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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작] 고질라 X 콩: 뉴 엠파이어
감독:애덤 윈가드 출연: 댄 스티븐스·레베카 홀 장르:액션 등급:12세 관람가 몬스터버스 시리즈의 5번째 작품. 전작 '고질라 vs 콩'에서 빅 매치를 벌였던 고질라와 콩이 이번에는 강력한 빌런에 맞서 의기투합한 모습을 보여준다. 전편에서의 전설적 결투 이후 할로우 어스에 남은 콩은 드디어 애타게 찾던 동족을 발견한다. 한편 깊은 동면에 빠졌던 고질라는 알 수 없는 신호로 인해 깨어난다.
[개봉작] 1980
감독: 강승용 출연:강신일·김규리 장르:드라마 등급:12세 관람가 전남도청 뒷골목에서 1980년 5월17일 중국 음식점을 개업한 철수네 가족의 이야기. 지난 연말 천만관객의 신화를 쓴 '서울의 봄'의 무대가 된 12·12 군사반란이 일어난 지 불과 5개월 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개봉작] 조용한 이주
감독: 말레나 최 출연: 반 헤릭슨·코르넬리우스 장르:드라마 등급:12세 관람가열아홉 살 칼은 덴마크의 시골에서 양부모와 함께 조용한 삶을 살고 있다. 양부모는 칼이 언젠가 가족의 농장을 물려받아 가업을 이어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입양아인 칼은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자신이 태어난 한국이라는 나라에 끌리기 시작한다.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개강 봄바람 실종 그늘진 대학 상권(2) 지갑 얇은 학생들, 부담 없는 학생식당 찾는다
고물가 지속에 코로나19 이후 대학 문화도 변화하면서 대학가 상권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엔데믹 이후 일상 복귀로 매출이 돌아올 것으로 기대했지만 가장 손님이 붐비는 개강철에도 학생들의 발걸음이 줄어 '개강 특수'는 옛말이 된 상황이다.학생들 발길 뜸해지자 폐업 가게 늘어작년 4분기 계명대 상가 공실률 1년새 2배'1천원의 아침밥' 지원사업 운영 인기간편하고 저렴한 편의점서 끼니 해결도◆손님 가장 많다는 개강철에도 '한산'지난 14일 낮 12시30분에 찾은 영남대 경산캠퍼스 정문 대학가는 점심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한산한 모습이었다. 인파가 가장 많은 한두 골목을 제외하면 10분 동안 10명도 지나가지 않았다. 영남일보 취재진이 한 식당에 들어가니 20개 테이블 중 4개를 제외하곤 만석이었지만 낮 1시30분이 지난 이후에는 절반 정도가 비었다. 해당 식당을 운영하는 상인 A씨는 "개강철이지만 낮 12시부터 2시까지만 (손님이) 많고 이후에는 별로 없다. 코로나 이전에는 3월이면 저녁에도 붐볐는데 요즘은 점심시간이 아니면 한산하다"면서 "최근 물가 상승으로 음식 가격도 원래 1천원을 올리려 했지만 대학가다 보니 500원만 올렸다. 그래도 손님이 많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인근 식당도 사정이 비슷하다. 상인 황태윤(50)씨는 영남대 원룸촌 작은 골목에서 9년간 식당을 운영하다 지난해 정문쪽으로 가게를 옮겼다. 유동인구가 많아 매출이 크게 늘 것으로 예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황씨는 "작은 골목이나 정문이나 장사가 안되는 건 마찬가지다. 주변 식당들도 대부분 코로나 이전보다 손님이 줄었다고 들었다"고 했다.매출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대학 상권을 떠나는 상인들도 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의 상업용 부동산 임대 동향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2년 4분기 3.4였던 계명대 집합상가 공실률은 지난해 4분기 8.6으로 1년 새 2배 이상 증가했다.◆저렴해도 지출 늘어 절약…학생식당은 인기대학가 식당은 주 소비층이 지갑이 얇은 학생들이다 보니 타 번화가 상권보다 저렴한 편이다. 학생들의 발걸음이 끊길까 봐 식당들도 가격을 크게 올리지 않는 분위기다. 한국소비자원의 참가격 정보서비스에 따르면 외식비 중 자장면 평균 물가는 지난달 기준 대구 6천250원, 경북은 6천원이다. 지난 18일 기준 경북대 인근 중식당의 자장면은 4천500원, 영남대 인근 중식당은 4천원으로 평균 물가보다 각각 1.38배, 1.5배 저렴했다. 또 2019년 2월 자장면 평균 물가는 대구 4천833원, 경북 4천846원으로 5년 새 1천417원, 1천154원 올랐다. 반면 해당 식당들의 2019년 자장면 가격은 두 곳 다 3천500원으로 5년 동안 500~1천원 오르는 데 그쳤다.학생들은 대학가 물가가 저렴한 것은 체감하지만 다른 부문에서 지출이 크게 늘어 평소 식비를 아끼고 있다고 말한다. 경북대 김정은(24)씨는 "학교 인근 식당들은 저렴하지만 다른 동네는 물가가 크게 오른 것 같아 부담이 있다. 동성로에서 약속을 잡고 하루만 놀아도 5만원 이상은 쓴다. 지출을 줄이기 위해 학교에 가는 날만이라도 식비를 아끼고 있다"고 밝혔다. 2019년 99.5였던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해 111.6까지 상승했다.이런 분위기로 그나마 저렴한 학생식당에는 인파가 몰린다. 같은 날 오전 11시30분쯤 찾은 영남대 중앙도서관 앞 학생식당에는 수업이 끝나기도 전부터 학생들이 삼삼오오 들어오고 있었다. 키오스크(무인 정보 단말기) 앞에 음식을 주문하기 위한 학생들이 몰려 출입문 앞까지 줄 서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음식 가격은 대부분 6천원 이하였다. 학생식당 옆에 위치한 편의점에서 끼니를 때우는 이들도 많았다. 이곳에서 만난 영남대 김예진(21)씨는 "캠퍼스 밖으로 나가기 귀찮기도 하고 학생식당이나 편의점에선 대부분 인근 식당보다 저렴하게 식사를 할 수 있다. 맛은 조금 떨어지지만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좋아 자주 찾는다"고 했다.'천원의 아침밥'도 인기다. 천원의 아침밥 사업은 아침 식사 결식률이 높은 청년들이 부담 없이 아침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농식품부가 대학생 1인당 1천원을, 학교가 나머지 부담금을 지원해 학생이 1천원에 아침밥을 먹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단돈 1천원으로 질 높은 식사를 할 수 있어 많게는 하루 500명 이상이 찾는 곳도 있다. 학생들의 반응이 좋아 2022년 49만명분에서 올해 450만명분 규모로 지원 대상과 예산이 확대됐다. 올해 대구지역에서는 △경북대 △계명대 △대구교대 △계명문화대 △대구공업대 △대구과학대 등 6개 대학, 경북지역에서는 △경북도립대 △경일대 △구미대 △금오공대 △대구가톨릭대 △대구대 △대구한의대 △동국대(WISE) △선린대 △안동대 △영남대 △포항공과대 △포항대 △한동대 등 14개 대학이 운영한다. 지난해보다 대구는 2곳, 경북은 1곳이 더 늘었다.비대면 익숙해진 학생들 단체행사 꺼려 술집 매출도 코로나 이전보다 20~30% '뚝'"대학가 활기 찾으려면 MZ 취향 공략 '팝업 스토어' 등 트렌디한 요소 필요"◆단체모임·음주도 안 즐긴다…술집도 조용코로나19 이후 대학 문화가 크게 바뀌면서 술집 등 저녁 시간대 영업하는 가게도 손님이 크게 줄었다. 지난 13일 오후 6시 경북대 북문 앞에는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지만 대학가 술집 골목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그나마 지나가는 학생들마저도 원룸촌으로 향하고 있었다. 취재진이 경북대 북문 대학가에서 술집을 운영하는 상인 5명을 찾은 결과 5명 모두가 코로나 이전보다 매출이 20~30% 감소했다고 밝혔다.이는 코로나 기간 비대면 활동에 익숙해진 대학생들이 대면 모임·단체 행사 등을 꺼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로 인해 기존 '부어라 마셔라' 식의 음주문화도 사그라들면서 주류 소비 감소로도 이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경북대 북문에서 술집을 운영하는 우모(50)씨는 "물가 상승으로 소주 가격을 올리긴 했지만 4천500원으로 다른 술집보단 저렴하다. 그런데도 손님이 많이 줄었다"면서 "주류 가격보다는 대학 문화가 바뀐 게 원인인 듯하다. 술도 많이 안 마시고 서로 어울리는 문화가 많이 줄은 것 같다. 단체 손님 예약도 3월이 지나면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영남대에서 학생회 간부 활동을 하는 김모(24)씨도 "코로나 이후 학생들의 개인주의 문화가 심화된 걸 느끼고 있다. 개강 총회나 학과 모임에 참여하는 학생이 많이 줄었다. 참여하더라도 대부분 밤 11시 전에 해산한다"며 "학과 모임보다는 저학년도 자기 계발, 취업 스펙 쌓기 등 개인 활동에 열중하는 분위기다"라고 말했다.전문가들은 현 상황에서 대학가가 예전처럼 활기를 띠려면 젊은 세대가 좋아할 만한 콘텐츠가 개발돼야 한다고 말한다. 김우혁 인천대 교수(소비자학과)는 "코로나 이후 대학생들에게 비대면 활동이 익숙해지고 대면 모임이 상당히 줄어 상권 상황이 예전으로 돌아가기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존 뻔한 상권에서 MZ세대가 놀고 싶은 장소로 거듭나는 것이 중요하다. 팝업 스토어(신상품 등 특정 제품을 일정 기간 동안만 판매하고 사라지는 매장) 등처럼 젊은 세대 사이에서 인기를 끄는 놀이 요소를 넣는 등의 전략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글·사진=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경일대 학생들이 '천원의 아침밥'을 먹고 있는 모습. 지난 14일 낮 12시 영남대 학생식당. 음식 주문을 위해 키오스크 앞에 줄지어 서 있는 학생들.영남대 학생식당 옆 편의점. 간단한 음식으로 끼니를 떼우는 학생들도 많았다.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개강 봄바람 실종 그늘진 대학 상권(1) '개강 특수' 끊긴 대학가 상권
