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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순의 이미지메이킹] 모발타입별 두피 관리…건성모발, 헤어열기구 110℃ 이상 장시간·자주 사용 주의해야
탈모는 두피의 각화 주기 변화와 비위생적인 두피 환경으로 인하여 모발이 정상적으로 성장하지 못하여 발생한다. 올바른 두피 관리는 건강한 두피와 모발을 유지하여 탈모를 예방하기도 한다. 두피 관리는 근육을 강화하고 스트레스와 긴장도 완화시켜 주며 내분비계통의 자극으로 호르몬 분비의 균형을 이루어 모발 손상의 개선에도 도움을 준다. 피부 노화를 예방하고 피부에 윤기를 더해 주며 두피 내에 열을 제거하여 탈모를 예방한다. 림프선의 자극으로 면역력을 증가시키며 신체의 자연 회복력을 높여준다. 신체 경락과 지압점을 자극하여 체내 기관의 에너지 균형을 이루게 하며 혈액 순환을 원활하게 하여 모발의 성장을 촉진한다. 건성 모발은 잦은 드라이나 헤어 아이롱 등의 열기구 사용과 과도한 자외선 노출로 인하여 비타민C와 비타민E, 단백질 성분 등이 손상된 상태의 모발이다. 샴푸 후 하루 정도 경과 후에도 모발이 푸석푸석하고 윤기가 없으며 메말라 보이는 모발이다. 헤어 열기구를 110℃ 이상의 열로 장시간 자주 사용하게 될 경우 모발의 단백질 케라틴이 거의 손상되어 화상 모발로 발전하게 된다. 헤어숍이나 두피관리실에서 건성 모발관리는 브러싱, 스케일링 도포, 마사지, 스티머, 샴푸, 건성 앰플, 적외선, 마무리 순으로 실시한다. 지성 모발은 육안으로 피지 과다 분비와 샴푸 후 1시간 정도 경과 후에도 모발이 번들거리는 경우를 말한다. 두피 관리를 청결하게 하지 않을 시 지성 비듬은 지루성 피부염으로 변하기도 한다. 지성 비듬이 모공에 쌓이게 되면 모발 성장을 억제시키거나 파마나 염색의 경우에도 웨이브와 색상이 만족하게 나오지 않는다. 지성 모발의 관리살롱에서의 순서는 브러싱, 스티머, 스케일링 도포, 마사지, 스티머, 샴푸, 지성 앰플, 적외선, 마무리 등으로 진행된다.정상 모발은 보기에도 탄력 있고 윤기가 나는 부드러움을 느낄 수 있는 건강한 모발이다. 모표피가 최소 8겹 또는 10겹 이상 정도로 단단함을 가지며 유해물질 등 외부자극을 거의 받지 않은 모발이다. 현재 모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며 불규칙한 식사와 수면 부족, 스트레스 등을 피해야 한다. 자극적인 음식 섭취에 유의하는 것도 건강 모발을 지키는 한 방법이니 유의하도록 한다. 전문 관리실에서 정상 모발의 관리는 브러싱, 스케일링 도포, 마사지, 스티머, 샴푸, 수분 앰플, 적외선, 마무리 순으로 한다. 두피마사지 시 가볍게 쓰다듬거나 문지르는 동작을 경찰법이라 하는데 마사지 시작과 마지막에 주로 사용하며 연결 시 행하는 동작으로서 근육의 이완을 돕는다. 또 피부를 가볍게 누르듯 하는 강찰법이 있으며 이는 약간 자극을 주는 동작으로 근육을 풀어주는 효과를 준다. 뭉친 근육을 풀어주는 효과의 진동법은 피부 조직에 진동을 전달하는 동작을 말한다. 손바닥이나 컵 잡은 모양의 주먹으로 피부 조직을 두드려 주는 고타법 또한 두피 관리 시 마사지하면 관리에 유효한 효과를 본다. 홈케어 시에는 관리실에서의 모발 타입별 관리 순서에 적외선 기기 등은 없으나 그 외는 도움이 되길 바란다. 건강한 모발과 두피를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건강한 식단 관리와 함께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기 위한 스스로의 규칙적 생활 개선에 노력을 해야 한다. 또한 건성과 지성, 정상모발 제품의 적절한 선택과 사용으로 매력 있는 아름다운 머릿결과 두피를 관리하기 바란다. 글·사진=김양순 메이크업아티스트·교육학박사두피마사지 시 가볍게 쓰다듬거나 문지르는 경찰법은 근육의 이완을 돕는다.김양순 메이크업아티스트·교육학박사
'스페인 거대 펫시장 잡아라'…한국 펫용품 수출 절호의 찬스
팬데믹 이후 찾아온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스페인 소비자들의 지갑은 굳게 닫히고 있다. 이런 상황에도 스페인에서 꾸준히 성장하는 분야가 있다. 바로 '반려동물 시장'이다.스페인 '반려동물 식품제조협회'에 따르면, 스페인에는 약 3천만 마리가 넘는 반려동물이 있다. 반려견은 약 930만 마리로 2019년부터 3년간 38%나 증가했다. 15세 미만 인구가 약 700만명인 것을 감안하면 반려견의 수가 어린이 수보다 많은 것이다. 마드리드에는 3세 미만의 유아보다 반려견이 세 배 더 많다고 보도한 현지 언론도 있을 정도다. 스페인에서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증가하면서 개(Perro)와 자녀(Hijos)를 합친 '페르이호스'(Perrhijos), 고양이(Gato)와 자녀(Hijos)를 합친 '가띠호스'(Gathijos)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반려동물의 종류도 다양하다. 개 다음으로는 물고기(700만 마리), 고양이(580만 마리), 조류(500만 마리)가 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스페인 반려동물 식품 산업의 매출액 역시 크게 증가하고 있다. 2022년의 스페인 반려동물 식품 매출액은 약 17억 유로(한화 약 2조원)로, 2021년(14억 9천만 유로, 한화 약 2조1천176억원)보다 14.4% 증가했다. 에너지, 운송 가격의 상승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속에서도 꾸준히 상승세를 보여주고 있다.반려견의 먹거리에 관심을 두는 인구도 부쩍 증가했다. 내가 섭취하는 음식만큼 반려견의 음식에도 더욱 신경 쓰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스페인 최고의 스타트업으로 선정된 기업은 다름 아닌 반려견 음식 배달 서비스를 제공하는 'Dogfy Diet'였다. Dogfy Diet는 견종·크기·취향에 따라 반려견의 음식을 선택할 수 있는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 제공되는 모든 음식은 수의사가 반려견의 건강과 영양 상태를 고려한 것으로, 방부제를 사용하지 않고 천연 재료로 만들어진다. 스페인 반려견 930만마리…3년 간 38% ↑펫식품 매출 한화로 2조 규모…1년새 14% ↑펫테크 등 다양한 한국 제품 현지 니즈충족펫푸드·펫패션 등 관련업종 성장 주목해야바르셀로나에 본사를 둔 이 스타트업은 매일 30t 분량의 반려견 식품을 제조하고 있다. 이는 약 5만 5천 마리의 반려견이 먹을 수 있는 분량이다. 지난해의 매출은 2천500만 유로(한화 약 355억원)이며, 올해 매출은 5천만 유로(한화 약 710억원)로 2배 정도의 성장을 예상하고 있다. 얼마 전, 스페인의 소비자단체(OCU)는 반려동물에게 소요되는 비용에 대한 설문 조사를 실시했고, 반려동물을 키우며 소요되는 비용이 매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스페인에서 반려견을 키우는 데 소요되는 비용은 연평균 약 1천200유로(한화 약 170만원), 반려묘의 경우에는 약 945유로(한화 약 134만원)가 소요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식품을 비롯해 용품·보험·미용 등 과거보다 다양한 분야가 성장했고, 이는 인플레이션과 함께 지출이 자연스럽게 늘어나는 추세이다. 스페인에서 가장 유명한 반려동물용품 체인은 '키워코(Kiwoko)'이다. 2007년 모든 반려동물의 삶을 개선하는 데 도움을 주겠다는 목표를 갖고 시작된 키워코는 지난해 기준 전국에 150개의 매장을 두고 있다. 마드리드 벨라스케스 지역에는 1천400㎡가 넘는 큰 매장을 열어 광범위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한다. 스페인 아마존의 반려동물용품 판매량 순위는 반려견 배변 봉투를 시작으로 사료·훈련 패드·털 제거 브러시·침대 등이 상위권에 올라가 있다. 그 외 샤오미에서 출시한 자동 급식기는 23위에, 고양이 급수기는 30위에 올랐다.스페인 반려견 시장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특징으로 주인들은 반려견이 집 밖에서 배변하도록 훈련을 시킨다는 것이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거나 훈련을 제대로 받지 않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산책 시에 배변하기 때문에 배변 봉투를 가장 많이 사용한다. 한국에서는 몇 년 전부터 반려동물 시장 성장으로 펫 가전제품, 펫테크 제품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편의성과 안전성, 두 가지 요소를 모두 충족하기 위한 제품들이 시장에 다수 출시되었고, 뜨거운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스페인에서는 이런 제품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반려동물 음식 자동 급식기, 드라이 룸과 같은 제품도 여전히 대중적이지 않다. 반려동물을 키우기 위한 제품을 쉽게 찾아볼 수는 있으나, 다양성은 많이 부족하다. 한국의 아이디어 제품을 스페인 시장에 수출하는 것은 신선한 도전이 될 수 있다. 반려동물 식품도 마찬가지다. 사료부터 반려동물 영양제까지 다양한 제품군을 보유한 국내 기업의 스페인 반려동물 시장 진출은 긍정적으로 보인다. 반려견 패션용품도 블루오션이다. 날씨가 추운 겨울에도 길에서 산책 중인 대부분 반려견은 옷을 입고 있지 않다. 하지만 스페인에서 반려견 의류 시장은 스페인 유명 브랜드의 주도로 조금씩 성장 중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시기, 스페인 국민 브랜드 '자라(ZARA)'의 창립자 아만시오 오르테가는 '인간의 가장 친한 친구는 개'라고 말하며, 반려견 컬렉션을 출시했다. 추운 겨울에 입을 수 있는 코트와 우비도 있었다. 또 다른 의류 브랜드 '빔바이롤라'는 반려견 의류를 비롯해 목걸이·목줄·물그릇이 포함된 컬렉션을 선보였다. 반려동물 장례 절차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트렌드에 맞춰 반려동물 보험, 사설 장례업체가 생겨나고 있다.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에 위치한 말라가에는 작년 말 스페인 최초의 공공 반려동물 공동묘지가 개장됐다. 공공 공동묘지가 생긴 것은 처음이다. 말라가는 35만 마리의 반려동물이 동록돼 있다. 안달루시아에서 가장 많은 숫자다. 시민들은 170~250유로(한화 약 24만~35만 원)의 가격으로 반려동물을 화장하거나 매장할 수 있다. 또 반려동물의 이송, 송별식, 납골당 임대 등의 서비스도 선택할 수 있다. 지난해 스페인 정부는 동물 복지법 발표해 독이 있거나 성체 체중 2㎏ 초과하는 파충류(거북이 제외), 영장류, 5㎏ 넘는 야생 포유류 등 집에서 키울 수 없는 반려동물의 종류를 명확하게 분류했다. 또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은 의무적으로 민사 책임보험에 가입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반려동물이 죽거나 실종된 경우에도 보험 상품을 통해 일정 부분 보상을 받을 수 있다. 2022년 스페인 반려동물 산업 통계에 따르면, 스페인 가구의 약 40%가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다. 반려동물 산업 종사자는 5만 5천여 명으로 유럽에서 다섯 번째로 큰 시장이 되었다. 전 세계 반려동물 산업은 2026년까지 연평균 5%씩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는 있다. 반려동물의 웰빙, 먹거리, 패션 등 관련 업종의 성장을 주목해야 한다. 반려동물 시장은 유럽, 미주 쪽에서 먼저 성장하였으나 한국에서도 관련 용품들의 질과 양이 눈에 띄게 성장하고 있다. 예전에는 반려동물용품을 해외에서 수입했다면, 이제는 역수출할 시기임이 틀림없다. 펫팸족과 반려동물의 편의를 고려한 다양하고 가성비 좋은 한국 제품들을 유럽에 수출해 보는 것은 어떨까. 최지윤 경북 수출지원 해외 서포터즈스페인 의류 브랜드 빔바이롤라 (Bimba y Lola)의 반려견 컬렉션. 〈빔바이롤라 제공〉스페인 반려견 음식 배달 스타트업 Dogfy Diet. 〈출처 : Dogfy Diet 홈페이지〉마드리드 중심부 벨라스케스 지역에 오픈한 반려동물용품 Kiwoko 매장. 〈Kiwoko 제공〉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시집 '마카다' 펴낸 김계희씨(1) '함바집 40년' 할머니, 시인 됐다
