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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여행] 경북 청도 남산 낙대폭포, 하늘서 쏟아지는 30m '물폭탄'…여름이여 오라
청도군청을 지나자 도로 옆으로 물길이 보인다. 범곡천이다. 이 물길은 군청의 주차장 아래를 지나 청화로 밑을 가로지르고 청도군보건소 주차장 아래를 지나고서야 다시 제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는 한내길과 나란히 흐르다가 청도읍사무소 앞에서 청도천에 합류한다. 군청에서 범곡천을 거슬러 오르면 곧 대동지다. 아담한 크기의 이 저수지는 지금 둘레 산책길을 만드는 중인 듯하다. 몇몇 아저씨들이 길가에 둘러앉아 계신다. 쓱 둘러보니 아직 쉴 만한 그늘이 보이지 않는다. 태양 빛에 검붉게 그을린 한 아저씨의 얼굴과 머쓱하게 마주쳤고, 저편 물가의 수양버들이 살랑거렸다.남산서 흘러내린 물이 만든 '청도8경'봄이면 벚꽃 만발…겨울엔 빙벽 장관신경통 효험 소문…여름철 인파 몰려계곡따라 시원한 물소리·숲길 이어져◆청도 남산 범곡리 폭포골대동지를 지나면 지나온 온갖 관공서와 학교와 아파트와 집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산길이 시작된다. 허리 굽은 할머니들이 멈춘 듯 산을 오르신다. 천태종 청화사를 지나고 조계종 대웅사를 스치면서 그녀들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아차린다. 두어 번 저절로 끙끙 소리가 나는 가파르게 굽은 길을 올라 청도한옥학교를 지나면 사방 산인 깊은 골짜기에 든다. 커다란 초록의 덩어리들에 약간 기가 죽은 채로, 혹여나 차가 마주 오지나 않을까 마음 바쁜 길이다. 남산(南山)은 청도의 진산이다. 옛 문헌에는 오산(鰲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관아의 동헌에서 남쪽을 보면 연이은 산의 모습이 자라의 머리와 등처럼 보인다고 생긴 이름이다. 화양읍 청도읍성에서 석빙고 지나 남산 오르는 길을 남산골 또는 남산계곡이라 하고 남산 동쪽에 청도읍과 경계가 되는 골짜기를 대동골이라 하는데 두 골짜기 사이에 폭포골이 있다. 청도군청과 대동골, 폭포골이 아우러져 범곡리를 이루는데 옛 읍성이 있는 화양에서 보면 동쪽인 인(寅) 방향이라 순우리말로 범곡이라 부르고 한자로 범곡(凡谷)이라 쓴다. 범곡리는 학교를 비롯한 행정 및 교육 중심지이자 아파트 및 주거 단지가 밀집한 곳으로 청도군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지역이다. 호랑이와는 관계가 없는 범곡이지만 범이 산대도 믿길 만큼 서늘한 산빛이다. 폭포골은 폭포가 있는 골짜기다. 남산 정상에서 흘러내린 물이 폭포를 만들고 대동지를 채운 뒤 청도천이 된다. 천은 범곡천, 폭포는 낙대폭포(落臺瀑布)다. 낙대, 거창하거나 소소한 어떤 의미부여도 없이 그저 단순하고 직관적인 이름이다. 교행이 어려운 산길 끝에 숨 돌릴 만한 주차공간과 안내소가 자리한다. 몇 대의 차가 서 있고 음악 소리와 계곡 물소리가 들린다. 간이 화장실은 약간 놀랍도록 깨끗하다. 청도군 종합 안내도 옆에 쓰인 낙대폭포 안내문을 읽은 뒤 폭포로 향한다. 판석이 깔린 널찍한 길이다. 계곡 쪽 가장자리를 따라 안전 목책이 서 있고 약간 턱진 야자매트가 깔려 있다. 길 가운데는 몽돌 지압길이다. 한 여인이 야자매트를 밟으며 내려온다. 계곡물 소리와 새소리 가득하다. 모퉁이를 돌자 또 한 여인이 야자매트를 밟으며 여배우처럼 내려온다. 정오를 조금 넘긴 시간, 야자매트 길은 청량한 그늘에 덮여 폭신하다.◆낙대폭포잠시 후 길이 갈라진다. 계속 진행되는 판석의 길은 빛의 길, 계곡을 건너 이어지는 길은 숲에 감싸인 데크로드다. 이정표가 없어 잠시 망설이다 계곡을 건넌다. 천천히 서성서성 오르며 저 아래에서 강아지와 함께 오고 있는 부부를 기다린다. 그들은 계곡을 건너려다 말고 판석의 길로 나아간다. 아차 싶었지만 무슨 고집인지 멈추지 않고 데크 로드를 따라 숲으로 든다. (결국 두 길은 폭포 앞에서 만난다.) 내내 계단이다. 이따금 골짜기 너머 부부의 모습이 보이지만 자꾸만 머리 위로 열리는 숲 때문에 아차, 했던 순간도 부부의 걸음도 다 잊어버린다. 아주 오랫동안 이 숲길을 잊지 못하겠구나 한다. 골짜기는 깊고 가느다란 나무들은 동아줄처럼 높다. 계단이 끝나고, 숲의 볕뉘 속에서 반짝이는 무언가 때문에 눈을 질끈 감는다. 폭포다. 빛 때문에 깜깜해진 쉼터를 더듬더듬 가로질러 폭포 가에 선다. 그때 오르막의 끝에 다다른 부부도 홀연 멈추어 서서 폭포를 바라본다. 잠깐 시간이 멈춘 듯했고, 이윽고 모두가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폭포의 높이는 30m에 이른다. 그래서 백척폭포라고도 부르고 범곡에 있다고 범곡폭포라고도 불린다. 또 옛날부터 신경통에 효험이 있다 해서 약수폭포(藥水瀑布), 낙대약폭 등으로 불려왔다. 지금도 여름이면 폭포수를 맞으러 오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폭포수를 맞기 좋도록 아래 소를 욕탕처럼 정비해 놓아 인공폭포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낙대를 올려다보면 지구(地球)의 지구적(持久的)인 행동을 의심할 수 없다. 봄이면 폭포 주변으로 벚꽃이 만발하고 겨울에는 빙벽이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여름의 짙은 녹음과 가을의 빼어난 단풍은 지금도 충분히 떠올릴 수 있다. 햇빛 많은 판석의 길을 따라 내려간다. 노란 산괴불주머니가 자주 눈에 띈다. 아카시아 꽃은 어찌 벌써 분분한 낙화 중인가. 저 아래에서 돗자리를 지닌 할머니가 천천히 올라오신다. "폭포까지 먼가요?" "아니에요. 금방이에요." 안내소에서는 여전히 음악 소리가 들리고 등산복을 야무지게 차려입은 남자가 이제 막 등산을 시작한다. 그가 폭포를 보고, 폭포의 정수리를 밟고 올라 남산 정상에 선 모습을 떠올려 본다. 아침 햇살이 남산에 비치는 모습을 오산조일(鰲山朝日)이라 한다. 언젠가 이른 아침 팔조령을 넘어 청도로 들어섰을 때 금빛으로 빛나는 남산의 모습에 오산조일의 아름다움을 실감한 적이 있다. 청도천변의 평평한 땅에서부터 불쑥 솟아나 그리 높지 않은 산임에도 몹시 돌올하고 어쩐지 신성하다는 느낌이었다. 과거 오산조일은 청도8경 중 으뜸이었지만 지난해 청도9경이 새롭게 선정되면서 제외되었다. 낙대폭포는 청도8경 중 제7경이었고, 지금은 청도9경 중 제6경으로 여전히 청도의 아름다운 풍광 자리를 지키고 있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 Tip대구부산고속도로 청도IC에서내리거나 경산에서 청도소싸움경기장 방향 25번 국도를 타고 청도로 들어왔다면 모강교차로에서 우회전, 대남교차로에서 좌회전해 청도군청으로 간다. 파동과 가창, 팔조령 터널로 이어지는 30번 국도를 탔다면 샛별교차로에서 좌회전, 유등지 지나 서상교차로에서 좌회전해 청도군청으로 간다. 군청 주차장 앞 양정길 따라 조금 가면 대동지가 나타나고, 산길을 약 1.9㎞ 오르면 낙대폭포 초입의 주차장에 닿는다. 소형차 10여 대가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다. 주차장에서 10여 분 거리에 낙대폭포가 있다.길이 휘어지는 곳이 갈림길이다. 계속 진행되는 판석의 길은 빛의 길, 계곡을 건너 이어지는 길은 숲에 감싸인 데크 로드다. 결국 두 길은 폭포 앞에서 만난다.데크 로드를 따라 숲으로 든다. 내내 계단이다. 골짜기는 깊고 가느다란 나무들은 동아줄처럼 높다.낙대폭포 옆에 신둔사로 가는 등산로가 있다. 등산로는 대동골, 남산계곡, 남산 정상 등으로 이어진다.청도 9경 중 하나인 낙대폭포. 높이는 30m에 이르며 백척폭포, 범곡폭포, 약수폭포, 낙대약폭 등으로 불린다.