개인적으로 '봄학기'란 단어를 좋아합니다. 3월의 새 학기를 가장 잘 나타내는 단어가 아닐까 싶습니다. 벚꽃 핀 풍경과 함께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밥을 먹고 어울리는 모습이 봄처럼 따뜻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대학에 다닐 적에도 9월보다 3월을, 가을학기보단 봄학기를 더 좋아했었던 것 같습니다.그런 봄학기에도 추운 계절이 있었습니다. 코로나 기간입니다. 학교에 가지 못하는 학생들이 대학 생활을 비대면으로만 하게 되면서 캠퍼스엔 한산한 공기만 감돌았습니다. 대학가 상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매년 3월이면 사람으로 붐볐던 이곳은 코로나 기간 발길이 뚝 끊겼습니다. '젊음의 거리'란 명칭은 옛말이 되고 유령 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가 됐습니다. 이로 인해 상인들은 큰 시름을 앓았습니다. 경기 침체를 이기지 못한 식당들은 결국 폐업에까지 이르렀습니다.길었던 혹한기가 끝나고, 캠퍼스에 다시 봄이 찾아왔습니다. 엔데믹을 맞이하고 대면 활동이 재개되면서 청춘들의 웃음꽃이 활짝 폈습니다. 새 학기가 시작된 지 어느덧 한 달이 다 되어 갑니다. 새로운 친구를 만나고, 새로운 학문을 공부하고, 새로운 연인을 사귀는 등 학생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따뜻한 봄학기를 즐기고 있습니다.캠퍼스가 활기를 띠며 대학가 상권에도 다시 봄이 올 거라는 기대감이 커졌습니다. 대학가에는 '개강 특수'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파가 가장 몰리는 개강철에 매출이 크게 뛰어 맞이하는 특수란 의미입니다. 많은 학생이 학교에 오게 되면서 다시 '개강 특수'를 맞이할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여러 상인들이 그동안의 적자를 메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하지만 '개강 특수'는 기대로만 그쳤습니다. 최근 기자가 찾은 대학가는 사람으로 가득한 캠퍼스와 달리 인근 상권은 여전히 침체돼 있었습니다. 학교로 돌아온 대학생들은 캠퍼스 내 저렴한 학생식당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학생식당은 점심시간 전부터 북적북적했지만, 대학가 식당 골목은 한두 곳을 제외하곤 점심시간에도 사람이 거의 지나다니지 않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3월이면 늘 만석이었던 식당 내부도 상당히 비어 있었습니다.술집 등 저녁 시간대 영업하는 가게들은 사정이 다를까 싶어 밤에 다시 찾았습니다. 상황은 비슷했습니다. 캠퍼스 앞에는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모여 있었지만, 술집 골목에는 인적이 드물었습니다. 그나마 지나가는 학생들마저도 원룸촌으로 향하며 집에 가는 분위기였습니다. 상인들은 하나같이 코로나 이전보다 매출이 줄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대학가 상권은 주 소비층이 지갑이 얇은 학생들이다 보니 다른 번화가보다 저렴한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한국소비자원의 참가격 정보서비스에 따르면 외식비 중 자장면 평균 물가는 지난달 기준 대구 6천250원, 경북은 6천원입니다. 지난 18일 기준 경북대 인근 중식당의 자장면은 4천500원, 영남대 인근 중식당은 4천원으로 평균 물가보다 각각 1.38배, 1.5배 저렴했습니다. 그나마 오는 학생들의 발걸음마저 줄어들까 봐 식당들은 가격 인상도 조심스러운 상황이라 합니다.그럼에도 아직 침체돼 있는 이유가 뭘까 궁금증을 가지며 이번 주 위클리포유에서는 '개강 특수' 끊긴 대학가 상권의 최근 현황을 살펴봤습니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게티이미지뱅크〉 그래픽=장수현기자
[권현준의 시네마틱 유니버스] 기후 위기와 영화
'RE100'은 지구 환경을 악화시키는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고 100% 재생에너지로 전환하자는 캠페인이다. 말 그대로 캠페인이다 보니 이것을 꼭 준수해야만 하는 강제성은 없지만, 기후 위기가 점차 심각해지는 상황과 이를 통한 기업이미지를 통해 물건을 구매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많은 기업이 이 캠페인에 동참하 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100%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의견도 있다. 우리나라와 같이 핵원료를 통한 에너지 생산 의존도가 높은 국가에서는 원자력 등도 포함시키자는 차원에서 'CF100'을 주장하기도 한다. 지난 대선에 이어 최근 총선을 앞둔 정치권에서 또다시 'RE100'이라는 말이 크게 회자되었다. 이처럼 정치권에서 크게 이슈가 되는 건 그만큼 유권자들이 기후변화를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한 여론조사에서 유권자의 60% 이상이 기후대응공약이 마음에 들면 정치적 견해가 다른 정당이나 후보라도 투표를 고민하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지구의 기후변화에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있는 국가 중 하나인 미국도 최근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기후와 관련된 이슈로 인해 민주당이 공화당보다 더 많은 득표를 할 것이라는 보고서가 나오기도 했다. 1992년 '지구를 더 건강하게, 미래를 풍요롭게'라는 기치를 내걸며 인류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실현하자는 '리우 선언', 2015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단계적으로 감축하자는 '파리 협정' 등 전 국가적인 기후 관련 선언과 약속들이 있었지만, 그러한 것들이 크게 피부에 와닿지 않았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날씨를 비롯해 일상에서 발견되는 이상 징후들로 인해 기후변화에 대한 체감도가 달라지면서 산업과 생활 현장 곳곳에서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영화는 이미 오래전부터 기후변화에 따른 재앙을 예고해 왔다. 1958년에 만들어진 프랭크 카프라 감독의 다큐멘터리영화 'The Unchained Goddess'는 기후변화를 직접적으로 다룬 첫 영화로 알려져 있다. '지금도 인간은 문명의 폐기물을 통해 자신도 모르게 세계의 기후를 변화시키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공장과 자동차에서 매년 60억t 이상의 이산화탄소가 방출되어 공기가 태양열을 흡수하는 데 도움이 되므로 대기가 점점 더 따뜻해질 수 있습니다.'마치 지금 시기의 다큐멘터리에서나 나올 법한 내용이 영화의 내레이션으로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의 혜안과 주제 의식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알 수 있다. 이 밖에 핵전쟁 이후의 황폐한 지구를 배경으로 하며 '매드맥스'의 원형이라고 알려진 '소년과 개', 마찬가지로 핵물질의 오용이 가져다줄 위험성을 다룬 영화로, 사회운동가로서 최근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집회 현장에서 여러 차례 체포되기도 한 제인 폰다(2020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할 당시 시상자로 나와 'Parasite!'를 외친 배우) 주연의 '차이나 신드롬' 등이 환경을 다룬 고전영화라 할 수 있다. 물론 우리에게 친숙한 영화도 많이 있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비롯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들,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워터월드',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투모로우', 픽사의 '월-E',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아바타'까지, 1990년대 이후부터는 환경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지면서 이를 다룬 영화들도 지속적으로 등장했다. 환경이나 기후 위기가 1990년대부터 2010년 초중반까지는 영화의 소재나 주제로 많이 다뤄졌다면, 2010년 중반 이후부터는 제작, 상영 등 영화산업 현장에서의 변화로 이어지게 된다. 최대 규모의 영화제 중 하나인 칸국제영화제는 '그린 가이드'를 통해 기후변화 대응에 동참하고 있다. '그린 가이드'는 '영화제 차량의 60%를 전기차 또는 하이브리드차 사용' '출판물과 인쇄물 50% 감축' '플라스틱 물병 전면 퇴출' '레드카펫 사용량 50% 감소, 카펫의 재활용' 등 12가지 가이드를 내세우고 있다. 또한 프랑스에서는 2021년 '플랑 악시옹!(Plan Action!)'이라는 영화&영상 부문에서의 환경 및 에너지 전환 정책을 발표했다. 이 정책은 3단계로 되어 있는데, 1단계는 상영관·촬영 스튜디오 등의 탄소 발자국 연구를 시행하고, 영화계 직업인들의 인식을 제고하기 위한 지원 및 실천 사례 제공, 2단계는 탄소 발자국 평가 의무화 등 새로운 규칙 정의, 3단계는 탄소 예산을 기반으로 한 조치 등 의무 사항 부과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한국에서도 늦은 감이 있지만, 최근 영화진흥위원회가 '영화 제작-상영 단계별 탄소절감 정책연구' 보고서를 내놓으며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보고서는 '영화산업 탄소절감 2050 로드맵'을 통해 실질적인 탄소절감을 이루고 기후변화 대응에 기여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영화 제작 단계에서의 이동과 촬영, 후반작업의 증가 등으로 에너지 비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고, 국제적 표준에 발맞추기 위해서라도 서둘러 관련 정책이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가 현장에 수용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제작비의 증가가 수반될 것이며, 인식 변화를 위한 교육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초점이 탄소중립에만 맞춰져 있는 것 역시 고민해 봐야 할 문제로 보인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순 없다. 기후변화는 현실이며, 삶의 모든 곳에서 이 변화를 늦추거나 되돌리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영화 역시 영화로써 이러한 기후 위기를 이야기함과 동시에, 제작과 상영 등 산업 현장에서의 변화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다.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사무국장기후 위기를 다룬 영화들. 위쪽부터 아래방향으로 '소년과 개' '차이나 신드롬'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스틸컷. 〈네이버 영화·일신픽처스 제공〉