이기주의가 만연한 팍팍한 세상이다. '나만 잘살면 돼' 혹은 '나만 아니면 돼'가 통하는 시대. 서로에게 무관심하거나 서로를 미워하며 살아간다. 개인의 행복과 공동체의 행복은 양립이 불가능한 걸까. 흔히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 하는데, 주인에게 순수한 사랑을 주는 강아지의 마음이 더 따뜻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이 기사를 쓰는 나 또한 무의식중 이기주의에 동참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기자 생활을 하며 여러 사람을 만나지만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주로 성격이 밝고 쾌활한 이들이 그렇다. 차가운 세상을 살아가던 중 보게 된 무지개처럼 느껴진다. 마음이 사랑으로 가득 찬 건강한 사람. 최근 그런 사람을 만났다. 공사현장 식당(일본어 '함바')에서 일하는 할머니, 김계희씨다.올해 칠순을 맞이한 김씨는 최근 새로운 도전을 했다. 평생 함바집을 운영하며 살다 시집을 냈다. 그는 시(詩)는 물론이고 글쓰기 공부를 따로 한 적이 없다고 한다. 몇십 년을 함바집 일에 전념한 사람이 칠순의 나이에, 본업과 전혀 관련이 없는 도전을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김씨를 만나기 위해 그가 일하는 함바집을 찾았다.공사 현장에 들어서는데 그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얼굴을 보자마자 웃으면서 반겨주는데, 인사에서부터 밝음이 자연스레 묻어 나왔다. 인위적인 밝음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밥은 먹고 왔냐며, 먹고 오지 않았으면 두 그릇도 먹고 가도 된다는 친절도 건넸다. 고향에 있는 할머니가 생각날 정도로 가족만큼 따뜻한 친절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그의 밝고 따뜻한 성격을 엿볼 수 있었다. 실제 그는 지인들 사이에서 '분위기 메이커'로 통한다고 하는데, 왜 그런지 바로 알 것 같았다.김씨는 타인에 대한 애정이 많다고 한다. 경북 안동이 고향인 그는 칠남매 중 둘째다. 1950~1970년대 시골 마을에서 유년기를 보내면서 형제들과 돈독한 우애를 쌓았는데, 그 우애를 쌓을 수 있었던 건 첫째인 언니의 덕이 크다고 한다. 언니는 부모님의 빈 자리를 대신할 만큼 동생들에게 사랑을 베풀었다고 한다. 김씨는 이를 통해 사랑을 주고받는 법을 배웠고, 늘 사랑으로 가득 찬 마음을 갖고 있다. 이번에 낸 시집에도 그런 가치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시집의 이름은 '마카다'다. '마카다'는 '모두'를 뜻하는 경상도 방언인데, 그의 시에선 혼자 잘 사는 것보다 '모두'가 잘 사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로 통한다.때론 전문적으로 쓰인 글보다 진정성 있는 글이 마음을 울린다. 김씨의 시들이 그렇다. 등단한 이들이 쓴 시처럼 세련되진 않지만 그래서 새롭다. 표현 하나하나에 신선함과 그의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다. 소재도 그의 인생과 추억, 일상이 대다수로 동시대를 살아온 이들이 공감할 만한 부분이 많다. 그의 이야기는 우리가 어떻게 서로에게 더 많은 사랑을 베풀고 소통하며 살아갈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김씨를 만나고, 그의 시를 읽고 나니 내 마음도 사랑으로 가득 차는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그가 언니에게 배웠던 사랑이 이런 게 아닐까. 이젠 내가 사랑을 베풀 차례인 듯하다. 팍팍한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김씨의 이야기를 전하며 그들도 마음이 사랑으로 가득 차길 바라본다. 글=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사진=B-story 제공40년간 함바집을 운영하다 시집 '마카다'를 출간한 김계희씨.
[체리의 세계식문화산책] 인류의 못 말리는 꿀사랑
8천년 전에도 인간은 꿀을 먹었다. 스페인이나 프랑스 등 벽화에도 꿀 채집 그림이 남아 있다. 이집트의 경우 식용, 약용, 미용 목적으로 꿀이 쓰였다. 성경에도 꿀 이야기가 여러 번 언급된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이 나온다. 물론 상징적인 의미다. 장수하는 이들의 특징 중 하나가 꿀을 즐겨 먹는다는 사실이다. 지구촌에서 꿀을 싫어하는 이가 거의 없다. 심지어 동물들도 야생꿀을 찾아서 돌아다닌다. 입술이 퉁퉁 붓도록 꿀을 먹는다. 꿀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만큼 인간의 꿀 사랑이 지극하다. 그래서 사랑하는 이를 '허니'라고 할까?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따끈한 물에 꿀을 한 수저 타서 마시면 좋다.대량생산 하려고 설탕물 먹이고화학물질 사용 가짜꿀도 만들어세계 각지 꿀벌 30~40% 사라져농작물 70%는 꿀벌수분에 의존이제라도 생태환경 관심 가져야 네팔의 경우 석청이 유명하다. 밧줄을 타고 높은 바위에까지 올라가 꿀을 채집한다. 거의 목숨을 걸고 거대한 벌집을 따게 된다. 워낙 알려져서 한국인도 선호하지만 국내 반입은 금지된다. 그런데도 현지에 가면 석청을 파는 장사꾼들도 있다. 하지만 석청은 그리 많이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한국 식당을 운영하는 한국인이 고국에서 온 손님들한테 "이건 석청입니다. 제가 땄어요." 그럴 수가 없다. 석청은 약성이 강해서 심하면 사망하거나 어떤 이들은 2박3일간 잠에 취한다.캄보디아산 꿀도 유명하다. 목청이다. 열대지방이고 꽃도 여러 종류 많이 피는 지방이라 밀림에서 사람이 나무에 올라가 벌집을 딴다. 높은 나무일 경우 목숨을 거는 작업이 될 것이다. 나무 위에만 있는 게 아니다. 벌은 나무 뿌리 부근의 빈 공간에도 벌집을 지어놓고 꿀을 모은다. 인간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벌들이 모아놓은 꿀을 그냥 두지 않는다. 한국인 어느 사업가가 목청을 들여와 비즈니스를 한다. 예쁜 도자기 용기에 담아서 백화점에 판매하고 있다.인도나 중동 문화권에서는 꿀 관련 습관이 있다. 아기들이 태어나자마자 신생아의 입술에 꿀을 발라준다. "너의 인생이 이 꿀처럼 달콤하기를 바란다"는 사랑스러운 말도 해준다. 그러나 사람이 살다 보면 소태가 쓰다 한들 어디 인간의 삶보다 더 쓰랴? 사람이 산다는 게 고해의 바다를 헤엄치는 것과 같고 바위를 손톱으로 매달리는 것과 같다고 하지 않나? 인생의 꿀을 따느냐 하면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니다.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에 갔을 때 한국인은 꿀을 사 온다. 그곳 꿀은 예외 없이 진품이다. 현지인에 의하면 설탕이 야생꿀보다 더 귀하고 비싸서 도저히 가짜 꿀을 만들 수가 없단다. 청정지역이고 또 품질이 뛰어나서 두바이나 중동의 유명 백화점으로 수출된다.역사 속 유명 인사 시바의 여왕이 자신의 애인에게 선물한 것으로도 이름난 예멘 꿀도 인기이다. 예멘인들은 꿀을 신성시한다. 뉴질랜드의 마누카꿀이나 캐나다산 꿀도 세계적으로 소비가 늘어난다. 벌이 얼마나 중요한지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을 읽어보면 실감 난다. 벌이 있어야 지구촌에서 여러 과일도 열린다. 프랑스 파리 시내 꽃나무에서 벌들이 보였다. 그러나 도시에서 벌이 점점 사라져가는 시대다. 이는 대한민국 인구 소멸보다 더 위험한 신호다.자연은 완벽한 조물주의 명작이다. 그중 꿀은 건강식품이자 약이다. 꿀이 얼마나 좋으면 인류의 3대 대표 종교 경전에도 나올까? 성경, 코란, 불경에 꿀이 언급되어 있다. 오래 두어도 썩지 않는 게 바로 꿀이다. 꿀은 신께 드리는 예물로도 쓰인다. 외국에서는 결혼 선물로도 인기다. 부유층은 아기를 목욕시킬 때 전신 꿀 마사지를 시켜준다.자연꿀을 찾던 이들이 이제 양봉을 대규모로 한다. 설탕물을 먹여 벌을 키우는가 하면 화학 물질로 가짜꿀도 만들어낸다. 무엇이든 자연이 주는 선물이 최고다. 벌의 입장에서야 인간은 천적이다. 그들이 부지런히 따서 모으는 꿀을 인간은 보이는 대로 약탈해 가기 때문이다. 사람은 꿀이든 무엇이든 자연의 혜택으로 생존이 가능하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꿀벌 집단이 갑자기 사라지는 군집붕괴현상이 자주 나타나고 있다. 미국과 유럽 등 세계 각지에서 꿀벌의 30~40%가 줄어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심각한 식량 위기를 불러올 징조다.꿀벌이 전 세계 식량자원의 70%를 수정해서 결실을 보게 한다. 대부분의 농작물이 꿀벌의 수분에 의존하고 있다는 말이다. 만약 꿀벌이 멸종하게 된다면 심각한 식량자원 감소로 인류는 아사의 위기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인류 생존과 생태계 균형에 긍정적 영향을 주는 벌이 더 사라지지 않도록 기후변화에 많은 관심을 가져야겠다.꿀은 한 단어이다. 언제나 달콤하고 인간을 유혹하는 말이다. 그러나 '꿀' 글자 두 개가 겹치는 '꿀꿀하다'는 기분이 별로라는 뜻이다. 셋이 되면 돼지가 밥 달라고 신호를 보내는 '꿀꿀꿀'이 된다. 외국인들은 한국어를 배울 때 이렇게 같은 단어의 반복으로 전혀 다른 뜻이 되는 걸 보며 아주 재미 있어 한다. 꿀처럼 변하지 않는 것도 드물다. 꿀 같은 신뢰, 그러니 꿀 같은 우정이라는 문장도 가능하겠다.대한민국의 경우 지리산 토종꿀이 인기이다. DMZ에서도 청정꿀이 생산된다. 인간의 발걸음이 금지된 구역에서는 자연이 스스로 회복해 동식물의 낙원이 되었다. 작은 생명체인 꿀벌만 봐도 인류의 미래가 보인다. 자연을 너무 무분별하게 개발하고 농약을 쓰며 훼손하고 있으니 지구촌 꿀벌도 견딜 수가 없겠다. 미래에도 인류의 수는 늘고 식량난은 더 가중될 것 같아 마음이 꿀꿀하다.로컬 AI블루테크 크리에이터〈게티이미지뱅크〉 그래픽=장수현기자이연실(체리) 로컬 AI블루테크 크리에이터네팔 석청을 따내는 모습.