[세계를 보는 창] 반발 커지는 팁문화…미국인도 이젠 부담
최근 해외여행에서 돌아온 A씨는 미국 애틀랜타 국제공항에서 집까지 우버(Uber)를 이용했다. 자차를 이용할 경우 공항 주차장 이용료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었다. 무사히 집에 도착한 A씨는 우버에서 날아온 모바일 안내를 보고 깜짝 놀랐다. '운전기사에게 얼마의 팁을 주겠느냐?'는 메시지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는 없었던 안내문이다.미국에선 이처럼 이른바 '팁플레이션(Tipflation, 팁+인플레이션)'이 소비자의 고민거리로 떠올랐다. 미국 국민의 절반 이상이 현재 미국 내에서 부과되는 팁 비용에 부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실제 포브스 어드바이저(Forbes Adviser)는 올 상반기 조사에서 응답자 가운데 31%가 팁 비용에 부담을 느끼고, 26%는 '현재 수준이 과하다'고 밝혔다. '당연하다'는 응답자는 23%에 불과했다.이미 '길트 티핑(guilt tipping, 죄책감으로 주는 팁)' '팁 피로' '팁 크립(tip creep)' '팁 수치심(팁의 인색함으로 인해 생기는 수치심)' '팁플레이션' 등의 신조어가 자연스럽게 통용되고 있다. 여기에 다수의 업소가 최근 테이크아웃 등에도 팁을 요구하면서 소비자들의 팁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은 점점 확산하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 노팁(No Tip) 식당이 늘어나는 추세다. 사실 미국만큼 팁 문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라도 드물다. 팁을 주지 않는 게 무례한 행동으로 인식될 정도다. 음식점의 경우 보통 점심 10%, 저녁 15% 정도 수준의 팁을 추가하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요즘 부쩍 늘어났다. 계산서 금액에 18~25%를 추가하는 것이 다반사다. 게다가 점점 더 많은 소매업체가 단순 서비스에도 팁을 추가하고 있다. 과거엔 식당 혹은 바(Bar)에서 통용됐던 팁을 거의 모든 서비스 업종에서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자동 세차장, 보톡스 시술, 스무디를 만드는 로봇 카페 등에서도 팁을 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한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미국 기업, 특히 서비스 업종은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그럼에도 살인적 인플레이션으로 각종 비용이 뛰는 상황에서 소매업자들은 임금을 올려줄 여력이 부족하다. 대신 직원들이 팁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은 셈이다.팁플레이션은 고용주 입장에선 '손 안 대고 코 푸는' 좋은 방법이다. 스타벅스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최근 드라이브 스루(차를 탄 채로 이용) 매장에서도 팁을 받는다. 지난해 9월부터 '신용카드 팁 시스템'을 새로 도입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이 시스템 도입 이후 신용카드 구매 건수의 거의 절반에서 팁이 포함됐다. 로봇카페·테이크 아웃도 팁 요구청구액 늘어 18~25% 추가 다반사미국사회 내서 부정적 시각 확산비대면 태블릿 결제 시스템 도입소비자 선택권 제한 교묘히 받아피로도 누적 평균 팁비율 감소세◆디지털 팁의 '넛지 효과'팁플레이션의 결정적인 실마리를 제공한 것은 '태블릿 결제' 시스템 확산이다. 과거엔 팁을 보통 현금으로 지불했다. 식사 후 테이블에 지폐를 남기거나 결제할 때 'Tips'라고 쓰인 유리병에 돈을 넣는 식이었다. 신용카드로 결제할 때도 소비자들은 영수증에 팁 액수를 따로 쓰는 것으로 결제 금액이 결정됐다. 그렇지만 요즘 미국에선 대부분 업소가 터치스크린 형태 단말기나 휴대용 태블릿을 사용한다. POS 시스템 때문이다. 이 같은 변화는 코로나 팬데믹 영향이 컸다. 가급적 대면 접촉을 줄이려다 보니 이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이런 시스템은 당당하게 그리고 교묘하고 끈질기게 팁을 달라고 고객에게 요구한다. 팁을 얼마 줄 건지를 묻고, 고객이 입력을 마쳐야만 결제가 완료되는 식이다.문제는 이 같은 '디지털 팁' 도입으로 이전보다 팁을 주는 비율도 은근슬쩍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일종의 '넛지 효과'(Nudge effect,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다. POS 시스템에선 보통 고객의 편의를 위해(?) 객관식으로 팁 비율을 제시한다. 레스토랑의 경우 그 최소비율이 일반적으로 18% 또는 20%부터 시작한다. 최대 30%까지 제시하는 곳도 있다. 물론 업주가 비율을 설정한다. 만약 10%만 팁으로 주고 싶다고 하더라도 입력하는 창이 아예 없거나, 있더라도 찾기 어렵다. "입력 버튼을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대신, 그냥 18%를 눌러요"라는 것이 대다수 고객들의 답변이다. 팁 비율 상승보다 소비자를 더 당황스럽게 하는 건 디지털 팁을 요구하는 매장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예전 같으면 웬만하면 팁을 안 주고 넘어갔을 매장에서도 디지털 결제 과정에 팁 선택 버튼이 있다. 실제 테이크아웃이 주를 이루는 커피숍이나 샌드위치 가게에서도 무조건 팁 버튼을 눌러야 결제가 끝난다. "'팁 없음'을 선택할 수는 있지만 바로 앞에서 웃는 얼굴로 직원이 빤히 쳐다보고 있으니 쉽지 않다." 대다수 소비자들의 볼멘 반응이다. 구매가가 저렴한 일부 매장은 백분율이 아닌 일정 금액으로 팁 선택지를 제시하기도 한다. 예컨대 3.75달러(약 5천170원)짜리 빵을 사는데 팁을 '1달러, 2달러, 3달러' 중 선택하게 하는 식이다. 비율로 치면 엄청나다.◆미국 팁 문화의 유래미국의 팁 문화는 언제부터 유래됐을까. 17세기 영국과 유럽 상류층의 문화였던 팁은 이후 미국으로 넘어왔다는 게 정설이다. 특히 남북전쟁 이후 흑인들이 서비스업에 대거 종사하면서 팁 문화가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낮은 임금을 주는 대신 팁에 의존하게 한 것이다.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은 임금을 책정할 때 연방정부가 정한 연방 최저임금과 각 주가 정한 주별 최저임금 가운데 더 높은 것을 적용한다. 그런데 미국의 연방 최저임금은 팁을 받는 근로자와 받지 않는 근로자가 다르다. 팁을 받지 않는 일반 근로자는 시간당 7.25달러(약 9천995원), 팁을 받는 근로자는 시간당 2.13달러(약 2천936원)이다. 주별 최저임금도 마찬가지다. 50개 주 가운데 단 8개 주에서만 팁과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똑같은 최저임금을 적용한다. 나머지 42개 주에선 팁을 받는 근로자에겐 더 적은 최저임금을 줄 수 있게 되어 있다. 이렇다 보니 팁을 받는 종업원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팁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팁 수준 예전으로 회귀하나이처럼 인플레이션과 소비자들의 팁에 대한 피로도가 누적되자 최근 평균 팁 비율이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수준으로 회귀하는 조짐을 보인다. 클라우드 기반 POS 시스템 관리 업체인 '토스트'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2분기 소비자들이 식당에서 준 팁 비율은 평균 19.4%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코로나 팬데믹 초기인 2020년 2분기의 19.4%와 같은 수준이다.평균 팁의 비율은 2021년 1분기 19.9%로 상승했다가 2021년 4분기 19.8%, 2022년 3분기 19.6%, 2023년 2분기에는 19.4%로 내리면서 연이어 감소세를 보였다. 2018년 1분기 평균 식당 팁 비율이 19.7%였던 점을 고려할 때, 최근 소비자들이 물가 상승과 더불어 팁에 대한 스트레스가 급증하면서 팁을 줄인 것으로 분석된다. 디지털 결제 서비스 기업들은 "팬데믹 기간 소비 지출 감소 및 지원금 지급 등으로 소비자들의 재정 상황이 안정돼 팁이 증가했다"며, "하지만 최근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팁 비율이 과거 수준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분석했다.그럼에도 팁 비용이 하방경직성이 강한 만큼 예전으로 돌아가는 데는 저항선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권영일〈경북 수출지원 해외서포터스(미국)〉〈게티이미지뱅크〉 그래픽=장수현기자한 고객이 매장에서 물건을 산 후 POS시스템을 이용해 결제를 하고 있다. 미국 사회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으로 디지털 팁을 도입했다. 그 결과 기존의 팁 액수가 크게 올라 소비자들의 고민거리로 등장했다.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중장년층의 새 도전 '시니어 모델'(2)흰머리도 나잇살도 패션 아이콘…숨겨온 열정 폭발
"제 어릴 적 꿈은 패션모델이었어요. 젊은 모델은 여성 기준으로 키가 175㎝는 돼야 할 수 있는데, 키가 그만큼은 안 크더라고요(웃음). 모델의 꿈은 마음속에만 묻어두고 가정주부로 몇십 년을 살아 왔는데, 시니어 모델이란 직업을 알게 되고 꿈을 펼치게 됐어요." '시니어 모델' 전성시대다. 주부였던 박세영(56)씨는 중년의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했다. 뒤늦게 어릴 적 꿈꿨던 모델로 데뷔하면서 인생 2막을 살고 있다. 빠른 고령화와 함께 100세 시대가 도래하면서 최근 액티버 시니어(활동하는 시니어)가 뜨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주목을 받는 직업군이 시니어 모델이다. 누구나 원하고 마음만 먹으면 도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이·신체조건 무관 의지만 있으면 누구나 가능 바른 자세·워킹 연습은 '최적화된 운동' 건강 UP 패션쇼 등 특별한 무대경험 통해 노후생활 활력 모델활동하다 광고·영화 분야로 진출영역 넓혀가◆키 작아도, 나이 많아도…자신감만 있으면 OK'시니어'라 하면 통상 65세 이상의 사람을 가리키지만 이들 세계에선 그렇지 않다. '시니어'란 단어가 폭넓은 의미로 쓰이기 때문이다. 적게는 40대, 많게는 90대의 노인도 시니어로 칭해지며 모델로 활동한다. 이 말인즉슨 시니어 모델에게 나이는 많든 적든 문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 7일 찾은 대구 수성구에 위치한 시니어 모델 아카데미 '모델라인'의 모델 연령대도 4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했다. 도하영 모델라인 원장은 "일반적으로 시니어라 하면 백발의 노인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시니어'와 '모델'이란 단어가 만나면 그런 이미지가 옅어진다. 시니어 모델이 된 순간부터 몸도 마음도 젊어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체형에도 크게 구애받지 않는다. 키가 크고 슬림해야 하는 젊은 패션모델에 비해 신체적 조건이 덜 까다롭다. 일반적인 모델 기준보다 키가 작거나 마르지 않아도 된다. 