[임무출의 우리말 알아맞히기] 제655회
■ 가로열쇠 1. 가시덤불이 우거진 길. 3. 오고 가는 발자취. 찾아오거나 찾아가거나 하는 발걸음. (참고) 발김. *○○○○도 들여놓지 않다.(관용어) 7. 호접지몽은 ○○에 관한 꿈이라는 뜻으로, 인생의 덧없음을 이르는 말이지요. 8. 바지 따위에서 다리가 들어가도록 된 부분. *촉새가 황새를 따라가다 ○○○ 찢어진다. (속담) 9. 목숨이 끊어지다. 숨지다. *조국을 위하여 명예롭게 ○○. 12. 자랏과의 동물. *○○ 보고 놀란 가슴 소댕 보고 놀란다. (속담) 13. 입의 가장자리. =구변. *○○에 미소를 띠다. 17. 어떤 물체에 다른 물건이 닿거나 하여 생긴 자리. *손톱 ○○이 뚜렷하다. 18. 마음속으로 치는 대중. (참고) 속가량. 19. 일이 어찌 될 어름이나 그러한 무렵. (준말) 즘. *졸업식 날이 가까워 올 ○○에 갑자기 병이 났다. 22. 음료·음식 본디의 맛이나 향기가 없어지다. (참고) 김새다. *뚜껑을 열고 오래 둔 맥주나 콜라는 쉽게 ○○○○. 23. 오리처럼 뒤뚱거리며 걷는 걸음걸이. *우리는 체육 시간에 ○○○○으로 빨리 가기 시합을 했다. ■ 세로열쇠 1. 가시가 있는 나무. *○○○○에 가시가 난다. (속담) 2. 밭에 심어 기르는 벼. *할아버지는 보리를 수확하고 난 자리에 ○○를 심으셨다 4. (그릇이나 어떤 범위에) 분량·수효 등이 넘칠 듯이 차 있는 모양. 이것의 작은 말은 '가득'이지요. *독에 물을 ○○ 채우다. 5. 좋은 지위나 자리를 차지하려고 다투는 일. 6. (제대로 굵게 자라지 못하고) 밑동이 두셋으로 가랑이진 무. 10. 잎의 일부로서, 잎몸을 줄기나 가지에 붙어 있게 하는 자루 모양의 꼭지. =엽병. 11. 쌀을 빻아 만든 가루. =미분. 백분. 14. 감자를 썰어서 물에 푼 밀가루 따위를 묻히어 기름에 튀긴 음식. 15. 겉으로만 보아서 어림친 대중. 겉으로만 보고 미루어 헤아리는 짐작. (참고) 겉가량. 16. 개인끼리 서로 아는 관계. *그들은 ○○○○으로 회원을 모았다. 20. (전통 혼례식에서, 시집가는 새색시가 단장할 때) 이마에 연지로 찍는 붉은 점. 21. 물체가 진동했을 때, 청각으로 느끼게 되는 것. =음. <응모요령> ▨제655회 '임무출(한글학회 회원)의 우리말 알아맞히기' 해답은 우편엽서를 이용해 4월11일까지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휴대폰 번호를 반드시 적어주세요) ▨보내실 곳 : 대구시 동구 동대구로 441 영남일보 편집국 문화부 임무출의 우리말 알아맞히기 담당자 앞 ▨우편번호 : 41260 <제653회 당첨자> ▶김문숙(대구광역시 달서구 학산로) ▶홍종수(대구광역시 수성구 지범로) ▶이수민(대구광역시 북구 칠성남로) ▶김소은(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로) ▶정재수(경북 칠곡군 왜관읍 중앙로) ▶오희진(대구광역시 동구 팔공로) ▶정원용(대구광역시 달서구 대명천로) <상품협찬> ▲ 워터파크 스파밸리 자유이용권 1688-8511 ▲ 교감형 생태동물원 네이처 파크 이용권1688-8511 ▲ 에코테마파크 대구 숲 이용권 (053)761-7400, 7401 ▲ 팔공산온천관광호텔 입욕권 (053)985-8080 ▲ 〈주〉아모레퍼시픽 아이오페 레티놀 엑스퍼트 0.1% ▲ 청도용암온천 대온천장 초대권 (054)371-5500 ▲ 청도 프로방스 포토랜드 초대권 (054)372-5050 ▲ 〈주〉그린기프트 레디엠 반전립스틱세트 1588-8480 ※'임무출의 우리말 알아맞히기' 당첨자에게는 협찬 상품 중 한 가지를 우송해 드립니다.
[주말&여행] 울산 장생포 문화창고, 폐건물에 불어넣은 문화재생의 숨결…울산의 새로운 바다가 되다
건물 외벽에 푸른 고래가 헤엄치고 있다. 장생포로 들어서는 초입, 부드러운 고개를 넘어 급히 휘어지는 도로변이다. 턱을 치켜들면 길 건너 높은 축대 위에 장생포 초등학교가 올라앉아 있고 고개를 돌리면 바다에 늘어선 커다란 뱃머리의 둥근 코끝이 만져질 듯 가깝다. 그들 뒤로 연기를 내뿜는 석유화학단지와 각종 공장, 다채로운 항만 시설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이 자리에서 1962년 울산공업센터 특정공업지구 기공식이 열렸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시작이었고 대한민국 산업수도 울산의 시작이었다. 그 후 이 자리에 1973년 냉동 창고가 들어섰다. 처음에는 양고기를 가공하던 남양냉동이었다. 1993년에는 명태, 복어, 킹크랩을 가공하는 세창냉동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10년도 채 안 돼 경영악화로 문을 닫았고 건물은 폐허가 된 채로 남아 있었다. ◆냉동창고에서 문화창고로푸른 고래 옆에 '제19회 대한민국 지방자치경영대전 문화관광분야 최우수상'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또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지역명소'라는 걸개도 보인다. 냉동 창고는 2021년 복합 문화예술 공간인 '장생포 문화창고'로 변신했다. 건물 매입 후 공식 개관까지 약 5년이 걸릴 만큼 많은 공을 들였다. 건축공간재생 분야의 전문컨설턴트, 문화예술단체, 대학생과 주민 등 100여 명이 폐산업시설의 문화재생에 대한 정보를 나눴고 새로운 예술 공간 조성을 위해 수차례 모임을 가졌으며 3번의 공간 실험을 거쳤다. '장생포 문화창고'는 장생포가 간직한 한국공업화 역사의 가치를 보존하고, 문화 인프라가 부족했던 울산 남구의 미래 문화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새로운 문화의 보물창고'라는 의미다. 입구는 기둥으로 둘러싸인 열린 공간이다. 고래 조형물 뒤로 바다가 바짝 다가와 있다. 저렇게 큰 배가 이렇게 바짝 접안되어 있다는 건 바닷속이 얼마나 깊은 벼랑이라는 뜻일까. 입구는 '청춘마당'이라 불리며 종종 버스킹 공연이 열린다. 1층 로비에 들어서면 커다란 통 창 너머로 장생포 바다가 펼쳐진다. 맞은편에는 음식을 먹으며 쉴 수 있는 푸드코트 '어울림마당'이 자리하고 있다. 2층에는 울산공업센터 기공식 기념관이 있다. 울산의 공업지구 지정 이후 오늘에 이르는 역사와 변화 과정이 소품, 사진 자료, 그림 등 다양한 자료로 구성되어 있다. 맞은편에는 체험공간이 자리한다. 그리고 만들고, 쓰고, 몸으로 표현하는 등 유아부터 성인까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3층은 갤러리B와 미디어아트 전시장으로 구성돼 있다. 전체 층 가운데 과거 냉동창고의 모습을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곳이다. 4층에는 갤러리C와 울산의 창작자들이 만든 '시민창의광장'이 있다. 2020 공공미술프로젝트를 통해 완성한 '시민창의광장'은 공간 전체가 바닷속 것 같다. 입체작품 18점, 평면작품 62점, 영상작품 6편, 공간구성 2식 포함 88점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대개 울산 도시와 고래에 관한 것이다. 작품 중 하나인 '빛의 방'은 무한한 공간과 무한한 빛 그리고 그 속에 한 점 빛으로 존재하는 '나'를 느낄 수 있는 방이다. 5층은 창작자들을 위한 공간이다. 남구구립교향악단의 전용 연습실이 있고, 공유 작업실과 연습실, 녹음실, 회의실 등이 있다. 전 층의 중앙에 통 창을 가진 홀이 있다. 각 층에 들어설 때마다 가장 먼저 장생포를 만난다. ◆멈추어 바라본다, 지관서가6층에는 각종 공연과 상영회, 강연 등이 가능한 '소극장 W'와 서점 겸 카페인 '지관서가(止觀書架)'가 들어서 있다. 입구에 이런 문구가 있다. "도심 속 현대인의 분주한 일상에 성찰의 피난처로써 책을 통한 '사유'와 '대화' 그리고 '문화'의 경험의 장을 마련하여 우리의 삶에 참 쉼과 성장, 행복을 찾고 나누는 공간으로서 역할을 하고자 한다는 지관서가입니다."지관서가는 울산에서 오랫동안 석유화학공장을 운영해 온 <주>SK의 재원을 기반으로 인문학 재단법인 플라톤 아카데미가 기획하고 지방자치단체가 공공 공간을 제공해 만들어진 복합 인문 문화공간이다. 스르륵 유리문이 열리자 커피 향이 훅 풍겨온다. 눈길 가닿는 곳마다 책이고, 장생포고, 고요한 사람들이다. 지관서가는 평일, 휴일 가릴 것 없이 인기가 많다고 한다. 이곳에서 강연회가 열리고 북 토크와 음악회도 열린다. 현재 울산에는 6곳에 지관서가가 있는데 각각 다른 주제들로 책을 선정하고 공간을 구성했다. 울산대공원은 '관계', 장생포는 '일', 남구의 선암호수공원은 '나이 듦', 울주의 유니스트는 '명상', 울산시립미술관은 '아름다움', 북구의 박상진호수공원은 '영감'을 주제로 한다. 2026년까지 울산에 스무 곳의 지관서가가 들어설 계획이라 한다. 또한 울산 외에도 여러 지역에 지관서가를 열 예정이라고 한다. 묵직한 커피잔을 들고 장생포를 본다. 배들과 굴뚝들과 하얗게 피어오르는 연기, 웅장하다. 편안한 차림의 연인이 나란히 책 앞에 앉는다. '지관(止觀)'은 멈추어서 바라보는 일을 뜻한다. 문득 전깃줄에 빼곡히 앉아 날개 쉼 하는 새들이 떠오른다. 이곳의 모든 사람들이 책시렁에 앉아 날개 쉼 하는 새들 같다.