[위클리 키워드] 미국 Z세대 5명 중 1명 "나는 성소수자"
자신을 성소수자(LGBTQ+)로 인식하는 미국인의 비율이 10년 전보다 2배 이상 높아졌다. 특히 Z세대는 5명 중 1명이 성소수자라고 응답했다.미국 여론조사기관 갤럽은 지난해 18세 이상 미국인 1만2천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지난 13일(현지시각)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이성애자, 레즈비언(L), 게이(G), 양성애자(B), 트랜스젠더(T) 중 자신을 어느 범주로 인식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7.6%가 하나 이상의 LGBTQ+그룹에 속한다고 답했다.자신의 정체성을 LGBTQ+로 응답한 비율은 2012년 첫 조사 때 3.5%, 2013년 3.6%였다. 10년 만에 성소수자로 응답한 비율이 2배 많아진 것이다. 2020년의 5.6%에 비해서도 큰 폭으로 상승했다.세대별로는 젊은 층에서 그 비율이 두드러졌다. 특히 18∼26세인 Z세대는 5명 중 1명꼴(22.3%)로 자신이 성소수자라고 밝혔다. 밀레니얼(27∼42세) 세대는 9.8%, X세대(43∼58세)는 4.5%, 베이비붐 세대(59∼77세)는 2.3%였다.성별로 보면 여성은 자신을 성소수자로 인식한 비율이 8.5%로, 남성(4.7%)보다 2배가량 높았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동 추 거문고 이야기] <6> 선비와 거문고(하) 세상 사람 어진 이 몰라보니…오갈 데 없는 신세로다
한국의 거문고와 중국의 금(琴)은 한국과 중국 선비들의 각별한 사랑을 받은 악기다. '선비의 악기' '군자의 악기'로, 도를 이루어 가는데 필요한 수행 반려 악기로 대접받게 된 연유를 더듬어 가보면 공자는 물론 순임금에까지 이르게 된다. 선비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중국 요순시대의 순임금과 춘추전국시대의 공자와 관련된 거문고(琴) 이야기를 살펴본다.◆순임금의 남풍가순(舜)임금은 요(堯)임금의 발탁으로 임금의 자리에 올라 선정을 펼쳤고, 중국의 전설적인 성군(聖君)이 되었다. 사마천의 '사기'에 '요임금의 인자함이 하늘과 같았고 지혜는 신과 같았다'라고 기록된 요임금과 더불어 순임금은 중국 역사 속에서 가장 이상적인 정치를 한 성군의 대명사가 되었다.요임금이 그에게 황제의 자리를 물려주기로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그의 남다른 효제(孝悌) 정신이었다. 요임금은 그에게 두 딸을 아내로 주어 인성을 관찰하도록 했다. 순의 혼인 후에도 그 아버지와 의붓동생은 순을 죽이려는 음모를 멈추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은 부모와 동생을 원망하는 대신 그들의 죄를 자기가 짊어지기를 원했고, 무슨 일이든지 항상 자기 탓이라고 여겼다. 그런 순의 정성에 아버지와 동생이 결국 감동했다. 이후 요임금은 그를 등용해 능력을 다시 확인한 후 쉰 살에 임금의 일을 대행하게 했다. 순의 효제 정신은 '효(孝)' 문자도에도 자주 등장할 정도로 널리 알려졌다. 순임금의 효는 단순히 효라고 하지 않고 큰 효라는 의미의 '대효(大孝)'로 불리었다. 효는 유가(儒家)에서 강조하는 최고의 실천 덕목이다. 맹자는 효를 '온갖 행실의 근본'이라 여겼고, '요·순의 도리는 효제(孝悌)일 따름'이라고 강조했다.순임금은 또한 오현금을 잘 탔으며, 평소에도 즐겼다. 그는 거문고 곡 '남풍가'를 지어 직접 연주하기도 했다. 남풍가 내용은 이렇다. '훈훈한 남풍이 불어오니, 우리 백성들의 시름을 풀어줄 만하네/ 남풍이 때맞춰 불 때 우리 백성들의 재물도 넘쳐나겠구나'순임금의 이 일화는 그림으로도 종종 그려졌다. 그가 황제의 처소인 남훈전에서 오현금(五絃琴)을 타면서 노래로 백성의 고단함을 달랜 내용을 그린 '남훈전탄금(南薰殿彈琴)'이 우리나라에 전한다. 순임금은 작곡도 잘했는데, 그가 지은 곡인 '소소(簫韶)'를 공자가 듣고 석 달 동안 고기 맛을 잊어버릴 정도였다고 한다. 순임금은 우(禹)임금에게 제위를 넘겨주며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인심은 위태롭고 도의 마음은 은미하니, 오직 정밀하게 살피고 한결같이 지켜 진실로 그 중심을 잡아야 한다(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 순임금이 우임금에게 전한 이 말은 '십육자심전(十六字心傳)'이라 부르는데, 유가(儒家)에서 금과옥조로 삼는 문구다. '윤집궐중'은 중국 베이징 자금성의 중화전(中和殿)에 걸려 있는 편액의 글귀이기도 하다. 청나라 건륭제 글씨다. 화담 서경덕은 거문고에 새긴 글 '금명(琴銘)'에서 '그것을 뜯어 조화시킴으로써(鼓之和)/ 요순시대로 돌아가며(回唐虞兮)/ 사악함을 씻어냄으로써(滌之邪)/ 자연과 융화되는 사람이 된다(天與徒兮)'라고 말했다. ◆공자의 의란조공자가 행단(杏檀)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다는 행단고슬(杏檀鼓瑟) 고사에 거문고(琴)를 타는 공자가 등장한다. 이 고사는 '장자'에 나오는 '공자가 치유(緇惟)의 숲속에 나아가 행단에 앉아 쉴 때 제자들은 독서하고 공자는 거문고를 타며 노래했다'라고 한 데서 유래한다. 이에 근거해 북송 때 공자가 제자를 가르치던 강당 옛터에 단을 쌓고 은행나무를 심어 행단을 복원했고, 이후 행단고슬 고사는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 고사는 그림으로 그려지기도 했다.거문고와 관련된 공자의 일화로, 행단고슬 고사와 함께 의란조 이야기가 유명하다. 공자는 생애 초반 30여 년 동안 천하를 주유하면서 72명의 제후들을 만나 왕도정치의 이념을 설파했다. 하지만 패도정치의 무력이 지배하던 전국시대에 어느 제후도 덕으로 세상을 다스리자는 공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참담한 심정으로 고향인 노나라로 향하던 공자는 어느 인적 없는 빈 골짜기에서 홀로 피어 있는 난초를 만나게 된다. 아무도 보아주는 이 없는 계곡에 홀로 핀 유란(幽蘭)의 그윽한 향기를 맡으며 공자는 깊이 탄식했다. 잡초 속에 묻혀 홀로 무성하게 핀 난초의 모습에서 자신의 처지를 느꼈기 때문이다. 공자는 외롭게 피어있는 난초에 자신의 심정을 담은 '의란조'라는 시를 짓고 거문고 곡으로 만들어 노래하며 연주했다.의란조는 다음과 같다. '골바람 살랑대며 부니 날 흐리다가 비까지 내리고(習習谷風光陰以雨)/ 가던 길 다시 가려 하니 저 먼 들까지 배웅하네(之子于歸遠送于野)/ 어찌하여 푸른 하늘은 날 버리는가(何彼蒼天不得其所)/ 정처 없이 천하를 떠도니 오갈 데 없는 신세로다(逍遙九州無有定處)/ 세상 사람들 어둡고 마음이 막혀 어진 이를 몰라보고(世人闇蔽不知賢者)/ 세월은 빠르게 흘러가고 이 몸만 늙어가는구나(年紀逝邁一身將老)'공자는 난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읊기도 했다. '깊은 산속 지초 난초는(芝蘭生於深林)/ 보는 사람 없다하여 향을 내지 않음이 없고(不以無人而不芳)/ 도를 닦고 덕을 쌓는 군자는(君子修道立德)/ 가난하다고 지조를 버리지 않는다(不爲困窮而敗節)'공자는 29세 때 사양(師襄)에게 가서 거문고를 배웠는데, 거문고를 배우면서 열흘이 넘도록 한 곡만 연습했다. 사양이 그만하면 됐다고 해도 운율을 익힐 때까지 계속 연습했다. 운율을 알고 나서는 음악에 담긴 의미를 알 때까지 연습하고, 또 음악을 만든 사람됨을 알 때까지 연습했다.거문고를 수시로 연주한 공자는 제자들에게도 거문고를 가르치고, 그 소리를 통해 그 마음상태를 평하며 깨달음을 얻도록 했다. 34세 때는 주나라 대부(大夫)로 왕실의 역법(曆法)을 주관하던 장홍을 찾아가 음악을 배웠는데, 장홍은 음악을 대하는 자세 등을 보고 공자에 대해 "예를 행하고 성인의 도를 전하며 실천하는 사람"이라며 칭찬했다.공자가 단순히 음악 그 자체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었다. 예(禮)와 악(樂)을 좋아한다고 한 공자는 음악을 통해 예를 실천하고자 했던 것이다. 김봉규<문화전문 칼럼니스트> bg4290@naver.com겸재 정선의 작품 '행단고슬'. 공자가 행단에서 거문고를 연주했다는 고사를 소재로 한 그림인데, 여기서는 공자의 제자가 거문고를 연주하는 것으로 표현했다. 순임금의 효행과 오현금 이야기를 담은 민화 '효(孝) 문자도'. 김봉규 (문화전문 칼럼니스트)
[주말&여행] 경북 고령 봄나들이…꽃향기 따라, 대가야 발자취 따라 봄맞이 가자