도 원장은 "키가 작더라도, 살집이 있더라도, 신체에 불편한 곳이 있더라도 자신감과 열정만 있으면 누구든 시작할 수 있다. '시니어'나 '모델'이란 단어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사람이 활동할 수 있다는 점이 시니어 모델의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매력으로 시니어 모델이란 직업군이 주목을 받으면서 최근엔 흰머리 자체가 하나의 스타일이 되기도 했다. 흰머리가 이들의 개성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요소가 된 것. 시니어 모델이라서 더 '힙하게' 보일 수 있는 시대가 된 셈이다.◆진출 분야 폭넓어…광고·영화로도 진출이처럼 시니어 모델은 진입 장벽이 낮아 누구나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노력과 투자는 필요하다. 모델이기 때문에 워킹부터 시작해 자세, 표정 연기, 무대 동선, 무용까지 다양한 것들을 배우고 연습해야 한다. 개인마다 편차는 있지만 기본 8개월 이상은 배워야 첫 패션쇼 무대에 설 수 있다. 얼마 전 시니어 모델에 도전한 김우람(43)씨도 "키가 큰 편이라 가족의 추천으로 활동을 시작하게 됐는데 생각보다 배울 게 많다. 표정처럼 디테일한 부분 하나하나 신경 쓰고 연습해야 한다"고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워킹과 자세다. 이날 모델라인에서 만난 시니어 모델들도 인터뷰 내내 올곧은 자세를 유지했다. 6년 차로 활동 중인 박보겸(57)씨는 "이전에는 8자 걸음으로 걷고 다리도 오다리였는데, 시니어 모델 활동을 하면서 그런 나쁜 자세들을 전부 교정했다. 평소 집에서도 다리를 줄로 묶고, 앉아 있을 때도 허리를 펴는 것을 습관화했다"고 말했다.다양한 것을 배우는 만큼 진출 분야도 폭넓다. 크고 작은 패션쇼뿐만 아니라 지면·방송 광고를 찍기도 하며 영화배우가 되기도 한다. 패션쇼에 서기 위해 배운 자세, 연기 등이 광범위하게 활용되기 때문이다. 김경미(65)씨도 시니어 모델 활동을 하다 최근 상업 영화에서 조연을 맡게 됐다. 과거 영화 촬영에선 노인 배역을 맡을 사람이 많지 않아 중년 배우가 분장을 하고 노인 역을 맡는 경우도 있었는데, 최근엔 시니어 모델이 많이 캐스팅되는 추세다. 김씨는 "영화배우라도 워킹 연습, 바른 자세가 필요하기 때문에 시니어 모델의 쓰임새가 많다"고 설명했다. 실제 전문적으로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들도 작품에 임하기 위해 모델 워킹 연습을 많이 한다고 한다.SNS 활동은 젊은 세대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이 있지만 이들 사이에선 활발하다. 요즘 시니어 모델이 자신을 가장 잘 알릴 수 있는 방법이 인스타그램 등의 SNS이기 때문이다. 패션쇼 캐스팅도 SNS 메시지를 통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시니어 모델들은 포트폴리오가 될 만한 활동들을 자신의 SNS에 수시로 기록하며 자기 PR(홍보)를 한다. 이를 잘 활용하는 모델의 계정은 팔로어 수도 많다. 자신은 적은 편이라고 밝힌 박세영씨의 계정만 해도 7천이 훌쩍 넘는다.◆건강·동안 비결 되기도…"더 늙어서도 할래요"이곳에 모여 땀을 흘리는 사연은 다양하지만, 이들은 하나같이 자신감이 생겼다고 입을 모았다. 모델 활동을 시작한 후 철저한 자기 관리로 몸과 마음 모두 20대만큼 건강해졌기 때문이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모델 워킹은 바른 자세로 걸음을 걷게 해주는 최적화된 운동으로 중장년 세대에게 모델 활동은 건강을 챙기는 좋은 취미가 되기도 한다. 5년 차로 활동 중인 도순희(68)씨는 나이가 들면서 무릎 연골이 닳아 수술 직전까지 갔었는데, 시니어 모델이 되고 무릎이 더 이상 나빠지지 않았다고 한다. 가끔 하이힐을 신지만 바른 자세를 습관화한 것이 무릎에 도움이 된 듯하다고 밝혔다.과거 대다수 시니어가 여생을 소일거리를 하며 보내거나 집에서 손주를 돌보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면, 시니어 모델들은 외적인 젊음을 추구하는 데도 적극적이다. 지광준(52)씨는 주업이 남초 직군인 건설기계 분야다. 처음 시니어 모델을 시작할 때 주변에서는 '남자가 과연 할 수 있겠냐' 등의 부정적인 의견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패션쇼에 나가고 잠깐 외출할 때 입는 옷도 신경 쓰는 등 모델 활동에 적응한 모습을 보여주고 나니 주변 반응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백보현(64)씨도 "예전에 백화점에 가면 '저 옷을 내가 입을 수 있을까' 하며 지나치곤 했는데, 이제는 독특한 디자인의 옷도 마음에 들면 입어보는 편이다. 그만큼 모델 활동을 하며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으며 당당해졌다"고 밝혔다.다이애나 애실은 '어떻게 늙을까'에서 노년에 일어나는 일들은 그 자체로 뜻밖의 즐거움을 선사하니 뜻밖의 도전을 즐기라고 썼다. 새로운 도전으로 늦깎이 나이에 인생 2막을 연 이들도 가능한 오랫동안 모델 활동을 하고 싶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박지육(50)씨는 "60~70대가 되어도 지금처럼 (패션쇼) 무대에 서는 등 특별한 경험들로 즐겁게 노년을 보내고 싶다"고 했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2022년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제1회 대구 시니어 패션 페스티벌에서 모델라인의 시니어 모델들이 무대에 서 있다. 대구 수성구 시니어 모델 아카데미 모델라인의 도하영(가운데) 원장과 모델들이 단체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조현희기자〉지난해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제2회 대구 시니어 패션 페스티벌의 참가자들이 행사가 끝난 뒤 단체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체리의 세계식문화산책]〈끝〉유목민과 채소
지구촌에는 다양한 유목민이 많았다. 그들은 중앙아시아, 중동, 몽골, 북아프리카 사막 지대 등에 대규모로 이동하며 살았다. 인류사에서 최대의 제국을 건설한 몽골 제국의 주인공도 유목민들이었다. 세계사를 통째로 바꾼 그들은 오늘날까지도 여러 음식 문화에 영향을 끼쳤다. 몽골 제국이 아랍, 지금의 이라크 땅에서 들여온 소주도 한국인의 식문화를 좌우했다. 육상 실크로드 역사도, 동서양 음식도 유목민들과 관련이 깊다. 어디든 새로 돋아나는 초지를 찾아서 이동을 하던 그들은 대부분 육식 생활을 즐겼다. 20세기에 들어 유목민 사회에 놀라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다양한 채소를 즐기며 식생활이 바뀌고 있다. 그러자 평균 수명도 늘고 있다. 고려인으로 불리는 한국계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은 정착 생활이 낯선 유목민들에게 농업을 전수했다.목축하며 육식했던 몽골·아랍인현대 들어선 각종 성인병 시달려K푸드 나물 즐기자 수명 10년 증가전쟁통 '초근목피' 연명하던 음식이젠 인류 건강 지키는 구원투수우즈베키스탄에도 농업과 목축업을 겸한 농축산업이 늘어나고 있다. 이제는 단순 농업이 아니라 30만평 규모의 스마트팜 농업도 하고 있다. 대부분 유목 민족이었던 중앙아시아 사람들, 그들은 양고기, 염소고기 등 소비층이 넓다. 현지인들은 말고기도 즐긴다. 유럽 일부 지역이나 중국에서 살고 있는 유목민과 중앙아시아 사람들은 평소 채소와 말고기도 고루 먹는다. 우즈베키스탄에서 판매하는 전통식 말고기 요리는 짜다. 양고기보다 질긴 느낌이다. 한국에서는 제주도에 가면 말고기를 쉽게 시식할 수 있다. 말은 한반도 어디에서든 귀하게 대접을 받았던 동물이다. 고려시대에 대단히 인기 있는 수출 품목이었다. 그러니 일반인은 말고기를 먹을 기회도 없었다. 오늘날에도 한국의 일반적인 식당에서는 말고기를 쉽게 먹지 못한다. 그러나 양고기는 전국적으로 고루 퍼졌다. 전통적으로 유목민들이 즐긴 말고기, 양고기가 농업국이나 선진국에서도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몽골 초원을 달리던 유목민들이 말고기나 양고기 등을 말려두었다가 끓는 물에 넣어 먹던 음식에서 유래한 샤부샤부, 이 또한 유목민들의 식생활에서 탄생된 문화이다. 오늘날 샤부샤부는 전 세계에 퍼져 있는 특별한 요리이다. 21세기에는 정착해서 농업을 하는 유목민들이 급격히 늘고 있다. 생산 종류도 늘었고 한국형 스마트 농법도 도입해 대규모로 수십만 평씩 농업을 하는 이들도 생겼다. 채소 재배가 가능하자 오이나 토마토, 기타 채소를 1년 내내 생산하고 공급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몽골의 경우만 해도 한류 바람으로 상추나 다른 채소들, 김치 소비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그러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비만 인구가 서서히 줄어들었고 수명이 10년쯤 늘기 시작했다. 한식의 매력이 몽골이나 다른 유목민 나라에서도 잘 통한다. 매운 음식이나 기타 다양한 한국 음식이 유목민들의 식생활에 녹아들고 있다. 그들은 한국 라면도 좋아한다. 유목민들이 접하기 어려운 해산물 제품도 앞으로 주목할 일이다. 유목민 사회에서조차 김이나 다시마, 미역 같은 한국산 해산물이 식재료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고려시대 제주 탐라목장은 대표적인 말 생산지였다. '사람은 서울로 말은 제주도로'라는 말이 전국적으로 유행한 시절도 있다. 그러나 21세기가 되자 모두 옛이야기가 되었다. 사람들이나 말의 이동이 자유롭고 음식도 지구촌 왕래가 활발하다. 유목민으로서 말을 타던 이들이 이제 말 대신 승용차를 타거나 비행기를 타고 세상을 오간다. 우리가 말고기, 양고기를 먹는가 하면 그들도 김치와 채소, 김밥을 먹는다. 유목민이 고기를 쌈장을 찍어 상추에 싸서 먹는 시대이다. 한식이 지구촌 이웃들의 평균 수명도 늘린다. 오늘날 세계 인구는 80억명 이상 늘었다. 기아로 허덕이는 이들도 많고 5초에 1명씩 굶주림과 질병으로 죽어가고 있다. 비만으로 고생하는 환자들도 갈수록 늘고 있다. 유목민들은 과거와 달리 움직임이 대폭 줄었다. 그리고 밤늦게 먹고 잔다. 고스란히 뱃살로 간다. 그래서 체중이 100㎏ 넘는 이들이 나라마다 수두룩하다. 음식이 달거나 짜거나 기름지다. 그런 이들은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을 달고 산다. 놀라운 것은 한국인과 비교해 평균 수명이 20년쯤 차이가 난다. 이는 매우 심각한 일이다. 전 세계 어딜 가도 한국처럼 각종 나물 문화가 발달한 나라가 없다. 과거 전쟁 등으로 한국인이 먹고살 것도 없던 시절에 산과 들에서 자라는 대부분의 식물 이파리는 먹거리였다. 사계절이 있어서 긴 겨울날과 봄까지 먹고살 길이 없었다. 여름과 가을에 온갖 식물의 잎을 따서 말리고 쪄서 저장했던 한국인, 과거 한국인의 식생활은 빈곤의 상징과도 같았다. 오죽하면 '초근목피(草根木皮)'라는 말까지 생겼을까? 한국은 오랜 세월 불교 문화권이었다. 그러다 보니 채식 위주의 담백한 절밥도 발달했다. 베트남, 캄보디아 불교 승려들은 고기를 먹고 술도 즐긴다. 그러나 한국의 사찰 음식은 채식 위주였다. 사찰식과 일반적인 한식이 건강한 음식이라는 인식이 생겼고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불과 30년 전 이런 세상이 오리라는 건 상상도 못했다.비만은 단지 외모, 날씬하면 보기가 좋고 뚱뚱하면 보기 싫다의 문제가 아니다. 매우 비만인 사람의 경우 돌연사가 오기도 한다. 외국만 그런 게 아니라 한국도 돌연사가 늘어난다. 나이가 많지 않은 이들 중에도 갑자기 쓰러져서 사망하는 경우가 꽤 있다. 비만은 혈관에도 치명타이다. 다양한 사례의 돌연사가 언론에 보도되지 않을 뿐이다. 지구촌 비만 문제를 해결할 지름길이 한식에 있다. 한식이 세계화되면 인류의 행복에도 기여하게 된다. 온갖 성인병을 예방할 수 있다. 짜고 기름지고 단 음식을 즐기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게다가 가공식품과 인스턴트 식품이 늘고 있다. 입에서 맛있는 음식이 과하면 모두 지방으로 쌓이고 과도한 내장 지방 등은 생명을 위협한다. 식생활이 건강과 삶, 생활의 질을 좌우한다. 이는 요즘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맨발 걷기와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다.이탈리아나 지중해 주변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토마토와 오이, 올리브를 즐긴다. 당연히 그 지역에는 건강하게 사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많다. 21세기 들어 지중해식이 인기를 얻고 있다. 그렇다고 발효 음식 최강국인 한국의 전통음식과 나물 반찬을 따라갈 수 없다. 어느 여성이 나물 사업으로 대박을 터트린 건 유명하다. 그만큼 사람들이 건강을 중시하고 있다는 의미다.인간에게 의식주는 중요하다. 집은 크기가 작아도 살 수 있고 옷은 많지 않으면 깨끗이 입으면 된다. 그러나 음식은 날마다 먹지 않으면 살지 못한다. 지구촌 한류열풍에 한식도 들어가 있다. 한식이야말로 지구를 구하는 구원 투수가 될 분야다. 세상의 어떤 성공이나 부귀영화보다 건강한 삶이 가장 멋지게 성공하는 것 아닐까?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라는 말은 전혀 지나친 말이 아니다. 한식이 건강식이라는 사실이 그저 자랑스럽다. 로컬 AI블루테크 크리에이터육식생활을 즐긴 유목민 사회에서 최근 나물 등의 한식이 유행하면서 평균 수명이 늘고 있다. 위부터 유목민의 음식인 샤부샤부, 한식인 채소쌈과 다시마 부각.이연실(체리) 로컬 AI블루테크 크리에이터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중장년층의 새 도전 '시니어 모델'(1) 우아한 자태, 당당한 워킹…런웨이서 눈부신 인생 2막