◆나랑 별 보러 가지 않을래, 별빛마당6층까지는 엘리베이터가 운영되지만 옥상으로 가는 길은 계단이다. 계단실의 문을 열면, 파란 동화나라로 들어선 듯하다. 피아노 건반 모양의 계단이 '나랑 별 보러 가지 않을래?' 하고 말을 건다. 계단을 밟으면 '도도 솔솔 라라 솔' 피아노 소리가 나고, 벽면의 노란 별 음표가 반짝 빛을 낸다. '반짝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치네 동쪽 하늘에서도 서쪽 하늘에서도 반짝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치네' 노래를 흥얼거리며 옥상 문을 연다. 와락 하늘이 쏟아질 줄 알았는데 유리 벽을 가진 옥탑방이다. 큼직한 테이블과 의자들이 가지런히 창밖을 내다본다. 한쪽 벽은 장생포 문화창고를 방문했던 사람들의 작품으로 가득하다. 하나하나 개성이 넘친다. 새로운 장소에서 즐거운 경험을 한 이들의 '신남'이 느껴진다. 유리문을 열고 옥상으로 나간다. 옥상정원은 '별빛마당'이다. 귀여운 천국의 계단이 하늘을 담고 있다. 물멍을 한다. 배멍을 하고, 굴뚝멍을 하고, 연기멍을 하고, 하늘멍을 한다. 새처럼, 지관 한다. 작은 배들이 빠르게 오가고 커다란 배가 천천히 지나간다. 입출항하는 배들의 종류가 워낙 다양해서 원활한 흐름을 위해 속력 규정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멈추어야 보이는 것들 앞에서 속도를 생각한다. 현재 장생포 문화창고는 고래문화재단이 위탁운영 중이다. 2012년 창립된 고래문화재단은 울산 최초 기초 지역문화재단이다. 울산고래축제와 고래문화마을, 남구거리음악회 등 고래 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분야에서 문화예술의 일상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 Tip대구에서 경주 방향 경부고속도로로 가다 경주 지나 언양분기점에서 부산, 울산 고속도로 울산 방면으로 간다. 울산 톨게이트로 나와 울산항 방향으로 가다 신여천 사거리에서 우회전해 장생포로를 따라가다 매암사거리에서 우회전해 장생포고래로를 따라 가면 어린이보호구역이 시작되고 바다가 처음 보이는 자리에 장생포 문화창고가 자리한다. 이용시간은 오전 10시부터 밤 9시까지며 매주 월요일은 쉰다. 주차와 입장은 무료다.울산의 창작자들이 만든 '시민창의광장'. 2020 공공미술프로젝트를 통해 완성되었으며 88점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필로티 공간인 입구는 '청춘마당'이라 불리며 종종 버스킹 공연이 열린다. 고래 조형물 뒤로 바다가 바짝 다가와 있다.2020 공공미술프로젝트 작품 중 하나인 '빛의 방'. 무한한 공간과 무한한 빛을 주제로 한다.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3월의 설국 울릉도 여행(2) 설산이 감싼 나리분지, 푸른 파도 부서지는 관음도…발 닿는 곳마다 장관
봄이 다가오지만 아직 설국(雪國)인 곳이 있다. 전국에서 눈이 가장 많이 내리는 울릉도다. 울릉도는 약 140만년 전부터 1만년 전까지 다섯 단계의 화산활동을 거치며 탄생한 섬으로, 포항에서 북동쪽으로 직선거리 210㎞ 떨어져 있다. 지난 7~9일 찾은 울릉도는 3월인데도 시시때때로 눈이 내렸다. ◆도착 전부터 놀 거리 가득 '울릉크루즈'울릉도에 가기 위해선 배편을 이용해야 하는데, 기자는 포항 영일만항에서 울릉크루즈를 타고 떠나기로 했다. 느린 대신 흔들림이 적어 멀미 부담이 덜하기 때문이다. 출항은 밤 11시30분. 도착까지는 7시간 정도 소요돼 아침 7시쯤 도착하는 일정이다. 크루즈 안엔 식당, 카페, 편의점, 오락실, 노래방 등 없는 게 없어 심심하지 않았다. 밤 11시쯤 식당에선 선상공연이 한창이었는데, 바다가 보이는 창가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보니 그제야 울릉도에 가는 것이 실감됐다. 크루즈 안을 둘러보다 취침을 위해 객실로 올라갔다. 기자가 이용한 객실은 작은 창문이 딸린 4인실이었다. 침대, 소파, TV, 화장실 등을 갖춘 방으로 작은 숙소 같았다. 몇 시간 뒤 차가운 공기에 눈을 떴는데, 목적지에 도착할 참이었다. 일출을 보러 갑판으로 나가니 섬의 모습도 보였다. 뾰족한 산꼭대기와 해안 절벽이 화산섬이라는 걸 알 수 있게 했다.크루즈서 내려 아침을 먹기 위해 나섰다. 저동항 인근에 아침 식사가 가능한 식당이 있다 하여 해안길을 따라갔다. 육지에선 볼 수 없었던 맑지만 짙은 푸른색의 바다가 보였다. 제주도 바다와는 또 다른 매력을 만끽하며 달리던 중 웅장한 바위가 눈에 들어왔다. 바위의 이름은 '거북바위'. 새끼 거북을 업고 있는 거북의 모습을 닮아 명명됐다고 한다.식사 후 봉래폭포를 보기 위해 나섰다. 울릉도의 최고봉인 성인봉으로 오르는 길목인 주삿길 안쪽에 있다. 수량이 풍부해 1년 내내 폭포의 장관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입구 앞에 도착하니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럴수가. 기상악화로 출입이 통제됐다는 방송이 나온다. 다음 코스로 생각해둔 관음도로 출발했다. 울릉 3경 중 하나로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지만 2012년 다리가 놓여 도보로 탐방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그런데 웬걸. 관음도에 도착하니 사람이 나밖에 없다. 불길한 마음으로 매표소에 물어보니 관음도도 출입이 통제됐다고 한다. 두 번째 허탕.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외경만 카메라에 담고 떠났다. 이때 느낀 건 겨울의 울릉도 날씨는 변화무쌍하기 때문에 단단히 채비해야 한다는 것. ◆3월의 크리스마스 '나리분지'그렇게 겨우 찾은 세 번째 코스는 '나리분지'. 울릉도 내에서 눈이 가장 많이 내리는 곳으로 눈꽃 여행의 중심지라고 한다. 나리분지는 해발 약 500m에 위치한 평원으로 섬 내 유일한 평지다. 동서 1.5㎞, 남북 2㎞로 면적이 198만㎡에 이른다. 1만5천~2만년 전에 일어난 울릉도 화산 폭발때 중앙의 분화구가 함몰돼 형성된 칼데라 분지로 성인봉 아래 해발 700~987m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분지에 들어가기 전 전망대에 올라가 마을을 한눈에 담았는데, 절경이었다. 소설 '설국'의 배경을 표현한다면 아마 이런 풍경이 아닐까. 눈 이불을 덮은 듯한 마을 전체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어 감탄을 금치 못했다. 마을 사방을 눈으로 덮인 설산이 감싸고 있었는데, 어떤 설경을 내놓아도 부럽지 않을 정도였다. 2월부터 4월까지 이어지는 겨울철에 3∼4m 이상의 폭설이 자주 내린다고 하는데, 3월에 이런 눈을 즐길 수 있다니. 한겨울에도 눈을 찾아보기 힘든 곳에서 자란 기자에겐 행운이었다.본격적으로 설국(雪國)을 즐기기 시작했다. 소복이 쌓인 눈을 밟으며 마을에 내려가니 총 4구간의 탐방로에 들어갈 수 있었다. 탐방로 인근엔 산채비빔밥 등 울릉도에서만 나는 산나물로 구성된 음식들을 파는 식당들이 모여 있었는데, 관광객이 자주 찾는 명소라 식당도 많은 듯했다. 성인봉 등산로 트레킹 코스도 있었는데, 시간 관계로 2구간까지만 걷기로 했다. 1구간엔 어린이 놀이시설과 휴게쉼터가 있어 눈사람을 만드는 어린이들을 볼 수 있었다. 2구간엔 다목적 잔디광장과 산책로 등이 조성돼 있었는데, 고즈넉한 분위기를 즐기며 걷기 좋았다.◆'대풍감 전망대' 탁 트인 바다 한눈에다음 날 울릉도 시내 부근에 위치한 '독도전망대'에 방문했다. 이날도 역시 눈이 내렸다. 전망대로 가기 위해선 케이블카를 이용해야 하는데, 15분 간격으로 운영된다. 2분 정도 타고 올라가니 시가지 전망대와 해안 전망대로 가는 길이 있었다. 해안 전망대는 출입이 막혀 있었다. 시가지 전망대에 도착했을 땐 독도 방향을 알려주는 표지판이 있었는데, 전망대로부터 87.4㎞였다. 날씨가 좋은 날엔 독도도 육안으로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이날도 눈이 내리고 조금 흐린 탓에 인근에 위치한 도동항과 마을 전경만 볼 수 있었다.전망대 인근에도 볼거리가 가득했다. 전망대 매표소 옆에 자리한 '독도박물관'에서는 독도와 관련된 다양한 전시를 진행 중이었다. 관람료는 무료. 독도박물관·한국사진작가협회 사진전 '울릉도·독도 동해를 품다', 독도박물관, 국립호남권생물자원관, 경북대 울릉도·독도연구소 공동기획전 '울릉도' 등을 선보였다. 저녁이 다가올때 쯤에는 일몰을 보기 위해 '대한민국 10대 비경' 중 한 곳으로 떠났다. 독도전망대만큼 유명한 전망대인 '대풍감 전망대'다. 대풍감은 '바람을 기다리던 절벽'이란 의미로, 과거 돛단배가 항해를 위해 바람을 기다리던 곳이었다고 한다. 대풍감 전망대까지는 약 6분 정도 소요되는 태하항목관광모노레일을 이용해 올라가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기자는 매표 시간을 놓쳐 1시간40분 걸리는 트레킹 코스로 올라갔다. 태하해안산책로를 지나 전망대까지 올라가는 길은 '등산 초보'인 기자에겐 다소 무섭고 위험하게 느껴졌는데, 이동 중 바다와 산을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점은 매력이었다.전망대에 도착하니 오후 6시였다. 이날 울릉도의 일몰 시간은 6시15분이었으니 딱 시기적절하게 잘 도착한 것. 해지는 붉은 하늘을 보며 사방으로 고개를 돌리는데 어딜 봐도 경이로웠다. 파도에 맞서는 듯 늠름하게 서 있는 해안 절벽과 탁 트인 바다…. 울릉도의 마지막 여행 코스를 이곳으로 잡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만큼 장관이었다. 옛적 바람을 기다리던 이들은 어떻게 두 눈으로만 이 풍경을 담을 수 있었을까 하며 카메라 셔터를 몇 번이고 눌렀다. 이 섬에 올 때 크루즈에서 본 일출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넋을 놓고 바라봤다. 글·사진=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해안도로에서 바라본 관음도 외경.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지만 2012년 다리가 놓여 도보로 탐방할 수 있게 됐다. 〈게티이미지뱅크〉 그래픽=장수현기자독도전망대에서 바라본 독도 방향 바다.독도전망대 입구. 이곳 오른쪽은 해안 전망대, 왼쪽은 시가지 전망대로 가는 길이다.나리분지 탐방로 입구.