쭈그려 앉아 봄까치꽃을 들여다본다. 기쁜 소식을 전해준다는 조그맣고 푸른 꽃. 딱 하루만 산다는 봄까치꽃은 너무 여려서 살짝만 스쳐도 꽃잎이 떨어진다는데, 그런데도 이 푸른 꽃은 사람의 손길이 자주 미치는 땅을 좋아한단다. 슬프고도 용맹한 아이다. 땅바닥에 바싹 붙어 자라는 광대나물은 스르르 일어나 자주색 꽃을 피우고는 토끼가 귀를 쫑긋 세운 모양새로 봄의 소리를 듣는다. 꽃대마다 작은 꽃들이 닥지닥지 붙어서 피어나는 노란 꽃다지, 떨어져 내린 매화 꽃잎 같은 봄맞이꽃, 좁쌀만 한 크기의 꽃들이 송이모양꽃차례로 피어난 꽃마리, 앙증맞은 것들이 무더기로 피었다. 또 저기 앙증맞은 것들의 무더기는 냉이꽃이다. 하얀 냉이꽃이 온 몸으로 말한다. '당신께 나의 모든 것을 드립니다.'◆성산면 강정리 봉화산전망대마을 첫 집의 낮은 담장에 장미넝쿨이 가득하다. 튼실한 줄기와 큼직한 가시가 여름을 기대하게 만든다. 두 번째 집은 큼직한 공장이다. 소음이 흘러나오는 모퉁이에 벚나무 한 그루 시원찮다. 오물대는 몇몇 꽃송이 속에서 '봉화산 전망대' '여기는 낙동강과 벚꽃이 아름다운 강정리입니다'라는 안내판을 본다. 고개를 슬쩍 돌리기만 해도 보인다, 봉화산. 100m 정도 높이의 낮은 산이지만 낙동강 변 강정들에 쑥 솟아 제법 돌올하다. 공사 중인 산사면 위로 하얀 전망대가 보인다. 12번 고속도로를 달릴 적마다 궁금했던 바로 그 건물은 전망대였다. 마을을 관통해 간다. 꺾이는 골목마다 이정표가 있다. 순하디 순한 백구가 사는 집을 지나고 대나무 숲을 지나면 가파른 산길이다. 몇 송이 수선화와 봄까치꽃과 민들레와 광대나물 꽃과 꽃다지와 꽃마리와 제비꽃과 냉이꽃을 만나고 눈을 마주치고 스치는 길이다. 미끈한 나신의 배롱나무 몇 그루가 산정의 정원을 만들고 있다. 길가에는 조팝나무의 흰 꽃이 하나둘 밝고 산수유는 환하게 노랗고 박태기나무는 듬성듬성 꽃분홍색을 내비친다. 오르막의 오른쪽은 낙동강으로 떨어지는 절벽이다. 그 낭떠러지에 벚나무가 빼곡하다. 꽃은 이제 피기 시작해 아직은 강물이 보인다.전망대에 오른다. 낙동강과 88고속도로낙동강교가 바로 눈 아래다. 남쪽으로 대구 현풍과 고령 개진읍을 잇는 박석대교가 보이고 서쪽에는 중부내륙고속도로가 통과한다. 교통의 요지다. 이는 곧 과거 군사적 요충이었음을 짐작게 한다. 이곳은 낙동강을 사이에 둔 대가야와 신라의 접경지였다. 이곳에 대가야 시대 산성이 있었고 조선시대 봉수대가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말 엉디 산'이라 했단다. 이를 한자로 옮기면서 말응봉(末應烽) 또는 말응덕(末應德)이라 표기했다. 지금 산은 봉화산(峰火山), 전망대는 봉수대를 상징한다. 그래도 위성사진을 보면 씩 웃게 된다. 말 엉디, 딱 닮았다. 봄이면 말 엉디 산은 벚꽃으로 뒤덮인다. 오는 주말부터 완연한 개화가 시작되어 4월 초면 만개할 듯하다. ◆성산로 금산재강정리에서 성산로를 타고 고령 대가야읍으로 간다. 성산로는 논공의 위천삼거리에서 시작되어 성산면을 동서로 가로지른 뒤 금산재를 넘어 고령 대가야읍의 회천교 북단 헌문교차로에서 끝나는 12.8㎞의 도로다. 동고령로 개통 전에는 26번 국도의 일부였고 대구에서 고령으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군데군데 대가야 축제 안내판이 놓여 있다. 29일 금요일부터 31일 일요일까지 벚꽃시즌에 맞춰 열리는 축제다. 성산면의 번화가가 끝날 즈음 축제장으로 인도하는 안내판은 동고령로로 올라서라고 하지만 옛길을 따라간다. 길은 벚나무 가로수 길이다. 가로수가 보이지 않는 자리에는 병아리 떼처럼 종종대는 개나리와 땅을 들썩이는 들과 사람들의 조용한 거처가 펼쳐진다. 그러다 금산재 초입부터 벚나무들은 매우 대단해지는데 고개 너머 대가야읍 목전까지 내내 대단하다. 금산재는 대구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고령으로 왕래하는 중요한 길목이었다. 또한 재만 넘으면 고령분지였으니 방어를 위한 요지였다. 그래서 비단처럼 아름다운 산 금산은 망보는 산이라 하여 망산이라고도 불렀다. 고갯마루 하늘에 구름다리가 걸려 있다. 다리 위에 오르면 북쪽으로는 고령 읍내가 훤하고 남쪽으로는 회천이 환하다. '회천'은 냇물이 모인다는 뜻이다. 가야산에서 시작된 대가천과 안림천이 하나 된 것이 회천이다. 지역 사람들은 '모듬내'라는 예쁜 이름으로 부른다. 회천은 대가야읍 앞을 지나 남쪽으로 훠이훠이 전진해 합천 덕곡에서 낙동강과 합류한다. 역시 지금도 망산이고 금산이다. ◆대가야 수목원 금산재 잿마루에서 내려가는 길 왼편은 대가야수목원이다. 길가에 '낙동강유역 산림녹화비'가 서 있고 조금 더 내려가면 수목원 입구다. 수목원 입구 수양 벚나무가 꽃을 피웠다. 산자락의 벚나무들도 퐁당퐁당 꽃을 피웠다. 아직 앙상하거나 허전한 수목들이 대부분이지만, 아직 목련이 피어 있고 자목련은 꽃봉오리가 단단하고 수양 매화가 놀라운 자태로 꽃을 피우고 있다. 옛날 이곳은 매우 황폐했었다 한다. 일제 강점기와 전쟁, 그리고 홍수 때문이었다. 치산(治山)을 위해 나무를 심기 시작한 것이 1973년, 2004년부터는 기념관과 분경분재관, 폭포 등을 만들고 조경을 하는 등 휴양 문화시설을 확충해 나갔다. 그리고 2007년, 기념할 수 있을 만큼 숲은 푸르러졌다. 수목원은 경사진 산 사면을 따라 넓고 길게 펼쳐져 있다. 그 속에 벚나무 숲길, 암석원, 미로원, 철쭉동산, 무궁화동산, 야생화단지, 산림녹화 기념관, 연못, 물놀이 시설 등이 자리하고 등산로와 판석의 산책로, 나무 데크 길 등이 두루 어우러져 있다. 멀리 금산재 고갯마루의 구름다리가 보인다. 산책로를 따라 몇 그루 꽃 피운 벚나무와 산수유나무를 지나고 금산폭포도 지나면 산길을 따라 구름다리까지 갈 수 있다. 금산폭포에 폭포는 없는데 물소리 들린다. 이제 숲은 매일 조금씩 깨어난다. 암석원의 봄까치꽃들 사이에 복슬복슬한 할미꽃이 피었다. 조그맣고 푸른 봄까치꽃은 할미의 얼굴을 마주 보며 매일 매일 기쁜 소식을 전해준다. 할미의 슬픔을 모르는 말간 얼굴로.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 Tip대구에서 5번 국도를 타고 화원, 옥포 지나 위천삼거리에서 오른쪽 성산, 동고령IC 방향으로 빠져나간다. 성산로를 따라 약 2km 직진하면 오른쪽에 강정리 봉화산 안내판이 커다랗게 자리한다. 마을 입구에 커다란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마을을 관통해 10여 분 올라가면 봉화산전망대다. 골목골목 이정표가 잘 되어 있다. 성산로를 타고 계속 직진하면 금산재를 넘어가게 된다. 고개를 완전히 넘으면 회천과 고령 대가야읍이 훤히 보이고 회천교 다리 건너기 전 왼편에 입구가 있다. 대구 서문시장이나 서부정류장에서 606번 버스를 타면 성산로를 타고 가게 된다. 고속도로를 이용할 경우 동고령IC에서 내리면 바로 성산면 소재지 한가운데 성산로다.대가야수목원은 경사진 산 사면을 따라 넓고 길게 펼쳐져 있다.봉화산전망대. 대가야 시대에는 산성이 있었고 조선시대 봉수대가 있었다.금산재 구름다리에서 본 고령 대가야읍. 회천과 읍내가 한눈에 보이고 지산동고분군까지 조망된다.아직 앙상하거나 허전한 수목들이 대부분이지만 놀라운 자태로 꽃을 피우고 있다.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대구·경북 이색 도서관 여행 (2) 색색의 문화공간, 봄날의 도서관에서 '힐링'
◆적산가옥 '삼덕마루 작은 도서관'삼덕초 뒤편 일본식 가옥 다다미방 5개 갖춰현존하는 관사로서 가치 인정받은 문화재할머니 집에 온 편안한 느낌으로 책을 읽고 싶다면 대구 중구 삼덕동에 위치한 '삼덕마루 작은 도서관'에 가보길 추천한다. 적산가옥이 공공도서관으로 처음 변신한 곳이다.삼덕마루 작은 도서관은 삼덕초등 뒤편 주택가에 일본식 가옥의 형태로 자리한다. 일제강점기인 1939년 대구덕산공립심상소학교 교장 관사로 건축된 목조건축물로 삼덕초등의 옛 관사다. 근대 시기 대구지역에 건립된 교육 관련 시설 가운데 현존하는 몇 안 되는 관사 건물로서 가치를 지닌다. 하지만 광복 이후 일제 잔재 논란으로 방치됐다가 2013년 근대 교육시설로서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등록문화재 581호로 지정됐다. 이후 대구 중구가 대구시교육청으로부터 건물을 넘겨받고 주민들을 설득해 문화재 보수공사를 진행해 2017년 7월 마을커뮤니티센터 및 작은 도서관으로 개관했다. 현재 지역민을 위한 열린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건물에 들어서면 좁은 마루에 다다미방이 5개 딸려 있다. 일반 도서를 모아둔 책모둠방, 어린이 도서가 있는 꿈나무방, 각종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어울림방, 유아 도서가 구비된 꼬꼬마방, 아이들이 장난감을 갖고 놀 수 있는 교구놀이방이다. 꿈나무방과 꼬꼬마방은 다락방도 갖췄다. 앉거나 누워서 책을 읽을 수 있다. 어울림방에는 유적·명소 등 대구의 공간을 다루는 책들을 진열한 '대구와 거니는 책' 코너가 있다. 역사의 자취가 남아 있는 대구의 공간을 지역민들과 함께 기억하기 위해서다. 성인, 아동, 유아 도서 등 총 도서 수는 지난해 6월 기준 5천55권이다.◆국내 첫 미술전문도서관 '아트도서관'가창면에 자리한 국내 첫 '미술전문도서관'미술서적 희귀본부터 예술인 아카이빙까지대구 근교로 나들이를 간다면 이곳을 빼놓을 수 없다. 달성군 가창면에 위치한 국내 최초 미술전문 사립 도서관 '아트도서관'이다. 2014년 만촌동에 개관한 아트도서관은 2020년 대화재로 휴관했다 2021년 8월 가창면 녹동서원 인근에 재개관했다. 국립중앙도서관에도 없는 미술 서적을 다량으로 만나볼 수 있으며 갤러리도 겸하고 있어 볼거리가 많다.