기자는 '안정추구형' 투자자다. 재태크를 할 때 큰 수익을 기대하는 것보단 원금손실 가능성이 적은 상품에 투자한다. 아마 평소 성격이 반영돼 그런 듯하다. 겁이 많은 성격이다. 불확실한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인지 새로운 도전이란 짜릿하면서도 두려운 행위다. 경험하지 못한 일을 한다는 점에선 기대되고 즐겁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잘해 낼 수 있을까'와 같은 걱정도 크게 든다. 낯설고 복잡한 것들보다 익숙하고 잘해 낼 수 있는 것들을 찾게 될 때가 많다.나이를 먹을수록 편한 것들을 찾게 된다는 말이 있던가. 나도 그런 사람으로 남게 될까. 이런 생각을 하던 중 최근 도전에 대한 자극을 받았다. 단어로만 접한 100세 시대를 실감하게 됐다. 나이가 들어도 새로운 일로 즐겁게 노년을 보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런 분위기로 활동하는 중장년층을 의미하는 '액티브 시니어'란 단어도 자주 언급된다. 액티브 시니어는 단순히 새로운 분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으로만 볼 수 없다. 전문성까지 갖춘 경우가 많아 때론 젊은 세대와도 경쟁한다. 인생의 경험에서 나오는, 자신만이 가진 강력한 개성을 보여준다. 급변하는 시대지만 시니어들의 열정만큼은 사그라지지 않는다. 이들은 요리도 배우고 그림도 그리고 랩에도 도전한다. 그중에서도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건 '시니어 모델'이다. 바꿀 수 없는 조건에 구애를 덜 받기 때문이다. 젊은 패션 모델의 경우 뼈가 길고 슬림한 사람이 대다수다. 하지만 시니어 모델은 나이, 사이즈, 성별을 불문하고 누구나 의지만 있으면 도전할 수 있다. 나이가 많아도, 키가 작아도, 살집이 있어도, 남성이어도, 여성이어도 그 자체로 아름다움의 대상이 된다. 이런 매력이 알려지면서 오래전부터 모델을 꿈꿔 온 중장년 세대가 하나둘씩 시니어 모델로 데뷔하고 있다. 인터넷 검색창에 시니어 모델을 치면 관련된 정보뿐 아니라 현재 활동 중인 모델들의 프로필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들은 자신만의 개성과 자신감으로 패션계의 런웨이에 오르고 있다.하지만 시니어 모델의 등장은 단순히 패션계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세상에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다. 나이에 상관없이 도전하고 꿈을 이루는 모습으로 많은 이들에게 용기와 영감을 주고 있다. 동년배들은 물론이고, 젊은 세대에게도 가능성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심어준다. 도전을 망설이는 이들에게 자신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2030 여성이 주로 사용하는 패션앱 '지그재그'는 2021년 원로 배우 윤여정을 모델로 발탁해 큰 화제를 모았다. 오픈서베이가 'MZ세대 패션앱 트렌드 리포트 2021'에서 15∼39세 남녀 2천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4.0%가 "지그재그의 윤여정 모델 발탁은 앱의 이미지 변화 및 구입 의향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답했다. 이는 배우 유아인을 모델로 한 무신사(52.0%), 김태리를 앞세운 에이블리(57.0%)보다 높은 수치다.고령화 시대에 접어들고 노년층에 대한 인식도 바뀌면서 시니어 모델들의 이야기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시니어 모델 산업이 주목을 받는 것에 비해 데뷔 과정, 활동 영역 등 이들의 자세한 이야기는 잘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이번 호 위클리포유에선 현역으로 활동 중인 시니어 모델들을 만나 그들의 세계에 대해 들어봤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작년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제2회 대구 시니어 패션 페스티벌에서 모델라인의 시니어 모델이 워킹을 선보이고 있다. 대구 수성구 시니어 모델 아카데미 모델라인의 모델들이 음악에 맞춰 워킹을 선보이고 있다. 조현희기자
[사람의 서재] 조지 오웰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하지만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욱 평등하다."스탈린 시대 공산주의 독재를 풍자한 소설 '동물농장'의 한 문장이다. 오늘날까지 신문 칼럼에 인용될 만큼 명문이다. 당대뿐만 아니라 현재까지도 저자인 조지 오웰<사진>의 통찰력과 깊은 식견은 빛나고 있다.조지 오웰은 1903년 인도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에릭 아서 블레어. 영국령 인도행정부 아편부 소속인 아버지의 근무지인 모티하리에서 태어났지만 1년이 채 되지 않아 영국으로 건너갔다. 성적이 우수해 1917년에는 학비를 면제받고 상류층의 학교로 알려진 이튼칼리지에 입학했다. 하지만 졸업 후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인도 제국경찰에 지원해 1922년 미얀마로 떠났다. 5년간 경찰관으로 일하며 자신이 꿈꿨던 동양에 대한 동경이 착각임을 깨닫고 영국 제국주의가 저지른 식민지악(植民地惡)을 통감하게 된다. 영국으로 돌아가 1928년 경찰직을 사직하고 이때부터 글을 쓰겠다고 결심했다.이후 불황 속의 파리 빈민가와 런던 부랑자들의 극빈 생활을 실제로 체험했다. 1933년 파리와 런던에서 밑바닥 생활 체험을 바탕으로 집필한 첫 작품 르포르타주 '파리와 런던의 바닥생활'을 발표했고 필명은 조지 오웰로 했다. 1936년 12월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자 파시즘에 맞서 싸우기 위해 자원 입대했다. 하지만 스페인 혁명을 가로막는 세력이 오히려 좌익임을 발견했으며 자신이 소속된 통일노동자당이 공산주의자들의 공격을 받았다. 이로 인해 아내와 함께 스페인을 탈출해 프랑스로 건너갔으며 직접 느꼈던 이데올로기에 대한 환멸을 '카탈로니아 찬가'로 출간했다. 이때부터 그는 정치적인 성향이 짙은 작가로 알려지게 됐다.2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 전쟁특파원으로 근무를 마치고 런던으로 돌아와 1945년 러시아 혁명과 스탈린의 배신에 바탕을 둔 정치우화 '동물농장'〈작은 사진〉을 펴내면서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작가가 됐다. 이후 스코틀랜드 서해안에 있는 주라 섬에 머물며 집필에만 전념했고 1949년 그의 최대 걸작인 '1984'를 완성했다. 이 책은 현대 사회의 전체주의적 경향이 도달하게 될 종말을 기묘하게 묘사한 공포의 미래소설이다.1984를 출간하고 바로 다음 해인 1950년 1월 오랫동안 앓아온 결핵이 악화되면서 4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동 추 거문고 이야기] 〈9〉형체 없는 거문고
'줄 없는 거문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형체 없는 거문고'를 이야기한 선비가 있다. 안동(풍산) 출신으로 대구부사를 지낸 동리(東籬) 김윤안(1560~1622)의 '무형금(無形琴)'이다. 그는 도연명에게 줄 없는 거문고(無絃琴)가 있었다면 자신에겐 형체 없는 거문고(無形琴)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김윤안은 작은 초당을 하나 마련한 뒤 적은 글 '소우당기(消憂堂記)'에서 이렇게 말했다."나는 어려서부터 매우 가난하였는데 늘그막에 구산(龜山) 아래에 집을 빌려 살았다. 집 둘레는 휑하여 바람과 햇빛조차 가릴 수 없었다. 손님이 오면 늘 마당에 앉아서 맞았다. 10년을 경영하여 초당 한 채를 지었는데, 한 해가 가고서야 완성할 수 있었다. 초당은 남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정면에 산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다. 초당에는 빈 땅이 없어서 대나무나 꽃 따위를 심을 수 없었다. 다만 국화 몇 포기가 있어서 때가 되면 피었다. 창은 '남창'이라 하고, 뜰은 '면가(眄柯)'라 하고, 문은 '상관(常關)'이라 불렀다. 초당 동쪽에 나지막한 울타리가 있었는데 '동리(東籬)'라 하였다. 이 모두를 합한 초당의 이름을 '소우당(消憂堂)'이라 하였다. 모두 도연명의 말에서 가져온 것이다. 근심은 마음의 병이다. 풀어서 없어지게 하여 즐겁게 된다면, 천지 만물이 모두 나의 즐거움이 될 것이다. 어떤 손님이 물었다. '사모할 만한 옛 성현이 한둘이 아닌데 그대는 초당의 창, 문, 뜰, 울타리를 모두 도연명의 말에서 가져와 이름 붙였소. 그대는 어째서 오로지 도연명만 별나게 흠모하시오?'내가 말했다. '그를 흠모하는 게 아니라 우연히 그와 같았을 뿐이오. 내가 가난한 것이 도연명과 같고, 초당에 책이 있는 것이 도연명과 같고, 남쪽에 창이 있고 동쪽에 울타리가 있는 것이 도연명과 같고, 문이 늘 잠겨 있어서 쓸쓸한 것이 도연명과 같소이다. 그래서 그렇게 이름을 붙인 것이지 구차하게 흠모하는 것이 아니라오.' 손님이 또 말했다. '그대의 말은 그럴듯하오. 도연명은 거문고(琴)와 책을 즐기며 근심을 씻는다고 하였는데, 그대의 초당에는 책은 있으나 거문고가 없으니 어찌 된 일이오?' 내가 '도연명은 줄 없는 거문고인 무현금(無絃琴·원 안)을 가졌고 나는 형체 없는 거문고인 무형금(無形琴)이 있으니, 어찌 거문고가 없다고 하시오'라고 대답했다. 손님이 웃으면서 떠나갔다."김윤안은 이 기문에서 도연명의 '무현금'을 넘어 '무형금'의 세계를 이야기하고 있다. 줄 없는 거문고가 아니라, 아예 거문고 자체가 없이 거문고의 세계에 노닐 것을 꿈꾸고 있다. ◆도연명을 흠모한 김윤안의 '무형금'김윤안의 호 동리(東籬)는 도연명의 시에서 따와 스스로 아호로 삼은 이름이다. 김윤안은 이 글에서 보듯이 초당의 창과 문, 울타리, 뜰의 이름을 모두 도연명의 시 구절에서 따올 정도로 도연명을 지극히 사랑한 인물이다. 