화 트렌드는 '여성 서사'다. 대구 영화계에서도 지역에 사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독립영화가 많이 나온다. 그렇다 보니 많은 여성 감독이 활약하고 있는데, 노 팀장은 대구에서 강세가 더욱 두드러진다고 했다. 그는 "독립영화계 전반적으로 여성 감독들이 우세지만 대구는 특히 더 그렇다. 지난해 전국 영화제에 진출한 감독을 보니 한두 명 정도를 제외하고는 모두 여성이었다"고 했다.하지만 지역 독립영화에 대한 지원이 부족해 지역 영화인을 양성하는 제도가 확대되길 바란다고 했다. 그는 "대구에 영상위원회와 영화 관련 학과가 없다 보니 영화를 만드는 인재들이 다른 지역으로 떠나게 된다. 대구영상미디어센터에서 교육기관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충분하진 않다"면서 "대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영화인을 양성할 수 있는 지원이 더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조현희기자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독립영화 천국 대구 오오극장 (1) 대구 독립영화 애호가의 시네마 천국
대구 중구 일대에는 영화관이 유독 많다. 그런데 그중 눈에 띄는 곳이 있다. 롯데시네마 만경관과 곽병원 사이 대충 보면 지나칠 수 있는 건물이 하나 있다. 건물에 붙어 있는 여러 간판 중 1층에 숫자로 적힌 검은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55'라는 숫자 밑에 '오오극장' '독립영화전용관'이라는 텍스트가 보인다. 인근에 있는 롯데시네마, CGV 등과 같은 멀티플렉스 극장은 아닌 듯하다.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이 작은 극장이 궁금해졌다.극장의 이름은 '오오극장'. 상영관의 좌석 수가 55개라 하여 착안한 이름이라 한다. 대구에서 유일한 독립영화전용관이다. 주로 대구의 독립영화들을 상영한다. 건물 입구 왼쪽 벽에는 영화 상영 시간표와 포스터가 붙어 있다. 출입문 위에는 '3355'라는 문구가 담긴 간판이 걸려 있다. 외관은 통유리로 돼 있어 탁 트인 느낌을 주며 안쪽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다. 입구 쪽 투명 유리창에는 방명록이 빼곡하다. '오오극장 너무 좋아요!(금정연)' '오오 고맙습니다(홍진훤)' '언제나 같은 자리에 머물러 주세요!(서보형)' 등의 메시지가 남겨져 있다. 극장은 1개 층, 1개 관으로 꾸려져 있다. 북적북적한 멀티플렉스 극장과는 상반되게 조용하고 아늑하다. 건물 안에 들어서면 "33다방은 11시에 커피로 열어요. 55극장은 23시에 영화로 닫아요"라는 문구가 관객을 반긴다. 입구 왼편에선 '33다방'이란 카페가 운영된다. 아까 출입문 앞에서 봤던 간판의 '3355'란 숫자는 33다방의 '33'과 오오(55)극장의 '55'를 딴 텍스트라 한다.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 나누고 소통하는 공간이라는 의미. 영화 시간 전 테이블에 앉아 음료를 마시며 기다릴 수 있으며 영화 관련 발행물들이 구비돼 있어 잡지 등을 읽을 수도 있다.입구 오른쪽 진열대에는 각종 책자가 놓여 있다. 오오극장 소개, 특별전 작품 설명, 지난해 개봉한 독립영화 아카이브 등 극장과 독립영화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다. 공책, 필통, 마스킹 테이프, 파우치 등 극장에서 만든 문구류도 판매한다.상영관은 입구 정면 가장 안쪽에 자리한다. 비교적 작은 공간이지만 그래서 아늑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상영관 좌석 수는 총 55석으로 일반석 51석, 앞줄 4개 좌석은 휠체어 좌석이다. 일반석은 CGV에서 볼 수 있는 의자와 같다. 지난해 11월 교체한 새것이다. 휠체어 좌석은 휠체어 이동의 편의를 위해 극장 입구부터 상영관까지의 문턱을 최대한 낮췄다고 한다.작고 아늑한 극장. 대형 멀티플렉스 극장만 이용하다 아담한 극장에 오니 둘러볼수록 정겹고 애정이 간다. 그런데 오오극장의 매력은 공간에서 오는 매력에 그치지 않는다. 극장은 2015년 처음 개관해 올해로 9주년을 맞았는데, 그간의 역사와 오오극장만의 다양한 프로그램도 눈길이 간다. 자체 기획전·특별전, 영화 소모임 등 지역 독립영화전용관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독립영화는 재미없을 거란 편견, 어렵고 난해할 거란 인식을 깨부수기라도 하는 듯 다양한 방식으로 관객들과 소통하고 있다.이달은 오오극장이 아홉 번째 생일을 맞는 달이다. 생일 주간을 맞아 오오극장의 지난날들을 돌아보고 극장이 관객과 어떻게 소통하고 있는지 살펴봤다. 더 나아가 극장을 찾는 관객들이 줄어들고 올해 지역영화 활성화 사업 예산이 삭감된 상황에서 오오극장은 어떤 생존 플랜을 모색하고 있는지도 들어봤다. 글·사진=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조민수 배우와 오오극장 관객들이 독립영화 '어른 김장하'를 함께 보고 단체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그래픽=장수현기자영화 '시네마 천국' 토토. 〈영남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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