아트도서관은 지역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AAMB'란 키워드로 A(Art Library·미술 도서관), A(Archive·아카이브), M(Museum·미술관), B(Book Cafe·북카페)의 역할을 한다. 먼저 일반 도서관에선 볼 수 없는 희귀하고 오래된 미술 서적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고전 작가부터 지역 작가까지 여러 예술인의 자료를 아카이빙 한다. 허두환 아트도서관 관장은 "일반 도서관에선 지역 작가와 미술에 대한 자료를 아카이빙 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 점이 아쉬워 직접 서적을 찾아다니고 수집했다"고 밝혔다.지하 1층은 서고, 1층은 북카페, 2층은 도서관 겸 갤러리로 운영된다. 북카페에서는 식음료를 먹으며 미술서적을 볼 수 있다. 피자·디저트·음료 등을 판매한다. 2층에 갤러리가 있지만 1층에도 곳곳에 미술작품이 놓여 있어 눈이 심심하지 않다. 만촌동 도서관 화재현장을 재현한 소장품도 있다. 2층은 도서관 및 주노아트갤러리다. 갤러리에서는 여러 미술 작품을 전시하며 지난 10일까지는 경북조각회 초대전을 선보였다. 대구문화 창간호 등 근현대 희귀 미술자료 초판본, 가톨릭 성물 등도 진열돼 있다.하지만 지자체의 지원 부족으로 고심이 깊다. 도서관 운영 지속을 위해 민간 후원자를 찾고 있지만 이조차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허 관장은 "의정부미술도서관처럼 대구도 미술전문도서관을 지역 관광 콘텐츠로 활용할 수 있다. 그런데 시에서는 큰 관심이 없는 듯하다"며 "미래 세대에게 다양한 미술 콘텐츠를 넘겨주기 위해 내 삶보다 도서관 운영을 더 중시하며 살았다. 이런 도서관의 가치를 누군가 알아주길 바라고 있다"고 밝혔다.◆폐역사의 변신 '반야월역사 작은 도서관'옛 기차역 모습 간직하며 레트로 감성 '물씬''철도유물전시관'선 과거 역사 운임표 등 전시폐역사 건물이 도서관이 된 곳도 있다. 대구 동구 '반야월역사 작은 도서관'이다. 옛 기차역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레트로 감성'을 느낄 수 있다.1932년 세워진 반야월 폐역사는 경부선과 중앙선을 연결하는 대구선 역사의 하나로 대구지역에 석탄을 공급하는 기능을 했다. 2004년 대구선 철도가 폐지되면서 폐역이 됐다. 이후 반야월역사가 근대등록문화재 270호로 지정되고 문화재라는 특수성을 보존하기 위해 2011년 철도 테마가 있는 작은 도서관으로 재탄생했다.도서관에는 어린이 열람실, 일반 열람실, 철도유물전시관이 있는데 가장 눈에 띄는 공간은 철도유물전시관이다. 과거 반야월역에서 사용하던 여객운임표·건널목 및 교량 안내판, 당시 찍은 건물 사진 등을 전시해둬 역사의 옛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도서관은 교육·체험 프로그램 등도 상시 진행하는데, 도서관 입구 맞은편 벽면에는 지역 어린이들이 지난해 문해력 수업에서 만든 독서신문이 붙어 있다. 건물 밖에는 반야월공원이 조성돼 있어 산책 겸 도서관에 방문하기도 좋고, 책을 빌려 야외에서 읽기도 좋다.◆꽃구경과 함께 독서 '신라 천년서고'과거 수장고 새단장해 경주 관련 서적 보관우측 벽면 통창으론 옛 신라 봄풍경 '만끽'오늘부터 오는 31일까지 경주 대릉원에서는 '대릉원 돌담길 벚꽃축제'가 열린다. 꽃구경과 함께 이색적인 곳을 둘러볼 예정이라면 인근에 위치한 '신라 천년서고'도 좋다. 국립경주박물관 일대에 자리한 신라 천년서고는 과거 수장고로 이용했던 건물을 새롭게 꾸민 박물관 도서관이다.지난 2022년 12월 개관한 신라 천년서고는 박물관, 신라와 경주에 관한 다양한 서적을 보유하고 있다. 내부는 박물관과 도서관의 특징을 조화롭게 갖춰 실내 유적지 같은 느낌을 준다. 서가 사이에는 편안히 앉을 수 있는 소파, 목재 벤치의자 등 다양한 형태의 앉을 자리가 있어 좌석의 선택 폭이 넓다. 우측 벽면에는 통유리창이 있어 옛 신라의 봄 풍경을 만끽하며 책을 읽을 수 있다.국립경주박물관 일대에 자리하고 있어 밖에서는 자연 및 유적들을 감상할 수 있으며 신라역사관, 신라미술관, 어린이박물관 등 근처 여러 전시관에 도보로 가기도 좋다.◆지역 향토자료 가득 '경주시립도서관'벚꽃명소 황성공원 입구 자리한 전통한옥형개관 70년 넘은 '신라 역사문화 특화도서관'인파가 많은 곳을 꺼린다면 '경주시립도서관'으로 눈을 돌려보자. 경주시립도서관은 황성공원 입구에 있는데, 황성공원도 경주의 벚꽃 명소 중 한 곳이다. 대릉원쪽보다는 한산해 공원 벤치에 앉아 벚꽃과 책을 함께 즐기기 좋다. 경주가 신라의 역사를 품은 도시인만큼 건물도 전통 한옥의 형태를 띤다. 개관한 지 70년이 넘은 도서관은 '경주시립'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신라 역사문화 관련 특화도서관이다. 일반 도서뿐만 아니라 고서, 지역 관련 도서 및 논문집 등 향토자료도 약 7천개 보유하고 있다. 이는 2층 종합자료실 구석에 위치한 '향토자료실'에 진열돼 있는데, 사서에게 요청하면 열람할 수 있다. 경주와 신라의 역사, 문화 등을 담은 여러 서적을 만나볼 수 있다. 신분증을 맡기면 대출도 가능하다. 글·사진=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적산가옥을 재활용한 대구 삼덕동 '삼덕마루 작은 도서관' 내부. 5개의 다다미방이 있다.대구 가창면 '아트도서관' 2층 내부.'반야월역사 작은 도서관' 외경.국립경주박물관 신라 천년서고 내부.경주 황성공원 입구에 위치한 경주시립도서관 외경.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대구·경북 이색 도서관 여행 (1) 봄꽃내음 따라 걷다 책향기 이끌려 들어서니…
봄바람이 살랑거리고 나뭇가지에 새순이 돋아납니다. 길을 걷다 보면 다가온 봄 풍경에 탄성을 뱉는 이들이 보입니다. 찬란한 햇살과 분홍빛 풍경…. 벚꽃 만개 시즌입니다. 제대로 봄을 즐길 시기가 왔습니다. 독자들께서도 이번 주말을 맞아 가족 또는 연인·친구와 함께 봄나들이를 계획하고 있을 것입니다.우리 지역의 봄나들이 명소로는 대구는 동촌유원지·이월드·수성못, 경북은 경주 대릉원, 김천 연화지, 영주 원당천 등이 언급됩니다. 봄을 만끽하며 산책하기 좋은 곳들이 대다수입니다. 저도 분홍빛의 벚꽃과 노란빛의 개나리가 어우러진 풍경을 아주 사랑해 매년 3월 말이면 동촌유원지에 꼭 방문합니다.하지만 벚꽃 명소는 항상 사람으로 붐벼 피곤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순 있었지만, 인파로 인해 피로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사람에 치이며 걷고 사진을 찍다 체력이 바닥나 기진맥진하며 집에 간 적이 있습니다.이런 경험은 우리에게 느림의 미학이 필요함을 상기시켜줍니다. 시끌벅적한 세상에서 조용한 순간을 즐기고, 일상에서의 소소한 행복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명소를 찾아 봄을 제대로 만끽하는 것도 좋지만, 때로는 조용한 곳에서 소소하게 계절을 맞이하는 것도 좋은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저처럼 봄을 즐기면서도 마음의 평화를 느끼고 싶은 분이 계신다면, 잠시 소란에서 벗어나 도서관으로 향해보는 건 어떨까요.사람으로 붐비는 길을 걷다가 조용한 도서관으로 들어서면 그 순간 바깥의 소란과는 대조되는 평화로운 분위기에 안정감이 밀려올지도 모릅니다. 도서관 안은 조용한 책장 소리와 마음을 가라앉히는 정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무엇보다도 도서관 나들이는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책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거나 문학의 세계로 여행하는 것은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책 한 권을 골라 앉아서 읽는다면, 인파로 가득찬 벚꽃 아래에서의 시간보다 더욱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될 것입니다.흔히 찾아볼 수 없는 이색적인 도서관에 간다면 '힐링'은 배가 됩니다. 대구경북에도 독특한 도서관이 꽤 있습니다. 적산가옥을 재활용한 곳, 희귀한 미술서적과 예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곳, 옛 기차역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곳, 과거 수장고로 이용됐던 곳, 지역에 대한 심도 있는 자료를 찾아볼 수 있는 곳 등입니다.이런 도서관들은 벚꽃 명소만큼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안에서의 시간은 특별할 것입니다. 단순히 책을 빌리고 돌아오는 곳을 넘어서 문화와 예술을 경험할 수 있는 장소가 이곳들입니다. 다양한 문화행사와 프로그램도 열려 우리에게 새로운 경험과 기억을 안겨줄 수도 있습니다.이번 위클리포유에서는 느림의 미학과 함께 새로운 추억을 쌓을 수 있는 대구경북 이색 도서관 5곳을 소개합니다. 평화롭지만 즐거운 봄날을 만끽하고, 몸과 마음 모두에 휴식을 주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벚꽃 아래에서의 환상적인 순간만큼 좋은 추억을 만들어 보세요.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권응상의 ‘천 개의 도시 천 개의 이야기’] 몽골제국의 수도 카라코룸 ①