김윤안은 소고 박승임, 겸암 류운룡, 서애 류성룡, 학봉 김성일 등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는 의병에 참여하여 김해(金垓)의 막하에서 문서 수발을 도맡았고, 영남 유생들이 회재 이언적을 변호하고 오현(五賢)의 문묘 종사 운동을 할 때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선조 후반과 광해군 때 관직에 나아가기도 하였지만, 대구부사를 마지막으로 귀향해 소우당을 짓고 은거했다.많은 선비들이 도연명을 사모하고 그의 시풍을 본받으려 했다. 퇴계 이황은 도연명의 시를 읽고 맛을 보면 속세의 먼지를 털어 버리고 만물 가운데 홀로 초탈하게 서 있는 느낌을 준다고 이야기했다. 김윤안은 류운용과 류성룡 등을 통해 이황의 학맥을 이었다. 도연명은 열심히 공부해서 벼슬길로 나아가 이상적 사회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뜻을 펼칠 상황이 안 되면 미련 없이 물러나는 출처진퇴(出處進退)의 모범을 보인 상징적인 인물이다. 김윤안은 소우당 곳곳에 도연명의 시 구절을 끌어들여 자신이 살고자 하는 삶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면서 형체마저도 없는 무형금을 이야기하고 있다. 마음을 잘 다스리고 단속할 힘이 충분하다면 유현금이나 무현금 모두 필요 없을 것이다. 마음속에 무형금 하나만 있으면 언제든 탈 수 있을 것 아닌가.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조선 후기 문신인 귀와(龜窩) 김굉(1739~1816)은 1811년 12월 동리선생문집 발문(跋文)에서 김윤안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동리(東籬)라는 자호(自號)로 집에 편액을 단 뜻은 도연명의 풍류를 듣고서 흥기한 것이다. 바야흐로 그 남창에 기대어 노닐고 동쪽 언덕에서 시를 읊조리며, 거문고와 책을 통해 온갖 근심을 없애고, 구름과 새에게 한가한 심정을 부치고, 소나무 오솔길을 거닐고 국화꽃을 따며 지냈다. 그 그윽한 운치와 구함이 없는 뜻은 시대는 달라도 흥취는 같으니, 천년 세월이 아침저녁이라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것이 어찌 선생이 다만 그 적적하고 한가한 취미를 좋아해서 아름다운 겉모습만 표방하고자 한 것이겠는가. 아마도 반드시 분발한 바가 있어 뜻을 부친 것이 그 사이에 있을 것이다.'김윤안은 54세 때인 1613년 봄부터 1615년 겨울까지 대구부사로 재임했는데, 당시 대구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에 있는 태고정(太古亭)을 위해 시를 한 수 남겼던 것 같다. 태고정은 사육신 중 한 사람인 박팽년(1417~1456)의 절의를 기리기 위해 그의 손자인 박일산이 1497년에 처음 건립한, 사당인 절의묘(節義廟)가 딸린 종택의 별당 건물로 지은 정자다. 지금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타고 일부만 남은 것을 1614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김윤안은 1614년 태고정이 재건된 후 이 정자를 찾아 시를 남겼을 것으로 보인다. 태고정에 오르면 김윤안의 시판이 걸려 있다.'정자 이름이 어찌하여 태고인고(亭名何太古)/ 주인의 마음이 태고라네(主人心太古)/ 원컨대 태고의 마음으로(願得太古心)/ 일마다 모두 태고이기를(事事皆太古)'. '태고'를 구절마다 사용해 지은 시다. 이 시 현판의 글씨는 전서로 되어 있는데, '태고(太古)' 글자 모두를 각기 다른 전서로 써서 눈길을 끈다. 글·사진=김봉규 <문화전문 칼럼니스트> bg5290@naver.com〈게티이미지뱅크〉 그래픽=장수현기자
[권응상의 ‘천 개의 도시 천 개의 이야기’] 몽골제국의 수도 카라코룸 ② 칸의 도시, 에르덴조 사원 흔적서 만나다
카라코룸은 19~20세기 러시아 고고학자들이 발굴을 시작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출토된 유물 가운데 상당수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예르미타주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일부는 몽골 국립역사박물관에 있고, 또 최근에 문을 연 카라코룸 박물관에 중요 유물들을 상당수 전시하고 있지만 도시의 전반적인 실체를 가늠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 원래 칭기즈칸 시대의 제국 중심은 헤를렌(Kherulen)강 상류였다. 그보다 훨씬 서쪽인 이곳 카라코룸에 수도를 정한 것은 그의 둘째 아들이자 제2대 칸인 우구데이이다. '원사(元史)'에 의하면, 1235년 봄 우구데이는 오늘날의 카라코룸 부근에 있는 '달란다비스(일흔 고개)'에서 쿠릴타이(khuriltai: 몽골 황실 大會)를 열어서 이곳을 제국의 수도로 선포하고, 1년 만에 '만안궁(萬安宮)'을 지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돌거북 비석에는 흥원각비(興元閣碑)에 대한 설명과 함께 칭기즈칸 15년(1220)에 도읍을 카라코룸에 정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칭기즈칸의 유지를 우구데이가 받들어 카라코룸을 건설한 것으로 보는 학자가 많다. 카라코룸에 관한 기록은 앞서 언급한 카르피니와 루브룩의 여행기 외에도 '원사', 주와이니의 '세계 정복자의 역사',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 라시드 앗 딘의 '집사(集史)' 등 여러 문헌이 있다. 하지만 내용이 단편적이어서 역시 실체를 밝히기에는 충분치 않다.그러나 최근에 카라코룸에 관한 연구가 꽤 진척되었다. 몽골국립대 엔크 바야르 교수는 VR, XR를 활용하는 디지털 헤리티지로 카라코룸을 복원하고자 하였다. 우리는 그의 연구실에 초청을 받아 함께 세미나를 하면서 꽤 오랫동안 그의 작업 과정과 성과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지난 1월에 그의 작업을 중심으로 JTV 전주방송의 '테마스페셜: 카라코룸, 디지털로 복원되다-Virtual Karakorum'이 방영되었다. 30년 번영 후 사라져버린 카라코룸성터 허문 자리에 세워진 에르덴조1586년 건립 몽골 최초 라마교사원카라코룸 성벽의 석조 가져다 지어1000여명 승려·300여채 게르로 번성거대한 성같은 규모 당시 영화 짐작엔크 바야르 교수가 '버추얼 카라코룸'으로 복원한 도성은 남북 2.5㎞, 동서 1.5㎞의 역사다리꼴 모양으로 맨 앞에는 대칸의 정문이 있다. 그리고 그 문을 들어서면 64개의 기둥이 떠받치고 있는 길이 120m, 폭 80m의 만안궁이 우뚝하게 서 있다. 그 속에서 잡극 공연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대로를 따라 상점이 늘어서 있고, 다양한 옷차림의 수많은 사람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광활한 초원 한가운데 동서양을 아우르는 세계 제국의 수도 카라코룸이 가상세계 속에서 되살아났다. VR 안경을 벗으면 다시 황량한 초원뿐 어디에서도 당시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30여 년간 번영을 누렸던 카라코룸이 저물기 시작한 시기는 쿠빌라이가 중국 전역을 차지하고 원나라를 건국하면서부터다. 그가 수도를 베이징으로 옮기면서 카라코룸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원나라가 존속할 때까지는 그나마 도시로서의 명맥을 보존했지만, 14세기 후반 원나라가 붕괴하면서 카라코룸도 서서히 폐허로 변하면서 지상에서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성벽과 궁전은 완전히 사라져버렸고, 도시를 대신하듯 주변에 '에르덴조'라는 라마교 사원만이 웅장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이 사원을 통해 몽골제국의 수도 카라코룸의 영화를 대신 반추했다. 에르덴조 사원은 카라코룸의 뼈에 사원의 살을 입힌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사원을 건설할 때 카라코룸 성벽의 석조를 가져다 지었다는 것이다. '에르덴조'는 '100개의 보석'이라는 의미란다. 카라코룸의 뼈대를 입혔으니, 보석이라 부를 만하다. 이 사원은 몽골 최초의 라마교 사원이다. 1586년에 이곳을 다스리던 아브라이잔 칸이 건설했다고 전해진다. 우리가 알고 있는 티베트 불교의 '달라이 라마'는 몽골에서 비롯되었다. 16세기 후반 북원(北元)의 알탄 칸은 티베트 불교 겔루파의 수장이었던 소남갸초를 만났다. 이 만남에서 깊은 감명을 받아 이름을 하사한 것이 '달라이 라마'이다. 몽골어로 달라이는 '큰 바다', 라마는 '영적인 스승'이므로 '큰 바다 같은 스승'이라는 뜻이다. 이때부터 티베트 불교의 달라이 라마가 대를 이어 내려오고 있다.티베트 불교는 13세기에 이미 몽골에 들어왔으나 본격적으로 세를 확장하게 된 것은 이 에르덴조 사원이 건축된 이후부터이다. 티베트 불교는 이 사원을 근거지로 급속히 교세를 확장하였다. 특히 원나라가 패망하고 북원 지역으로 돌아온 몽골 지배층이 결속력을 공고히 하기 위한 구심점으로 티베트 불교를 활용했던 것이 결정적 요인이었다. 몽골에서 칭기즈칸 다음으로 존경받는 인물인 자나바자르도 이곳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할하몽골 아브타이칸의 손자였던 자나바자르는 1649년 14세의 나이로 2년간 티베트로 불교 유학을 가서 달라이 라마로부터 '젭춘담바 후툭투(Jebtsundamba Khutuktu: 위대하고 빼어난 活佛)'라는 최고 권위의 이름을 하사받고 돌아왔다. 귀국 후 그는 에르덴조 사원을 근거지로 하여 몽골의 제1대 법왕으로서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 그는 불교는 물론 예술, 과학, 문학, 언어학 등에서 추종을 불허할 업적을 남겼다. 소욤보라고 불리는 문자를 창제하였고, 큰 사원들을 곳곳에 세우면서 몽골 특유의 사원 건축양식을 창안했으며, 세계 수준으로 평가받는 탱화와 불상을 직접 제작하기도 했다. 가축 도축법이나 의관 착용법 등 수많은 생활풍습을 만들어 보급하였으며, 종족 간 분쟁을 중재하고 귀족들과 국제정세를 비롯한 외교적 결정과 조약서명에도 참여하였다. 이처럼 에르덴조 사원은 번성하다가 1688년 중앙아시아 준가르와의 전쟁 때 크게 파괴되었다. 그 후 18세기에 다시 건축을 시작하여 1872년까지 62개의 건물과 1천여 명의 승려, 300여 채의 게르가 있는 큰 사원으로 발전했다. 에르덴조 사원 내에는 당시의 영화를 말해주는 두 개의 청동 솥이 있다. 당시 라마승들에게 줄 음식과 차를 끓이는 데 사용한 이 솥은 지름이 2m 가까이 되는 거대한 크기이다.이 사원은 가로세로 각각 400m 길이의 담이 둘러처져 있어 거대한 성 같았다. 담 중간에는 스투파라 불리는 108개의 돌탑이 세워져 있다. 사리탑 용도인 이 돌탑은 108번뇌를 상징한다. 거대한 크기에 비해 건물은 그다지 많지 않아 썰렁했다. 하지만 광활한 터를 두르고 있는 돌담이 옛 영화를 웅변하듯 호기로운 곡선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마치 제국의 수도 카라코룸의 뼈대를 품었다는 자부심을 드러내듯 의젓하다. 이 사원이 이렇게 황량하게 변한 것은 공산주의 정권 시절의 수난 때문이다. 특히 1937년 스탈린의 숙청 시기에는 완전히 문을 닫게 되었다. 사찰 건물은 단 3채를 제외하고 모두 파괴되었으며, 수많은 승려가 죽임을 당하거나 시베리아 강제노동 수용소로 보내졌다. 이 사원은 1965년에 '박물관'이라는 간판을 달고서야 다시 문을 열 수 있었다. 이후 1990년 공산주의가 붕괴되자 종교의 자유도 되찾아 사원도 활기를 찾았다.당시 살아남은 세 채의 본당 건물은 안내서에 'Western zuu temple'로 표기된 주운 조(Zuun zuu), 중앙의 걸 조(Gol zuu), 'Eastern zuu temple'로 표기된 바론 조(Baruun zuu)이다. 걸 조가 대웅전 격의 본당 건물인데, 나란히 서 있는 이 3개의 전각 안에는 모두 석가모니불이 모셔져 있었다. 그런데 석가모니불의 얼굴은 각각 다른 모습이었다. 주운 조에는 석가모니가 출가하기 전인 14세 때의 모습을, 걸 조에는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고 부처가 된 35세 때의 모습을, 바론 조에는 석가모니가 입적할 당시 나이인 80세 때의 모습이란다. 