[동 추 거문고 이야기] <5> 선비와 거문고(상), 거문고는 '금(琴)'이다
한국의 거문고와 중국의 금(琴·칠현금)은 다른 악기이지만, 옛날에는 '금(琴)'으로 동일하게 표기되어 왔다. 거문고와 칠현금을 지칭한 금(琴)은 선비들에게는 단순한 악기가 아니었다. 마음 수양을 위한 평생의 반려로 삼았던 특별한 악기였다. 거문고(칠현금 포함)가 이처럼 선비에게 각별한 대접을 받았던 역사의 뿌리는 매우 깊다.사마천은 중국 역사서 '사기'에서 '공자가 사양(師襄)에게 거문고 타는 법을 배웠는데, 거문고를 배우는 것은 기술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배우는 것이라고 말한 바가 있다'라고 했다. 모든 선비들의 스승인 공자가 거문고를 어떻게 대했는지 알게 하는 대목이다. 거문고를 잘 탔고 음악에 조예가 깊었던 공자는 또한 음악을 통해 인과 예를 설명하고 가르쳤다. 공자가 행단(杏亶)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다는 행단고슬(杏亶鼓瑟) 고사에도 금(琴)을 타는 공자가 등장한다. ◆거문고를 마음 수양의 도구로 삼았던 선비우리나라 악기 중 유일하게 보물로 지정된 탁영금(濯纓琴)의 주인공 탁영 김일손(1464~1498)이 이 거문고를 걸어두는 시렁에 새긴 글인 금가명(琴架銘)이 있다. '거문고는 내 마음을 단속하는 것이다. 시렁을 만들어 높이 걸어두는 것은 소리가 좋기 때문만은 아니다(琴者 禁吾心也 架以尊 非爲音也).'김일손이 이런 글을 지어 새기게 된 데는 연원이 있다. 거문고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공자의 이야기뿐만이 아니다. 중국 후한 말기 학자 응소가 편찬한 '풍속통의(風俗通儀)'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거문고를 금(琴)이라고 하는 것은 군자가 바른 것을 지켜서 스스로 금(禁)한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즉 거문고 소리가 울려 퍼지면, 바른 뜻을 감동시키기 때문에 선한 마음이 스스로 우러나서 사악한 마음이 생기는 것을 막아준다. 그래서 성현 군자들은 거문고를 타면서 항상 조심하고 스스로 사악한 것과 금할 것을 조절하였다고 한다.' '풍속통의'는 당시의 풍속, 음악, 지리, 종교, 민속, 명물, 전례, 악기 등 다양한 분야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다. 성리학을 집대성한 중국 송나라 유학자 주희(주자)는 거문고에 새긴 금명(琴銘)에서 이렇게 읊었다. '그대 중화의 바른 성품을 길러서(養君中和之正性)/ 분노와 탐욕의 사심을 물리치네(禁爾忿欲之邪心)/ 천지는 말이 없고 만물에는 법칙이 있으니(乾坤無言物有則)/ 내 오직 그대(거문고)와 그 심오함을 찾으리(我獨與子鉤其深).' 선비들이 존경하며 그 삶을 본받고자 한 대표적 선비이자 시인인 도연명(365~427)은 '무현금(無絃琴)'의 세계를 드러내 보였다. '줄 없는 거문고'를 말하는 무현금의 정신과 가치관은 선비들이 유교 경서와 함께 거문고를 필수 반려로 삼게 만드는 데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김일손을 비롯한 우리나라 선비들도 이와 같은 가치관을 이어받고 심화시켰다. 반계(磻溪) 류형원(1622~1673)도 거문고에 새긴 글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마음은 소리로 나타나고(心形聲)/ 소리는 마음을 감동시키네(聲感心)/ 담박하면서도 조화로우며(淡乃和)/ 정중하고 지나치지 않노라(莊不淫)/ 마음과 어울리고 기와 어울리며 천지와 어울리니(心和氣和天地和)/ 아 금(琴)이란 금할 금(禁)자의 뜻이 있으니(嗚乎琴者禁也)/ 금지한다는 것은 사심(邪心)을 금함이로다(禁其邪也).' 이 글에서도 거문고를 통해 나쁜 마음인 사심을 금하면서 인(仁)의 마음을 함양하고자 하는 뜻을 표현하고 있다.'악학궤범'을 편찬한 용재(용齋)성현(1439~1504)은 거문고를 좋아하고 연주도 잘했는데, 거문고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나는 음을 교묘하게 하지 말고 음률을 고르자는 것이다. 음탕하고 안일할 정도로 방종하지 말고 중화(中和)의 덕을 이루려고 하네. 그저 읊고 노래하는 데 그치지 말고 가슴속의 사특하고 더러운 기운을 씻어내자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옛날 군자들이 까닭 없이는 거문고를 곁에서 떼어두지 않았던 뜻이라네."그리고 심신을 닦는 도에 대해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담담하여 아무런 경영이 없고 공평하며 사심도 없고, 궁해도 불만이 없고 곤해도 주린 빛이 없고, 한가해서 생각도 수고로움도 없고, 자유로워 칭찬도 허물함도 없으며, 욕심도 사사로운 정도 없고, 옳음도 그름도 없으며, 형(形)도 상(象)도 없이 한다면 거의 도에 이르러서 지인(至人)의 영역에 들어가게 된다네.' 선비들이 거문고를 가까이 두며 사랑한 것은 사특한 마음과 나쁜 기운을 멀리해 덕이 높은 경지에 이르고자 했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오능(五能)과 오불탄(五不彈)이런 거문고인 만큼 거문고를 함부로 다루지 않고 연주하지도 않았다. 거문고를 탈 때는 연주해서는 안 되는 상황과 연주할 수 있는 조건 등 원칙을 정해놓고 지켰다. '오불탄(五不彈)' '오능(五能)'이 그것이다. 거문고 악보집인 '한금신보(韓琴新譜)'(1724)를 비롯한 옛 기록에 많이 실려 있다.거문고 명인이자 학자인 노주(老洲) 오희상(1763∼1833)은 특히 오불탄 정신을 강조했다. 그는 거문고를 탈 때 오불탄의 원칙을 반드시 지켰다고 한다. 오불탄(五不彈)은 거문고를 연주해서는 안 되는 다섯 가지 상황을 말한다. 강한 바람이 불고 비가 심하게 올 때, 속된 사람을 대할 때, 저잣거리에 있을 때, 앉은 자세가 적당하지 못할 때, 의관을 제대로 갖추지 않았을 때이다. 반면 자세가 편안하고(坐欲安), 똑바로 볼 수 있고(視欲專), 마음이 한가하고(欲閑), 정신이 맑으며(神欲鮮), 손가락이 온전할 때(指欲堅)라야 연주에 임했다. 이를 오능(五能)이라 한다.오희상은 '거문고의 묘함은 정신에 있지, 소리에 있지 않다'라고 강조했다. 삿된 마음을 금하고 자신을 이기는 방법 중에 거문고 연주가 으뜸이라고도 했다. 이는 선비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선비들이 거문고를 가까이 두고 즐긴 주목적은 마음의 도를 깨닫고 길러가는 데 있었던 것이다. 김봉규 <문화전문 칼럼니스트> bg4290@naver.com성협 '탄금도'(19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화제 중 '세상의 아름다운 우리 이야기를 알아줄 이 적지만, 밝은 달과 맑은 바람이 우리를 알아주는 구나'라는 구절이 있다.김봉규 (문화전문 칼럼니스트)
[위클리 키워드] Z세대 74% "직장 동료 간 연봉공개 하지 않겠다"
Z세대 10명 중 7명은 동료 간 연봉 공개에 반대했다. 연봉을 공개할 수 있는 범위로는 가족까지로, 절반 이상은 연인 사이에도 공유하지 않겠다고 밝혔다.AI 매칭 채용콘텐츠 플랫폼 캐치가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 2천437명을 대상으로 '직장 동료 간 연봉 공개'에 대한 의견을 조사한 결과, 74%가 '반대한다'고 답했다. '찬성한다'고 답한 비중은 26%에 그쳤다.반대하는 이유로는 '개인 정보라 부담스러워서'가 61%로 가장 많았다. 그 뒤로는 '불화가 생길 수 있어서'(14%), '타인이 불편할 것 같아서'(13.6%), '경쟁 등 스트레스 받을 것 같아서'(11%) 순으로 나타났다.찬성하는 이유로는 '숨길 필요 없다고 생각해서'가 64%로 1위를 차지했으며, '이직, 연봉 협상 시 참고하기 위해서'가 23%로 뒤를 이었다. 다음으로는 '평가가 공정한지 확인하기 위해서'(7%), '동기부여로 삼기 위해서'(5%) 순이었다.자신의 연봉을 공개할 수 있는 범위는 '가족'(75%)까지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인'은 48%로 절반에 약간 못 미쳤고, 이외에는 △친구(30%) △친척(7%) △직장동료(4%) △직장 상사·후배(2%) 순으로 나타났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3월의 설국 울릉도 여행(1)긴 바다끝、雪國이 있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雪國)이었다."일본 문학사상 중 가장 유명한 첫 문장이 아닐까 싶다. 책의 한 문장을 읽었을 뿐인데 열차 속에서 보이는 눈 덮인 마을이 그려졌다. 다 읽고 나서도 이 서두 문구로 모든 배경이 설명 가능했다.이 책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서정소설 '설국'이다. 1968년 일본 최초 노벨문학상으로 선정됐다. 뛰어난 감각적인 문체와 인물들의 감정 묘사로 독자들을 빠져들게 한다. 특히 자연 풍경과 풍습,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정교하게 담겼는데, 작가는 작품의 모티프를 주로 풍경에서 얻어 12년에 걸친 기간 다듬었다고 한다.설국의 배경은 일본 니가타현이다. 니가타현은 눈이 많이 내리는 곳으로 유명하다. 주인공 시마무라는 터널을 통해 도쿄에서 니가타현을 세 번 방문한다. 첫 문장의 '국경의 긴 터널'에서 '국경'이란 단어는 일반적으로 나라 간의 경계를 뜻하지만, 일본에서는 지역 간의 경계란 의미로도 쓴다. 여기서도 지방의 경계를 말한다. 따라서 터널은 이쪽 세계(도쿄)와 저쪽 세계(설국·니가타현)의 경계를 가르는 역할을 하며 일상과 비현실의 세계, 도시화와 전통의 세계를 구분한다. 시마무라가 터널을 빠져나와 설국에 들어설 때 차창에 비친 소녀의 모습과 겨울 풍경은 이 소설이 그려내는 미(美)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이처럼 니가타현은 설국으로 표현돼 눈 덮인 신비로운 마을로 묘사된다. 눈으로 둘러싸인 눈앞의 정경, 코가 빨개진 시골 사람들, 순백색의 순수함…. 이 모든 묘사를 관통한 표현이 책의 첫 문장이다. 이 책에 대해 많은 사람이 눈으로 시작하는 소설이라 했는데, 전적으로 공감했다. 이런 강렬한 힘으로 설국의 첫 문장은 현재도 끊임없이 패러디되고 있다. 오늘처럼.이번 위클리포유에서도 서두에 설국의 첫 문장을 인용했다. 3월의 절반이 지나가고 봄을 알리는 소리가 들려오는데, 아직 설국인 신비로운 곳이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다녀온 울릉도다. 포항에서 긴 바다를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약 7시간 동안 크루즈를 탄 뒤 섬에 도착하니 한겨울의 추위가 느껴졌다.차를 타고 해안길을 따라 달리니 아직 추운 날씨로 높은 파도도 볼 수 있었다. 억센 파도로 물방울이 차창에 튀기도 했다. 짙은 푸른색의 바다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 하니 강한 바람이 머리카락을 가만히 놔주지 않았다. 그렇게 'B급'으로 시작된 사진들을 간직하며 설국 여행을 시작했다.식당에 들어가면 정겨운 분위기가 느껴진다. "어서 오이소"라는 구수한 경북 사투리가 손님을 반겨준다. 인기 있는 맛집들의 메뉴는 이곳의 특산물인 오징어와 부지깽이·명이나물 등의 산나물. 몸에 좋은 건 꼭 챙겨 먹는다는 한국 사람들에게 안성맞춤인 음식들이다.전국에서 눈이 가장 많이 내리는 곳답게 여행하는 내내 눈이 내렸다. 눈으로 인한 기상 악화로 출입이 통제된 곳들이 많았다. 최대 다설지인 나리분지는 3월에도 일본 삿포로 못지않게 많은 눈이 쌓여 있었는데,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니 마을 전체가 설경이었다. 아름다운 장관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 믿기지 않는 풍경에 다른 나라에 온 것만 같았다.봄이 오던 육지와 달리 눈의 고장이었던 울릉도. 비현실적인 눈의 고장 설국. 이번 주 위클리포유 커버스토리는 '3월의 설국(雪國)' 울릉도 여행기다. 글·사진=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나리분지 전망대에서 본 울릉도 나리분지 전경. 마을 전체가 눈으로 뒤덮여 있다.