몽골제국은 칭기즈칸이 1206년에 건설했다. 13·14세기 몽골제국은 역사상 가장 넓은 땅을 가진 나라였다. 유럽 정벌은 물론 1271년에는 중국의 남송까지 멸망시키고 중국 전역을 차지했다. 중국 역사상 최초의 이민족 왕조인 원나라이다. 필자는 중국문학, 그중에서도 중국공연예술을 전공했다. 중국의 고전 희곡 가운데 양식적으로 완비된 것은 원나라 잡극으로 본다. '중국문학사'에서 잡극을 다룰 때 1271년을 기점으로 '몽고시대'와 '일통시대'로 나누어 설명한다. 그리고 그 흥성기는 '몽고시대'라고 본다. 잡극 음악 자체가 북방 음악이었고, 몽골 왕실에서도 특히 애호했다. 그뿐만 아니라 원곡 사대가라 불리는 관한경, 백박, 마치원, 왕실보 등이 모두 13세기 중엽에 활동한 극작가이다. 그렇다면 당시 몽골제국의 수도였던 카라코룸에서 잡극이 활발하게 공연되었음도 유추할 수 있다. 그러나 확인할 자료가 없어서 늘 미진한 구석이 남았다. 원나라 시기에는 중국 남방의 한족까지 매료시켰던 잡극 양식이지만 그 기원에 대해서는 속 시원한 설명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잡극은 '대아지당'에 오른 시문과는 대척점에 있었던 속문학이었고, 특히 몽골이라는 이민족 왕조에서 기원한 양식이었으니 굳이 파헤치지도 않았을 법하다. 몽골을 마주하면 늘 이런 아련한 아쉬움이 있었다. 그것이 필자를 카라코룸으로 이끌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그러나 몽골 여행을 준비하다 보니 정작 몽골제국의 옛 수도였던 카라코룸보다 인근의 미니 고비나 오르콘 계곡 투어 자료가 대부분이었고, 카라코룸은 이미 '사라진 도시'로 스쳐 지나는 곳이었다. 그래도 현장을 가보고 싶었다.세계문화유산 등재 카라코룸 유적지도기·성곽 등 유적유물 다수 발굴돼2010년 개관 박물관 복원 모형 전시기와·게르구역, 모스크 등 당시 재현13세기 교황 사절단·고려 교류 흔적몽골제국의 옛 수도 전성기 떠올라울란바토르에서 350㎞, 자동차로 5시간 걸리는 거리이다. 세 개의 강이 만나는 목초지에 자리한 카라코룸은 몽골어로 '검은 자갈밭'을 뜻하는 'Qara-Qorum'으로, 중국 문헌에는 '客喇和林' 또는 '和林'으로 나온다. 현재 몽골 발음으로는 '하르허린(Хархорин)'에 가깝다. 카라코룸이 위치한 오르콘(Orkhon) 계곡 지역은 전략적, 경제적 중요도가 높은 곳이자 몽골에서 신성한 지역이다. 2004년 유네스코에 의해 '오르콘 계곡 문화 경관'의 일부로 카라코룸 유적지 및 에르덴조 사원 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이 지역은 7·8세기 위구르 시기부터 이미 상당한 도시의 터전이 있었다고 전한다. 투르크 제국, 위구르 제국의 유물도 상당히 많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칭기즈칸이 1220년에 수도를 정했고, 실제 건설은 1235년 그의 셋째 아들 오고타이 칸이 시작했다. 이후 쿠빌라이 칸이 1271년 남송을 멸하고 수도를 지금의 베이징으로 옮길 때까지 몽골제국의 수도로 번성했다. 오고타이는 칭기즈칸의 아들 가운데 가장 지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중국 장인과 프랑스 기술자를 동원하여 웅장한 성벽 도시 카라코룸을 건설했다. 말하자면 동서양 기술이 합쳐진 세계 제국의 상징 도시로 건설된 셈이다. 또 아버지 때부터 함께 일했던 야율초재를 중용하여 중국식 행정 조직과 중국과 이어지는 역참을 설치하여 통치 기반을 다졌다. 내적 안정을 기한 오고타이 칸은 1240년에 바투를 사령관으로 하는 대규모 서방 원정을 시작하여 키예프, 폴란드 등을 점령하였다. 그가 사망한 1241년에도 리그니츠 근교에서 독일과 폴란드 연합군을 격파했다. 또 헝가리군을 격파한 후 실레지아 왕 헨리 2세를 처형하기도 했다. 이 시기는 몽골이 유목국가 성격을 탈피하고, 정주 농경국가를 지향하며 세계 제국으로 변모하던 시기였다. 이처럼 카라코룸은 몽골제국 전성기를 웅변하는 도시이다. 그러나 지금은 황량한 벌판만 남아 있을 뿐 카라코룸의 영화는 박물관 속에 갇혀 있었다. 일본 자본으로 지어져 2010년 개관한 카라코룸 박물관은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고대도시 시대, 몽골제국 시대 등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몽골어, 영어와 함께 일본어 설명이 있어서 박물관에서도 자본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특히 카라코룸 여러 곳에서 발굴된 도기와 오고타이가 건설한 성곽 유적 유물 덕분에 미흡하나마 당시의 영화를 짐작할 수 있었다. 박물관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도성 유적발굴 가마터였다. 실제 발굴 현장 위에 박물관을 지어 박물관에 유리관으로 발굴 현장을 직접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이곳에서 도시 건설에 필요한 각종 기와나 도기, 건설 자재들이 건조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발굴과 기록을 토대로 도시 모형을 만들어놓았다. 모형을 보면 기와 건물과 게르 구역이 나뉘어 있었고, 모스크를 비롯한 각종 종교시설도 배치되어 있어 당시의 모습을 짐작게 한다. 성안에는 대략 1만3천명에서 1만5천명 정도 거주한 것으로 추정한다. 쿠빌라이 칸 통치기에 몽골을 왕래했던 마르코 폴로는 여행기 '동방견문록'을 통하여 당시 원나라를 유럽에 소개하는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보다 20~30년 앞서 카라코룸을 방문했던 두 명의 유럽 수도사가 있었다. 각각 구육 칸과 뭉케 칸 통치기에 카라코룸을 방문한 프란체스코파의 수도사 카르피니(Carpini)와 루브룩(Rubruck)이다. 두 수도사는 '몽골의 역사'와 '몽골기행'이라는 귀중한 여행기를 남김으로써 당시 도성의 모습과 상황을 보다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한다. 유럽 사람들도 이 기록을 통해 유럽을 공포에 떨게 했던 정복자 몽골제국의 정보를 접했다. 카르피니는 1245년 교황 이노센트 4세가 파견한 수도사였다. 카르피니는 서양 가톨릭 수도사로는 최초로 카라코룸을 방문하여 4개월간 체류하고 1247년 리옹으로 귀환했다. 그리고 교황에게 몽골제국 답사 보고서를 제출하였으니, 그것이 '몽골의 역사'이다. 이 책에는 초원에 세워진 화려하게 정비되고 건설된 계획도시 카라코룸의 풍경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기록하였다. 그는 교황의 서신을 구육 칸에게 전달하는 임무를 맡았는데, 카라코룸 박물관에는 교황의 서신과 구육이 쓴 답신이 전시되어 있다.박물관 모형에서 보듯이 카라코룸은 4개의 성문이 있는 성벽 도시였다. 성문마다 시장이 있어서 동쪽에는 곡식, 서쪽에는 염소, 남쪽에는 황소와 사륜마차, 북쪽에서는 말을 팔았다. 성벽의 안팎에는 몽골인은 물론 중국인, 페르시아인, 위구르인 등 다양한 민족이 함께 거주했으며, 다양한 종교가 공존했다. 기록에 따르면 이 도시에는 무슬림 거주 구역과 중국인 거주 구역이 별도로 설정돼 있었고, 불교 사원 12개, 모스크 2개, 네스토리우스 기독교 교회 1개가 있었다고 한다. 두 수도사의 기록 가운데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솔랑기', 즉 '고려(高麗)'를 언급하고 고려인을 묘사한 대목이다. 고려에 관한 기록은 '몽골의 역사'에 여섯 번, '몽골기행'에 두 번 등장하는데, 그 정보가 제법 자세한 것으로 보아 당시 고려인의 왕래도 꽤 활발했던 것으로 보인다. 카라코룸에서는 이처럼 다양하고 상이한 민족과 종교가 서로 공존하며 번영을 이루었고, 이는 몽골제국이 지향했던 다원주의를 잘 상징해 준다. 당시 카라코룸은 제국의 번성과 함께 아시아 전역은 물론 유럽의 상인, 고위 관리, 기술자들이 모여 사는 활기찬 도시였다. 카라코룸은 행정, 교역, 문화 중심지였을 뿐만 아니라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접점이었다. 중국 문헌에는 대칸이 살았던 카라코룸의 궁전을 '만안궁(萬安宮)'이라 기록하고 있다. 루브룩은 '몽골여행'을 통해 그 모습을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다. 궁전의 입구에는 은으로 만든 거대한 나무가 서 있었는데, 그 밑둥치에는 은제 사자 네 마리가 조각돼 있었고, 그 입에서는 말젖이 흘러나왔다고 한다. 또한 이 나무의 몸통 속에는 긴 대롱이 꼭대기까지 이어져 거기에서 다시 늘어진 나뭇가지를 통해 포도주, 마유주, 봉밀주, 미주 등 네 가지의 서로 다른 음료수가 흘러나왔다고 한다. 이 장식품을 제작한 사람은 프랑스 파리 출신의 기술자였다. 이것은 울란바토르 자이승 기념관 근처 공원에서 보았던 은제나무 분수를 묘사한 내용이다. 이처럼 동서양 기술을 접목하여 건설한 몽골제국의 수도는 지금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당시의 도성을 유추할 수 있는 유일한 유물은 에르덴조 사원 북서쪽 300m쯤에 귀부만 남은 '돌거북'이다. 유일할 뿐 아니라 가장 중요한 유물이다. 거북등의 비석이 카라코룸의 여러 역사를 증명해주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네 개의 돌거북 비석이 카라코룸의 경계석으로 사방에 있었다. 1220년 칭기즈칸이 이곳을 수도로 정하라고 한 명령도 이 비석에 남은 글이다. 그뿐만 아니라 98m 높이의 5층 탑 '흥원각'에 대한 기록도 있다. 지금은 황량한 벌판 가운데 기단부만 남아 무상함을 느끼게 하지만 기단부에 늘어선 수십 개의 기둥 자리는 당시의 웅장한 모습을 짐작하게 한다. (계속) 대구대 문화예술학부 교수카라코룸 박물관카라코룸 출토 도기. 중국풍 도기로서 중국과의 교류 유물로 보인다.카라코룸 복원 모형도.디지털로 복원한 돌거북 비석.권응상 대구대 문화예술학부 교수