각각 석가모니의 소년 시절, 장년 시절, 노년 시절을 표현한 것이다. 본당 건물은 매우 웅장한 모습이었지만 막상 실내로 들어가니 생각보다 좁았다. 그것은 본당을 이중 벽체로 만드는 몽골 사원 건축의 특징 때문이다. 외벽 안에 다시 내벽을 세우고 그 안에 불상을 모시는 것이다. 내벽과 외벽 사이 공간에는 작은 불상을 놓거나 마니차를 돌리며 본당을 돌아볼 수 있는 통로로 이용된다.카라코룸 가는 길에 여행객들이 반드시 들르는 장소가 있다. 고비사막까지 가기 힘든 여행자들을 위해 모래사막의 분위기를 한껏 느낄 수 있는 '미니 고비'이다. 사실 '고비'라는 말 자체가 사막이라는 뜻이니 '작은 사막'으로 번역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다지 작지도 않다. 폭이 4㎞이고 길이가 100㎞에 이른다. 이 모래들은 항가이 산맥에서 불어온 북동풍에 의해 여기까지 날아와서 쌓였다. 그래서 이곳 지명도 '엘승타사르해', 즉 '분절되어 이어진 모래'라는 뜻이다. 바양고비, 바양옐스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작은 사구가 이어져 있어 초원 속의 색다른 풍경을 선사했다. 우리 일행은 각자의 방식대로 사막을 즐겼다. 말을 타기도 하고 낙타를 타기도 했다. 나는 맨발 트레킹을 했다. 양 발바닥으로 느껴지는 부드럽고 편안한 모래알의 감촉이 먼 옛날 이 지역에서 시작된 '팍스 몽골리카(Pax Mongolica)'를 떠올리게 했다. 13~14세기 이곳은 다양한 민족과 종교가 공존한 동서 문명교류의 장으로서, 유라시아 대륙에 몽골 주도의 새로운 국제질서가 만들어진 곳이다. 대구대 문화예술학부 교수에르덴조 사원의 본당 세 건물. 왼쪽부터 차례로 주운 조, 걸 조, 바론 조.바론 조의 석가모니불. 입적 당시 모습을 표현한 불상이다.미니 고비.권응상 대구대 문화예술학부 교수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MZ세대 사로잡은 재밌는 불교문화 (2) 승복 입고 디제잉·스님이 커플 매칭 '재밌어진 불교'
"전엔 엄숙한 종교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제 힙하고 재미있게 느껴져요." 다소 엄숙하고 어려운 이미지로 여겨졌던 불교가 이제 MZ세대 사이에서 '힙'한 종교로 통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재미'와 '의외성'으로 청년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불교 특유의 포용적 교리와 메시지가 SNS 등을 통해 널리 알려지면서 이들에게 위로를 주고, 흥미를 가질 만한 이색적인 이벤트가 최근 많이 열리고 있다.'서울국제불교박람회' 파격 시도 호응EDM 입힌 뉴진스님의 찬불가 열광방문객 전년비 3배…10~30세대가 80%커플매칭 예능 패러디한 '나는 절로'재미·신선함 더한 이색 콘텐츠 각광엄숙한 종교 이미지 벗은 행사 '속속' ◆디제잉 파티·짝 찾기…불교 행사의 변신지난달 4일부터 나흘간 열린 '2024 서울국제불교박람회'는 '재밌는 불교'를 주제로 진행됐다. 올해로 12회를 맞은 이 행사는 이번 회에 파격적 변신을 하며 젊은 세대의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행사를 주최한 대한불교조계종에 따르면 박람회 방문객은 지난해보다 약 3배 정도 늘었는데, 80%가 10~30대였다. 메타버스 사찰 체험, 출가 상담, 차(茶) 시음회, 디제잉 파티 등 젊은 세대의 문화를 적극 수용한 콘텐츠로 눈길을 끌었다. AI 부처의 고민 상담, 인스타그램에서 유명한 팔로어 3만1천명 '꽃스님' 화엄사 범정스님의 강연, 남은 삶을 돌아볼 수 있도록 해주는 '임종체험'도 진행됐다.그중에서도 특히 관심을 모은 건 '뉴진스님'의 DJ 네트워킹 파티였다. '뉴진스님'은 개그맨 윤성호의 이른바 '부캐'다. 이름은 '뉴미디어 시대에 발맞춰 새롭게 나아간다(進·진)'의 뜻을 담고 있으며 걸그룹 뉴진스의 이름도 차용한 것이다. 이번 박람회에서 스님으로 변신한 그는 EDM(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을 입힌 찬불가를 디제잉해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었다. 유쾌한 춤사위와 함께 "이 또한 지나가리, 이 또한 지나가리, 고통을 이겨내 극락왕생!" 등을 노래해 관객들의 큰 환호를 받았다. 무대가 담긴 영상이 널리 퍼져 온라인상에서도 화제가 됐다. 누리꾼들은 "보수적일 것 같았던 불교가 가장 멋있다" "부처핸섭!" "정말 재밌다. 종교가 무조건 고요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교리가 참 와닿는다. 불교는 젊은 사람이 입문하기 힘든데 이런 식으로 더 친근감 있는 생활 종교가 됐으면 한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대한불교조계종은 올 하반기 대구와 부산에서도 같은 행사를 열 예정이다. 김현준(25·대구 중구)씨는 "SNS를 통해 이번 불교박람회 영상과 후기를 접했다. 대학교 축제 같았다. 종교 행사는 따분하고 재미없을 거란 편견이 깨졌다"며 "어렵게만 보였던 불교가 친숙해졌다.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재미있을 것 같다. 곧 대구에서도 열린다고 하니 꼭 한번 가볼 계획"이라고 말했다.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인 인천의 전등사에서는 지난달 6일 짝 찾기 프로그램 '나는 절로'가 열렸다. 방송 프로그램 '나는 솔로'가 모티프로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복지재단이 결혼 기피나 저출산 등을 해소하는 방안의 하나로 실시하는 미혼 남녀 템플스테이다. 스님이 매니저로 나서 30대 미혼 남녀 20명의 커플 매칭을 돕는다. 남녀 각 10명을 모집했는데, 남성 147명·여성 190명이 지원해 치열한 경쟁률을 보였다.◆쉬어가는 이색 체험 '템플스테이'도 인기한국의 불교문화를 알리기 위해 등장한 '템플스테이'도 젊은 층 사이에서 인기다. '템플스테이'란 절에 머물면서 불교문화와 사찰 생활을 체험하는 일이다. 속세를 떠나 불교와 관련된 이색 활동을 즐길 수 있다. 경북 지역 한 사찰 관계자는 "체험을 하러 오는 사람 중 80%는 MZ세대다. 그중에서도 여성이 대다수"라고 했다.프로그램은 주로 체험형과 휴식형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대구 동구 도학동에 위치한 동화사의 경우 체험형은 사찰음식 만들기와 차 마시기, 오는 15일까지 부처님 오신 날 기간에 한정해 연꽃등 만들기가 있다. 휴식형은 오리엔테이션과 절에서 음식을 먹는 공양, 순례를 마치는 회향식을 제외하곤 모두 자율로 이뤄진다. 동화사 템플스테이에 참가한 경북대 김민정(20)씨는 "종교가 없고 불교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 혼자 쉴 수 있고 절의 독특한 분위기까지 만끽할 수 있어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사찰음식도 템플스테이의 인기 요인 중 하나다. 기존에 사찰 음식은 부실하고 맛 없을 거란 인식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젊은 층에서 불교에 대한 관심과 함께 비건 선호도 늘어나면서 채식인 사찰 음식에 대한 궁금증이 증가했다. 이에 사찰에서도 양질의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5일 인스타그램에 해시태그 '사찰음식'을 검색하니 약 3만3천개의 게시물이 나왔는데, 두부 완자 미역국, 두릅전, 우엉전병, 가지전 등의 음식 사진이 담겨 있었다. 김씨가 방문한 동화사에서도 나물반찬과 두부조림, 버섯요리, 야채 고명이 올라간 국수 등이 나왔다.이런 인기로 불교 문화에 관심을 갖는 청년들의 비용 부담을 덜기 위해 대학생이면 단돈 1만원에 템플스테이를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은 오는 30일까지 '청춘'을 주제로 '청춘 템플스테이'를 운영한다. 학업과 취업, 경쟁 스트레스에 지친 청년들이 전국 100여 곳의 사찰에서 심신 건강을 돌볼 수 있도록 한다. 대구 지역은 동화사, 경북 지역은 △고운사 △골굴사 △보경사 △봉정사 △선본사 △심원사 △용문사 △은해사 △자비선사 △직지사 △축서사 등에서 진행한다.◆"가르침 위로돼" "강요 없어서 좋아" 교리에도 긍정적최근 MZ세대에서 불교가 사랑받는 이유에는 이색 체험도 있지만 교리도 한몫한다. SNS 등을 통해 불교 특유의 포용적 메시지가 널리 알려지면서 보이는 것과 경쟁에 지친 청년들의 마음을 저격한 것이다. 취업을 준비하는 박선영(25)씨는 "유튜브를 통해 한 강연에서 스님이 대학생의 고민에 대해 조언해주는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큰 위로가 됐다. 취업 준비로 바쁜 일상을 보내던 중 쉬어가는 것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삶을 생각해보는 계기도 되어 불교에 대한 시선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고 밝혔다.다른 종교에 비해 종교 강요가 없다는 점도 매력으로 꼽혔다. 김현준씨는 "종교가 심적으로 도움이 될 것 같아 신앙 활동을 하고 싶어도 엄격한 규율, 강요 등으로 입문하기 쉽지 않았는데 불교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것 같다. 불교에 대해 조금 더 공부해보고 괜찮으면 종교로 삼아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격식에 얽매이는 것을 꺼리는 젊은 세대에게 불교 문화가 잘 맞아떨어졌다고 분석한다. 송재룡 경희대 교수(사회학과)는 "정기 예배나 헌금 등에 대한 부담이 없고, 누구나 일상적 수련과 명상으로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불교의 가르침은 다른 종교에 비해 젊은 층의 거부감이 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뉴진스님(개그맨 윤성호)이 지난달 4일 서울국제불교박람회 무대에서 디제잉 공연을 하고 있다. 서울국제불교박람회 제공대한불교조계종 사회복지재단이 지난달 6일 인천 강화군 소재 전등사에서 진행한 템플스테이 '나는 절로'에서 남녀 참가자들이 묘장스님 등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MZ세대 사로잡은 재밌는 불교문화 (1) MZ는 불교도 '힙하게'