[시네 토크] 아카데미 작품상·각본상 후보 '패스트 라이브즈' 셀린 송 감독 "오스카에 노미네이트…데뷔작으로 누리는 최고의 영광이죠"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오는 11일 오전 8시(미국 현지시각 10일 오후 7시) LA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열린다. 전 세계 영화인들의 최대 축제인 시상식을 앞두고 국내외에서는 축제의 열기가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한국 영화계는 올해 그 어느 해보다 아카데미 시상식을 더욱 주목하고 있다. 한국계 캐나다인 셀린 송 감독의 장편 데뷔작 '패스트 라이브즈'가 작품상과 각본상 후보에 직행했기 때문이다. 신예감독의 데뷔작이 아카데미 최고의 영예인 작품상 후보에 오른 것은 그야말로 이변이다. 2월26일 기준 전 세계 75관왕, 210개 노미네이트의 기록을 세운 '패스트 라이브즈'가 작품상을 받으면 아시아계 최초로 데뷔작으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게 된다. 영화 '기생충'이 화려하게 장식한 제92회 시상식에 이어 또 한 번 한국의 영화인들이 아카데미를 놀라게 할지 관심이다. 현재 극장에서 개봉 중인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는 셀린 송 감독이 영혼을 갈아 만든 작품이다. 한국의 CJ ENM과 미국 할리우드 스튜디오 A24가 공동으로 투자 배급을 담당했다. '인연'이라는 한국적 정서를 배우 유태오와 한국계 미국인 배우 그레타 리가 섬세하게 펼쳐냈다. 어린 시절 서울에서 함께 성장한 첫사랑 '해성'과 '나영'이 24년 만에 뉴욕에서 다시 만나 끊어질 듯 이어져 온 그들의 인연을 되돌아보고, 삶의 의미를 깨우치는 내용이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셀린 송 감독은 자그마한 체구와 빠른 말투를 가지고 있었다. 대화에는 막힘이 없었으며, 질문이 떨어지기 무섭게 속사포 같은 답변을 내놓았다. 풍부한 얼굴 표정만큼이나 자유로운 손짓과 몸짓을 대화 도중에 구사했다. 감독으로 데뷔하기 전 연극배우로 활동한 이력이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듯 하다. 그녀의 첫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에는 어린 시절 캐나다로 이민을 떠난 감독의 자전적 삶이 전편 가득히 스며 있다. 24년만에 재회한 첫사랑 남녀 통해한국적 정서 '인연' 섬세하게 그려영화 '오펜하이머'와 작품상 경쟁'기생충' 영광 재현할 수 있을지 주목◆자전적 이야기 녹인 '패스트 라이브즈'▶영화에서 '인연'이라는 단어가 자주 나오는군요. "인생을 살면서 우리 모두는 언제든, 어디서든 누군가와 함께했던 두고 온 삶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나는 지금 서른 살이지만 내 안에는 열두 살 무렵의 내가 있고, 그 무렵의 사랑도 있는 것이죠. 굳이 다중 우주를 넘나드는 판타지 속 영웅이 아니더라도 인생을 살아가는 누구든 여러 가지 시공간을 지나가고 있기 때문에 신기한 순간과 인연을 이야기로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작은 관계의 인연이라도 우리 삶 어디에든 있고, 그중에는 특별한 인연도 있고, 지나치는 인연도 있고, 특별하지만 지나치게 되는 인연도 있어요. 그런 인연에 대한 생각들을 녹여낸 것이 이번 영화예요."▶한국인에게는 친숙한 개념인 인연을 세계의 관객들도 이해할 수 있었을까요."사실 이 얘기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민자의 이야기지만 우리 모두가 비슷한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죠. 제가 아일랜드에서 겪은 일이에요. 어떤 사람이 자신은 글래스고에 살고 있는데, 더블린에 두고 온 여자친구가 생각났다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내가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 어떤 사랑을 했는지 등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영화를 받아들이는 정도가 달라질 수는 있겠죠."▶영화로 만들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심리학자가 되고 싶어서 대학 시절 심리학을 전공했어요. 그 후 대학원에 진학해서 연극을 공부했고, 이후 10여 년간 극작가로 활동했지요. 처음에는 이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들었는데, 영화로 이야기하기가 더 좋겠다는 생각에 작품을 만들게 됐어요. 한국과 미국, 두 대륙을 가로지르고 수십 년의 시간을 넘나드는 방식이 연극보다는 영화가 더 자연스럽다는 결론이 내려져 시나리오를 쓰게 됐어요."▶영화가 선댄스영화제, 베를린영화제 등 해외 영화제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데 이어 전 세계 관객들에게도 후한 평가를 받는 듯해요. "영화가 다루고 있는 인연이라는 개념을 한국에서는 쉽게 이해되지만 전 세계 사람들이 함께 공감할 수 있을지는 잘 몰랐어요.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들이 '인연'이라는 단어를 이야기하는 모습을 행복하게 바라보았어요. 비록 태평양을 건넌 한국 이민자의 이야기지만 누구나 어딘가에 두고 온 삶이 있을 것이고, 판타지 영화 속 영웅이 아니더라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 듯해요."◆아버지는 '넘버3' 송능한 감독▶아버지가 한국에서 영화감독으로 활동하셨다는데."영화 '넘버3'로 관객의 큰 사랑을 받은 송능한 감독입니다. 이번에 한국에 와서 아버지가 가르친 제자들을 만났는데, 모두들 아버지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어요. 자식으로서 가슴이 찡하는 순간이었죠. 아버지는 제 데뷔작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 노미네이트 되었다는 소식에 진짜 좋아하셨어요. 온 가족이 저를 자랑스러워했고, 모두들 정말 좋아하셨어요."▶영화를 보면 마치 오래된 레코드판을 꺼내서 듣는 것처럼 따뜻한 느낌이 드는데, 영화적 장치를 통한 효과인가요."35㎜ 필름 카메라로 촬영을 했기 때문이에요. 필름카메라로 영화를 찍는 것 자체가 향수를 느낄 수 있는 과정이었어요. 한국에서는 이제 더 이상 필름카메라로 영화를 촬영하지 않기 때문에 매일 밤 촬영한 필름상자를 뉴욕으로 보내는 작업을 거쳤어요. 통관과정서 엑스레이가 통과하면 촬영한 내용이 다 날아갈 수 있기 때문에 촬영 기간 내내 노심초사했던 기억이 납니다. 또 일반 카메라보다 더 많은 돈이 들기 때문에 NG가 날 때마다 가슴을 쓸어내렸죠. 오죽하면 필름이 자르륵 돌아가는 소리를 돈 떨어지는 소리라고 이야기했을까요."(웃음)▶영화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도 꽤 컸다고 보이는데요."음악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이 있었어요. 저는 시간이 특정되지 않는 음악을 쓰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영화의 시점 자체가 어떤 시대로 특정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남자 주인공인 유태오 배우의 연기에 대한 호평이 많은데, 캐스팅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준다면. "솔직히 얘기하면 오디션을 해준 분들이 300명 정도였는데, 그중에서 30명을 불러서 2차 오디션을 진행했습니다. 그중에 유태오 배우가 있었어요. 제가 찾는 주인공의 이미지는 얼굴에 어린아이랑 어른이 공존해야 했기에 그를 선택했습니다."▶가수 장기하가 남자 주인공의 친구로 등장하는 신이 있는데, 그가 출연하게 된 것도 궁금하네요."사실은 장기하 가수가 남자 주인공 역할에 오디션 신청을 했는데, 선정이 되지 않았어요. 제가 장기하 가수에게 친구역할을 할 수 있을지 물었는데, 흔쾌히 참여해주셨어요. 그의 캐릭터가 살아난 멋진 장면이 만들어진 듯하네요."▶올 아카데미에서 '오펜하이머'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과 작품상 경쟁을 하게 됐는데 소감은."정말 영광이에요. 사실 지난해 선댄스영화제에 초청받은 것부터 이번에 오스카에 오르기까지 저는 영화 한 편으로 겪을 수 있는 모든 일을 겪은 것 같아요. 수상 여부를 떠나 데뷔작으로 오스카까지 갈 수 있었던 것은 진짜 신나는 일입니다. 지난 1년을 수업기간이라고 생각하고, 저는 진짜 많은 배움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이번 영화는 한국의 CJ ENM과 미국 A24가 공동으로 배급을 맡았는데, 북미권에서 웰메이드 스튜디오로 정평이 난 A24와의 작업은 어떠했는지."A24는 데뷔를 앞둔 신예작가들이 마음껏 작업할 수 있도록 적극 도와주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신예감독이어서 리스크가 크지만 스튜디오는 감독을 적극 서포트 해 줍니다. 제가 시나리오를 가지고 갔을 때 흔쾌히 영화화를 결정하고, 직접 감독을 맡을 수 있도록 도와줬습니다. 스튜디오 관계자들은 제 시나리오를 읽고 눈물을 흘리며 영화를 만들어보라고 했지요. 고마운 영화사를 만나 마음껏 작업을 펼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김은경기자 enigma@yeongnam.com한국적 인연을 소재로 만든 데뷔작 '패스트 라이브즈'로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로 직행한 셀린 송 감독. 오른쪽은 영화의 주요 장면들.