[주말&여행] 전북 임실 구담마을, 섬진강변 산비탈에 10여가구 둥지…영화 '아름다운 시절' 촬영지
장산마을을 지난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이 살고 있다는 마을이다. 커다란 느티나무 너머로 시인의 거처가 한눈에 들어차고 방진으로 늘어선 산수유나무가 노란 산형꽃차례를 곡진하게 피워내고 있다. 마을 끝자락에서 길은 눈에 띄게 좁아진다. 명목은 자전거길이지만 차가 다닐 수 있도록 군데군데 대기차선이 마련되어 있다. 이팝나무와 벚나무가 가로수로 이어지고 띄엄띄엄 자리한 벤치와 시를 새겨 놓은 바위가 연산홍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손 뻗으면 참방, 손끝이 시리게 닿을 것만 같은 강에는 눈(雪)빛의 바위들이 툭툭 떨어져 있다. 문득, 물굽이 따라 청둥오리 떼가 선회한다. 이 길을 옛날에는 지게길이라 했고 지금은 '시인의 길'이라 부른다. 천담마을을 지난다. 길가에 동자바위가 동그마니 서 있다. 그의 일그러진 입술에서 울음소리 흐른다. 강폭이 넓어졌다. 동자바위의 눈물 때문일지도 모른다. 20년전 매화나무 심어 '매실의 고장' 수식어옛날엔 닥나무 많아 질 좋은 한지 생산 유명1998년 이광모 감독 영화 촬영 현장비 세워장산~천담~구담마을 이어지는 물길 아름다워◆구담마을천담마을의 끝자락에서 매화나무 가로수가 시작된다. 비가 후드득 내리기 시작했고, 우중 매화는 더없이 청초하다. 매화나무는 1.5㎞ 정도 이어지다 자취를 감춘다. 백미러 속으로 마지막 꽃들이 사라지는 모습을 본다. 그래도 서운하지 않은 것은 활짝 열린 골짜기와 그 밑동을 적시는 강물과 눈빛의 바위들과 흔들리는 갈대들과 멀리 보이는 한 줌의 촌락들 때문이다. 길이 강과 조금씩 멀어지며 산을 오른다. 하나둘 집들이 나타난다. 길가에 무더기로 쌓인 비료 포대에 박○○, 김○○, 공○○, 허○○ 등의 이름이 적혀 있다. 다양한 성씨들이 모여 사는구나. 그리고 다시 매화가 우수수 이어지더니 버스정류장과 뾰족뾰족 잎만 오른 수선화와 '매실의 고장 구담마을'이라는 작은 안내판이 보인다. 길의 끝이다. 길 끝 구담마을은 강변 산비탈에 둥지를 친 듯 앉아 있다. 지붕을 세어보니 약 12개 정도, 사람이 살지 않는 집도 있으니 대략 10가구 정도일 것이다. 1680년쯤 해주오씨가 정착해 형성되었다는 구담마을은 마을 앞 섬진강에 자라가 많다 하여 구담(龜潭)이라고도 하고, 또 저 섬진강에 아홉 개의 소(沼)가 있어 구담(九潭)이라고도 한다. 옛 이름은 '안담울'이다. 강 건너 보이는 지형이 마치 학이 알을 품은 형세와 같다고 생긴 이름이다. 지금도 안담울이라 즐겨 부르는 이들이 많다. 마을은 약 20년 전 고령화가 심해지면서 수익창출을 위해 하나둘 매화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이후 '매실의 고장'이라는 수식어가 붙었지만 지금 마을의 매화나무는 조금씩 무리 지어 듬성듬성 환하다. 새알 같은 집들, 새알 같은 텃밭들, 새알 같은 꽃들이라는 생각을 한다. 마을회관 옆 쉼터 유리벽에 김용택 시인의 시가 적혀 있다. '당신을 만나/ 안고 안기는 것이/ 꽃이고 향기일 수 있는 나라가 있다면/ 지금 그리고 가고 싶어요.' 하나뿐인 당신이 온 우주이듯 한 송이 꽃도 온 우주이지.◆아름다운 시절마을의 남쪽 끝에 당산 숲이 강을 내다보고 있다. 느티나무와 서어나무가 숲을 이룬 당산 가운데에 소박한 제단이 있다. 슬쩍 봉긋한 것은 삼신할머니 무덤일 것이다. 그리고 한국영상자료원이 세운 영화촬영 현장비가 있다. 이 마을에서 이광모 감독의 1998년 영화 '아름다운 시절'을 촬영했다. 6·25전쟁 때의 이야기다. 감독은 '비록 괴롭고 아픈 시절이었지만 아름다운 순간도 있었다'고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말하고 싶은 것을 잘 말하기 위해 전국을 7개월간 돌아다닌 끝에 구담마을을 만났다고 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기억한다. 한 가족이 구불구불 산길을 내려가는 모습이 4분 동안 이어진다. 그리고 '고난과 절망의 시대에도 늘 희망의 불씨를 간직하고 사셨던 할아버님과 아버님께 이 영화를 바칩니다'라는 자막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그 산길은 이곳이 아니지만 그들의 뒷모습은 저 강을 닮았다. 매화 꽃잎 속에 강물이 흐른다. 강 건너는 순창의 회룡마을이다. 멀리 희미한 것은 용궐산이다. 대 슬래브의 허연 가슴 때문에 용궐산이구나 알아본다. 지난해 이른 봄 용궐산 하늘길에 올랐을 적에 이곳 구담마을을 마음에 담아두었더랬다. 이 물굽이를 보려고. 사람들은 섬진강 오백리길에서 임실의 장산, 천담, 구담을 거쳐 용궐산 장구목으로 흘러드는 물길을 가장 아름다운 물굽이로 꼽는다. 그 아름다운 물굽이를 전부 보았으니 으쓱하다. ◆산책로 따라 강변으로 긴 연통에서 불내가 난다. 어디선가 카레 냄새가 난다. 어느 집 축대에 노란 수선화가 두어 송이 피었다. 어느 집 모퉁이에는 홍매 한 그루가 입을 꼭 다물고 서 있다. 마을 안을 이리저리 배회하다 강 쪽으로 향하는 산책로를 따른다. '꽃이 핍니다/ 꽃이 집니다/ 꽃피고 지는 곳/ 강물입니다/ 강 같은 내 세월이었지요.' 코끼리를 삼킨 보아구렁이 모양의 바위에 김용택 시인의 시 '강 같은 세월'이 새겨져 있다. 머리와 꼬리는 아직 겨울잠 자고 등만 내놓은 구렁이네 하곤 저 아래 미동 없는 강을 본다. 매화가 제법 화사한 작은 밭을 지난다. 작고 하얀 꽃잎이 검은 길 위에 점점이 내려앉았다. 한 줌 푸른 대숲 속으로 오솔길이 가파르게 내려간다. 저 아래 수묵화 같은 풍경 속에서 세 여인이 까르르 천천히 올라오고 있다. 앞서 끌고, 뒤서 밀며, 세 사람은 같은 속도로 오르막을 오른다. 그녀들을 모로 스치며 가운데서 환히 웃는 여인의 손 주름을 보았다. '징검다리 가는 길' 앞에서 잠깐 고민을 한다. 돌계단을 따라 곧장 강변으로 내려설 수도 있고 조금 길게 휘돌아 갈 수도 있다. 먼 길을 간다. 강이 가까워지자 '구담마을 닥나무 삶던 솥'에 대한 안내판이 있다. 덕치면은 옛날부터 닥나무가 많이 자생하고 물이 깨끗해 질 좋은 한지로 유명했다고 한다. 이제는 사양길에 들었지만 구담마을 앞 강변에는 지금도 돌을 쌓아 만든 120년 된 닥나무 가마솥이 있고 삶은 닥나무를 두들기던 너벙바위가 많다고 한다. 쏜살같이 내려가 두리번두리번 '닥나무 삶던 솥'을 찾는다. 까맣고 푸르고 붉은 돌로 쌓아올린 '솥'을 찾아내지만 어떻게 삶는지 상상이 안 된다. 돌솥밥 정도만 겨우 생각해 내는 조무래기가 뭘 알겠나. 저기서 한그루 매화나무가 부른다. 꽃 너머로 평평한 바위가 보인다. 오호라, 너벙바위는 알겠다. 건너편 회룡마을에도 군데군데 꽃나무가 희다. 두 마을을 잇는 징검다리는 오늘 낮고 긴 낙수대다. 세 여인이 떠난다. 부릉 시동을 건 차에서 한 여인이 후다닥 내린다. 그녀는 어느 집 축대로 달려가 노란 수선화를 카메라에 담는다. 아름다운 시절이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 Tip12번 대구광주고속도로 광주방향으로 가다 순창IC에서 내린다. 순창IC교차로에서 12시 방향으로 나가 직진, 관서삼거리에서 좌회전, 순창고교교차로에서 우회전해 27번 국도를 타고 직진한다. 약 10㎞ 정도 가다 장암교차로에서 회문산, 장암리 방향으로 빠져나가 우회전, 50m터 앞에서 다시 장암리 방향으로 좌회전해 400m 앞 천일슈퍼에서 우회전해 계속 직진하면 장산마을, 천담마을 지나 길 끝에 구담마을이 자리한다.구담마을 매화 꽃잎 속에 섬진강이 흐른다. 강 건너는 순창의 회룡마을, 멀리 희미한 것은 용궐산이다. 대 슬래브의 허연 가슴 때문에 용궐산이구나 알아본다.구담마을은 강변 산비탈에 둥지를 친 듯 앉아 있다. 지붕을 세어보니 약 12개 정도, 사람이 살지 않는 집도 있으니 대략 10가구 정도일 것이다.서어나무와 느티나무가 숲을 이룬 구담마을 당산. 숲 가운데에 한국영상자료원이 세운 이광모 감독의 1998년 영화 '아름다운 시절' 영화촬영 현장비가 있다.