기자는 가톨릭 신자다. 모태신앙 신자는 아니고, 성인이 되고 나서 세례받았다. 지난 3월 부활절에 받았으니 비교적 최근이다. 큰 고난이 닥쳤을 때 신앙이 있으면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종교를 갖게 됐다. 천주교를 택한 건 살면서 만난 가톨릭 신자들이 하나같이 다 좋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고, 거창한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인지 내 신앙 생활에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다른 종교에 대한 배타적인 감정은 크게 없는 편이다.그런 종교 중 대표적인 게 불교다. 체질적으로 경쟁과는 맞지 않는 성격이지만 어릴 적부터 무한한 경쟁에 치여 살아왔다. 그러니 번 아웃, 지치는 순간이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스님의 말씀이 담긴 문구를 보면서 편안함을 얻었다. 조금은 쉬어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정도였을 뿐, 불교에 더 이상의 관심을 가지긴 쉽지 않았다. 다소 엄숙하고 근엄한 이미지가 있어서인지 진입 장벽이 느껴졌다.그러다 최근 한 행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이 또한 지나가리, 이 또한 지나가리, 고통을 이겨내 극락왕생!" 서울국제불교박람회라는 행사가 지난달 열렸는데, 한 스님이 EDM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노래하고 있는 것이었다. 관객도 중·노년층일 거란 생각과 다르게 대다수가 젊은 청년들이었다. 진지하고 보수적일 것 같았던 불교 행사가 청년들의 놀이터였다. 이뿐만 아니라 AI 부처의 고민 상담, 인스타그램 스타 스님의 강연 등 최근 트렌드가 결합된 프로그램도 다수 진행됐다.'그렇지. 종교 행사가 무조건 진중할 필요는 없지.' 이 행사를 접한 후 기존에 갖고 있던 불교에 대한 편견이 깨지고 불교라는 종교가 조금 더 친숙하게 다가왔다. 온라인상에도 기자와 같은 반응을 보이는 네티즌들이 많았다. "세상 힙한 불교" "시대의 흐름을 탈 줄 아는 유연한 종교" "중요한 건 형태가 아니라 본질" 등의 댓글이 쏟아져 나왔다. 후기를 살펴봐도 불교는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행사를 둘러보니 재미있다는 반응이 대다수였다.이외에도 다양한 이색 프로그램들이 열리고 있어 불교의 인기는 더욱 뜨거워지는 모양새다. 그중에서도 MZ세대의 반응이 뜨겁다. 국제불교박람회 행사 주최 측도 불교 신자가 감소하는 시대에 무종교 인구가 많은 젊은 세대에 친숙하게 접근하기 위해 '재밌는 불교'를 콘셉트로 잡았고, 실제 방문객도 대다수가 청년이었다고 한다. 사찰을 방문하는 이들도 늘어나면서 대학생이면 단돈 1만원에 1박2일 동안 사찰 생활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최근 마련됐다.불교는 어떻게 젊은 세대를 사로잡았을까. 젊은 세대는 어쩌다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됐을까. 무슨 일이든 '강요'가 뒤따르면 거부감이 들기 마련이다. 종교도 마찬가지다. 억지로 붙잡고 포교하면 관심을 가지려 해도 가질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불교는 아주 성공적인 포교 사례다. 강요 대신 '재미'와 '의외성'으로 이들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연령대에 맞춘 포교 방법, 종교와 그들의 문화를 적절히 결합한 새로운 콘텐츠를 잘 활용했다. 이에 이번 위클리포유에서는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MZ세대에서 불교 문화가 인기를 끄는 현상에 대해 다뤄본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임무출의 우리말 알아맞히기] 제656회
■ 가로열쇠 1. ○○ 문고리 잡기. 2. ○○ 높은 줄만 모르고 땅 넓은 줄은 모른다. 3. ○ ○ 쓰고 똥 누기. 5. ○○ ○○ 솜틀은 소리만 요란하다. 7. ○ ○○ 원앙. 8. ○○ 들고 마시겠다. 9. 돌절구도 밑 빠질 때가 ○○. 10. 배 썩은 것은 딸을 주고 밤 썩은 것은 ○○○ 준다. 11. 내 말은 남이 ○○ 남 말은 내가 한다. 12. 큰 벙거지 ○ 짐작. 13. ○ 심은 데 ○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14. 가갸 ○○○도 모른다. 15. 집도 ○도 없다. 16. ○ ○에 난 고기. 17. ○○이 멍석인 듯. 19. 죽은 자식 ○○ 세기. 20. ○도 안 뜯고 먹겠다 한다. 21. ○○에 물 탄 격. ■ 세로열쇠 1. ○○○○ 가는 놈이 불알 떼어 놓고 간다. 2. 남의 말 ○○○ 식은 죽 먹기. 3. ○○○ 버리듯.(관용구) 4. 꿩 구워 ○○ ○○. 6. 돌쩌귀에 녹이 슬지 ○○○. 8. ○○ 가슴에 말뚝 박듯. 9. 도둑에도 의리가 ○○ 딴꾼에도 꼭지가 있다. 10. 고양이 덕과 ○○○ ○은 알지 못한다. 11. ○○ ○○이 열흘 간다. 14. 마냥모 판에는 ○○ 처녀도 나선다. *마냥모 : 제철보다 늦게 내는 모. 18. ○○의 재물도 하루아침. <연재 공지> ▨'임무출의 우리말 알아맞히기'는 656회를 끝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제656회 '임무출(한글학회 회원)의 우리말 알아맞히기' 해답은 우편엽서를 이용해 6월5일까지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휴대폰 번호를 반드시 적어주세요) ▨655·656회 당첨자는 지면에 발표하지 않고 개별 연락 후 상품을 보내드릴 예정입니다. <제654회 당첨자> ▶한재연(대구광역시 달서구 조암남로) ▶김소은(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로) ▶홍옥순(대구광역시 중구 중앙대로) ▶최병웅(대구광역시 동구 아양로) ▶류충기(대구광역시 달서구 달구벌대로) ▶박문길(대구광역시 수성구 무열로) ▶김헌(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상품협찬> ▲ 워터파크 스파밸리 자유이용권 1688-8511 ▲ 교감형 생태동물원 네이처 파크 이용권 1688-8511 ▲ 에코테마파크 대구 숲 이용권 (053)761-7400, 7401 ▲ 팔공산온천관광호텔 입욕권 (053)985-8080 ▲ 〈주〉아모레퍼시픽 아이오페 레티놀 엑스퍼트 0.1% ▲ 청도용암온천 대온천장 초대권 (054)371-5500 ▲ 청도 프로방스 포토랜드 초대권 (054)372-5050 ▲ 〈주〉그린기프트 레디엠 반전립스틱세트 1588-8480 ※'임무출의 우리말 알아맞히기' 당첨자에게는 협찬 상품 중 한 가지를 우송해 드립니다.
[권현준의 시네마틱 유니버스] 영화사의 선언들
영화 역사에는 매우 중요한 몇 가지 사조(思潮)가 등장한다. 이 사조들은 당대 혹은 후대의 평가에 의해 만들어진다. 가령 영화 역사의 가장 도도하고 혁신적인 흐름이었던 프랑스 누벨바그의 경우는 '까이에 뒤 시네마' 등 당대의 비평가들에 의해 호명되면서 자연스럽게 명명되었다. 1950년대 후반에 등장하기 시작한 누벨바그 감독들은 그 이전 영화들, 즉 '아버지의 영화(Le Cinema De Papa)'에 반기를 들고 새로운 영상언어와 미학을 선보이고자 일련의 시도와 실험을 진행했다. 그것은 결국 후대 감독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면서 누벨바그는 영화역사에 가장 중요한 순간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 반면 누군가의 선언이 이러한 사조를 앞당기기도 한다. 프랑스 누벨바그의 자극을 받은 독일의 젊은 영화감독 26명은 1962년 '오버하우젠 국제단편영화제'에서 모여 '오버하우젠 선언'을 발표한다. 이들은 '아버지의 영화는 죽었다(Papa's Kino ist tot)'며, 기존 영화산업에 사형 선고를 내리고, 관습적 영화로부터의 탈피, 상업주의로부터의 자유 등을 내세웠다. 결국 이 선언은 독일의 '뉴저먼시네마(New German Cinema)'라는 새로운 영화 사조를 탄생시켰다.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빔 벤더스, 베르너 헤어초크 등이 '뉴저먼시네마'를 대표하는 감독들이다. 기존 영화에 반기 든 혁신적 선언들'뉴저먼시네마' 등 신사조 탄생시켜1920년대 김유영 감독 카프영화운동식민지 현실 보여주는 영화제작 주창뻔한 스토리·획일화된 영화들 속에실험적·개성있는 작품 여전히 등장영화로써 혁신 시도하는 모습 지지해비단 이 선언은 새로운 독일 영화를 열었을 뿐 아니라 '코뮤날레 키노(Kommunale Kino, Community Cinema)'라는 영화 상영 운동을 추동시키기도 했다. '오버하우젠 선언' 이후 새로운 영화들이 등장하자, '다른 형식의 영화는 다른 틀 안에서' 상영해야 한다는 관객의 열망이 이러한 움직임을 만든 것이다. '코뮤날레 키노'의 활동은 상업영화관이 아닌 카페, 살롱 같은 비상설 상영 장소를 거점으로 펼쳐졌고, 영화를 보고 열띤 토론을 나누며 새로운 영화문화를 만들어갔다. 결국 이러한 활동의 공공성을 인정받아 독일 전역에 공공상영관(코뮤날레 키노)이 만들어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비교적 최근이라 할 수 있는 20세기 후반에 이루어진 선언도 있다. 바로 '도그마95 선언'이다. 이 선언은 '킹덤' '님포매니악' '살인자 잭의 집' 등 만드는 작품마다 큰 논란과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덴마크 출신의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주도한 것으로, 이 선언에는 4명의 다른 덴마크 감독들이 함께하였다. 이들은 이른바 '순결의 서약'을 통해 영화의 순수성을 회복하고자 하였고, 이를 위해 10가지 원칙, 즉 십계명을 제시하였다. '촬영은 세트장이 아닌 로케이션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카메라는 반드시 핸드헬드(들고찍기)여야만 한다' '필름은 컬러여야 한다' '감독의 이름은 크레디트에 올리면 안 된다' 등이 있다. '도그마95 선언'은 반 할리우드 노선이자 작가주의 영화의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는 측면에서 역사적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실제 이러한 10가지 원칙을 다 지킨 영화는 정작 나오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현실적이라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선언에 그칠 수밖에 없었던 이 혁신적인 시도는 새로운 사조를 탄생시키지는 못했다.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1925년에 결성된 카프(KARF,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의 회원이었던 구미 출신의 영화감독 김유영은 카프영화운동을 전개하였는데, 당시 만 스물두 살이 되었을 때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기성 영화예술이 필연적으로 몰락과정을 과정함에 따라 변증법적으로 우리들의 예술시대는 장쾌한 심포니, 생명력, 강력, 용기, 명확, 동철 같은 신경, 대항성, 리듬, 스타일, 인내 등이 추체화되어서 '패스트 페이든인'이 되고 있는 까닭이다." 그는 유물론적 사고에 입각한 영화운동을 주창하였다. 일제강점기 시대 일본인들에게 장악된 식민지 조선 영화계의 문제와 한계를 극복하고, 노동자, 농민이 중심이 되어 조선의 현실을 보여주는 영화 운동을 전개하고자 하였다는 점에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현대에 들어서는 1975년 하길종을 중심으로 결성된 '영상시대'가 새로운 영화를 주창하며 다음과 같이 선언한 바 있다. "'새 세대가 만든 새 영화' 이것은 구각을 깨는 신선한 바람, 즉 회칠한 무덤 같은 권위주의를 향한 예리한 투창이어야 한다. 과연 이 땅에서 단 한 번의 '누벨바그'나 '뉴 시네마' 운동이 전개된 적이 있었는가?"당시 억압적 상황 속에서 한국 영화는 발전하지 못한 채 뻔한 스토리의 영화들만이 양산되고 있었다. 하길종은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였고, '영상시대'는 새로운 한국 영화 시대를 열고자 했다. 결국 이들의 활동은 1980년대 박광수, 정지영, 이명세, 장선우 등 이른바 '코리안 뉴웨이브'를 촉발시킨 프리퀄로서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으며, 한국 영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사적 의미로서 자리 잡게 되었다.이처럼 영화사에서 관습을 깨고 새로운 것을 성취하고자 하는 도전과 선언은 항상 존재해왔다. 비록 그것이 성공하든 그렇지 않았든 후대에 영향을 끼친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현재에도 획일화되어가는 영화들 사이에서 개성을 가지고 실험과 도전을 불사하는 한국영화들이 여전히 등장하고 있다. 이들 영화는 어떠한 선언 아래 등장한 것은 아니지만 몸소 영화로써 그 선언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범람하는 플랫폼의 시대에도 이러한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영화들은 여전히 설 자리가 많지 않다. 'K-무비'의 미래를 이야기하고, 영화 개념의 재정의와 같은 거대한 담론을 이야기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현장에서 새로운 영상언어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영화예술로서의 혁신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는 영화들을 위한 우리의 '지지선언'이 아닐까. 대구영상미디어센터장김유영(위부터 둘째) 영화감독이 1931년 9월1일자로 펴낸 종합지 '시대공론' 창간호. 시대공론을 통해 김유영은 '정당한 계급운동에 입각해 나아가겠다'고 천명했지만 조선총독부의 검열과 대중성·통속성이 부족한 글로 일관해 2호까지만 발행되고 폐간됐다. 맨 아래는 프랑스 누벨바그 영화감독 알랭 레네의 '지난해 마리앙바드에서'(1961).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K팝 문화의 이면 '악플'(1) 압박과 악플에… 영혼까지 갉아먹힌 ☆들