[주말&여행] 부산 기장군 신평리 신평소공원, 우뚝한 돛대·반짝이는 조타륜…배 조형물 전망대 금방이라도 출항할 듯
신평리(新平里) 바닷가 마을 앞길이 아주 넓다. 아예 운동장이다. 사람은 보이지 않는데 가지런히 주차되어 있는 차들이 빽빽하다. 아예 주차장이다. 마을은 작고, 대지의 기울기는 미미하고, 마을 뒤로 멀리 산도 낮다. 땅이 마을 이름의 뜻을 알려준다. 신평은 평탄한 들 가운데에 새로 생긴 마을이라는 의미다. 고종 때 신평이라는 지명이 처음 나타난다. 지명을 한자화하기 전에는 새들, 새버든, 새버들, 새각단이라고도 불렀다. 바람이 불고 파도가 거센 편이지만 마을은 평온해 보인다. 마을의 남쪽 끝은 암석지대다. 카페와 곰장어 식당 사이 고샅길을 지나 벼랑에 오른다. 철썩, 부서지는 파도가 얼얼하다.◆신평소공원벼랑의 가장자리를 따라 산책로가 나 있고, 길 따라 벤치와 정자, 운동기구, 야외무대, 뱃머리 모양의 전망대 등이 조성되어 있다. 이 일대를 신평소공원이라 한다. 공원은 바다와 좁은 도로 사이에 압도적이지도 않고 실망스럽지도 않은 규모와 풍광으로 자리한다. 도롯가에는 식당과 카페들이 다닥다닥 늘어서 있다. 반투명한 창속에 사람들의 형상이 빼곡하다. 뱃머리 전망대로 오른다. 길이는 18.86m, 폭이 12m인 배다. 돛대의 높이는 15.5m로 곧 출항할 기세다. 공원이 준공된 것은 2010년 봄이다. 준공 표지석에 공원녹지계장과 지방시설서기가 함께 설계, 부산의 건설업체가 시공, 농림과장과 또 다른 공원녹지계장이 준공검사를 했다고 새겨져 있다. 한 지역 사람들의 합작품이다. 배의 이름은 없지만, 오늘은 2024년의 봄, 14년 된 조타륜은 반짝반짝하다. 뱃머리 옆에 툭툭 놓여있는 새알 같은 하얀 조형물도 생채기 하나 없이 말갛다. 역시 이름은 없다. 쓰레기도 하나 없다. 잘 관리한다는 뜻이겠다. 이곳에서 종종 웨딩 촬영을 한단다. 산책로 초입에 윷판대라는 바위가 있다는데, 안내판만 보일 뿐 실물을 찾지 못하겠다. 임진왜란 때 이곳에서 우리나라 장수와 왜나라 장수가 맞붙었다고 한다. 몇 날을 겨루었지만 승부가 나지 않자 윷놀이로 결판을 짓기로 했단다. 칼로 바위에 윷판을 새겨 종일 겨루어도 승부는 나지 않았다. 저녁이 되자 왜장은 바다를 향해 서서 윷판이 잘 보이도록 더욱 깊고 굵게 새겼는데, 그때 우리 장수가 왜장을 바다로 뻥 차버렸다고 한다. 왜장을 바다로 던져버린(擲) 대(臺)라고 하여 척사대(擲柶臺)라고도 한다. 벼랑의 윷판대 안내판 앞에서 줄곧 저 아래 바위만 열심히 봤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서 있던 그 벼랑이 바로 척사대였던 듯싶다. 줄곧 열심히 보았던 바위들은 신평소공원에서 가장 멋있고 신비로운 요소다. 이 일대의 바위들에는 퇴적층이 아주 뚜렷이 나타나 있는데 후기 백악기 이천리층이라 불린다. 경상분지의 동남부다. 뱃머리 앞쪽의 암석은 이천리층 중 가장 하부에 해당하는 퇴적단면을 보여준다. 아래에서부터 습윤, 건조, 습윤한 기후변화가 나타나는데 건조한 기후였던 중층부에서 공룡 발자국과 침엽수 화석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곰장어 가게가 올라앉아있는 벼랑은 이천리층의 가장 상부에 해당하는 퇴적단면이다. 영암과 사암, 이암층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습윤한 기후가 지배적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야외무대 앞쪽의 암석은 하층부에서는 습윤한 기후가, 중상부로 갈수록 건조한 기후가 지배적인 호수 주변부의 퇴적모습이 나타난다. 이곳의 건조한 시기 퇴적층에서 각종 공룡 및 특이형태의 척추동물, 새의 발자국 화석과 식물화석, 공룡 뼈 화석이 발견되었다. 그러고 보니 새알 같던 조형물은 공룡의 알일까. ◆백악기의 공룡발자국야외무대의 축대 아래에 신평리 공룡발자국과 화석에 대한 안내판이 있다. 공룡발자국은 2020년 3월에 발견된 것으로 영남지방의 공룡 발자국 중 가장 늦은 시기에 생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바닷가로 내려선다. 거친 파도에 움찔한다. 그러나 파도는 거칠게 바위를 때리고는 저만 부서지기를 반복하고, 부글거리는 거품들이 바위 안쪽에 갇혀 풀풀 날린다. 공룡 발자국이 여럿 있다는데 하나의 보행렬 만이 확연하다. 공룡은 바위 면을 기준으로 남서쪽에서 북동쪽으로 걸어갔다. 20㎝ 안팎 크기의 발자국이 10여 개, 걸음새는 쿵---쿵이 아니라 쿵, 쿵, 쿵, 쿵, 제법 경쾌하고 재다. 발견된 보행렬은 3점으로 두 발로 걷는 조각류의 것이 2점, 목이 긴 용각류의 것이 1점 확인됐다고 한다. 추정되는 지층의 나이는 대략 9천만년 정도다. 백악기 때 기장군 일대에는 건조한 기후의 영향을 받는 호수가 있었다고 한다. 그 호수는 공룡을 비롯한 동물들의 서식지였고 물과 먹이를 제공하는 공급처였다. 토양은 끈적끈적한 성질의 흙으로 이루어져 있어 공룡이 거대한 몸으로 쿵쿵 걸을 때면 발자국이 그대로 남곤 했다. 발자국은 대부분 금세 지워졌지만 드물게는 다른 흙이나 암석, 용암 등에 덮여 굳어졌다. 굳어진 발자국은 오랜 세월 동안 지층 속에서 변성작용을 거쳐 지금과 같은 형태의 화석이 되었다고 한다. 초식공룡이 먹이로 삼았을 식물의 흔적도 곳곳에 새겨져 있다고 한다. 공룡화석과 먹이인 식물화석이 함께 나타나는 것은 국내에서 드문 사례다. 물결무늬도 발견되는데, 호숫가에 물이 차올랐다가 빠지는 잔물결이 반복되면서 생긴 것으로 분석된다. 눈 밝은 사람은 처트(규질암)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신평리층에 콕콕 박혀 있는 붉은 색의 암석인데, 선캄브리아시대 이후 바다에 떠다니며 사는 원생동물(방산충)이 무수히 쌓여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이 암석의 모체는 한반도가 아닌 일본에서 발견된다. 그래서 처트는 한반도의 공룡 시대에 동해가 없었다는 증거로 꼽힌다. 그때는 한반도와 일본이 연결되어 있었다. 백악기 이곳에 발자국을 남긴 공룡들, 이곳에 살았던 식물들, 잔물결 일던 호수는 저 바다를 보지 못했다. 무섭게 파도치는 바다, 성난 거품을 일으켰다가 풀풀 날려버리는 바다, 저 깊고 넓은 바다를 그들은 보지 못했다. 괜히 으쓱해진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 Tip55번 대구부산고속도로 부산 방향으로 간다. 대감분기점에서 600번 부산외곽순환도로 기장 방향으로 가다 기장IC로 나긴 뒤 기장일광 톨게이트를 이용하면 된다. 톨게이트 앞 사거리에서 온산, 서생방향 31번 국도를 타고 약 3.2㎞ 직진, 청광리, 동백리, 신평리 방향으로 나가 우회전해 직진, 동백교차로에서 왼쪽 동백리 방향으로 간다. 동백리에서 해안도로를 타고 북향하면 바로 윗마을이 신평리다. 동백리 지나 신평리가 시작되는 언덕바지에 신평소공원이 위치한다. 공원 주차장은 5대가량 규모로 협소하다. 길가에 주차할 공간도 여의치 않다. 공원 주차장에서 약 130m 더 직진해 신평리 마을로 들어서면 바닷가에 공터가 아주 넓다.신평리 남쪽 끝은 암석지대로 산책로와 벤치, 정자, 야외무대, 뱃머리 모양의 전망대 등을 갖춘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해안 끝에 아주 작은 몽돌 해변도 있다.뱃머리 전망대와 알 모양의 조형물. 전망대는 길이 18.86m, 폭이 12m인 배다. 돛대의 높이는 15.5m로 곧 출항할 기세다.신평리 공룡발자국. 용각류의 보행렬 화석으로 작은 것은 앞발, 큰 것은 뒷발이다. 추정되는 지층의 나이는 대략 9천만년 정도다.이천리 암석지대의 바위에는 퇴적층이 아주 뚜렷이 나타나는데 후기 백악기 이천리층이라 불린다. 당시의 다양한 지질과 생물기록들이 압축되어 있다.