[금주의 영화] 댓글부대, '온라인 여론 조작' 실체가 있을까…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
요즘 대세배우로 떠오른 손석구가 천만영화 '범죄도시2' 이후 선택한 작품이다. 현대사회에서 갈수록 중요해지는 사이버 여론을 조작하는 '댓글부대'의 실체를 파헤치는 언론사 기자의 이야기다. 현대인은 두 개의 세상을 살고 있다. 매일 눈뜨고 생활하는 현실, 그리고 가상의 공간인 인터넷 세상이 그것이다. 영화 '범죄도시2'에서 잔혹한 킬러 '강해상'을 맡아 강한 인상을 남긴 손석구가 이번에는 민첩한 사회부 기자 '임상진'으로 변신했다. 실력과 적당히 허세 가득한 기자 상진은 한국의 언론사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는 보편적 캐릭터다. 상진은 취재과정에서 대기업 '만전'의 비리를 입수하고, 기자로서의 촉이 발동한다. 열심히 기사를 작성하지만 오보로 판명 나 난처한 상황에 처한다. 결국 정직까지 당하고 어깨가 축 처져 있던 그의 앞에 익명의 제보자가 나타나면서 상황은 급반전한다. 자신을 온라인 여론을 조작하는 댓글부대, 일명 '팀알렙'의 멤버라고 소개한 제보자는 상진의 기사가 오보가 아니라 자신들이 진행한 작업이었음을 밝힌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의 안국진 감독은 전작인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를 통해 언론과 평단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자본주의가 만연한 한국 사회의 단면을 유쾌 발랄하게 비틀어 놓은 이 작품으로 백상예술상, 청룡영화상 등 주요 상을 휩쓸었다. 안 감독이 이번 작품에서 눈여겨본 댓글부대는 실제로 존재할까. 사실 그동안 소문은 무성했지만 누구도 실체를 정확히 확인하지는 못했다. 안 감독은 영화 시사회 이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댓글부대의 실체에 대해선 영화를 만들기 위해 처음 접근할 때나 지금이나 같은 입장이다. 왠지 있는 것 같은데 실체를 모르겠고 없다고 하기엔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안 감독의 말처럼 영화에서는 댓글부대의 실체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유보한다. 사건의 진실은 무엇인지, 누가 왜 댓글을 작성했는지 사건의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등 끝없는 질문을 꼬리표처럼 남긴다. 실체가 불명확한 댓글부대를 화면에 구현하기 위해 제작진은 인터넷 화면 창과 SNS 등을 속도감 있게 활용했다. 또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모호한 인물들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장소 인서트 컷과 몽타주 기법을 도입했다.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으로 일약 스타감독으로 부상한 조상경 의상 감독, '헤어질 결심' '수리남' 등에서 스토리라인을 강조하는 음악으로 눈길을 끈 조영욱 음악감독이 투입됐다. 김은경기자 enigma@yeongnam.com대세배우 손석구가 언론사 기자로 변신해 온라인 여론조작에 맞서는 영화 '댓글부대'의 한 장면.
[김은경의 영화 심장소리] '트립 투 그리스'(마이클 윈터바텀 감독·2020·영국)…최고의 레스토랑 순례하는 꿈 같은 여행
'트립 투' 시리즈는 모두 네 개다. 2010년에 개봉된 '트립 투 잉글랜드'를 시작으로 이탈리아(2014), 스페인(2017), 그리스(2020)까지. 국내 개봉은 순서도, 개봉 연도도 좀 다르다. 첫 번째인 '트립 투 잉글랜드'를 보고 특이한 여행 영화라 생각했다. 극 영화와 다큐멘터리의 중간쯤 되는 영화였는데, 무엇보다 두 남자의 끊임없는 수다에 놀랐다. 코미디언이자 배우인 롭 브라이든과 스티브 쿠건 두 배우는 어디까지가 대본인지 실제인지를 가늠하기 힘든 장면들을 보여준다. 맛있는 음식과 끊임없는 수다, 아름다운 풍경, 이것이 영화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 단순함이 또한 매력이다. '트립 투 그리스'라는 제목이 눈에 띄어 설레는 마음으로 영화를 봤다. 작년 6월에 실행했던 버킷리스트 '그리스 여행'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가 본 그리스의 흔적이 얼마나 들어있는지가 가장 궁금했다. 결론은 내가 갔던 곳과는 매우 다른 곳을 다녔다. '트립 투 그리스'는 '오디세이' 속 오디세우스의 여정을 따라간다. 터키 아소스에서 시작하여 그리스 이타카로 끝나는, 오디세우스가 거쳤던 바로 그 길이다. 10년 여정 끝에 고향 이타카로 돌아갔던 오디세우스처럼 두 남자도 잉글랜드를 시작으로 10년여에 걸친 여행을 끝낸다. 이들은 6일간 6개의 유명 레스토랑을 방문하며, 그리스의 예술과 철학, 음식 그리고 그들의 인생에 대해 이야기한다. 유쾌하지만 시시껄렁한 농담과 영화계 뒷담화, 유명 배우의 성대모사는 여전하다. 영화마니아라야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 꽤 많다. 유머 코드가 맞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관객을 스며들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는 평처럼 이 영화의 장점을 무시할 수 없다. 이번에는 예전의 영화 스태프를 만나 난민 캠프에 들르는 장면이 있다. 현 유럽의 고민을 담고 있어 생각할 거리를 안긴다. 이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고향 스타기라와 세계의 중심 델포이, 그리스 최고의 해산물 레스토랑 등을 순례한다. 하지만 스티브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여행을 마저 끝내지 못하고 귀국한다. 롭은 그리스에 도착한 부인과 함께 남은 여행을 즐긴다. 우여곡절을 거쳐 각자의 가족과 화해하며 따뜻한 시간을 가지는 두 사람의 모습이 감동적이다. '여행은 결국 집으로 돌아오기 위한 것'이란 점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마치 오디세우스의 여정처럼 말이다. 꿈과 여행은 같은 의미인 모양이다. 일 년도 지나지 않은 그리스 여행이 꿈을 꾼 듯 아득하다. 사진을 뒤지며 기억을 떠올려 본다. 남는 건 역시 음식과 풍경, 함께한 사람이다. 그러니 이 영화는 여행의 필수 요소인 세 가지를 훌륭하게 담아낸 셈이다.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등의 여행을 계획하거나 다녀온 이에게 기꺼이 추천할 만한 시리즈다. 단 두 남자의 끊임없는 수다와 성대모사에 거부감이 없다면 말이다. 소재만 던져 주었을 뿐 구체적인 대본은 없던 만큼 두 배우의 즉흥 연기에 많이 기댄 영화다. 김은경 영화 칼럼니스트트립 투 그리스 스틸컷.
[금주의 영화] 탐정 말로, 중후한 매력과 화려한 액션…리암 니슨표 '필립 말로' 탄생
사립 탐정 '필립 말로'는 미국의 추리소설가 레이먼트 챈들러의 소설에서 탄생했다. 각 잡힌 정장차림에 중절모를 쓰고, 진지한 표정으로 사건 해결에 나서는 캐릭터다. 탐정 말로는 '셜록 홈즈'와 비교되면서 수많은 추리소설 독자들에게 세대를 넘어 사랑받고 있다. 그동안 할리우드에서 '탐정 말로'를 그린 영화는 여러 편 제작됐다. 잘생긴 외모와 우수 어린 눈빛 연기로 여심을 자극한 험프리 보가트가 주연을 맡은 '명탐정 필립'이 제작됐으며, 1970년대에는 엘리엇 굴드 주연의 '긴 이별'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21일 개봉한 '탐정 말로'는 험프리 보가트 주연의 '명탐정 필립'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1946년 제작된 원작의 설정과 상황 등을 요즘 시대에 맞게 새롭게 바꿨다. 제작진이 영화를 만들며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것은 '말로' 역할을 누가 맡느냐는 것이었다. '테이큰' 시리즈로 잘 알려진 리암 니슨이 낙점됐는데, 일각에서는 그의 몸집이 크고, 무게감이 있다는 이유에서 배역에 적합지 않다는 의견을 제기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리암 니슨은 자신만의 중후하고 섬세한 말로 탐정을 탄생시켰다. 치명적 매력을 가진 금발여인 클레어가 말로를 찾아온다. 클레어는 자신의 정부인 니코 피터슨이 사라졌다며, 그의 행방을 찾아달라고 말로에게 의뢰한다. 얼마 후 니코 피터슨은 차에 깔려 얼굴이 으깨진 모습으로 발견되고, 사건은 일파만파로 확산한다. 원작에는 없었던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하고,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비밀들 속에서 관객들은 감독과 두뇌싸움을 벌이는 재미가 쏠쏠하다. 리암 니슨이 사건을 해결해가는 과정은 역동적이다. 액션영화를 방불케 하는 화려하고 리얼한 액션신과 스릴감 넘치는 스토리 전개 등이 여느 추리물과 차별화된다. 한편 '탐정 말로'의 수입사 측은 영화의 개봉을 맞아 이색 ARS 이벤트를 도입했다. '070-8984-0321'로 전화를 걸면 영화의 주인공인 '필립 말로'를 연기한 리암 니슨의 목소리가 나온다. 통화가 끝나면 '말로'의 사무실에서 보내온 문자메시지도 전달되는데, 수신된 메시지 이미지와 말로에게 의뢰하고 싶은 사건을 SNS에 업로드 하면 추첨을 통해 경품을 증정한다. 김은경기자 enigma@yeongnam.com1946년 험프리 보가트 주연의 '명탐정 필립'을 리암 니슨 주연으로 새롭게 리메이크한 '탐정 말로'.
[개봉작] 목스박
감독:고훈 출연:오대환·지승현 장르:코믹액션 등급:15세 관람가 목사, 스님, 박수무당이 연합해 벌이는 한바탕 복수극을 그린 코믹 액션극. 왕갈비파의 두 행동대장 '경철'과 '태용'은 삼거리파에게 갑작스러운 습격을 당한다. 두 사람은 보스를 잃고 가까스로 피신해 각각 '천사의 교회'와 '은신사'에 숨는다. 사기꾼 목사로 인해 망한 교회에서 경철은 새로운 목회자로 추앙받는데….
의료대란으로 번진 의대 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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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증원 집행정지 각하·기각] 정부, 대학 "2025학년도부터 의대 증원 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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