사랑의 형태는 다양하다. 대상에 따라 이성 간의 애정뿐만 아니라 우애, 모·부성애, 인류애, 조국애, 진리에 대한 사랑, 신에 대한 사랑 등 여러 가지 사랑이 있다. 기자 또한 다양한 사랑의 감정을 지니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오늘 얘기하고 싶은 건 아티스트에 대한 사랑이다.기자는 K팝 팬이다. 2PM, B1A4, 엑소, 레드벨벳, 지금은 NCT DREAM과 에스파까지. 여러 아이돌 가수를 '덕질'(무언가에 파고 드는 일) 했고, 하고 있다. 덕질을 한다는 것은 스스로도 설명하기 힘든 매혹을 인정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처음엔 아이돌을 왜 좋아하나 싶었다. 헛짓이라 생각했다. 자주 만나기도, 가수가 나를 기억하는 것은 더더욱 쉽지 않을 텐데. 뒷모습이 어떤지도 모르고, 잘 꾸며진 이미지에 속아 넘어가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건 아닐까 싶었다. 그러다 어느 날 나도 모르게 감겨버렸다. '너무 멋지다.' 이후 오랜 기간 K팝을 덕질 하고 있지만 아티스트에 대한 팬들의 마음은 여전히 형용하기 어렵다. 동경이라 하기엔 부족하고 사랑이라 하기엔 조금 과한 면이 있다. 그럼에도 가장 가까운 감정은 사랑이 아닐까 싶다. 가까이서 관계를 형성하진 않지만 함께 행복을 나누고 가수를 응원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랑은 단지 K팝 산업이 만들어낸 상품이라는 말로 환원할 수 없는 복잡한 대상이다. 그래서 우리는 팬과 아티스트의 관계를 단순히 구매자와 상품이 아닌 이상적인 관계로 본다.하지만 이제 이런 사랑을 '좋은 것'만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는 것 같다. 몇몇 팬들은 자신의 아티스트에 대한 애정과 지지를 표현하는 동시에 이를 바탕으로 과도한 잣대를 들이밀기 때문이다. 최근 수많은 논란과 사과가 반복됐다. 대표적으로 열애설이 공개된 모 아이돌이 이로 인한 자필 사과문을 올리는 일이 발생했다. 일부 팬들이 '배신 당했다'는 비난과 함께 돌아섰기 때문이다. 외신들도 이를 지적했다. 영국 BBC는 "한국과 일본의 팝스타들은 압박이 심한 업계에서 일하고 있다"며 "불과 10년 전만 해도 신인의 연애는 물론 개인 휴대전화도 금지하는 것이 일반적 관행이었다"고 했다. 이어 "지금도 연애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팬들에게 스캔들로 여겨지게 한다"고 꼬집었다.이런 일들은 아이돌 산업 구조가 얼마나 기형적이고 상호 의존적인지를 보여준다. 팬들은 가수에게 자신의 사랑을 투자한 만큼 아티스트도 그에 맞는 언행을 하기 바란다. 문제는 그런 바람이 지나친 요구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범법적인 행위나 사회 통념상 받아들이기 힘든 일은 충분히 피드백을 요청할 수 있는 사안이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일상이나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는 행동들도 '논란'이 되어 화살로 돌아온다. 하지만 그들도 아이돌이기 전에 하나의 인격체다. 보이는 직업이기에 대중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사적인 영역과 개인의 삶을 누릴 권리가 있다.얼마 전 좋아하는 가수가 악플로 인한 불안 증세로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다. K팝 산업이 오래 유지되기 위해서는 건강한 팬덤 문화가 선행돼야 한다. 이는 아티스트와 팬 간의 상호 존중과 이해를 기반으로 시작된다. 이런 노력이 함께 이뤄질 때 K팝 산업은 더욱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바라면서 이번 위클리포유에선 K팝 문화의 이면에 대해 다룬다.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그래픽=장수현기자
[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어나더 라운드'(토마스 빈터베르 감독·2020·덴마크)…음주 예찬 영화? 인생 예찬 영화!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93회)에 빛나는 영화의 관람을 오랫동안 미룬 까닭은, 아마도 소재 때문일 것이다. 원제가 'Druk(덴마크어로 폭음이란 뜻)'인 이 영화의 소재는 술이다. '어나더 라운드'란 제목도 '한 잔 더'라는 뜻이란다. 애주가에게는 혹할 말이겠으나, 영화는 결코 음주 예찬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비극 가운데서도 인생을 예찬하는 영화다. 단순히 '음주의 찬반'을 넘어서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깊이 있는 영화다.등장인물은 중년의 위기를 맞은 네 명의 고등학교 교사다. 음악 교사 니콜라이의 생일날, 심리학 교사 페테르가 노르웨이 학자 스코르데루의 이론을 말한다. "인간에게 결핍된 혈중 알코올 농도 0.05%를 유지하면 적당히 활발해지고 창의적이 된다"는 가설이다. 네 명의 친구들은 이 가설을 직접 실험해보기로 한다. 이들의 실험에는 규칙이 있다. 최소 0.05%를 유지할 것과 저녁 8시 이후에는 술에 손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실험의 효과를 톡톡히 본 이들의 생활은 생기가 돌지만, 실험은 갈수록 대담해진다. '끝까지 가 보자'는 것인데, 기억이 끊어질 데까지 술을 마시는 일은 비극을 불러온다.영화의 시작은 덴마크 철학자 키에르케고르의 글이다. "청춘이란 무엇인가. 꿈이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꿈의 내용이다." 함축적이고 의미심장한 문장이다. 이 글귀가 말해주듯, 영화는 술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청춘을, 사랑을, 인생을 이야기하려 한다. 영화의 주인공은 청춘도 사랑도 사라져버린 중년의 사내들이다. 남은 건 인생, 술이 아니고선 견딜 수 없는 사내들의 이야기다. 이들이 실험하는 알코올 0.05%란 와인 한두 잔 정도다. 실험에 성공하고 활기를 찾지만, 사실 그 이론은 잘못 전해진 것이라고 스코르데루 본인이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영화를 위해 기꺼이 그 이론을 인용하라고 허락했다는 후문이다. 괴테는 "취해야 하리, 우리 모두. 술 없이도 취하는 게 젊음"이라 했다. 물론 노년에 쓴 시다. 젊음은 누구나 한때일 뿐인 것. 마음만은 젊게 하는 게 뭔지, 삶에 생기를 돌게 하는 0.05%가 무엇인지는 각자가 찾아볼 일이다. 영화가 주는 팁 하나는 '실패를 두려워 말고 도전하라'는 것인데, 이 또한 키르케고르에 근거한다. 인간의 불안은 과거의 실패를 기억하기 때문이라는 거다. 영화는 시험의 두려움에 떨던 학생의 입을 빌려 말한다. "실패 가능성을 받아들임이 타인과 삶을 사랑하는 비결"이라고. 영화의 백미는 마지막 장면, 마르틴 역 매즈 미켈슨의 춤이다. 배우 이전에 댄서였던 그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삶의 기쁨과 환희를 노래하는 역동적이고 멋진 춤이다. 마르틴이 춤을 추며 바다로 뛰어드는 장면에서 영화가 끝난다. 그리고 자막 하나가 나온다. '이다를 위하여'. 이 문장으로 비로소 영화가 완성된다. 이다는 감독의 딸이다. 촬영 중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매즈 미켈슨의 춤에는 감독의 깊은 슬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노래하겠다는 결단이 녹아있는 것 같다. 슬픔과 기쁨과 연륜이 한바탕 춤에 들어 있다. 청춘의 때엔 결코 알지 못했을 깊이로 말이다. 영화 칼럼니스트어나더 라운드 스틸컷. 김은경 영화 칼럼니스트
[금주의 영화] 혹성탈출:새로운 시대, 진화한 유인원 vs 퇴화한 인간…생생한 특수효과 '압권'
전편이 나온 지 7년 만에 찾아왔다. 주인공 시저가 죽은 지 몇 세기가 흘렀다. 그사이 인류는 멸망하고 세상의 주인은 유인원으로 대체됐다. 진화한 유인원과 퇴화된 인간들이 살아가는 '오아시스'에서 유인원 리더 '프록시무스'는 인간을 사냥하며 자신만의 제국을 건설한다.'혹성탈출' 시리즈의 새 주인공으로 등장한 유인원 '노아'는 프록시무스에 맞서 자유를 꿈꾸고 있다. 우연히 숨겨진 과거의 이야기와 '시저'의 가르침을 듣게 된 노아는 묘령의 인간소녀와 함께 자유의 여정을 떠나게 된다. 오는 8일 개봉하는 '혹성탈출:새로운 시대'에서 가장 기대를 모으는 것은 실제와 같은 생생함을 주는 특수효과다. '엑스맨' '아바타:물의 길' 등에 참여한 VFX(시각특수효과) 기업인 웨타FX가 작업했다. 제작진은 세밀하고 밀도있는 CG작업을 통해 유인원들의 얼굴에 풍부한 표정을 입히고,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살렸다. 유인원들이 말하고, 움직이고, 분노하는 모습에서 생동감이 느껴진다. 비주얼 전반을 책임진 에릭 윈퀴스트 시각효과 감독은 기자 간담회에서 "이전의 3부작이 미학적으로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였다면, 이번에 나온 4편은 그 이후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완전히 달라졌다. '혹성탈출' 프랜차이즈의 새 장을 여는 작품으로, 사실적이고 감정이 있는 유인원들의 풍부한 표정을 통해서 인간의 본성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유인원들의 이야기를 대중에게 꺼내놓기는 그리 간단한 작업이 아니었다. 에릭 시각효과 감독은 "영화 '혹성탈출'의 제작과정은 노력에 노력을 들이는 모험의 연속이었다. 상당히 스케일이 큰 신들이어서 구현하는데 1년이 걸리는 등 총 9억4천600만 시간을 렌더링 작업에 투입했다"며 방대한 작업의 규모를 설명했다.특히 제작 과정에는 한국인들의 손길도 더해져 이채롭다. 한국인 제작진 김승석은 유인원들의 표정을 구축하는 페이셜 모델러로 활동했으며, 또 다른 한국인 순세률은 배우의 움직임을 포착해 촬영하는 모션 캡처 모델러로 활동했다. 제작진이 기술적으로 가장 표현하기 어려웠던 것은 '물'이었다는 후문. 급하게 흘러가는 강을 비롯해 해안 절벽 파도의 거친 물살, 거대한 홍수장면까지 다양한 물을 생명력 있게 표현해 내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고 했다.유인원들의 자연스러운 몸짓을 만드는 작업도 녹록지 않았다. 제작진에 따르면 배우들은 모션 영상을 찍을 때 빛 반사 카메라를 부착한 액티브 슈트를 입었다. 슈트는 LED 마커가 달려 있어서 자체적으로 빛을 냈다. 김은경기자진화한 유인원과 퇴화된 인간의 이야기를 그린 '혹성탈출:새로운 시대'.
의료대란으로 번진 의대 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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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증원 집행정지 각하·기각] 정부, 대학 "2025학년도부터 의대 증원 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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