[홍하상의 기업인 열전] 삼성가 이야기 <9> 제일제당과 현대건설
◆ 웬, 검은 액체?기계가 굉음을 내면서 돌기 시작했다. 검은 액체가 줄줄이 쏟아졌다. 지켜보던 일행은 아연실색했다. 이게 대체 뭔일인가? 기술자 한 사람이 "아니 웬놈의 원료를 이렇게 많이 넣는 거요. 원당을 한꺼번에 너무 많이 넣어서 기계가 균형을 잃은 거요" 하고 말했다. 이병철이 기술자들에게 원료를 조금만 넣고 균형을 맞추면서 기계를 돌려 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얼마 후부터 순백색의 설탕가루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1953년 11월5일의 일이었다.어렵게 설탕이 생산되었으나 문제가 또 있었다. 설탕을 담을 부대가 없었던 것이다. 요즘엔 비닐봉지를 쓰지만 비닐이 없던 시절에는 흰 천으로 설탕 부대를 만들어 썼다. 문제는 국내에서 생산된 흰 천에 설탕을 담으면 설탕 가루가 줄줄이 새어버리는 것이었다. 설탕을 담을 천은 공기가 통하면서도 설탕이 새지 않아야 한다. 미군이 쓰다 버린 낙하산으로 여성들의 블라우스를 만들어 입던 시절이다. 결국 일본에 기술자를 보내 설탕 부대를 만들 직조기계를 구입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설탕 부대용 천을 꿰맬 수 있는 재봉틀이 없었다. 재봉틀 구하기에 나섰다. 결국 설탕 부대 제작용 재봉틀은 일본에서 이병철의 장남인 이맹희가 수소문 끝에 중고품을 구해 미군 군용기에 실어왔다. 첫날 생산된 설탕은 6천300㎏이었다. 설탕은 근당 100원에 부산 총판인 신일상회로 넘어갔다. 당시 수입 설탕은 근당 300원이었으므로 거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싼값이었다. 그러나 뜻밖에 소비자의 반응은 냉담했다. 외국산 설탕과 마찬가지로 순도 99.9%이며 색깔도 똑같은데 팔리지 않는 것이 의아했다. 이유를 알아보니 국산품은 싸고 나쁜 것이라는 소비자들의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잠시, 불과 보름이 지나자 설탕은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먹어본 사람들이 입소문으로 품질에 아무 문제가 없을 뿐 아니라 값은 3분의 1밖에 되지 않으므로 모두들 칭찬했기 때문이었다.'국산=저질' 편견에 첫 시장반응 냉담보름 지나자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동종업 난립 제당 전국시대 열렸지만선발기업 경영합리화로 점유율 70%물건이 달리자 공장은 24시간 가동되었다. 아침에 설탕을 한 트럭 싣고 나가면 저녁에는 돈을 한 트럭 싣고 돌아온다고 할 정도였다. 하루에 6.3t 생산되던 설비를 2년 만에 그 여덟 배 가까운 50t 규모로 늘렸다. 제일제당이 설립되기 전 한국은 설탕의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다. 그러나 제일제당이 설탕을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수입 의존도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1954년에는 수입량이 전 해에 비해 절반인 51%로 떨어졌고, 55년에는 다시 그 절반인 27% 수준이 되었으며, 56년에는 수입량이 국내 소비시장의 7%까지 떨어졌다. 설탕의 자급자족이 달성된 것이다.이병철은 설탕의 수요가 급속히 국산품으로 대체됨에 따라 시설을 계속 확장하고 원가절감을 위한 최신기계를 도입했다. 제일제당은 당시의 삼성그룹이 최초로 시도한 근대적 기업으로서의 첫 성공이다. 53년 첫해에 하루 6.3t씩 생산되던 설탕은 6개월 후에는 50t으로 늘어났고, 1956년에는 하루 150t(연산 5만t), 57년에는 하루 200t(연산 7만t)으로 시설이 늘어났다. 매출도 설탕이 생산된 첫해엔 7억2천2백만환이던 것이 1958년에는 그 여덟 배인 56억환으로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그에 따라 순이익도 엄청나게 발생했다. 54년의 순이익은 1억6천200만환이었다.제일제당이 설탕 사업에서 성공하자 국내에는 그 이듬해에 서울 용산에 동양제당에 이어 한국정당(서울 영등포), 삼양사(경남 울산), 금성제당(서울 용산), 해태제과(서울 영등포), 대동제당(경기도 시흥) 등이 설립되어 한국의 제당업계는 춘추전국시대로 들어간다. 시장이 난립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따라 국내의 설탕 공급도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그 당시 제일제당을 비롯한 국내업체의 연간 생산량은 15만t이나 되었다. 그에 비해 연간 소비량은 5만t에 불과했다. 따라서 공급이 수요보다 3배나 많게 되자 덤핑이 시작된다. 이른바 제당 전국시대가 된 것이다. 하지만 제일제당은 선발기업으로서 이미 기반을 닦았고 경영 합리화를 추진해 나가면서 국내 설탕시장의 70%를 점유했다.제일제당이 설립되어 설탕이 공급되자 가정 문화도 바뀐다. 반가운 손님이 집에 찾아오면 설탕물을 타줬던 것이다. 주스나 커피 등이 없던 시절이어서 손님에게 설탕물을 타 주는 게 당시엔 최상의 대접이었다. 이병철이 성공적으로 사업을 시작할 때 정주영은 고령교 공사를 하면서 악전고투하고 있었다.◆ 정주영은 고령교에서 파산1954년 4월, 조폐공사에서 발주한 고령교 복구 공사에서 엄청난 적자가 생기는 바람에 현대건설은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된다. 고령교는 대구와 거창을 잇는 다리였으나 그 당시 교각은 기초만 남아있고 상부 구조물은 물에 처박혀 있었다. 정부에서는 지리산 공비 토벌을 위해 시급히 교량을 복구해야 했다. 고령교 공사는 당시 정부공사로서는 최대규모였다. 당시의 공사 금액은 5천457만환. 24개월 만에 공사를 끝내야 하는 토목공사였다. 이 다리 공사에서 정주영은 6천500여만환 넘는 적자를 보고 만 것이다. 그 전해에 설립된 제일제당의 자본금이 2천만환이었으니 그 세 배 넘는 돈을 적자를 본 것이다.국내 최대의 토목공사이니만큼 정주영은 이 다리공사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러나 말이 복구공사지, 거의 전파된 다리여서 차라리 새로 다리를 건설하는 편이 더 쉬울 정도였다. 겨울에는 물이 말라 흰 모래가 드러났으나 여름철엔 그 반대로 낙동강 물이 불어 갑자기 수심이 몇 배 깊어지는 곳이었다. 당시 정주영이 가지고 있던 장비는 크레인 한 대, 믹서기 한 대, 컴프레서 한 대가 전부였다. 장비가 부실하다 보니 공사 대부분이 사람 손에 의해 이루어졌다. 교각 한 개를 철근을 넣고 콘크리트를 쳐서 세워 놓고, 또 다시 한 개를 세우고 하는 식으로 공사가 진행되었는데 느닷없이 폭우가 쏟아지면서 강물이 불어나는 바람에 교각은 번번이 강물 속으로 떠내려가 버렸다. 결국 정주영과 현대건설은 교각을 채 한 개도 박지 못했는데, 그사이 물가는 120배 뛰어버렸다. 엄청난 인플레였다.자금이 턱없이 부족했다. 계약은 했으나 공사를 끝내지 못했으니 대금은 당연히 나오질 않았고, 인부들은 임금을 내놓으라고 아우성쳤다. 정주영은 동생 정순영이 살던 삼선동의 20평짜리 기와집을 팔도록 하고, 매제 김영주가 살던 돈암동 종점 근처의 20평짜리 집도 팔았다. 그 외에 임원들의 집도 팔아서 모자라는 공사비에 충당하였다. 그래도 돈이 모자라 자신이 운영하던 초동자동차 공장부지까지 팔았고, 거기다가 월 18%나 되는 이잣돈을 내서 그 돈으로 임금을 주고 공사대금 1억여환을 마련했다. 결국 고령교 공사는 당초 계약기간보다 2개월 늦게 완공되었다. 공사 대금을 다 받아봤자 그보다 더 큰 빚이 남았다. 공사가 끝났지만 현장에서 장비를 철수시킬 기력도 남아있지 않은 지경이었다. 빚쟁이들은 아우성을 치고 동종 업자들의 질시도 극심해졌다. 소학교밖에 안 나온 정주영이 인플레가 뭔지 알겠느냐, 정주영이는 이제 끝났다는 등의 비난이 쏟아졌다. 그가 계약 금액보다 더 많은 돈을 손해보면서까지 공사를 감행한 것은 '신용' 때문이었다. 신용을 잃으면 모든 것이 끝장이라는 생각이어서 밀어붙였던 것이다.'이것은 시련이지 실패는 아니다. 내가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 한 결코 실패가 아니다.' 정주영은 고령교 공사 실패에 대해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자신을 달랬다. 실패를 그대로 인정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잃는다. 그러나 실패의 뿌리를 끝까지 붙들고 재기의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희망이 있다. 정주영은 '채근담'에 나오는 '득의지시 편생실의지비(得意之時 便生失意之悲)' 즉 '뜻을 이룰 때 실패의 뿌리가 생긴다'라는 의미의 글귀를 좋아한다. 그는 실패를 해도 그 뿌리를 결코 놓지 않았던 것이다. 그 뿌리의 싹은 '신용'이라는 재산이었다.오늘날 현대건설 사옥에는 아래와 같은 휘호가 걸려있다. '담담한 마음을 가집시다. 담담한 마음은 당신을 굳세고 바르고 총명하게 만들 것입니다.' 고령교 공사의 실패를 통해 얻은 정주영의 교훈을 적은 것이다. 담담한 마음으로 정주영은 누워서 자기의 쓸개를 쓰다듬는 와신상담의 긴 고난의 시간이 시작되고 있었다. 고령교 공사로 인한 빚 6천500만환을 갚는 데는 그후 20년이 걸렸다. 현대건설은 고령교 복구공사로 큰 손해를 보았으나 그때 쌓은 신용 덕분에 2년 뒤인 1957년 한강 인도교 복구공사를 따내는 데 성공, 다시 화려하게 재기에 성공한다.이병철과 정주영 두 사람은 이후 한국경제를 이끄는 양대 기관차이자 라이벌이 된다. 홍하상 작가·전경련 교수제일제당 창업 무렵의 이병철. 제일제당 공장의 설탕 포장 모습. 홍하상 작가·전경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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